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25화 (225/346)

225.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거나 재정립하기 마련.

누군가는 친밀한 태도로 주변의 안정화를 꾀한다면, 누군가는 공격적인 태도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한다.

소일연은 지금 새로운 실장으로 부임하기에 앞서 일종의 서열정리? 같은 것을 시도하는 것 같다.

그의 행동은 내 스타일에 맞지는 않지만, 선을 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는 조율해가며 맞춰 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타공인의 미친개.

문이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자마자 군기부터 잡나? 그게 일본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달라.”

“…….”

“상급자가 말하면 하급자는 대답하는 거야. 실장씩이나 되어서 그것도 모르나?”

“……문상훈 이사님이시군요. 차기 상무보로 가장 유력하시다는…….”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내 말에 대답이나 하지? 부장급에게는 직급 내세우면서, 본인은 위아래 없이 굴겠다. 이건가?”

문이사는 역시 거침이 없다.

소일연 실장은 오늘 처음 봤지만, 한 눈에도 문이사와는 극과 극 같은 성향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차라리 양실장은 부드러운 미소로 어느 정도 상대의 공격을 감싸는 방패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문이사와 마지막 대척점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소일연은 뭐랄까, 날카로운 창끝 같은 느낌이다.

예리한 날붙이의 기운이 걷히지 않는 이상 문이사는 결코 송곳니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타입들은 어느 한쪽이 부러지거나, 쓰러지기 전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문이사님과 표세인 부장은 좋은 사이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제가 입수한 정보는 다소 오래된 것인가 보군요.”

“빙 돌리지 말고 내 말에 답이나 하지?”

“예. 제가 다소 공격적이었던 것 같군요. 표세인 부장, 사과하지. 문이사님께도 용서를 바랍니다.”

1차전은 문이사의 승리로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

어차피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소일연은 순순히 물러났다.

“좋아. 앞으로 지켜보겠어. 굳이 평지풍파 일으키지 않길 바라.”

“예. 그러시죠.”

“…….”

문이사는 소일연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지만, 남들 눈이 많은 곳에서 굳이 더이상의 앙금을 만들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이만 가보지.”

그러면서 문이사는 내게 살짝 귀띰했다.

“전형적인 하이스펙에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놈이야. 초장부터 기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 감사합니다.”

나는 문이사에게 깍듯이 고개 숙였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소일연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귀띔해 주기 위해 방문했던 모양이다.

이런 마음 씀씀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문이사는 양실장과 비교되는 덕분에 거친면이 부각되는 것이지, 의외로 섬세한 마음 씀씀이가 있는 편이다.

아마도 실장 삼인방도 그런 부분에서 문이사를 따르는 것이겠지.

“…….”

“…….”

문이사가 그렇게 떠나고 나는 다시금 소일연과 단둘이 마주했다.

“듣기로는 표세인 부장은 양실장 파벌이라서, 이상무 파벌에 속한 문이사님과는 좋지 않은 관계라고 들었는데, 제가 틀린 모양이군요.”

짧은 침묵 끝에 소일연은 씁쓸한 표정으로 다소 빛바랜 정보를 늘어놓았다.

“네. 그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지금은 저를 무척 아껴주십니다. 양실장님과 문이사님의 관계도 전과는 전혀 다르고요.”

일단 과도하게 낡은 정보는 살짝 교정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괜히 어설픈 정보로 여기저기 사고 치게 두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랬군요.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표세인 부장이 제 휘하로 들어오는 것은 확실합니다. 혹시 들었습니까?”

“들은 바는 없지만,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속한 개발실은 아직까지 이름도 없다. 애초에 2실과 3실의 인원들을 쪼개서 급조한 팀이었다.

늦게나마 내가 부장을 달았으니, 새로운 실장이 배정되는 것도 자연스러울 일일 터.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스케일, 스타일의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보다는 잠시 후, 식사 자리에서 나누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부회장님과 김대표님과의 식사 자리에 동석하십니까?”

소일연은 상당히 의외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소일연의 입장에서는 다소 의외일 것이다.

일개 부장이 임원급(소일연도 아직 임원은 아니지만) 인사들의 회동에 동석한다는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양실장에 문이사……. 아니, 애초에 김대표님도 당신을 높게 평가했었죠. 그것은 단순히 업무능력만은 아니라는 느낌이었죠. 물론 김대표님을 통해 당신이 작성한 문서들과 참여한 프로젝트들의 성과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만.”

소일연은 슬쩍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조금 전 키보드 소리만으로도 좋은 기획자라고는 생각했지만…….”

“키보드 소리 만으로요?”

“컨트롤 혹은 시프트와 같은 단축키를 이용하는 소리만으로도 얼마나 막힘 없이 문서를 작성하는지를 알 수 있지요. 완성본들의 퀄리티는 이미 확인한 상황에서 속도까지 훌륭하다면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사람, 독특한 재주가 있다.

“그런데 너무 정치적인 장수는 지휘하기 쉽지 않은데…….”

정치적이다.

과거의 나에게는 결코 따라붙을 수 없는 수식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떤가?

내 스스로도 기만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충분히 정치적이며, 압도적인 지지기반을 만들어버렸다.

“소일연 실장님.”

“네. 말씀하시죠.”

여기서 한가지는 분명히 해둬야겠지.

안타깝지만, 지금 소일연과 나.

우리 두 사람 중에서 누군가를 평가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당신이 아니다.

