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33화 (233/346)

233.

“자, 한번 플레이해봐.”

프로토타입을 완성한 윤현창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소짓고 있었다.

“자신있나보지?”

내 말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네가 설계한 미칠 듯이 복작한 상호작용 트리거들와 플로우 차트를 봤을 때는 식은땀이 났었지.”

“그래. 쉽지는 않았을 거란 것은 알아.”

다소 짧은 플레이타임을 극복하고 유저들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내가 선택한 장치는 상호작용의 다변화였다.

등교부터 하교까지.

이 짧은 연결 고리를 유저 스스로가 계속 물고 늘어질 수 있도록, 나는 시시각각 그리고 반복할수록 디테일하고 변화하는 복잡한 반응 설계 구조를 만들었다.

“그렇지. 조금 전 만난 녀석에게 다시 말을 걸 때조차, 반복하지 않는 다른 상호작용을 만들기 위해서 그 미칠 듯이 긴 테이블을 감수해야 했지.”

텍스트 용량이 거진 1기가에 달하는 말도 안 되는 설계구조를 소화해내기 위해, 프로그래머들이 얼마나 고생했을 지는 나 역시 예상했던 바다.

“일단 나는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 한번 평가해보라고.”

“오케이.”

나는 게임을 플레이했다.

아직은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시작화면과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오늘도 학교에 가기 위해 소총 끈을 고쳐맨다.]

소년의 짧은 독백과 함께, 카메라가 창문 바깥으로 나아가며 반 쯤 무너진 서울 도심과 함께 덩굴과 식물로 뒤덮인 바깥 정경이 드러난다.

[스쿨런.]

그리고 출력 되는 게임 로고.

여기까지는 지난번 홍보영상에서 나온 바와 같다. 하지만 곧 카메라가 소년의 어깨 뒤로 따라붙으며 게임이 시작된다.

“움직임 좋고!”

이미 좀비로얄을 개발하던 당시부터 축적된 노하우가 한층 높아진 게임 엔진의 덕을 보았다.

움직임은 부드럽고 패드를 통해 전달되는 조작감은 손 끝에 착 달라붙는 느낌.

“알다시피 그 부분은 이상승 팀장이 고생했지. 역시 좀비로얄의 에이스야.”

“아닙니다. 모두의 노력 덕분이죠.”

윤현창과 이상승이 살짝 주먹을 마주하며 미소지었다.

가볍게 방안을 훑어본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을 벗어남과 동시에 소년은 자연스럽게 소총을 양손으로 파지했다.

-츠르르륵…….

한 눈에도 일반적인 식물로는 보이지 않는 덩굴의 움직임.

초반부의 양식(?)이라 할 수 있는

[언제부턴가 등굣길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차착!

당기는 방식의 좌측 트리거에 압력이 가해지자, 소년은 즉시 사격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압력이 끝까지 도달하는 순간!

-탕! 투확!

미세한 시간차이로 호박형태의 본체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역시……. 타격감 훌륭하네. 이상승 팀장 고생했어요.”

내 말에 이상승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좀비로얄이라는 베이스가 있던 덕분에 이런 세세한 부분들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완성해 낼 수 있었다.

“제게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차기 개발에 적용해볼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이곳에서 유감없이 적용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 게임이 테스트배드란 말인가?”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윤현창의 말에 이상승이 찔끔했다.

“나도 나쁜 뜻으로 한 말 아닌데? 좋잖아. 다음번 그쪽 게임의 이 게임의 동생 같은 거잖아. 이 게임은 또 좀비로얄의 동생 같은 거고.”

“하하하. 그렇군요.”

의외로 두 사람은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흘려가며 게임 테스트에 집중했다.

차례로 등장하는 플랜티어터(식물형 몬스터)를 격파하며 나아가다 보니, 드디어 첫 번째 동급생 NPC를 만났다.

벽에 몸을 숨기고서 코너 안쪽을 살피는 모습.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친구를 부르는 등의 실수를 했었지만…….]

소년의 독백과 함께 웅크린 자세로 전환하라는 가이드가 떠올랐다.

웅크린 자세로 동급생에게 다가가자, 동급생이 팔을 들어 군용 수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아래로 자막이 깔린다.

