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22화 (222/346)

222화.

“마이크, 체크 해주세요!”

“3번 카메라, 배치 이동합니다!”

녹화전의 촬영장이 이렇게나 분주한 장소일 줄은 몰랐다.

스탭 태그를 목에 건 사람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자리를 오가며 번잡함을 이루고 있었다.

솔직한 느낌으로는 시장통을 연상케하는 광경이다.

“조금 정신없으시죠?”

아직 이름도 낯선 스타일리스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 솔직히 좀 더 차분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카메라 밖은 촬영 중에도 다소 소란스러워요. 물론 소리는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만요.”

“그런 거군요.”

그래도 한번 분칠을 해본 덕분인지, 처음할 때에 비해 어색함이 덜했다.

“와, 화장 잘 받으시네요.”

“그렇습니까?”

이미 지난번에도 들었던 이야기지만 역시나 쑥스러운 칭찬이다.

“안녕하세요.”

그때 낯선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새로 출연하시는 게스트시죠? 성함이?”

“표세인입니다. 게임 기획자입니다. 그쪽은?”

“네?”

“?”

이름을 물었는데 왜 이렇게 놀라나?

“와, 신선한 반응이네요.”

이런……. 뭔가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내가 원체 TV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서 연예인은 코미디언 정도를 제외하면 잘 알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TV를 잘 보지 않아서요. 기분 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니에요. 연예인병 환자처럼 보였다면 죄송해요. 전 조하나에요.”

“조씨?”

“왜 그러시죠?”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즘 조씨성만 들으면 화들짝 놀라게 된다. 물론 조회장님께 숨겨둔 자식 같은 것이 있을리는 없지만…….

“제가 조씨성을 가진 분들과 연이 각별해서요.”

“아, 그러신가요? 어떤 인연이시죠?”

이런, 연이어 질문이 날아올 줄은 몰랐는데…….

“저희 회사 회장님의 성씨라서요.”

“아! 맥베스라고 하셨죠?”

“네.”

“거기 부회장님 엄청 미인이시죠? 금수저에 미인에……. 너무 부러워요.”

연예인이면 대게 금수저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가?

나도 참 철저한 일반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네.

“그런데 듣기로는 표세인씨도 엄청나게 부자라고 하시던데요? 수조원대의 자산가시라고…….”

“저는 그냥 일개 월급쟁이일뿐입니다.”

기둥소프트에 관한 사실이 너무 퍼져나가는 것은 바라지 않기에 나는 적당히 말을 돌렸다.

“흐음~”

뭔가 할말이 있다는 듯이 나를 슬쩍 훑어보는 조하나.

“그러시군요. 알겠어요. 이따 뵐게요.”

“네. 잘부탁드립니다.”

조하나가 자리를 떠나자 스타일리스트가 키득키득 웃었다.

“킥킥킥.”

“왜 그러시죠?”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지금 표세인씨를 두고 스튜디오가 시끌시끌한 상황이란 것 모르시죠?”

“시끌시끌하다고요? 일반인 게스트가 없나요?”

“어떤 의미에서 표세인씨는 일반인에서 한참 벗어난 분이신 것이 문제죠. 저는 이미 피디님께 들었다고요? 기둥소프트 비상장 회사인데, 본인 소유시라면서요.”

“으음……. 그 부분은…….”

“굳이 캐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요. 이렇게 훤칠한 외모에 수조원대의 자산가. 다들 시끄럽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어요?”

스타일리스트의 말에 이곳에서의 내 이미지가 대충 어떤 식인지를 알 것 같다.

“게다가 아직 결혼도 안 하셨다면서요?”

“저 여자친구 있습니다.”

“보통 방송출연 후에 교체되시더라고요.”

오, 맙소사……. 그러면 안 되죠.

제 여자친구는 저보다 더 부자거든요?

“저는 그럴 일 없습니다.”

“헤에, 그렇게 호언장담하셔도 되시겠어요? 이렇게 말하기는 뭣하지만, 연예인들과 어울리다 보면 다들 눈이 몇 단계 올라가더라고요.”

