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23화 (223/346)

223.

결국 발차기로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는 묘기까지 선보이며 고군분투한 끝에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쇄신 하는 것에 성공했다.

요란한 리액션과 박수 갈채를 끝으로 자리에 다시 앉고 나서야, 그토록 기다리던 신작 게임 홍보의 기회를 맞이했다.

“요즘 새로운 게임을 개발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먼저 짧은 영상으로 대신 설명 드려도 되겠습니까?”

좀비로얄 측에 부탁해 우선적으로 완성한 짧은 시연 영상.

배경 그래픽도 전부 완성된 것이 아니라서 부분적으로는 좀비 로얄의 리소스를 개조한 미완성본이지만, 게임이라는 것은 본래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영상으로 설명하는 것이 임펙트가 크다.

“이거 기대되는데요? 한번 보시죠.”

그리고 나의 인디게임 프로젝트, ‘스쿨런’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한 소년이 거울 앞에서 교복을 정돈한다. 등교준비를 하는 평범한 소년이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가방끈이 있어야 할 어깨에 소총 끈이 대신하고 있던 것.

[나는 오늘도 학교에 가기 위해 소총 끈을 고쳐맨다.]

소년의 짧은 독백과 함께, 카메라가 창문으로 나아가며 반쯤 무너지고 덩굴과 식물로 뒤덮인 바깥 정경이 드러난다.

[스쿨런.]

뒤이어 나오는 것은 등굣길에 식물형 몬스터를 향해 총탄을 발사하는 교복차림의 소년, 소녀들의 모습.

[인류 문명은 멸망했고, 지상은 ‘플랜티어’라는 외계 식물들의 것이 되어버렸다.]

[징집법에 따라 면역력을 지닌 청소년들은 군사학교에 입학. 지상정화 작전에 투입된다.]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소년, 건물 위에서 저격총을 발사하는 소녀.

이후 탄환이 떨어지자, 그들은 소총에 대검을 착검하거나, 배트나 전기톱을 들고 식물들을 부수고 썰어내는 장면들이 연이어 연출된다.

마지막으로 온통 엽록체액을 뒤짚어 쓴 소년이 쓰러트린 거대한 식물 위에서 소총을 새로 장전한다.

[어려운 것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학교 가기 너무 힘들다. 오늘도 지각인가?]

그리고 카메라가 다시금 위로 올라가 도시의 전경의 비추며 큼직한 타이틀 로고, [스쿨런]이라는 타이포를 출력한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잘해주셨습니다. 방송 나간 후에는 좀 바빠지실 것 같은데요?”

“제가 특별히 바빠질 일이 있겠습니까?”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지실 거고……. 제 예상에는 이번 방송 출연이 마지막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김유성 피디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글쎄요. 그건 모를 일이죠.”

어쨌든 이걸로 미션 컴플리트.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이제 스쿨런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으니, 개발에 박차를 가할 시간이다.

*

*

*

“이건 생각 못했네.”

“그러게 부장님이 방송에 출연하면 당연히 게임 홍보가 있을 거라는 예상을 했어야 했는데…….”

홍기도와 남궁원은 휴게실 TV를 통해 표세인의 방송출연을 시청하며 입맛을 다셨다.

“지금 미튜브에서도 호평 일색이에요. 모바일이 아닌, 콘솔과 PC로 출시되는 신작 게임이라는 것이 호평의 가장 큰 축이지만…….”

노트북을 통해 인터넷을 살펴보던 함송희의 말에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만?”

“표세인 부장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요. 잘생겼다. 멋있다. 능력남. 뭐야! 감히 악플을 달아? 넌 죽었어!”

순간 함송희의 손가락이 미친듯한 기세로 키보드 위를 내달렸다.

“방송과 동시에 미튜브를 통해서 게임 뉴스를 도배하다니……. 역시 표세인 부장님이네.”

“이쪽으로는 수가 남달라.”

