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34화 (234/346)

235.

스쿨런의 체험판은 결국 3개의 콘솔 모두에 무사히 서비스 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함전무의 노련한 교섭 솜씨가 빛을 발했다.

-조이스테이션은 세컨드 파티 대우. 나머지는 퍼스트파티와 같은 수준의 대우를 보장 받기로 결정됐네.

함전무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을 성취해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덕분에 한시름 놓았습니다.”

-내가 뭐, 한 것이 있나. 그보다 자네가 발 빠르게 체험판 빌드를 보내준 것이 즉효였지. 다들 눈을 반짝이면서 적극적으로 나서더군.

“그렇습니까?”

-그쪽도 나름 전문 선별관들인 셈이지. 그쪽들 눈에 들었으니, 어느 정도 흥행은 보장된 셈이야.

어느정도라……. 글쎄요.

저는 그 이상을 기대합니다.

지난번 체험판을 플레이한 이후부터 자꾸 욕심이 고개를 치켜든다.

하지만 어찌 첫술에 배부를 수 있으랴, 스쿨런의 결과가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나는 AAA급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러면 그때, 기필코 원하는 게임을 만들 것이다.

지금은 이걸로 만족해야 하겠지.

-아무튼 나는 일이 끝났으니, 조만간 복귀하기로 하지.

조만간?

그렇군.

이제는 회사 직원도 아닌셈이니, 여행이라도 즐기다 올 생각이신 것 같다.

“모처럼의 일본행인데, 천천히 즐기다 오시기 바랍니다.”

-하하! 안그래도 온천 좀 즐기려던 셈이네.

“네. 경비는 기둥소프트 쪽에서 해결해 드릴테니, 마음껏 즐기십시오. 영수증만 잘 챙겨주십시오.”

-하핫, 날 뭘로보나! 그런건 칼이지.

네네, 그러시겠지요.

-아무튼 나중에 보자고.

그렇게 함전무님과의 통화는 끝이났다.

“아직 완전히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반응이 좋다는 것은 기쁘네.”

지금까지 개발한 게임들은 나름 상황에 맞춰 개발한 것이지만, 이번 스쿨런은 상당부분 나의 개인 취향이 많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렇기에 흥분된다.

*

*

*

“이거……. 장난 아니네?”

“그러게. 역시 표세인 부장님이야.”

홍기도와 남궁원은 스쿨런의 체험판을 플레이를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클클, 소름이 돋는구만……. 이게 국산 게임이라니…….”

게임 패드를 쥐고 있던 조회장의 입에서도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맥베스를 경영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계속 퀄리티를 향상해가는 AAA급 게임들을 지켜보며 입맛만 다셨더랬다.

본인 마음같아서는 맥베스도 그와 같은 코스를 따라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주주들과 직원들의 반대 탓에 감히 결단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잘도 이런 게임을 뚝딱 만들어버리는군.”

“요즘에는 개발엔진이 우수하니까요. 게다가 좀비로얄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많은 트리거가 문제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은 정말로 놀랍네요.”

함송희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감탄을 감탄하고 있었다.

설계단계에서 단 하나의 미스만 발생하거나, 예외처리에 작은 허점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류의 복잡한 설계는 마치 구멍 뚫린 댐처럼 속절없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우려를 뒤로하고 스쿨런은 지금까지 단 하나의 허점도 보이지 않고 매끄러웠다.

이 부분은 프로그래머들의 각별한 노고가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기획단계에서부터 섬세하고도 치밀한 설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훌륭한 기획이란, 때로는 프로그래밍의 완성도마저 끌어 올리는 법이란 말인가?

“윤과장과 김차장이 이 번 개발에 주역들이라고 했었지?”

조회장은 기억해두겠다는 듯이 윤현창과 김순영의 이름을 읊조렸다.

“대체 이 조작 방식은 또 언제 고안한 거지?”

조회장에게서 게임 패드를 건네 받은 남궁원은 스틱 방향에 따라서 근접공격의 궤적이 바뀌는 부분을 계속 테스트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작은 모션에서 내용 전개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참신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완성도는 뭐란 말인가?

“다시 만날 때마다, NPC들이 스스로 겪은 이야기들을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다니……. 대사량도 대사량이지만…….”

“부족한 플레이타임을 다회차로 해결한다……. 이거 분명 멀티엔딩 시스템일걸?”

남궁원은 정확히 표세인의 의도를 파악했다.

“후우, 쉽지 않네.”

홍기도는 짧은 한숨으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처음부터 쉽게 생각은 한 적 없었지만, 막상 표세인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앞에두니, 덜컥 겁이난다.

“겁낼 것 없다.”

“?”

“우리것도 만만치 않아.”

조회장은 단언했다.

물론 표세인이 만들어낸 작품은 인디라는 틀이 무색할 정도의 퀄리티와 작품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정면으로 표세인을 깨부수려는 것은 아니었다.

일말의 놀라운 심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였고, 그것이라면 자신들 역시도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도 슬슬 막바지 아닌가.”

스쿨런과는 다르게 그들이 개발하는 타이틀.

D-서바이브는 디젤 스토어의 앞서해보기 출시를 준비중이다.

“당초 계획에서 다소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좋은 게임이 된 것은 사실이지.”

“그렇죠.”

자잘한 군더더기를 쳐내고 탑뷰 + 크레프팅 시스템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에 크레프팅과 빠른 핵앤슬래시 전투를 책임질 가장 큰 요소는 드루이드였다.

자연지형을 이용해 건물과 도구를 만들어내고, 동물을 이용하거나 스스로가 변신하여 적들을 휩쓰는 호쾌함.