“내기해도 좋습니다.”

연아와의 만남은 전생유공자 특전 잭팟이 터졌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다음 생애라도 연아 같은 여자를 만날 수는 없다.

어차피 연아가 제일 이쁘고, 가장 능력 있지 않나?

“자신감 넘치시네요.”

“제 여자친구 못 보셔서 그러시는 겁니다.”

“여자친구분이 엄청나신가 봐요?”

“네. 엄청나죠.”

“멋진 커플일 것 같네요. 아무튼, 다 됐어요. 첫 방송 출연 잘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스타일리스트가 떠나고 나는 잠시 자리에서 대기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츰 패널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서로 가볍게 고개 인사를 나누고 있으려니, 검은 슬레이트를 든 조연출이 카메라 앞에 섰다.

“시작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슬레이트가 다물리는 순간, 주위의 공기가 일순 뒤바뀌었다.

“네, 오늘도 화제의 인물을 만나는 시간, ‘이게 누구야!’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아나운서 출신의 인기 MC 김주성은 마치 급제동을 밟은 자동차처럼 순식간에 에너지가 넘치는 시작 멘트를 쏟아냈다.

‘대단하다.’

화면 너머로 봤을 때는 딱히 큰 감흥이 없었는데, 직접 옆에서 들으니 그저 멘트하나로 옆사람의 텐션까지 끌어올리는 엄청난 재주였다.

“오늘은 역대급 게스트가 출연하셨죠?”

“네. 이 시대에 가장 핫한 직종이라고 할 수 있는 IT업계에 종사자이시면서,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가 아시는 맥베스에 근무하시는 것과 동시에 기둥소프트라는 자산가치 수조원대의 회사의 대표님이기도 하십니다.”

“정말 특이한 이력이죠? 대표이면서 직원. 그럼에도 굳이 본인은 맥베스의 부장급 사원으로 불리기를 희망하신다고요?”

“네. 보통은 대표라고 소개되는 것을 희망하시는 것이 일반적일텐데요. 저처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한번 본인에게 직접 들어볼까요?”

“표세인 부장님. 반갑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맥베스에서 기획자로 근무 중인 표세인입니다.”

“일단 다른 것은 몰라도 외모가 정말 출중하십니다. 키도 엄청 크시고…….”

“저는 처음에 모델이신 줄 알았다니까요?”

“그쵸? 그런 느낌이 있어요. 어떻게 그쪽 경험이 있으신 것 아닙니까?”

처음으로 깨달았다. 방송에서의 대화 템포는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

단순히 말이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호흡에 담기는 단어의 숫자가 남다르고 맺고 끊는 포인트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크고 명료하다.

“모델 같은 경험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운동만 했고, 게임 회사에 취직한 이후에는 쭉 게임 개발에만 전념해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역시 빠르다. 보통은 내 말이 끝나면 잠시 텀을 두고 대화가 이어지기 마련인데, 혹시라도 대화의 텐션이 낮아질 것을 우려하는 것인지, 쏜살같이 따라붙는다.

“표세인씨는 단순히 회사 이력만 독특하신 분이 아니시더군요. 원래는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경력까지 있는 엘리트 체육인 출신이십니다.”

“어쩐지, 몸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올림픽이 아닌 게임회사를 선택하신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이건 조금 곤란한 질문이다. 이미 사전에 곤란한 질문은 어물쩍 넘겨도 좋다는 확답을 들었기에 나는 준비한 대로 슬쩍 태권도를 포기한 이유는 건너뛰고 대답했다.

“어릴 적부터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운동을 끝낸 후에는 몸이 피로해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관심이 많았는데, 운좋게 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독특한 이력이신데, 원래 게임 개발사에 그런 특이한 경력이 흔한가요?”

“그리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체대출신 개발자로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기업의 대표까지 되셨는데, 이쯤에서 하나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소유하진 기둥소프트가 비상장 기업임에도 수조원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맥베스 직원임을 강조하시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까?”