과거 미튜브를 통해 좀비로얄의 마케팅으로 흥행몰이를 성공시키는 것을 곁에서 똑똑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게임 개발자로서는 이런 마케팅 분야까지는 딱히 흉내낼 수가 없었다.

“좀비 로얄팀에 콘솔에 방송에 미튜브 마케팅까지……. 이거 파상공세가 너무 강력한 것 아니야? 다른 인디게임들은 어쩌라고…….”

가장 무서운 것은 이번에는 과거처럼 1억이라는 미끼투척 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진화하고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계산이 좀 틀어졌네.”

“무슨 소리냐니까?”

남궁원의 채근에도 홍기도는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는 표정으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계산 착오.

그렇다. 이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표세인의 기존 업적들을 토대로 그를 계산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포석의 수준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광범위해진다.

자신에게 들어온 예기치 못한 사태들도 어떻게 해서든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그것들을 그러모아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터트린다.

‘잘 해봐라.’

자신의 성장을 기대하며 기특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그것이 조소가 아닐까 했었지만, 이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며 한참 아래에 있는 자신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것이었다.

부디 따라와라. 혼자는 심심하다.

‘어쩌면 이런 느낌일 수도…….’

홍기도는 짧게 혀를 찼다.

“클클클. 다들 여기 있었군.”

“회장님. 오셨어요?”

그간 부쩍 가까워진 덕분에 함송희는 조회장을 무척 반갑게 맞이했다.

일견 회장과 직원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조회장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렇군. 오늘이 표세인이가 TV에 출연하는 날이었군.”

“네.”

“가만, 지금 이게 무슨…….”

마침 함송희의 노트북에서 재생되는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흡사 차력쇼를 연상시키는 표세인의 발차기 묘기를 발견한 조회장이 혀를 내둘렀다.

“이건……. 정말로 표세인이만 할 수 있는 묘기로군.”

“그렇죠. 게임 개발자가 아니라, 그냥 운동선수 부른 것같은 퍼포먼스죠.”

“너무 멋지지 않아요?”

오늘도 함송희만이 묘하게 온도가 다르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덕분에 다들 그저 무시했다.

“어쨌든 표세인 부장님의 프로젝트는 날개를 달았네요. 공중파에 미튜브에……. 홍보효과가 장난 아니겠네요.”

“벌써 게임 리뷰 사이트와 게임 미튜버들이 앞다퉈서 스쿨런에 대한 소식을 전파하고 있네요.”

남궁원과 함송희의 말대로 이미 스쿨런의 기대감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불씨를 틔우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거대한 불길이 되어 게이머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리라.

“분명 내가 듣기로는 방송출연 목적은 이게 아니었는데…….”

“원래는 뭐였는데요?”

“그건……. 부회장이 진행하는 일이니, 내가 말하기가 곤란하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까지는 없고. 클클, 그래서 우리 리더는 뭘 저리 고민하고 있는건가?”

조회장은 홀로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홍기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표세인 부장님 방송분을 보고는 갑자기 저모양이더라고요. 말 걸어도 대답을 안해요.”

“그렇군. 좋아. 좋아.”

“좋다고요?”

“뭔가 자극을 받은 것이겠지. 저럴 때 머리가 가장 쌩쌩하게 돌아가기 마련이거든.”

“어차피 저녀석 머리에 정상적인 생각은 없을 텐데요.”

“그래도 표세인이를 상대하려면 저렇게 독특한 사고 방식의 소유자도 필요한 법이지. 어쨌든 우리는 우리 일에 대한 논의나 해볼까?”

“아! 회의실 잡을까요?”

“그럴 필요 없어. 모처럼 이곳에 다 모였으니, 그냥 여기서 하자고.”

“음……. 상관 없으려나?”

남궁원은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평소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휴게실이지만, 조회장이 등장하자 파리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괜찮겠네요.”

마왕의 오러랄까?

등장만으로 허락받지 않는 자는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절대 영역이 완성된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요?”

“우리도 슬슬 마케팅 해야하지 않겠나?”

“하지만 우리는 아직 보여줄만한 영상이…….”

