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개발이 본격적인 궤도에 도달하는 이 시기쯤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다다다다다!
덕분에 키보드를 연주하는 표세인의 타자소리도 평소보다 몇 템포쯤은 빨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 불타시네.’
‘네. 그런 것 같아요.’
표세인 팀의 프로젝트인 스쿨런의 프로토 타입 출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신호였다.
‘그런데 표세인 부장님의 프로젝트…… 인게임 시간이 단 하루라고 하지 않았나요?’
‘나도 그렇게 들었어.’
‘그런데 지금 계속 대사 작업만 하고 계신 거죠?’
‘그렇지.’
혹여라도 표세인을 방해할까 싶어, 남궁원과 함송희는 속닥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뭘 그렇게 수근거리는 거야? 궁금하면 그냥 물어보면 되잖아.”
홍기도는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쁘시네요.”
“응.”
“요즘 계속 스토리 파트만 손보시는 거죠?”
“응.”
표세인은 홍기도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눈은 모니터에, 손은 키보드를 떠나지 않았다.
실로 대단한 멀티태스킹 능력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홍기도의 질문에는 그저 대답하는 시늉만 한다고 생각할 법한 모습이었다.
“그거 하루 단위 이야기로 분량 짧은 게임 아니었어요?”
“응”
“계속 응이라고만 하실 거죠?”
“응.”
“조만간 시간 내주세요.”
“응.”
“오케이. 부모님께 전달 드릴게요.”
“응? 어? 뭐라고?”
“낙장불입!”
표세인은 그제야, 홍기도가 처음부터 이것을 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대체 내가 왜 너희 조카 생일파티에 가야 하는 거냐.”
“못 올 이유는 뭐예요?”
“보통 그렇게 치고 들어오냐?”
“어차피 지난번에 약속했었잖아요.”
“끄응……”
표세인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표세인 부장님. 홍기도 과장님.”
“김실장님?”
김인숙 실장의 등장이었다.
“부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저를요?”
홍기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네. 두분 모두 가시죠.”
표세인 조차 홍기도와 함께 호출받은 것이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알겠습니다.”
“음…… 바쁜데……”
라고 말하면서도 홍기도는 남겨놓은 일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쫄래쫄래 표세인의 뒤를 따라 붙었다.
*
*
*
“방송이요?”
“얘랑요?”
연아의 말에 나와 홍기도가 동시에 놀랐다.
“저는 갑자기 왜요?”
그래. 질문 잘했다. 나 역시 그게 궁금하다.
나야 이미 버린 몸(?)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굳이 홍기도까지? 그것도 세트로?
“이 건은 여러 검토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으음….. 뭔가 불안한 느낌인데, 이거 거부 가능한 사안인가요?”
그렇겠지. 다른 일도 아니고 방송 출연을 강제로 밀어붙이는 것은…….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연아는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경영자로서 인재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능력을 발휘할 곳이 방송인가요?”
“예전에 미튜브에서 상당한 반응을 끌어내셨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맡은 프로젝트가…….”
“표세인 부장이 맡은 프로젝트가 없어서 방송에 출연시킨 것은 아닙니다.”
뭔가 이상하다. 이건 평소의 연아와는 다른 느낌이다. 내가 의아함을 느끼고 한걸음 물러서서 지켜보고 있는데, 홍기도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연아가 내게 눈짓을 보냈다.
‘헬프.’
‘오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연아가 이 정도까지 나올 정도라면 일단 돕고 보자.
“저도 부장으로서 이번 지시사항에는 다소 의아함이 느껴집니다.”
내말에 연아가 살짝 당황했다. 헬프 요청을 오케이 한 뒤에 곧바로 반대 의견을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리라.
하지만 한국말 끝까지 들어야지?
“홍기도 과장의 맨파워를 최대치로 올릴 곳은 방송 쪽이 아니라, 이번에 중국에 새로 설립한 마케팅 업체에…….”