“하하하. 기둥소프트는 맥베스 산하의 자회사라는 개념이 강합니다. 그리고 회사가 번 돈은 회사의 돈이죠. 법인과 개인은 분명히 구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모두가 잠시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그런 말은 처음 듣네요.”

“이야! 이런 게 진정한 기업인이 아닐까 싶네요. 요즘 안 그래도 횡령이다, 뭐다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회사의 돈은 회사의 것일 뿐이라니.”

“아닙니다. 어쨌든 저는 게임 개발이 제 업이라고 생각하기에, 기둥소프트 대표라는 직합보다는 맥베스의 부장이라는 타이틀이 더 좋습니다.”

“정말 예상외의 답변이네요. 뭔가 장인정신이 느껴지죠?”

“그러니까요.”

아? 나 지금 뭔가 잘 못 대답을 한 걸까?

아주 약간의 온도 차이.

순간적으로 스쳐 간 묘한 기류.

이것은 마치 회의 중에 내가 상사의 심기를 거슬렀을 때 느껴지는 바로 그거였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비호감.’

일반인이 방송에 출연해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뭘까?

분량을 얻지 못했다? 사람들을 웃기지 못했다?

아니다.

바로 비호감 이미지로 각인 되는 것.

게다가 나는 지금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비호감 이미지를 달고 게임 홍보가 가능하겠나? 더군다나 연아가 생각하는 계획에 나의 대외이미지도 상당히 중요하다.

“그럼 잠깐 태권도 선수 시절에 관한 질문부터 해볼까요?”

“그러고 보니 다리도 엄청 기세요.”

그 순간 김주성과 내 눈빛이 마주쳤다.

“혹시 전직 태권도 선수로써 발차기 같은 것 한번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래.

역시 괜히 스타 MC가 아니구나.

척하면 척.

그저 한 번의 눈빛 교환만으로도 바로 내 생각을 간파했다.

딱히 이런 퍼포먼스까지 선보일 생각은 없었지만, 여기서는 뭐라도 해야겠지.

그리고 마침 나에게는 한번 보여주면 일반인들은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는 장기가 있지 않나?

“그냥 발차기는 재미 없고…….”

“그럼 540도 턴?”

“그 비슷한건데, 그것도 그냥은 재미 없죠. 마침 잘됐네요.”

나는 마침 비어있는 작은 페트병을 집어 들었다.

“김주성씨. 이것 좀 들고 계셔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아, 이런 거 또 무섭지만 제가 해드려야죠.”

김주성은 너스레를 떨면서 페트병 꼭지를 들어 올렸다.

“아니요. 반대로요.”

“네? 이렇게요?”

김주성은 내가 말한 대로 페트병을 바꿔 잡았다. 이걸로 페트병 뚜껑이 밖을 향하게 되었다.

“이게 오랜만이라서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서둘러 구두와 양말을 벗었다.

뭔가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다소 우습기는 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것도 일인데, 제대로 해내야지.

“시작합니다.”

나는 재빨리 몸을 회전시키며 540도 회전 끝에 발을 휘둘렀다.

그리고 내 발 옆면은 정확히 페트병 뚜껑을 스쳤다.

-휘리릭!

발끝에서 정확한 임펙트가 전달되는 순간, 마치 페트병 뚜껑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와아!”

“이야~ 이거 정말로 놀랍네요. 보셨습니까? 이거 완전 리얼입니다.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 이런 거 처음 봐요. 세상에!”

역시 방송인들 답게 기대 이상의 리액션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원래 이런 재주는 일반인들이라도 처음 보면 누구나가 감탄을 숨길 수 없다.

내가 익스트림 전문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가뿐하지.

“이런 거 더 없나요?”

뭘 더 시키시려고 그럽니까.

“성냥개비라도 있으면 더 보여드릴 것이 있긴 하지만…….”

순간 카메라 뒤쪽의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진짜 가져오려고?

각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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