[9시 방향에 고블린 3체.]

동급생의 말에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런 경우 근접과 원호를 나누어 들어가는 편이 좋다. 두 사람 모두 사격만으로 고블린을 상대하는 것은 탄환 낭비니까.]

[어떻게 할까?]

[근접?]

[원호?]

두 가지의 선택지.

[내 전공은…….]

선택에 따라서 스텟에 보너스가 적용되는 시스템.

나는 이번에는 근접을 선택했다. 그러자 근력 +1이라는 아이콘과 함께 근접전투로 전환하는 버튼의 가이드가 떠오른다.

-철컥. 스르릉.

근접전투 전환 버튼을 누르자, 다소 근미래적인 디자인의 직각 총열에서 검신이 솟아난다.

‘이것을 한 번 더 누르면…….’

소년은 총열을 옆으로 벗겨내며 팔길이 정도의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소총은 등 뒤로 고쳐맨다.

이 모든 행동이 물흐르는 것처럼 부드럽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좋아.”

나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새나왔다. 이런 작은 모션의 부드러움과 디테일이 게임의 품질을 좌우하는 법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가 훌륭하게 구현되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은 늘 짜릿하다.

이것이 기획자로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기쁨이 아니겠나?

[들어간다. 엄호 부탁해.]

[라져.]

소년의 말에 동급생은 다소 화려한 퍼플 브릿지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무릎쏴 자세를 취했다.

[간다.]

나는 슬며시 조작 스틱을 당겨, 벽 옆으로 이동한후, 대쉬버튼으로 고블린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타다닷!

두걸음 뒤로 가속도가 붙더니, 금새 사정권에 들어왔다.

‘여기서부터가 핵심 포인트지!’

내가 설계하고 모두의 아이디어가 조금씩 더해진 새로운 근접전투 조작 매커니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참격 트리거를 당기는 순간, 조작 스틱을 조작하는 것으로 검을 휘두르는 방향이 달라진다.

-귀엑?!

그렇게 휘둘러진 칼날이 온몸에 이끼와 풀잎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고블린의 몸을 가른다.

-그극……. 서걱!

임팩트가 터지는 찰나의 순간 전해지는 미세한 딜레이!

그 작은 딜레이는 짜릿한 손맛으로 전환되어 내 입가에 미소를 그려낸다.

“아! 좋다.”

“좋지? 네 기획서를 봤을 때부터, 이거다 싶었다니까?”

윤현창도 신이났는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고생했어! 정말 잘해줬네.”

나는 그러면서도 연신 트리거와 스틱을 연달아 조작했고, 그에 맞춰 소년은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으로 적들을 썰어 나갔다.

“아차! 사로를 막고 있었네?”

잠깐 손맛에 취해 있던 나는 급히 구르기 동작으로 동급생이 사격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그 틈을 놓지치 않고 경쾌한 총성이 뒤따랐다.

-타타탕! 퍼퍼퍽!

총에 맞은 고블린은 끈끊어진 인형처럼 휘청였다.

‘기본은 3점사지.’

정확히 3발의 사격이 끝난 직후, 나는 총탄 피격에 균형을 잃은 고블린의 숨통을 마져 끊었다.

-그와악!

이후 달려드는 고블린의 도약 공격을 다시 한번 구르기로 피해내자, 여지없이 동급생의 원호 사격이 날아왔다.

그리고 다시금 내 검으로 마무리.

척척 손발이 맞는 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신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찰떡 같은 지원을 선보여준 동급생에게는 상당한 호감이 생기기 마련.

그리고 게임이란 그것을 그냥 넘어가면 안된다.

첫 연계 보너스로 인해 호감도가 상승했다는 이모티콘이 여지없이 등장했다.

[옷 다버렸네?]

[그러게.]

소년은 동급생의 말에 자신의 이모저모를 확인하고는 인상을 구겼다.

내 눈으로도 고블린의 녹색 체액이 교복 곳곳에 묻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소년의 심정에 공감이 갔다.

[이 상태로는 계속 찝찝하다. 잠시 세탁소를 들를까? 아니면 귀찮으니 학교에가서 세탁을 할까?]

여기서 분기 선택지가 등장한다.