“헉! 지금 저를 중국에 보내겠다는 겁니까?”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홍기도는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표현이 아니라, 이 녀석 정말로 껑충 뛰었다.
역시 이 녀석에게는 중국이 최고로 약빨이 잘 듣지.
그리고 그제야 내 의중을 파악한 연아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확실히 그 편이 좋겠군요. 마침 그 쪽 공동경영자와도 돈독한 친분이 있으시니…….”
“부회장님!”
홍기도는 연아의 말을 자르며 번쩍 손을 들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부회장의 말을 이렇게 자른다면, 혼찌검이 날만한 상황이지만…….
이 녀석이 정신나간 행동을 보이는 것이 어제 오늘일도 아닌지라, 나와 연아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바라보았다.
“제 2의 박주부를 목표로 분골쇄신하겠습니다! 모든 예능을 제가 다 쓸어 담겠습니다!”
“……아니요. 그냥 한 번, 혹은 두어번 정도만 출연하시면 됩니다. 저도 그 이상 우리 직원을 개발 이외의 업무에 할애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쨌든 연아는 목적을 달성했고, 홍기도는 최대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일단 결정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럼 홍기도 과장님은 물러가 보셔도 좋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행여나, 또 중국이 언급될까 겁이 나는 것인지 홍기도는 쌩하니, 부회장실을 벗어났다.
연아와 단 둘이 남게되자, 연아는 살짝 한숨을 쉬며 깍지낀 팔을 내밀며 스트레칭을 했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야?”
도와 달라는 말에 돕기는했는데, 당최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쉬린칭이 부탁했어.”
“쉬린칭이? 쟤를 TV에 출연시켜달라고?”
“응. 정확히는 오빠와 더 가까이 두고, 보조를 맞출 수 있게 지원해 주길 바라는 것 같아. 그래야 홍기도 과장과 자신의 관계가 더 긴밀해 질거라고 생각하는 가봐.”
“뭔가 좀 이상하긴한데…….”
이걸 지고지순한 연정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좀 그림이 무섭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상대를 옭아쥐는 방식이 아닌가?
“하지만 쉬린칭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지. 홍기도 과장은……. 여러모로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
어느 누구라도 홍기도 같은 녀석에게 연심을 품는 다면, 험난한 앞날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댓가는?”
“마케팅 업체와 향후 차기 프로젝트에 대한 상당한 지원과 투자를 동시에 내걸었어.”
정말로 홍기도 하나를 잡기 위해 이 정도까지 한다고?
“그냥 홍기도 저쪽에 팔면…….”
단숨에 맥베스 주가가 2배정도 껑충 뛰는 것 아냐?
이거…….
농담인데, 농담으로 끝내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인데?
“나중에 주가 방어용 최후의 플랜 정도는 되지 않을까?”
홍켓몬…….
열심히 일해라!
맥베스 주가가 떨어지면, 부회장님 손에 끌려 중국으로 보내질지 모른다.
“아무튼 쉬린칭의 제안은 이해했는데, 방송 출연을 또 해?”
“반응 좋았잖아? 미튜브에 달린 댓글 안읽어 봤어?”
연아가 노트북을 돌려 내게 댓글들을 보여주었다.
“죄다, 발차기에 관한 것들 뿐이네……. 차력사는 뭐야?”
“솔직히 나도 발차기로 불붙이는 사람은 처음 봤어.”
연아 조차 새삼 감탄했다는 표정이다.
“뭐 이런거야, 술자리 장기자랑 같은 잔재주에 불과하니까.”
익스트림 팀 선수들의 스킬에 비하면, 이정도 애교에 불과하지.
“어쨌든 게임 홍보도 잘 되고 있어. 그리고 이번에 프로토타입 나왔잖아?”
“그것까지 홍보를 이어갈 기회라는 건가?”
“고티를 노린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해봐야지?”
고티를 수상하기 위해서는 누가 뭐라해도 게임의 퀄리티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판매량에 의한 여론 현성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더욱이 스쿨런은 PC와 콘솔에 동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탓에, 해외 게이머들도 슬금슬금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국산 PC게임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 해외 게이머들이지만, 콘솔 출시 예정작이라는 단어에는 제법 흥미를 느끼는 듯 했다.
