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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37화 (237/346)

237.

“이건 예상 밖이군요.”

표세인이 떠난 이후, 양성태와 문상훈 그리고 제임스와 소일연만이 자리에 남았다.

“고이사님이라……. 확실히 재무이사라는 역할 자체가 전무에 적합한 포지션인 것은 사실이죠.”

“그건 그렇지만…….”

내심 전무자리를 눈독 들이고 있던 문이사로서는 흔쾌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연차를 고려해도 그게 맞지 않겠습니까?”

양성태가 나름 독려의 의미로 위로를 건넸지만, 문상훈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표세인 부장……님은 오너일가가 아닌겁니까?”

소일연의 말에 구겨져있던 문상훈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크크큭. 정작 오너 일가는 이쪽이야.”

“네?”

“안녕하십니까. 제임스입니다. 본사 직급으로는 부장입니다만, 그냥 제임스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임스? 부장?”

“이 친구야 말로 회장님 둘째 아드님이시지.”

“그, 그런데 왜 고작 부장직급에…….”

20대에 부장으로 출발해서 30대에 임원을 다는 것이 보통이 아니던가?

당장 부회장인 조연아 역시도 그런 상황.

하지만 제임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 나이에 대기업 부장이면 어디가서 흠잡힐 정도는 아니지요.”

“게다가 기둥소프트 재무이사님 아니신가.”

“기둥소프트 재무이사?”

소일연은 흠칫 놀랐다. 비상장회사이기에 정확한 회사 가치는 모르지만, 근래 게임업계에서 가장 핫한 이름은 맥베스와 기둥소프트였다.

“대체 여기 부장급들은 대체…….”

“걱정마십시오. 그저 저 두분만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그건 정말 다행이군요.”

만나는 부장마다 이런 식으로 함정카드 발동을 해버리면 곤란하다.

“이제 제가 더 모르는 비밀은 없는 겁니까?”

“네.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표세인 부장님의 정체가 뭐기에…….”

소일연은 납득이 가질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혹시 조연아 부회장님과 연인관계라거나…….”

“풋!”

“뭐?”

“…….”

소일연의 한마디에 양성태와, 문이사, 제임스가 동시에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럴리는 없어.”

“네. 그건 아닐겁니다. 표세인 부장님은 곧 결혼을 앞두고 계십니다.”

“하기야 뭐……. 그렇겠지요.”

직원과 오너 가문 사이의 로맨스는 듣기에는 낭만적일지라도 현실에서는 극히 일어나기 어렵다.

세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제임스는…….

“…….”

그 답지 않게 굉장히 놀란 상황이었지만, 워낙 표정의 변화가 없는 탓에 무사히 지나갔다.

‘소일연 실장. 의외로 홍기도 과장과 같은 타입인가?’

지금까지의 눈치 없는 모습과는 별개로 섬뜩한 촉을 발동하는 모습에 제임스는 무척 당황했다.

*

*

*

“갑자기 무슨 회의에요?”

나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모두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아니, 그보다 회장님은 왜 여기에…….”

“우리 팀원들이 다 여기있으니까?”

기획팀을 소집했는데, 회장님이 딸려왔다.

이건 뭐 1+1행사도 아니고…….

“내가 방해되나? 어차피 자네 이야기 끝나면 우리 회의 시간이라서…….”

“아닙니다. 괜찮으시면 계셔도 됩니다.”

“그거 고맙군. 나는 없는 사람 취급하라고.”

조회장은 느긋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녹차를 홀짝였다.

“갑자기 왜요? 요즘 우리 신경도 안쓰시더니?”

홍기도가 흥하고 고개를 팩 돌렸다. 그래서 나는 머리통을 잡고 다시 이쪽으로 돌려놓았다.

“이, 이거 은근 아프거든요?”

“나도 대놓고 아프지 않아서, 무척 아쉽다.”

“만담은 그만 끝내주세요. 저는 잠시 후에 또 들어야 한다고요.”

남궁원이 힘들다는 듯이 테이블위로 축 늘어졌다.

“또 들어?”

“요즘 부장님이 안 계시니, 쟤가 회장님하고 만담해요.”

