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26화 (226/346)

226.

“처음뵙겠습니다. 소일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조연아입니다.”

연아가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나와 연아 그리고 김대표와 소일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표세인 부장. 이렇게 다시 보니 정말 기쁘군.”

“감사한 말씀이십니다. 대표님.”

나는 김대표를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예전 체육대회 당시, 나와 김대표는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양실장이 파벌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김대표에게 나를 지원해달라는 부탁을 했었지만, 갑작스럽게 김대표는 장기 해외 출장을 떠나야했기에, 그간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그렇기에 예상 이상으로 나를 반기는 김대표의 행동이 다소 낯설었다.

하지만 환대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나 역시 활짝 웃는 것으로 김대표에게 답례했다.

“두 분은 조금전까지 대화를 나누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겸사겸사 개발 4실도 둘러보았습니다.”

“개발4실…….”

소일연의 말에 김대표가 낮게 신음했다. 사실 나도 이 부분이 의아했다.

실장 배치는 이해할 수 있는 수순이다. 그런데 4실?

그런 계획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

“그 부분에는 다소 오해가 있던 것 같습니다. 표세인 부장이 이끄는 개발팀은 다소 독립적인 위치에 있는 상황이라, 정식 편제로 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소일연과 나를 엮으려는 것은 그저 김대표의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살짝 난처한 표정의 김대표를 보고 있자니, 확신이 생긴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함께하고 싶은 인재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소일연은 슬쩍 내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첫 악수 때의 인상과는 별개로 나를 높게 평가한 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애초에 소일연 실장님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그래머지, 기획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어차피 핵심 소스의 개발은 끝난 상황이니, 오히려 우수한 기획자의 지원이 더 필요합니다. 사용자 경험에 대한 아이디어부터 설계까지. 이제는 상품화를 시작할때니까요.”

“철저한 기술자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조금 오판했던 모양이군요.”

“제가 그런 타입이었다면 굳이 게임 개발사를 선택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연아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개발4실의 출범은 언제쯤 준비가 되겠습니까?”

“그 부분은 가급적 소일연 실장님과 협의를 거쳐 함께 준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원치 않으신다면…….”

“아닙니다. 그편이 제게는 더 감사합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다소 사무적인 대화로 몇 가지 협의를 거쳤다. 그 직후 연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세 분께서 따로 대화하실 필요가 있으실 것 같으니, 저는 먼저 자리를 이동하겠습니다.”

연아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슬쩍 나와 눈이 마주쳤다.

‘힘내.’

‘그렇군. 이거 퀘스트였구나.’

조회장 보다 연아의 퀘스트는 더 난이도가 높다는 느낌이다.

조회장은 적어도 퀘스트 내용은 소상히 말해주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단 상황은 이해했다.

연아는 부회장이라는 입지 때문에 다른 이들의 속깊은 이야기에 직접 참여하기 어렵다.

그러니, 아마도 나에게 이들의 생각을 파악하라는 것이 분명했다.

연아가 준 첫 퀘스트라…….

띠링!

[김대표와 소일연의 허실을 파악하라! - 보상 : ???]

좋다.

오랜만의 퀘스트!

차라리 기쁠 정도다.

“네. 살펴가십시오.”

김대표가 앞장서서 연아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결국 나와 김대표 그리고 소일연 세사람만 자리에 남았다.

“일단 소실장.”

“예.”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내가 본사에 이렇다할만한 파이프 라인이 없는 탓에 내 정보에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 같군. 이 부분은 사과하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앞으로 김대표님과 제가 해야할 일이지 않습니까?”

소일연은 김대표를 두둔했다.

“표세인 부장.”

“예.”

“그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성장한 모양이더군. 양실장이 자네를 추천했을 때만해도……. 솔직히 이정도까지 빠르게 성장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네.”

“그렇습니까?”

확실히 당시 과장에서, 차장, 팀장을 거쳐 이제는 부장이 되어버렸다.

확실히 스스로 돌이켜 볼 때마다 놀라운 속도이긴 하다.

“게다가 보이는 것은 부장이라는 직급이지만……. 기둥소프트의 대표라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표라는 직함은 과분합니다. 어디까지나 기둥소프트는 맥베스 산하의 스튜디오입니다.”

물론 지분상으로는 솔직히 별개의 회사라고 할 수 밖에 없지만, 이것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

어쩐지 나를 바라보는 김대표의 눈빛은 조금전까지와는 다소 다르게 느껴진다.

‘뭘까? 이 아쉽다는 눈빛은? 설마…….’

머릿속에 한가지 묘한 추리가 스쳐갔다.

“솔직히 말하지. 우리는 자네는 포섭하려고 했네.”

“포섭이요?”

“놀라는 것도 이해하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내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아서 다소 당황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겠지만, 이건 굳이 파벌 다툼 따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파벌은 아니다…….”

“이제 곧 맥베스는 유례없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거야. 그리고 그 변화중에 하나는 소일연이 주도하게 될 테지.”

“아까 살짝 들은 것 같은데…….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 관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이제 곧 게임을 위해서 피씨나 콘솔이 필요한 시대는 종말을 고할 겁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요.”

스트리밍 서비스……. 몇몇 IT업계의 공룡기업들이 도전하기 시작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월정액으로 게임을 대여해서 플레이하는 수준일 뿐, 완벽한 스트리밍 시스템이 구축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확실히 이쪽 시장에 확고히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맥베스는 단번에 세계적인 회사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라면……. 확실히 엄청난 프로젝트가 되겠군요.”

게임 개발과 플랫폼은 매출의 개념 자체가 다른 법이다.

독점 플랫폼의 위상을 손에 넣기 위해 모든 업계, 모든 분야의 기업들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을 수행한다.