특정 타겟층에는 절대적인 호응을 얻을 것이 예상되는 적합한 조합의 게임이었다.

“사실 두 분이 고집만 조금 빨리 꺾었으면, 우리도 이쯤에 얼리액세스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요.”

남궁원의 말에 함송희도 동의한 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잖나.”

“그 아이디어 누가 규합했나요.”

“……남궁과장이 참 고생이 많아.”

조회장은 은근슬쩍 회장 전용 필살기를 시전했다.

직원의 노고를 치하하는 이 한마디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조회장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필살의 멘트였다.

하지만…….

“제 고생 아시면 좀 덜어 주시죠?”

업무 과열 모드에 돌입한 남궁원은 마법 면역 상태였다.

“곧 서버 작업은 끝나.”

“저희쪽도 이제 막바지에요.”

드디어 홍기도 팀이 개발하는 D-서바이브도 출격준비에 돌입했다.

*

*

*

“표세인 부장……. 이제는 조금 무섭군.”

문상훈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예. 만만치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이건 좀 과하군요.”

보정훈은 나직히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고작 체험판인데도 이 정도 임팩트.

역시 표세인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자신들이 개발하는 로그라이크 게임이 초라해보일 지경이었다.

“뭐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 안되겠지?”

“솔직히 비슷한 개발기간에 비슷한 인력이 투입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입니다.”

보정훈은 솔직하게 스쿨런과 자신들의 게임을 비교했다.

자신들 역시 손을 놓고 있던 것이 아니다.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서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발해온 게임들과는 궤가 다른 탓에 시행착오와 매끄럽지 못한 일정조율등에 번번이 발목이 잡혔다.

오히려 그 깐깐한 문상훈 조차 한번도 다그치지 않고 모두를 독려해오지 않았나?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저만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게임을 자신들 보다 빨리 선보일 수가 있는가?

“후우……. 개발자 역량으로는 게임이 안된다는 건가?”

예상했다고는 해도 이정도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목격해버리면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저희쪽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나쁘지 않다.

그간 내심 자신하던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이렇게까지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다소 서글프지만…….

이런 상황에서 뭐 어쩔 수 있겠나?

“속도를 늦추지.”

“네?”

“출시 예정을 미루자고.”

“미루자는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외부에 공표한 바가 없는 출시일이었다.

체험판과 앞서해보기라는 카드를 선택을 한 것은 오직 표세인과 홍기도 뿐이었다.

그러니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상훈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보정훈을 당황시켰다.

“그래. 늦춰. 정면 승부로는 우리는 들러리만 될 뿐이야. 대신!”

“?”

“버그 하나라도 제대로 잡고 간다. 무엇보다 완성도에 모든 것을 걸어야지.”

이럴때는 차라리 신발끈을 고쳐매는 것이 이득이다.

문상훈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양실장의 한 마디.

‘이제 그만 내려 놓으시죠.’

그때도 가슴에 묵직하게 얹히는 멘트였지만, 이제는 더욱 그렇다.

“스쿨런은 머릿속에서 지운다.”

리그가 다르다고 했던가?

맞는 말이다.

내심은 빅팀과 약소팀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속한 리그의 수준이 감히 넘어 설 수 없는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명백한 항복 선언.

“어차피 우리 상대는 따로 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도이사님과 양실장님이죠.”

“그래. 거기에까지 밀릴 수는 없지. 개발기한을 늦춘다고 고삐까지 늦추라는 말은 아니야. 이 점 분명히 하자고.”

“예. 물론입니다.”

이래야 문상훈답다.

보정훈의 표정도 겨우 안도의 기색이 돌아왔다.

지휘관이 움츠리면 아랫사람은 숨통이 막히는 법.

‘하지만 정말 무섭긴하군.’

보정훈은 말없이 모니터에 출력된 해외 유저들의 반응을 훑어보았다.

-K컨텐츠에 이제는 게임도 추가해야할 때가 왔다!

-분위기, 조작감, 스토리! 뭐하나 기대되지 않는 부분이 없다!

-어설픈 AAA급 스킨을 씌운 게임들은 이게임 앞에 고개를 숙여야할 것이다.

-맥베스는 모바일 게임 회사가 아니었나? 나는 깨비몬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 게임은 마치 첫사랑을 만났을 때의 설레임을 되새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인디게임 역사상 최초의 고티 1위가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닥치고 내 돈 가져가!

애초에 국산 게임이 이만한 해외유저들의 반향을 끌어낸적이 있던가?

‘이건 반성할 수 밖에 없다.’

인디게임이라는 단어에 홀려서 다소 힘을 빼고 접근할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었다.

스쿨런도 따지고보면 완벽한 게임은 아니다.

부족한 플레이타임을 메꾸기 위한 잔재주들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표세인은 그런 요소들을 오히려 게임에 대한 흥미를 증폭시키는 요소로 승화시켰다.

“기대되네.”

“뭐라고?”

“아,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문상훈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걱정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 나도 비슷한 심정이니까.”

“네. 솔직히 기대됩니다.”

“그런가? 하기야. 이정도 반응이면 매출이 어마어마할 테지.”

“아니요. 저는 그것 말고 다른 것이 기대됩니다.”

“다른 것?”

문상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게임이 매출 말고 뭘 기대한단 말인가?

“어쩌면 이 다음 프로젝트는 표세인 부장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솔직히 문이사님께는 죄송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표세인 부장과 함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인디게임에서 이정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자, 그러면 다음 번 AAA급 게임에는 어떤 마법을 보여줄 것인가?

“걱정마.”

“?”

“나도 그럴 생각이니까.”

문상훈은 결의를 새로 다진 모습이었다.

이제 제가 모두 짊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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