“클클, 나도 소싯적에 분위기 좀 띄울 줄 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지.”

만담에 대해 부정은 안 하시는 군요.

그런데, 이거 칭찬 아닌 것은 아시려나…….

차마 설명해 드릴 수가 없다.

“알겠어. 짧게 끝낼 테니, 다들 집중해줘.”

“네.”

“그동안 모두들 고마웠다.”

“갑자기?”

“이직하세요?”

“어디 가세요?”

모두가 펄쩍 뛰는 통해 나는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휘저었다.

“아니. 내가 가긴 어딜가.”

“그런데 왜 말을 그렇게 해요!”

“놀랐잖아요!”

“맞아요! 이건 부장님이 잘 못하셨죠!”

함송희까지 대드는 것을 보니, 내가 단어 선택을 잘 못한 것 같다.

“미안하다. 아무튼 진정해라.”

“맨입으로 사과하는 것이 통할 것 같냐!”

“통.할.것.같.다.”

-콩콩콩콩콩!

“으윽!”

까부는 홍켓몬에게 정의의 응징을 내린 후에야 소란이 잦아들었다.

“나 이번에 승진할거야.”

“승진이 마치 제맘대로 되는 일인 것처럼 말하는군. 클클.”

“…….”

“나 없다고 생각해라. 호르륵.”

내 눈빛에 조회장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차를 들이켰다.

“승진이면…….”

“실장?”

“이사?”

모두 한마디씩 의견을 던졌다.

“나 맥베스의 대표가 될거다.”

“어?”

“대표요?”

“갑자기?”

모두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대표면……. 게임 개발 못하잖아요?”

“못한다고까지는 아니지만…….”

아마 홍기도 녀석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닐 것이다.

그렇다.

일단 곁에 있기가 쉽지 않다.

사옥 최상층에 위치한 대표 집무실이에서 홀로 업무를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김대표님 멀쩡히 계시잖아요?”

“그분은 올해를 끝으로 재계약이 되지 않으실 거야.”

“그렇군요.”

사실 김대표님과 다들 특별히 연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딱히 아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애초에 함송희를 제외한 우리 셋은 굴러들어온 돌이지 않나?

“그래서 저는 뭐하면 되요?”

“그러게. 이건 저희에게 뭔가 지시하실 일이 있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홍기도와 남궁원이 그제야 내 생각을 읽은 모양이다.

“그래. 다들 똑똑해서 참 좋다.”

“이런 눈치는 딱히 지능과는 관계없죠.”

남궁원이 살짝 툴툴거렸다. 눈치싸움으로는 홍기도 녀석과 게임이 안 되는 것이 불만인 모양.

“일단 함송희는 나와 함께 가자.”

“함께가요?”

“전부터 생각했어. 송희는 맥베스에서 기둥소프트로 옮기자.”

“얼씨구? 이제는 인재까지 막 빼내……. 호르륵.”

조회장은 뭐라 하려다가 찔끔하며 고개를 돌렸다. 본인 입으로 없는 사람 취급하라고 한 것이 걸리는 모양이다.

“맥베스나 기둥소프트나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이건 단순히 효율상의 문제라서 그래요.”

“누가 뭐래?”

“오케이. 그럼 다음 너희 두사람은 준비를 하자.”

“무슨 준비요?”

“팀장 달 준비.”

“저희 과장인데요?”

“저희 과장인데요?”

웬일로 두 사람이 동시에 똑같이 외쳤다.

“당황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 차근차근 스텝업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내가 대표로 올라가면 너희라도 팀을 맡아서 이끌어주지 않으면 곤란해.”

팔이 안으로 굽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내게는 나와 손발이 잘 맞는 개발자들이 팀내 개발자들에게 내 목소리를 전달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 녀석들을 팀장으로 끌어올려야한다.

“정말 괜찮은 걸까요?”

“다른 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요”

두 사람 모두 삼십대 초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의 실적은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않나?

“일단 이번 너희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봐. 솔직히 남궁원이야, 이미 실적은 충분하지. 하지만 너는 이 기회에 좀 외부에 너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있어.”

