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무슨 일이십니까?”
“바쁜 것은 알지만, 잠시 이야기 좀 하지.”
갑작스러운 방문자는 다름 아닌, 문이사와 제임스였다.
“제임스는 오랜만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기둥소프트의 자금과 기타 운영을 홀로 담당하는 탓에 근래 제임스는 얼굴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잠깐 시간 내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솔직히 스토리 작업으로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지만, 문이사와 제임스의 호출을 무시할 수는 없지.
나는 그들을 따라 나섰다.
“양실장님 방입니까?”
“그래. 오늘 용건은 이 친구에 관한 이야기거든.”
문이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노크했다.
“들어오십시오.”
양실장의 대답에 문이사는 나를 향해 살짝 고개짓을 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모처럼만이군요.”
“생각해보니 그렇군. 시간 참 빨라.”
문이사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모두가 자리에 앉자, 양실장이 질문했다. 하지만 문이사는 대답하지 않고 양실장의 방 이곳 저곳에 놓인 박스들을 바라보았다.
“슬슬 옮길 준비인가?”
“준비는 해두어야 할 것 같아서요.”
“회장님도 슬슬 준비를 하시는 모양이시군.”
“예. 부회장님께서 의외로 선전하고 계시니, 마음이 놓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우리도 준비를 해야지.”
“준비?”
문이사의 말에 나와 양실장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김대표님이 요즘 분주하신 모양이더군. 덩달아서 그 밑에 붙은 소일연이라는 친구도 그렇고 말이야.”
김대표와 소일연 실장이 언급되자, 모두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솔직히 좀 안쓰럽다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양실장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나는 거기에 그저 머리를 긁적이는 수 밖에 없었다.
대충 대화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려는 것인지를 알 것 같다.
“그렇군요. 오늘 이 이야기의 주제는 양실장님만이 아닌, 제 문제까지 포함되는 것이군요?”
“네. 맞습니다.”
의외로 이번 대답은 제임스였다.
“흐음~ 일단 들어볼까요?”
여지없이 양실장 특유의 대충 알겠다는 듯한 표정이 등장했다.
“양실장은 이번에 임원으로 올라가자고.”
“저도 찬성입니다.”
확실히 회장님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난다면, 양실장 같은 인재를 실장급에 묶어 두는 것도 우습다.
“확실히 양실장님은 때가 좀 지나기는 했지요.”
“그렇습니까?”
뭐지? 이 웃음은?
양실장은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아! 너나 똑바로 해라 이건가?
“그래. 양실장도 양실장이지만, 표세인 부장의 경우는 더 문제지.”
“제가요?”
“소꿉장난도 정도껏이지. 이제 그만 올라가자고, 회사 입장에서도 이만한 성과를 거듭하는 인재가 부장급에 메어있으면 공과반영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난을 막을 수가 없어.”
아! 이건 예상치 못했다.
“회장님이나 부회장님도 표세인 부장님의 처우에 대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실 나라고 그것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다. 회장님과 연아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째선지…….
아니, 사실 내 욕심이었다.
나는 내심 연아와의 결혼 이후 회사 일에서 한 걸음 물러나 여유로운 삶을 바라는 마음에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고 있던 거다.
한발 더 나아가, 홍기도나 남궁원 같은 우리 팀원들의 곁에 조금 더 머물고 싶기도 했고, 개발 일선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욕심을 부렸던 거다.
“나 문상훈이가 모시는 남자가, 고작 부장에 머물러 있는 것은 곤란해.”
모시는 남자…….
손을 잡고, 그저 형편에 맞춰 한 걸음 뒤에 서겠다던 스탠스에서 이제는 모신다는 단어까지 나와버렸다.
“드디어 결단을 내리셨군요.”
정작 양실장과 제임스는 당연하다는 듯, 표정의 변화 조차 없었다.
“그래서 대답은?”
모두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었다.
“더는 미룰 수 없어. 김대표와 소실장 같은 이들이 더 나와서 멋모르고 회사에서 괜한 풍파를 일으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야.”
문이사는 내게 대답을 채근했다.
“스트리밍? 차기 핵심 프로젝트? 무슨 프로젝트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누가 주도하느냐가 중요하지. 이제 그것을 모두에게 알려줘야해.”
어쩌면 문이사는 다소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망설이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
연아와의 관계를 숨기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런 것은 모두 사소한 문제다.
“제가 전면에 나서면…….”
“…….”
내가 입을 열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아마 그들 입장에서는 오랜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보다 본격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야지.”
“그리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파도가 될 것입니다. 유저들의 눈은 높아질 수는 있어도, 낮아 질 수는 없습니다.”
나는 본질적으로 돈을 쫓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다.
궁극적인 쾌락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유저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내가 즐거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
나는 정말로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다.
과연 나의 이런 본질을 회장님과 연아는 어떻게 판단하실 것인가?
과연 나라는 존재가 맥베스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존재이긴 한 것일까?
“표세인 부장님.”
“네?”
“우리는 그저 샐러리맨일 뿐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밀어붙이는 것 외에 어차피 우리는 그 이상을 해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양실장의 한 마디가 묘하게 가슴에 얹힌다.
그래.
내가 뭐라고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던 것일까?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군요.”
“그렇습니까?”