나는 강박적일 정도로 이러한 선택지를 빼곡하게 짜놓았다.

“어떤 것 같습니까? 전체적인 인상은?”

조금 멀리서 훔쳐보고 있던 김순영도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직 테스트해 볼 것은 많다.

그리고 김순영이 작업하는 쿼터뷰 턴제전투 시스템 전환도 아직이다.

하지만…….

이미 지금 맛보기로 플레이한 것 만으도 소름이 돋는다.

“아, 이거 욕심생기면 안되는데…….”

이만한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인디 수준에서 머물게 해도 되는가?

조금 더 살을 붙여서 더 체급을 키우면 고티 말석이 아니라, 고티의 정점을 노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라더니, 새삼 내 안에서 이런 욕망이 끌어오를 줄은 몰랐다.

“야, 야. 안돼. 이거 출시기한까지 정해진 프로젝트야. 알잖냐. 지금 함전무님이 일본 콘솔 회사와 협상중이시잖아.”

“그렇지. 안되는 거지.”

나는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이거 곧 준비 끝나지?”

“이미 테스트하고 자잘한 수정만하면 끝이지?”

“체험판 들어가자.”

“어?”

“바로 체험판 풀어버리자. 이거 느낌이 왔어. 반드시 먹힌다.”

“하지만 가뜩이나 분량이 짧은데…….”

“그걸 위해서 랜덤 상호작용과 복잡한 트리거들을 때려 박은 거잖아. 충분히 해볼만해. 그리고 플레이 타임은 1시간 정도 짧게 잡으면 되지.”

“너 결심섰구나.”

“아니, 확신이 선거지.”

아직도 찌릿하게 전달되던 손맛의 여운이 남아있다.

거기에 더해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NPC들과의 상호작용과 이벤트는 또 어떠한가?

게다가 취향에 맞춰 액션과 전략을 오갈 수 있는 배튼 스위치 시스템까지!

“현창아.”

“응?”

“너 이번에 팀장 달 것 같다.”

“헉! 지, 진짜로?”

원래부터 알음알음 예정되어 있던 일이지만!

이거면 쐐기를 박고도 남음이 있다.

“콘솔 시장 한번 쓸어 보자.”

이번 분기 최대 이슈는 스쿨런이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

“보내주신 체험판 빌드 잘 봤습니다.”

콘솔업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조이스테이션의 대표 사카모토는 한껏 격양된 표정이었다.

‘지난번에는 그냥저냥하더니…….’

함전무는 조용히 입맛을 다셨다.

그간 맥베스는 조이스테이션과는 연이 없었다. 아니, 국내 대형 개발사들 모두가 콘솔시장과는 별다른 연이 없다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 게임시장은 MMO를 기반으로한 PC시장과 모바일게임에 편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국내 개발사들도 알음알음 콘솔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상황.

거기에 보조를 맞춰, 표세인도 콘솔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리고 그 첨병으로 보내진 것이 바로 함전무였다.

하지만 첫만남부터는 다소 사무적인 분위기에 불과했다. 애초에 사카모토를 만나는 것도 이번이 2번째, 처음에는 지나치듯 인사한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표세인이 보낸 체험판 빌드를 받고나서는 태도가 일변했다.

“저희는 독점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또한, 차기작에 있어 개발비를 포함한 여러 부분에 전폭적인 투자와 퍼스트 파티에 준하는…….”

“제약도 함께 선물해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그게 아니라 대우를…….”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사카모토는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려 했지만, 함전무의 말대로 그 대우에는 제약도 함께할 수 밖에 없다.

함전무는 노련하게 이 점을 정확히 캐치했다.

“저희 뜻은 변함없습니다. 넥스박스와 텐도버튼까지 모두! 동시 출시할 계획입니다.”

콘솔 삼대장 동시 출시와 기간독점 이후에 이어지는 PC 출시까지.

“이건 양보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쪽에서 구태여 조건을 거시겠다면, 저희는 그저 물러나면 그만이지요.”

어차피 콘솔은 하나가 아니다.

‘이거 덕분에 일이 수월해 졌구만.’

좋은 상품을 손에 쥐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를 상대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결국 표세인의 새로운 마법이 시작되는 거려나?’

함전무는 어깨가 들썩이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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