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19화 (219/346)

219.

“가치라는 것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에머리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상대의 정확한 의도를 알지 못하는 이상, 내 태도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연아가 생각 보다 참 똑똑해요. 물론 표세인, 당신의 능력이 뒷받침되니까 가능한 것이겠지만…….”

에머리는 내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계속 이어갔다.

“사람들을 사로잡는 재주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실제로 자본주의 시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을 가진 이들이 주도하고 있지요. 연아는 당신 내면에 깃든 마력을 일깨우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마력이라는 단어는 다소 과장스럽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겠다.

내게 마력이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투자설명회에서 몇 마디의 언변으로 수천조가 넘는 돈을 움직이는 괴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나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성능이랄까?

나는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조금 표현이 과하신 것 같습니다. 부회장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셨는지는 제가 속단할 수 없지만, 마력이라……. 글쎄요.”

내가 어물쩍 말 끝을 흘리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홍켓몬이 대뜸 입을 열었다.

“그런 종류의 마력이라는 것은 보통 자기 본인은 잘 모르기 마련이죠.”

“그런가요?”

에머리의 시선이 홍켓몬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면 주변인인 홍기도씨는 알고 계신가요?”

“당연히! 아, 스테이크 나왔다.”

홍켓몬은 대화를 끊고는 스테이크에 달려들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런 환기를 바라서 굳이 홍기도씨에게 부탁한 거니까요. 그럼 저희도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 볼까요?”

“그러시죠.”

나는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잘라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불러서 굳이 마력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식사에 집중했다. 어차피 에머리의 의도는 내가 짐작할 필요 없이 그녀가 스스로 꺼낼 것이다.

하지만 식사가 끝날 때까지 에머리는 더 이상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우가 아닌 것은 아쉽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네요.”

홍기도는 나름 만족했다는 듯이 배를 두드렸다.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식사도 끝났으니, 이동하실까요?”

“이동이요?”

“네. 오늘은 제 에스코트에 따라 주세요.”

에머리는 그 말을 끝으로 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저트는 없나?”

“그만 까불고 따라와.”

나는 입맛을 다시는 홍켓몬에게 주의를 날리며 에머리를 쫓았다.

“여긴?”

“이런 곳은 처음이신가요?”

에머리를 쫓아 도착한 곳은 청담동의 한 헤어샵이었다.

“여기는 왜?”

설마 본인 헤어컷이라도 지켜보라는 것은 아니겠지?

“곧 다큐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공중파에 출연하시게 된다고 들었어요.”

그 소식을 벌써 들었다고?

“저는 사정상 모델과 패션업계에 다소 인맥이 있지요. 그리고 그쪽은 나름대로 방송계와의 연결고리가 있죠.”

그렇군. TV에서 연예인들이 방송업계 참 좁다~ 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던 것이 기억난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에머리는 정말로 발이 넓은 것 같다.

“그건 이해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요?”

“일론 머스크는 모발 이식 이후에 신뢰도가 급상승했죠. 훌륭한 외모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무기랍니다?”

“설마 그런 이유로?”

“물론이죠. 저는 당신의 방송 출연이 그저그런 1회성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장차 제 훌륭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에머리는 말 끝에 홍기도를 슬쩍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작 홍기도는 스마트폰을 들고 아까 먹었던 스테이크의 사진을 업로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마도 에머리는 연아를 언급하려 했던 모양이다. 사실 홍기도 녀석은 이미 알고 있지만, 굳이 그것을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당신도 모르고 있던 당신의 무기를 손질해 보자고요.”

“하하……. 이런 곳은 영 어색한데요.”

“곧 익숙해 지실거에요. 아니, 익숙해지셔야죠. 미국의 스타 경영인들은 저마다 전용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한다고요?”

그렇게 우리는 헤어샵 안으로 들어섰다.

“에머리!”

“잘지냈어요?”

헤어샵 원장은 에머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 오늘은 멋진 분들을 대동했네요? 이분들은?”

“내 비즈니스 파트너야. 오늘 특히 이분을 멋지게 변신시켜 줄 수 있겠어?”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고요?”

“시키면 잘 할 것 같긴 한데……. 런웨이 관심있어요?”

“전혀 없습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먼지한톨만큼도 관심이 없다.

“아쉽네.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데?”

“모델 같은 전문 영역에까지 발을 들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요즘은 꼭 모델만 런웨이에 서는 것도 아니에요. 핏도 좋고 자세도 좋으니, 조금만 트레이닝을 하면…….”

“사양하겠습니다.”

대체 나를 어디까지 보낼 생각인거람?

“좋아요. 런웨이 건은 다음에 논의하기로 하고…….”

다음은 없어요~

“변신은 비즈니스에도 연관이 있는 문제니까, 힘내자고요!”

힘을 낼 필요가 있는 겁니까?

“일단 앉아보세요. 어떤 스타일로 포커스를 맞추면 될까요?”

“댄디하면서 능력있는 사업가의 면모가 드러나도록 부탁할게.”

사업가? 나는 그냥 회사원이지, 사업가는 아닌데?

“그러면 헤어는 크게 건드릴 필요는 없겠네요. 알겠습니다.”

원장은 빠르고 경쾌한 가위놀림으로 내 머리를 단장하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동네 미용실에서 대충 다듬어 주세요. 정도만 부탁하던 내가 이런 으리으리한 장소에서 머리를 하게 될 줄이야.

대충 머리칼을 정돈한 나는 샴푸를 끝내고 2층에 있는 메이크업 실로 이동했다.

“이런 곳은 역시 어색하네요. 연예인들이나 이용하는 장소라는 느낌인데…….”