나는 홍기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남궁원은 좀비로얄과 오행전기의 메인디렉터 역할을 훌륭하게 완수한 경험이 있다.

문제는 역시 홍기도 쪽이다.

“중국껀만으로도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만……. 클클. 좋아. 우리 팀 리더의 실력을 회사 녀석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지.”

조회장이 또 한번 끼어들며 킬킬 웃었다.

“할 수 있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

이 녀석이 또 갑자기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려고…….

“해야 한다면 하는 겁니다!”

“허!”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홍기도의 두눈에서는 흔들림없는 신념까지 느껴진다.

“너 오늘 점심 뭐 먹었냐?”

“짜장면 먹었는데요?”

“앞으로는 그것만 먹자.”

“네?”

뭘 잘 못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반응만 나온다면야. 365일 3끼 내내 짜장면만 먹이고 싶다.

“회장님 어떤가요? 이번 프로젝트로 이 녀석 팀장 달아줄 수 있을까요?”

내 질문에 조회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는 아직 우리가 스쿨런에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기대되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회장이 이정도로 확신한다면야…….

믿을 수 있겠지.

“다들 그렇게 알고 조금만 피치를 올리자. 앞으로 정말 큰 프로젝트들을 연달아 맞이하게 될 거야. 그사이에 재충전할 시간은 충분히 줄 테니까. 다들 조금만 더 힘을 내줘.”

“알겠습니다.”

“넵!”

“그렇게 할게요!”

모두 힘차게 대답했다.

“말년에 난리도 아니군.”

으음……. 역시 그냥 비켜달라고 할걸 그랬나?

역시 회장님 앞에서는 조금 불편하다.

*

*

*

“해야 한다면 하는 겁니다!”

“…….”

그래.

지난번 명대사는 이것을 위한 포석이었구나.

이 무서운 놈.

주말을 맞이해 내 집 앞까지 찾아온 홍기도는 나를 보며 지난번과 똑같은 흔들림 없는 신념이 느껴지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

“해야 한다면 하는 겁니다!”

“그래. 1절만 하자.”

“해야 한다면 하는 겁니다!”

-쾅!

“으윽……. 지난번에는 좋아해 놓고선.”

“그만 하라 했지?”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침부터 요란이냐?”

“오늘 부장님은 멋있어 보여야 하니까요.”

내가 멋있어 보여서 뭐하게?

네. 조카 생일이라며?

“내가 네 조카에게 잘 보여서 뭐하게?”

“부하직원 가족들에게 잘보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음…….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반박할 말이 궁하다. 좀 분한데?

“저 지금 운전대 잡았습니다.”

“……안 때려.”

“우리 종종 드라이브나 다닐까요?”

차에서 계속 약올리겠다는 의미인가?

“영원히 차에서 안내릴 자신있냐?”

“이제 곧 도착하겠네요.”

“이제는 말까지 돌리네? 어? 여기는…….”

이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이지?

홍기도가 나를 끌고 온 곳은 지난번 에머리가 나를 끌고 왔던 헤어샵이었다.

“제대로 한 번 꾸며 주세요!”

“오케이!”

이미 원장과는 이야기가 모두 끝난 것인지. 우리가 들어서자 마자, 원장은 잽싸게 내 팔짱을 끼더니 자리로 안내했다.

“혹시 네 조카는 어느나라 공주님이라도 되냐?”

아니지.

저 녀석 매형 성씨가 옹씨라고 했잖아? 설마 외국인 성씨가 옹씨일리는 없지 않은가?

“우리 홍시는 우리집 공주님이죠. 부장님은 오늘 멋진 기사님이 되어주셔야 하고요.”

“생일파티 컨셉이 연극이나 뭐 그런거냐?”

부잣집은 생일 파티도 컨셉을 잡아서 하나?

“고객님! 고개 돌리지 마세요. 앞을 보세요.”

“……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가, 원장님도 까칠하시다.

“대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면 하는 겁니다!”

그래. 어디 한번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두고 보자.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원장님의 손에 나를 맡겼다.

홍씨 집안 특제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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