“그게 낫지.”
양실장과 문이사는 웃으며 흰니를 드러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우유부단함으로 여려분들게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아닙니다.”
양실장은 부드럽게 내 말을 받아주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앞으로 맥베스는 오직 한가지 목소리로 통일되는 것을 목표로 해보죠.”
“그거……. 정말 마음에 드는 말이군.”
문이사가 반갑다는 듯이 손뼉을 마주쳤다.
“그러면 이야기가 정리된 듯 하니, 세부사항 논의를 시작해야겠군요.”
유독 홀로 표정의 변화가 없던 제임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세부사항?”
“임원직이라고 다 같은 임원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현재 전무자리는 공석이고, 제 예상에 이상무님께서도 조만간 은퇴하실 것 같은 예감입니다.”
양실장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리가 2개뿐이면 구색이 맞지 않는군요.”
“……라는 말씀은?”
“김대표님도 은퇴하실 때가 되신 것 같습니다.”
양실장의 온화한 미소속에는 서늘한 한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왜 양실장을 두려워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항상 부드럽고 온화한 제스쳐를 잃지 않는 젠틀맨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부터 곧 그 이유를 알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
*
*
“뭔가 이상해.”
김대표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소일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홍기도 과장……. 역시 어려운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조금 전에도 복도에서 홍기도와 마주쳤던 소일연이었다.
‘홍기도 과장!’
‘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아! 회장님!’
‘헉!’
'은신술!'
'?'
그렇게 홍기도의 탈주 스킬에 당한 소일연. 근래에는 매번 이런 식으로 대화 한마디 나누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습니까?”
“그렇다네.”
“한 명도?”
“끄응…….”
물론 한 명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임원진 대부분은 특정 단어만 나오면 줄행랑을 치고 있지 않은가?
“표세인 부장이름만 나오면 대뜸 달아나더군.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야.”
김대표는 난색을 표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정보가 없다고는 해도 눈치가 발동하기 마련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함전무나, 이상무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강력한 차기 프로젝트까지 손에 들고 나선 상황.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제안에 넘어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체 저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일연 역시 답답하다는 듯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주목 받던 자신의 프로젝트가 아닌가?
이만한 프로젝트를 들고 왔다면 모두가 두 팔 벌려 환영하리라 생각했는데, 저마다 껄끄럽다는 듯,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표세인 부장은 한 건해냈더군.”
“네. 굉장하더군요. 역시 저희에게 꼭 필요한 인재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굳히게 되었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것은 결국 플랫폼 장사다.
안에 담긴 훌륭한 게임들이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만큼이나 연타석 홈런을 때려버리는 귀중한 슬러거의 존재라니!
“역시 이럴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이번에는 홍기도 과장의 다리를 걸어서라도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를 터야겠다!
소일연이 그렇게 생각하고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똑똑.
“?”
-저 이걸영입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등장했다.
*
*
*
1시간 전.
“이게 무슨 그림이지?”
조회장은 흥미롭다는 듯이 임원회의실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회장과 부회장까지 불러 모았으니…….”
라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시선을 내게로 돌리는 조회장.
“시덥잖은 이야기는 아닐테지?”
“네. 그렇습니다.”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회장님이 호출하신 줄 알았습니다?”
이상무도 재미있다는 듯이 후덕한 볼살을 늘이며 흰니를 드러냈다.
“나 같은 퇴물이야, 요즘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지.”
“저도 요즘은 코딩에 매여있느라고 통 모릅니다.”
“그래. 이번에는 제법 해내셨더군?”
“원래 우리 셋중에 개발능력은 제가 제일…….”
“그거, 아니라고 했을 텐데?”
조회장은 진짜로 기분 상한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했다.
“일단 용건부터 들어보죠. 표세인 부장님.”
“네.”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급조한(양실장과 제임스가 만든) 프레젠테이션을 출력했다.
생각해보니 과거에는 내가 하부장의 프레젠테이션을 보조했었는데, 이제는 무려 양실장과 제임스가 나를 보좌하고 있다.
하~ 표세인이 많이 컸네.
하고 홀로 자조적인 감상을 느껴본다.
“현재 맥베스는 내부적 인사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에는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전무와 상무 등을 비롯하여 임원진 내부도가 그려져 있었다.
“우선 함전무님의 은퇴.”
내 말에 따라 함전무의 얼굴이 조직도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곧 이상무님께서도 은퇴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나?”
“애초에 양실장 통해서 들어간 것 아닙니까? 떠벌린 것은 회장님이시죠.”
“……양실장은 원래 저런 거 처리하는 사람이야.”
묘하게 지방방송이 크다. 하지만 그 원흉이 회장과 상무라서 뭐라 할 수가 없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회장님께서도 은퇴를 생각하고 계시죠.”
“클클클……. 괜히 말했나 싶어지기 시작하는데?”
조회장의 눈 빛은 언제는 제 허락 받고 은퇴하라더니? 라는 듯한 의미를 내포하는 듯 했다.
“그래서 텅텅 빈 자리들이 이제와 걱정이라 이건가? 우리 표세인 부장님께서?”
묘하게 부장이라는 단어에 악센트가 쏠려있다.
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이제 제가 모두 짊어지겠습니다.
고블! 고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