이 부분을 오판하면 당신은 맥베스에서 온전히 뿌리를 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막 맥베스에 발을 들이셨습니다. 속전속결을 바라시는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아직은 더 보고, 듣고, 느끼셔야 할 일들이 많으실 겁니다.”

악수 하나를 가지고도 직급 문제를 내세웠던 인물이다.

그런데 조언인지, 충고일지 모르는 이 말에는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신중하길 바란다.

첫 단추는 중요하며, 그 단추의 여밈을 판단하는 것은 나니까.

“확실히 내가 좀 조급했던 것 같군요. 당신을 한시라도 빨리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네.”

“나는 당신을 지켜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실장이고, 당신은 내 개발실에 소속된 인력입니다. 이 부분에 문제는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실장으로서 부장 표세인을 평가하는 것은 응당 그의 역할이다.

하지만 인간 표세인으로서 나는 소일연이라는 인재가 앞으로 연아의, 맥베스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평가한 결과에 따른 여파의 수준!

그 수준의 차이를, 아마 소일연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표세인 부장.”

이번에는 소일연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예. 잘 부탁합니다. 소일연 실장님.”

그래. 한번 지켜보기로 할까?

*

*

*

“고생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김대표는 모종의 임무를 받고 일본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해외순방에 가까운 일정을 감수했더랬다.

“클클, 여기 있었구만.”

“아, 회장님.”

김대표와 조연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자리에 계시지 않아서 이쪽에 왔습니다.”

“신경 쓸 것 없어. 그대로 앉아.”

상석을 양보하려는 조연아를 무시하고는 조회장은 그대로 김대표의 맞은편에 앉았다.

“미리 말하지 않았나, 이제 경영은 부회장의 몫이야. 나는 은퇴시기까지 자리나 지키고 있는 역할이지. 그러니 날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어.”

“하하하,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김대표의 말에 조회장은 피식 웃었다.

“곧 알게 돼.”

자신이 홍기도의 팀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를 김대표가 본다면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었다.

“그보다 나는 신경쓰지 말고 하던 이야기 계속 하라고, 나는 그저 고생하고온 김대표에게 얼굴이나 비추려고 자리한 거니까.”

“네. 어차피 이제 막 본론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조연아의 말에 김대표도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앞서 보내드렸던 자료를 보셨다시피, 일본과 대만에 있는 주요 회사들과의 협상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훌륭하군.”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예전에 회장님께서 요청하신 소일연. 그 친구도 포섭했습니다.”

“차세대 클라우드 시스템과 가상머신 운용 기술에 독자적인 노하우를 지닌 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조연아의 말에 조회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드란 인터넷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서버와 이러한 서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베이스를 통칭하는 용어였다.

반면 가상머신은 컴퓨터의 운영 체제 내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기반 컴퓨터로서 주로 테스트, 데이터 백업 또는 일부 애플리케이션 실행을 담당한다.

“이제 곧 고사양 PC나 콘솔은 필요가 없어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클라우드 기반의 게임 접속과 차세대 디바이스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거야.”

PC 시장에서 모바일 시장으로 발 빠르게 시대의 변화에 맞춰 회사를 탈바꿈시킨 조회장답게 그는 미래 게임업계의 변화에 맞춰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피씨나 기타 콘솔이 필요 없이 그저 TV나 VR헤드셋만으로 클라우드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소일연은 그 분야의 핵심인재로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탐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게임 개발사가 아닌 기업들과는 컨택을 하지 않았고, 그의 비전은 일반적인 게임개발사들에게는 너무 거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뜻하지 않은 연이은 히트작의 배출로 역대급의 자본력을 갖추게 된 맥베스는 절호의 투자 찬스를 놓칠 수 없었다.

“맞습니다. 소일연 실장은 차세대 게임 시장의 핵심 키입니다. 우리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인재지요.”

“네. 그렇지요. 그렇기에 그런 소일연을 표세인에게 붙여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굴지의 클라우드 전문가와 스타 개발자의 조합. 표세인 부장은 이걸로 날개를 달게 된 격이로 군요. 늦었지만 좋은 선물을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김대표는 뿌듯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약속한 선물이 여러 사정 덕분에 이제야 도착했다.

이제 막 부장으로 진급한 표세인은 향후 맥베스의 차세대 프로젝트를 총괄할 소일연 밑에서 더욱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완벽한 조합은 없을 것이다.

김대표는 무척 흡족했다.

하지만 정작 조회장과 조연아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날개?”

“네? 누가, 누구 밑에요?”

“?”

김대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표세인이에게 날개를 더 달아줘? 지금도 제 멋대로 로켓추진 하려는 판에?”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개발 4실은 새로 꾸릴 예정입니다. 애초에 표세인 부장은 기둥소프트의 대표이고 그가 담당하는 팀은 뭐랄까, 다소 독립적인 팀입니다.”

“어?”

김대표는 수십 년 만에 잊고 있던 옛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자신이 회사 사정을 까맣게 모르는 신입 시절에 사고를 쳤을 때 느꼈던, 딱 그 때의 심정이었다.

“애초에 표세인이를 소일연 그 친구가 밑에 두고 부리는 그림이 가능하겠나?”

“예?”

“물론 소일연 실장도 후에 이사급으로 진급 시킬 예정이지만 표세인 부장은 현재……. 대체 무슨 직급을 달아줘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는데…….”

“예?”

혼돈의 카오스.

김대표는 그저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홍켓몬! 너의 능력(?)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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