플랫폼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말 그대로 앉아서 돈을 벌게 되는 구조가 아니던가?

자본주의의 최정점은 다름아닌, 다른 이들의 힘으로 나의 자산을 증식시키는 것.

확실히 포부가 큰 연아가 노릴 만한 사업 아이템이라는 느낌이다.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 회사가 지닌 모든 능력을 이 프로젝트에 총 동원해야해. 나는 자네를 단순히 파벌 다툼에 이용하려고 포섭하려는 것이 아니야. 자네가 중간다리가 되어서, 양실장이나 문이사 같은 인물들도 이 쪽에 힘을 보태주길 바랄뿐이지.”

김대표는 상당히 절실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대표이사로 영입된 인물임에도 함전무나 이상무에게 밀려 사람 좋은 인상만이 전부였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함전무는 은퇴했고 이상무 역시 일선에서는 한걸음 물러난 상황.

그런 시점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강력한 패를 손에 넣게 된 것.

파벌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언뜻 진심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본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경우가 왕왕 있는 법이다.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김대표님. 우리 조금 솔직해져 보는 것이 어떨까요?”

“소실장…….”

갑작스러운 소일연의 발언에 김대표는 당황과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

하지만 소일연은 거침이 없었다.

“어차피 표세인 부장을 포섭하려는 것이고, 차후에는 필연적으로 맥베스 내부의 파워게임이 벌어질 것은 자명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이정도 스케일에 이만한 사람들이 손을 잡은 순간부터 정치를 논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일연은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김대표님이 표세인 부장을 왜 이렇게 신경을 쓰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 잘하는 부장급 인사. 좋은 아이디어로 몇차례 히트작을 제작했다지만……. 이 업계에는 보다 훨씬 이름 높은 스타개발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으음……. 이게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야. 솔직히 나도 몇가지 부분에서는 의아스럽지만…….”

김대표는 슬쩍 내 표정을 살폈다.

아마도 당시 양실장이 내게 보냈던 과도한 지지에 대한 의문을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당시에는……. 아니, 지금 조차도 양실장님의 지지에는 나 스스로도 의아스럽다는 느낌이다.

그저 감사하고 그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독려할 뿐.

“어쨌든 표세인 부장.”

“예.”

“내 제안은 이래. 이거 좋은 기회야. 그리고 방금 봤다시피, 부회장님께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셨지. 더할 나위 없는 커리어를 손에 넣게 될 것은 본인이 더 잘 알 거라 생각하고, 무엇보다 이만한 프로젝트의 핵심에서 활약할 기회는 흔치 않아.”

음…….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겠는데, 사실 큰 프로젝트의 핵심에서 활약할 기회…….

너무 많았던 것 같은데?

“일단 게임이 아닌데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걱정할 것 없어. 내가 하나씩 지도해주지. 표세인 부장의 맨파워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는 내 몫일 테니까.”

오호, 이런 정상적인(?) 하급자 대우는 무척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나름 신선한데?

그런데 뭐라고 할까…….

소일연 실장은 어쩐지 약간 골려주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캐릭터다.

마치 10대 시절 신림동 악마이빨이라 불렸던, 어린 표세인이 깨어나는 듯 한 느낌.

“알고 계시겠지만, 일단 저는 양실장님의 사람입니다.”

“그래. 알고 있지.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양실장과 문이사가 손을 잡다니…….”

체육대회 당시만하더라도 서로 기를 쓰고 상대를 짖밟기 위해 노력하던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것은 김대표에게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양실장이 허락해야만 가능하다 이건가?”

소일연은 다소 언짢다는 기분이 드는 모양인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하기사 그의 입장에서는 속내를 모두 드러냈는데도, 파벌의 수장인 양실장과 상의한다고 했으니, 이미 거절 당한 기분일 수도 있겠다.

“허락이라기보다는 상의가 올바른 표현이겠지요. 이미 김대표님께서 말씀하신 중간다리 역할이라는 것도 이런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바로 그거야.”

“회사에 중요한 프로젝트라면야 모두가 합심하는 것이 옳겠지요.”

“하지만 내 밑에서 일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원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인사이동 명령이 내려오면 당연히 그것을 수행해야지요. 개인 감정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나는 아직 소일연에게 악감정 따위는 없다.

다소 뻣대는 느낌은 있었지만, 애초에 나보다 상급자이고 연장자가 아닌가?

“내가 말한 내 밑이라는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알텐데?”

물론 알고 있다.

양실장이 아닌 자신을 선택하라는 거지. 하지만 뭘 보여준 것도 없이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일단 저는 소일연 실장님은 물론이고 사실은 김대표님과도 그리 깊은 친분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실 뭘 보여주신 것도 없고…….”

나는 의도적으로 말꼬리를 흘렸다.

자, 미끼는 투척했다!

과연? 무나? 물까?

“뭔가 보여달라 이건가?”

“아시다시피, 정치는 실무적 능력과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보고 싶다는 거지?”

“제가 지목한 인물을 한번 포섭해 보시겠습니까? 딱히 파벌 가입이 아니라, 소일연 실장님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그렇군. 인간적인 매력을 한번 증명해 보라는 거로군.”

어차피 당장 나로서도 소일연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완벽한 플랜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가 지닌 비전은 맥베스의 장래에 있어서도 무척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척을 진다는 선택지는 없다.

남은 것은…….

대등한 눈높이로 손을 잡느냐, 아니면 굴복 시키느냐…….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이름을 말해 보겠나?”

“기획팀의 홍기도 과장입니다.”

가라! 홍켓몬!

너의 능력(?)을 보여줄 차례다!

이거면 충분히 시간은 벌 수 있겠지?

삐까! 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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