공중파 홍보와 병행한 미튜브 영상이 이미 해외 레딧을 오가며 스멀스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는 상황.
“공중파와 미튜브 동시 홍보라는 것이 제법 괜찮은 것 같아.”
국산 예능이 세계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미튜브와 연계가 되니, 자연적으로 조회수가 폭발한다.
거기다 묘하게 내 발차기가 영문모를 밈이 되어서 떠도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골치 아프니 괜히 관심을 갖지는 말아야지.
여러 미튜버들이 발차기로 뚜껑 따기와 성냥에 불붙이기 등을 챌린지하는 영상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개발자가 아닌, 발차기만 주목 받는 것은 서글프지만…….
어쨌든 이슈가 된 덕분에 덩달아 게임 홍보 영상의 조회수도 폭등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개발은 어때? 원하던 퀄리티로 만들어지고 있어?”
연아의 말에 나는 엄지를 치켜 들었다.
“물론이지.”
“플레이 타임이 10~15시간 정도라며? 고티 선정작은 보통 AAA급 게임들이라서 그걸로는 좀 힘들지 않을까?”
“그보다 훨씬 적은 플레이 타임으로도 수상작 반열에 오른 작품들도 있어. 그리고…….”
“?”
“무엇보다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요소도 충분하고 재미라는 기본 요소도 충분해. 어딜봐도 나쁘지 않아.”
“자신이 있어 보이니 좋네.”
연아는 안심했다는 듯이 실풋 웃었다.
“그런데…….”
“왜?”
“정말로 홍기도 저녀석과 내가 함께 TV에 출연해도 괜찮을까?”
“걱정돼?”
“뭔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인데…….”
“딱히 별일 있겠어?”
아니야.
뭔가 다르다.
뭔지는 몰라도, 찜찜하고 찝찝한 느낌이 가라앉질 않는다.
그런데 막상 이게 뭔지를 모르겠다.
“어차피 방송 출연 한번이 두 번이 되는 것 뿐이야. 계속 출연시킬 생각은 없어.”
“그래. 그래야지. 내가 방송인도 아니고 계속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웃기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일단은 미뤄두자.
지금은 당면한 프로토타입 완성에 집중하자.
*
*
*
“그래서 확답은 들은 거야?”
유국장은 김피디가 복귀하기가 무섭게 호출했다.
“좀 묘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묘한 제안?”
“표세인씨의 동료 한 명을 함께 출연시켜 달라고 하더라고요.”
“동반 출연?”
“네. 좀 애매하죠?”
김피디가 표세인을 출연시키려 했던 예능프로는 다른 게스트들과 동반 출연하는 것으로 이미 다른 3명의 게스트는 준비가 끝난 상황이어서 한 명을 새로 추가하기에는 여건이 용의치 않았다.
“일단 찾아 보자.”
“네?”
“뭐가 되었든 찾아보자고.”
“아무리 표세인씨가 블루칩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해도 굳이 그렇게까지요?”
앞뒤 안가리고 표세인 하나를 위해 다른 프로까지 알아본다?
이건 좀 과하지 않은가?
오히려 표세인을 지지하던 김피디 마저 의아할 지경이었다.
“이게 임마 그렇게 간단한 일인줄 알아?”
“혹시 제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습니까?”
“중국 중앙 TV에서 사장님께 직통 라인으로 연락을 해왔어.”
“중국에서요?”
현재 한국 방송사에게 중국 방송사는 무척 귀한 VIP였다.
저급 방송사들이야 대놓고 배끼기에 여념이 없지만, 공영방송국들은 나름 로열티를 내고 방송의 판권을 사가는 등으로 상당한 영업이익을 도와주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조건이 무엇이든 무조건 출연시켜야해! 이거 사장님 지시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김피디는 살짝 두려워졌다.
이거 아까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