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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20화 (220/346)

220.

인디 프로젝트는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차원의 프로젝트다.

기간도 무한정 보장할 수 없으며 목표도 모호하다.

그렇기에 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시점부터 좀비로얄 팀과의 협업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박대표는 내 요청에 응했다.

그는 그가 꺼낼 수 있는 최강의 패를 내게 제공해주었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상승 팀장님.”

팀장으로 승진한 이상승은 예전보다 한결 늠름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초안을 잡고 개발한 좀비로얄의 기대이상의 흥행.

그 덕분일까? 전에는 다소 듬직하다는 인상은 없었는데, 이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눈매부터가 달라졌네.’

눈가에 여유와 자신감이 넘처 흐른다는 느낌이다.

우리팀의 에이스가 남궁원이라면, 좀비로얄 팀의 에이스는 명실공히 이상승 팀장이 아니겠나?

“하지만 이상승 팀장님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표세인 전무님께서, 아니……. 이사님?”

아무래도 박대표는 아직도 내 호칭가지고 장난을 멈추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은 부장입니다.”

“아아,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아직 팀장이실 까봐 걱정했습니다.”

“걱정이요?”

이 나이에 팀장도 그리 흠결 있는 직책은 아닌데, 굳이 걱정할 필요가 있나?

“표세인 상무님과 같은 직급인 것은 너무 부담스럽지요.”

결국 이사냐. 부장이라고 말해줬건만……. 어쩐지 이거 고치려면 꽤 걸릴 것 같다.

“일단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맥베스에서 부장 이외의 호칭은 곤란합니다. 이 부분은 유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직 나는 맥베스 내부 직급 이외의 명함을 내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내 입지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차피 결혼 이후에는 모든 것이 크게 달라질 것이니, 그전까지만이라도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알겠습니다. 표세인 전무 아, 아니 부장님.”

그래.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디 익숙해지길 바란다.

“어? 이상승 과장님?”

“아! 남궁원 과장님.”

마침 남궁원이 이상승을 발견하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예. 오랜만입니다. 다들 남궁원 과장님 이야기 많이 합니다. 가끔 얼굴 비춰주세요. 그리고 저 이제 팀장입니다.”

“제 진급은 알고 계셨는데, 저는 팀장님 진급을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별말씀을요. 어쨌든 만나서 정말로 반갑습니다.”

한때 좀비로얄을 개발하며 일종의 전우애를 다졌기 때문인지,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며 재회를 기뻐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일로?”

남궁원의 질문에 뒤에있던 홍기도와 함송희도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표세인 어……. 부장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그게 진짜 그렇게 어려운거냐? 누가 보면 박대표가 세뇌라도 시킨 줄 알겠네.

“부름?”

홍기도가 대뜸 앞으로 나섰다.

“안 좋은 느낌인데요? 정말 이러시깁니까?”

“뭐가 이런식이야?”

“어떻게 저희를 두고 이 분을 호출할 수 있는 거죠?”

“맞아요!”

송희야……. 넌 뭘 알고 나서는거지? 쟤도 요즘 점점 이상하다.

“애초에 내 손발 다 쳐낸 사람이 누군데?”

“저는 내심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제쪽에 끼워달라고 하길 바랐다고요!”

“……내가 정말로 그렇게 할 거라고 기대했냐?”

“기대가 아니라, 바람. 가끔 자기전에 그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설렜었는데…….”

“너는 비타민제 말고 조금 다른 쪽 약을 먹어 보는 것도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말 돌리지마! 배신자……”

“반말?”

“님아…….”

홍기도는 냉큼 뒤로 물러나 함송희 뒤로 숨었다.

“인간적으로 송희 뒤에 숨는 것은 좀 그렇지 않니?”

“일단은 생존우선!”

그래. 지구가 망해도 살아남을 녀석은 있기 마련이지.

“어쨌든 당분간 내 프로젝트 진행을 도와주기 위해 특별히 모셔 온 거야.”

“텃세 부릴거야!”

“1절만 해라.”