남궁원의 말에 조회장의 홍기도를 향해 턱짓을 했다.

“저 친구가 이미 다 손을 써놨더군.”

“아! 중국에서요? 하지만 보통 중국쪽 영상은…….”

중국 개발사들의 홍보 영상은 조악하기로 악명이 높다.

“나도 그걸 걱정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번에 새로 만든 마케팅 회사가 있어서 그런지……. 그쪽 감성이 아니더군.”

“그럼 다행이네요.”

남궁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악한 모바일 게임이라면 모를까, 이들이 개발하는 PC게임은 그런 B급 감성의 홍보영상이 통하는 시장이 아니었다.

“이거다!”

갑자기 홍기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고개를 퍼뜩 치켜들며 외쳤다.

“?”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리냐.”

남궁원이 홍기도를 바라보며 힐난했다.

“우리, 얼리액세스(앞서 해보기) 출시 전략 해보는 것 어떨까요?”

“어? 지난번 표세인 부장님이 했던 것?”

“맞아. 인디는 얼리액세스가 대세잖아.”

과거 좀비로얄 개발 당시 표세인은 얼리액세스를 이용해 훌륭한 흥행몰이를 성공한 바가 있었다.

“우리는 어차피 PC 시장이 메인이고 어차피 게이머들 사이에서 최고의 홍보는 글로벌 홍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당장은 준비가 안 되잖아? 가능해요?”

“음……. 좋은 아이디어지만, 서버는 아직 시간이 걸려.”

“일단 싱글부터, 그리고 차후 멀티추가라는 점을 밝히는 거죠. 그리고 당장 넣자는 것은 아닙니다. 페이지만 먼저 오픈하는 거죠.”

“제품도 없이 페이지만?”

“네. 보니까, 요즘에는 얼리액세스 시작 날짜만 박아 놓은 페이지도 많더라고요. 어차피 홍보영상은 있으니까.”

“그렇군. 디젤 스토어를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자는 거로군. 그것은 확실히 최고의 홍보 수단이지. 무엇보다 글로벌 홍보라는 점에서도 최고지.”

어차피 PC 게임 시장은 해외 시장이 메인이다. 그렇기에 홍기도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확신했다.

‘무엇보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니까.’

자신의 아이디어만으로 표세인에게 한방 먹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홍기도는 이미 지난번에 그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개발자로서 자신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가장 오랫동안 표세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았고, 그의 생각을 쫓는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확실히……. 이건 표세인이가 생각할만한 수로군.”

“네. 그쪽으로 머리를 굴렸죠.”

“좋아. 이거 쓸만해 보이는군. 그런데 디젤 스토어에 페이지 요청은 자네가 직접 할 텐가?”

“아니요. 쉬린칭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이제는 쉬린칭의 도움을 받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다.

필요한 것은 이용한다. 여기에 어떤 사심도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저 최고의 효율과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다.

방송국에서 난데없이 발차기를 선보이며 고군분투하는 표세인을 보라!

그 지독한 개발자는 오직 자신이 개발하는 게임의 성공 이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

오직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표세인의 등 뒤를 쫓기도 쉽지 않다.

‘이건 각성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원들의 모습을 지켜본 조회장은 본능적으로 홍기도가 갑작스러운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럴 때, 기세를 잘 만나면 정말로 한꺼풀 벗어 던지고 훌륭한 인재로 거듭나기 마련이다.

대게 어느 정도 두각을 드러낸 사원들은 결국 이와 같은 과정을 경험하기 마련.

‘재미있군.’

젊은 직원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는 이런 즐거움이 있기 마련이다.

조회장은 흐뭇한 얼굴로 앞으로의 계획을 열정적으로 늘어놓는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띠링!

[홍기도가 ‘흉내내기’를 습득했다!]

그런데 문득 조회장의 머릿속에 묘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설마 이놈, 이번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제 팀원들을 키우려는 건가?’

설마 거기까지 두 수, 세 수를 읽고 움직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회장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뭔가 찜찜한 것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일단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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