“어머? 요즘에는 일반인분들도 많이 이용하세요. 관리는 필요가 아닌, 필수인 시대라고요?”

그렇습니까?

“먼저 잔털 제거를 해드릴게요.”

얼굴에 크림을 바르자, 면도칼이 내 얼굴 위를 미끄러져갔다.

세상에! 눈썹 정도만 다듬는 것이 아니라, 얼굴 전체의 털을 밀어버리는 구나!

“피부 관리는 좀 하셔야 겠네요. 나쁜 편은 아니지만 딱히 좋다고는 못하겠네요.”

그건 이곳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닙니까? 나름 밖에서는 피부 나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얼굴 표면을 정리한 이후에는 본격적인 메이크업이 시작되었다.

뭔가 정신없는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원장의 손아귀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와! 몰라보겠네요.”

본인의 작품이 만족스러운지, 원장은 호들갑을 떨었다.

“역시 진로를 잘 못 선택한 걸지도?”

아닙니다. 제 진로 선택에 실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끝인 겁니까?”

“마지막 코스가 남아있어요.”

“또?”

“스튜디오에 가서 프로필을 촬영을 해야해요. 방송국이나 다른 외부에 보도자료용으로 쓸 수 있도록 말이죠.”

-찰칵!

“갑자기 나를 왜 찍냐?”

“단톡방에 올릴 거에요.”

홍기도의 말에 나 역시 스마트폰을 열었다.

-우와! 부장님 몰라보겠다!

-최고! 최고! 부장님 너무 멋져요!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럼 출발!”

그렇게 나는 하루종일 에머리에게 끌려 다녔다.

*

*

*

“깜짝이야.”

연아는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알고 있던 것 아니야?”

“아니, 뭔가 한다고는 들었는데……. 흐음…….”

연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의외로……. 엄마가 쓸만할 때가 있네?”

연아는 한껏 꾸며놓은 내 모습이 퍽 마음에 드는 듯했다.

“메이크업 잘했다. 뜨지도 않고…….”

“솔직히 좀 불편하다는 느낌이긴 한데.”

“익숙해져야지.”

“굳이 익숙해질 필요가 있나?”

“그럼 우리 맥베스의 간판인데……. 방송을 시작으로 게임 시연회나 투자설명회까지. 앞으로 맥베스는 오빠를 중점으로 움직일 테니까.”

“네가 나서는 편이 좋지 않나?”

“내가 방송에 나갔으면 좋겠어?”

아! 아니다. 이건 실수다.

“우리 연아는 안 되지. 그냥 내가 할게. 괜히 연예인 같은 것들이 네게 치근덕대기라도 하면 곤란해.”

“크크큭. 나는 오빠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가 좋더라.”

연아는 킥킥 웃었다.

“그런데 이렇게 꾸며놓고 프로필 촬영을 한 것이 전부였어? 뭐가 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딱히 없었어. 뭔가 나중을 위한 준비? 라는 느낌이던데?”

“그래. 그렇겠지. 아마도 에머리는 우리와 본격적인 파트너쉽을 채결하면, 이 프로젝트의 얼굴로 오빠를 밀고 싶은 모양이야.”

그래. 뭐 대충 그런 그림일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니 직접 나서서 나를 꽃단장까지 시킨 것이겠지.

결국 오늘은 일종의 사전 점검 같은 것이겠지.

“어쨌든 앞으로 이래저래 바빠질 거야. 개발 일과는 별개로……. 괜찮겠어?”

“일이잖아. 이제는 어엿한 부장인데 개발에만 전념할 수는 없겠지.”

이미 그정도 각오는 하고 있다. 무엇보다 차후 내 꿈이라 할 수 있는 AAA급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할 때는 오히려 더욱 기획서와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게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총괄자는 개발 보다는 관리적인 업무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상관없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점은…….

“오히려 내가 방송 출연까지 하면서 인지도를 높혀야할 이유가 있는 거지?”

“응. 지금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언젠가 오빠의 이름값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순간이 있을 거야.”

아무래도 연아는 모종의 빅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행이네.”

“뭐가?”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윽……. 그렇게 이쁘게 치장하고서 이런 말을 하니까 좀 설레는데?”

“평소에는 설레지 않으셨단 말씀이십니까?”

“조금 다르달까?”

연아는 싱글싱글 웃었다. 아무래도 지금 내 모습이 퍽 마음에 드는 것 같다.

항상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나도 꾸며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당장 방송 출연 때문에 인디 개발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야? 홍기도 과장이나, 다른 임원 팀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연아는 방송 출연 탓에 내가 다른 팀들에게 밀리지 않을까 걱정인 모양이다.

“요즘에 말야…….”

“응?”

“좀 즐거워.”

“즐겁다고?”

“모두가 저마다 재미있는 게임들을 만들려고 하고 있잖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필터링 없이 생생한 아이디어를 표출하고 있어. 요즘에 주변을 둘러보다보면 찌릿찌릿하거든?”

“찌릿찌릿하다고?”

“딱 좋은 긴장감과 흥분감이 느껴진달까? 승부욕도 자극되고 말이지.”

나는 슬쩍 주먹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그럼 걱정 없는 것 같네.”

“걱정 없어. 이미 나도 비밀병기 준비했거든.”

“헤에~ 홍기도 과장도 그렇고 양실장도 그렇고 모두 비밀병기를 하나씩 꺼내드는 와중에 오빠의 카드는 뭘까 궁금했는데…….”

“당연히…….”

내 카드가 제일 쎄지!

그만 내려놓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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