보다 못한 남궁원이 한소리 거들었다. 그래. 그래도 이럴땐 남궁원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럼 다들 잘 하고 있으라고, 이팀장님 가시죠.”

“어딜가요! 왜 여기서 못할 말이 뭔데요!”

“너 요즘 아침 드라마라도 보냐?”

“엄마랑 누나가 추천해서 봤는데, 은근 꿀잼!”

“그래. 열심히 보도록.”

나는 꽥꽥거리는 홍기도를 뒤로한채, 이상승과 함께 프로그램팀으로 향했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마침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였던 김순영이 먼저 일어나 인사했다.

“그렇게까지 정중하게 인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함께 계신분은?”

“처음뵙겠습니다. 좀비로얄 1실 팀장인 이상승이라고 합니다.”

“김순영 차장입니다.”

“윤현창 과장입니다.”

윤현창은 인사를 하면서 나를 향해 눈짓했다. 대체 왜 데려왔냐는 눈빛.

“이상승 팀장님은 좀비로얄 초기기획부터 주요 시스템 프로그래밍까지 일선에서 개발을 견인해온 훌륭한 인재입니다. 그리고 이번 저희 인디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합류하셨습니다.”

“오! 좀비로얄 팀이 지원해준다고?”

“그거 기쁜 이야기군요.”

안그래도 다른 팀들의 워낙 인재풀이 빵빵한 탓에 상대적으로 우리가 불리해보이는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무려 좀비로얄 팀이 우리를 지원한다면 개발력 자체만 놓고보면 어디에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아니, 당장 우리가 개발하려는 무대가 현대 배경이므로 리소스 부분에서는 이 이상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파트너다.

“그렇죠. 특히 그래픽 리소스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게다가 TPS부분에서는…….”

“TPS라면 저만 믿어주십시오!”

“오오! 정말 믿음직 하네요. 저는 턴제 전투 부분을 다듬으면 되겠군요.”

본래부터 턴제 배틀 쪽을 희망하던 김순영이었기에 TPS파트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상승의 말을 크게 기꺼워했다.

“좋아! 역시 표세인 부장 쪽에 붙으면 이렇게 될줄 알았다니까!”

“이렇게되긴…….”

나는 윤현창의 말에 피식 웃었다.

이렇게 되긴 뭐가 이렇게 되나? 아직 아무것도 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이걸로 각 팀들의 비장의 패는 대강 공개가 된 셈이다.

이제는 각자 전력투구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포지션은 이쪽이 편하지?”

“네. 저는 어차피 초반 기획은 다 잡혔으니, 저는 코딩과 리소스 조율에 전념하겠습니다.”

“김순영 차장님께서 한부장님께 말씀드려서 이 친구 자리 좀 부탁드립니다.”

“네. 마침 세종씨 옆자리가 비었습니다.”

“음?”

“헉!”

이쪽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달아다려던 동생놈과 눈이 짝 맞추졌다.

“이, 이것은 첩자 노릇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우리 팀과 정보공유 차원에서…….”

“……이미 기획팀 들렀다 오는 길이다. 헛짓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

“이힛, 다행이네.”

“이상승 팀장님 훌륭한 개발자니까, 곁에서 잘 배워.”

“그러나 우리는 적이 아닙니까?”

“네 짬에 아군 적군이 어디있어. 다 선배님이고 선생님이지.”

“이분이 표세인 부장님 동생분이시군요. 역시…….”

역시? 우리 형제는 각각 엄마, 아빠 피를 나눠받아서 별로 안닮았는데?

“……크군요.”

아, 그쪽이었구나.

“네. 쓸데 없이 크죠.”

“엄마가 다 쓸모가 있다고 했잖아……요.”

요즘 여기저기 반말이 빗발치는구나, 맥베스 동절기 군기 캠프라도 열어야 할까?

슬슬 한번쯤 우리 말썽쟁이 녀석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겠다 싶긴 하다.

“그럼 다들 힘내서 그럴 듯한 작품 하나 만들어 보죠.”

“예!”

“파이팅!”

“열심히 하겠습니다.”

모두 의욕이 넘치는 것이 참 보기 좋다.

“그럼 저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먼저 물러가 보겠습니다.”

나는 가벼운 목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상무님께는 따로 보고를 드려야지.’

이상무에게는 적어도 따로 보고를 드려야 한다.

‘이것 말고 다른 것도 하나 말씀드려야 하니까.’

나는 이상무의 방으로 향했다.

*

*

*

표세인이 좀비로얄의 지원을 등에 업었다!

이 소식은 금새 회사 내부에 파다하게 퍼져버렸다.

또한 이 소식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그 정도는 당연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지요.”

양성태는 이미 예상했었다는 모습이었다. 그런 반면 문상훈은 놀라움 보다는 안도에 가까웠다.

“다행이야.”

“다행이요?”

“아, 아니……. 그런게 있다고나 할까?”

“그렇군요. 그런게 있군요.”

양성태는 다 안다는 듯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흠흠, 뭐 자네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겠지. 솔직히 안심했어. 표세인 부장이야 하늘이 무너져도 제 할몫할테지, 그런 상황에서 미국지사에 손을 벌리지 않아서, 난 안심했어.”

아무리 자유분방함을 기조로 삼는 미국지사라지만, 설마 센터장인 자신의 요청도 짬시킨 채로 표세인의 요청을 대기하겠다는 말에는 절로 식은땀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이 자식들……. 내가 얼마나 신경써줬는데…….”

애초에 마커스가 쳐내려고했던 제프리팀을 두둔한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문상훈 본인이었다.

“네. 표세인 부장님은 묘한 마력이 있지요. 어쨌든 잘 진행되신다니 다행입니다.”

“맞아. 그리고 양실장도 지금 좋은 물건 건졌다는 소문이 있던데……. 설대표가 침발라 놓은 괴짜 천재를 손에 넣으셨다던데?”

문상훈은 좀비로얄 때도 그렇지만 의외로 귀가 밝은 편이었다. 이미 천재 일인 개발자로 소문난 김태호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인물이 아니라던데,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그것도 표세인 부장님 덕분입니다.”

“아! 그것참 무섭구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에도 정도가 있다. 인디게임 개발에 방송에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도 양실장을 도와줄 여력까지 있다니…….

“그래도 이제 모든 패가 오픈 된 것 같군. 이제 남 신경 쓸 것 없이 그저 내달리기만 하면 되겠지.”

문상훈은 내심 홀가분하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그가 직접적으로 신경 쓰는 것은 도이사였지만, 표세인을 신경쓰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글쎄요. 그건 어떨는지…….”

“그게 무슨 말이지?”

“지금까지 표세인 부장을 곁에서 지켜봐왔지 않습니까?”

“그……렇지?”

문상훈은 순간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뭐라고 콕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가슴 어림이 두근거린다.

“좀비로얄과 표세인 부장의 돈독한 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이미 문상훈 본인이 노리던 먹잇감을 표세인이 낚아 채는 것부터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었지 않나.

“과연 표세인 부장이 모두가 다 예측할만한 카드만으로 게임판에 앉을까요?”

“그 말은 역시…….”

“과연 표세인 부장의 비장의 패가 그것뿐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양성태의 말에 문상훈은 끄응하는 소리와 함께 혀를 찼다.

분하지만 그 예측이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리고 이렇게 간단한 것 조차 양성태에게 뒤처지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네도 모른다는 거지?”

“네. 모릅니다.”

“그런데도 전혀 긴장이 안 되나?”

“문이사님.”

“응?”

“그만 내려놓으시죠.”

“내려놔?”

“표세인 부장님. 모실만한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양성태의 말에 문상훈의 입이 다물어졌다.

“……나도 알고 있어. 그냥 이건 내 스타일의 문제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흥.”

“그럼 어쨌든 기다려보죠. 과연 표세인 부장님의 비장의 패가 좀비로얄로 끝일지, 어떨른지…….”

양성태는 기대된다는 듯이 싱긋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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