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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39화 (239/346)

239.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성태의 질문에 조연아는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부장급 인사를 갑작스럽게 임원급으로 올리는 것 조차 파격적인데, 갑작스럽게 대표.

물론 표세인의 개발자적인 역량과 실적은 차고 넘치지만, 그것과 대표의 역량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가 아무리 파벌 장악에 수완을 보였다고는 해도, 주주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과연 어느정도의 반발이 있을 것인가.

“일단 이 부분부터 확정하죠.”

“네.”

“표세인 부장이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들어줘야 합니다.”

“다행이군요.”

양성태가 지켜본 조연아란 인물의 특징은 자신의 입지에 대한 일말의 도전도 허락하지 않는 절대적 집권자의 성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표세인을 장기적 경쟁자로 여기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던 양성태였기에, 표세인에게 호의적인 발언이 나온 것에 안도했다.

“일단 이 문제로 반발이 예상되는 이들의 명단이 이겁니까?”

조연아는 양성태가 준비해온 대주주 명부를 바라보았다.

임원 승진에 관해서는 주주들의 의견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어쨌건 그들 역시 지분 만큼의 회사를 소유한 주인들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 보다 많군요.”

조연아라고 주주들의 동향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보다도 많은 숫자.

게다가 들어가 있으면 안 되는 이름까지도 들어있다.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하나는 아시다시피, 부회장님께서 주최하시는 첫 번째 총회이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간보기라고나 할까요?”

“기선제압도 할 겸……. 일단 반대표를 던지고 볼 수 있다는 거군요.”

“기본적으로는 탐색전에 가깝다고 보시면 될겁니다. 하지만 두 번째 요인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흐음……. 설마 백회장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난번 표세인과의 대립 이후, 맥슨의 주가는 반토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려 앉았다.

영업이익에 큰 변화가 없음에도 기대치가 사라졌다고나 할까? 주주들은 앞다투어 주식을 던진 상황.

맥슨이 스튜디오 단위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수습 보다는 우리에게 공격을 시도하다니…….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군요.”

“네. 그런 부분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양성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 재벌가들에 비해 비교적 젠틀하기로 이름난 IT업계 인사들이건만, 백회장은 유독 기성 재벌들과 비슷한 기질을 지녔다.

사설 경호업체를 고용해 시위에 나선 PC방 업주들을 공격한 것 부터가 다른 회사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주주들에게 입김을 넣는 것 외에는 어떤 술수를 부릴까요?”

백회장은 노련한 인물이다. 게다가 이미 표세인에게 당해 독기까지 치솟은 상황.

“글쎄요. 일단 주총꾼들을 포섭해서 공격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주총꾼들이 제대로 흔들면 총회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바쁜 주주들을 상대로 총회 시간을 무작정 길게 잡는 것은 불가하다.

그렇기에 주총꾼들은 그것을 빌미로 뒷돈을 챙기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다.

계속된 질문, 고함, 행패.

더러는 폭력사태까지 불사하는 존재들.

“설마 그렇게까지 이어질까요?”

조연아는 이미 비서시절 몇차례 총회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간의 맥베스의 총회는 딱히 이렇다 할만한 트러블이 없었다.

물론 그 배후에 양성태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 있음을 모를 정도로 순진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양실장님이 우려할 정도라는 건가요?”

“예.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명백히 누군가의 술책이 배후에 있을 테니까요.”

“그렇군요. 그래서 대책은?”

설마 양성태쯤 되는 남자가 이 정도 상황에서 대책 없이 무작정 자신을 방문했을 리는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양성태의 이사 진급은 문제가 없다. 몇몇 주주들의 경우는 별도 채널을 이용해, 먼저 양성태의 임원 취임을 거론한 적까지 있지 않았던가?

“그것이…….”

어라? 양성태가 말끝을 흐리자, 조연아는 살짝 놀랐다.

설마 대책이 없다고?

“사실 표세인 부장과 먼저 이 부분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주총꾼 부분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군요.”

“알아서 한다?”

“네. 예전에 조연준 관련해서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는 말로 대답을 일축했습니다.”

“흐음…….”

“일단 제 입장에서는 우선 표세인 부장에게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표세인은 지금까지 매번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은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 말은 이제 제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거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해결책은 부회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연륜에 대한 문제.

이것은 그간의 실적과 향후 비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면 될 일이다.

물론 이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준비는 끝난 상황이다.

“알겠습니다. 제 쪽의 문제는 제가 해결하죠. 양실장님은 표세인 부장쪽과 함께 주총꾼이나, 기타 문제 사항을 신경써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양성태는 고개 숙여 인사 한 뒤, 방을 나섰다.

“이제 시작해볼까?”

어차피 표세인의 문제가 아니었더라도 주주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때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조연아는 2장의 카드를 손에 넣은 상황.

“에머리, 쉬린칭. 이번에는 그쪽들 도움을 좀 받아야겠어.”

도움을 받는다고 말하면서도 조연아의 머릿속에는 이용한다는 것에 가까운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다.

어설프게 젊은 오너의 등장! 정도의 임팩트로 끝낼 생각은 없다.

이번 총회를 통해 맥배스의 입지를 단번에 글로벌 스케일로 키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된 이후에는 백회장 따위가 감히 맥베스에 어떠한 수작도 부리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드리죠. 백회장님.”

조연아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

*

주총꾼이라는 단어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인식은 굉장히 모호한 수준이기에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총꾼이요?”

하지만 나는 정확한 개념을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전회사에서는 주주총회에 참석할 짬밥도 아니었고, 맥베스에서도 아직까지 경험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IT업계는 원래 주총꾼 같은 인물들이 즐겨 찾는 업계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양실장은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네. 아무래도 백회장의 입김이 들어간 몇몇 이름난 인물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주식 보유량이 적은 것 아닙니까?”

“네. 심하게는 고작 1주를 들고서도 당당히 소리치죠.”

“그러면 무시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분탕질이라는 것은 무섭지요. 그들의 목소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부정적인 성토는 주변에 악영향을 미치니까요. 대중이란 원래 큰 관심 없이, 그저 큰 목소리에 따라 보조를 맞추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법입니다.”

“그렇군요.”

다른 것은 몰라도, 악성 댓글로 유저 게시판이 불타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이번에는 그런 작은 소요도 큰 불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맥베스 주가가 요즘 최고조인데도요?”

“부회장님의 네임벨류와 신용도의 문제랄까요? 원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낯선 사람, 게다가 젊은 지휘관을 경계하는 법이죠.”

연아가 언급 되는 순간, 가슴 어림이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피가 달아오르는 느낌이랄까?

설마, 지금 연아를 위협하려는 수작이라고?

“백회장은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죠. 복수심에 불타는 상황에서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회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제적으로 어떤 움직임이 있는 겁니까?”

“아직은 추론이긴한데……. 아까 말씀하신 주총꾼들의 주식보유량 말입니다만…….”

“예.”

“일부 주총꾼들의 경우에는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리인이요?”

“예.”

분탕질에 특화된 인물이 대리인 자격으로 총회를 흔든다.

이것은 확실히 두려운 상황이다.

“현재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대리인 자격을 부여받은 곳 중에는 한 용역업체까지 끼어있는 상황입니다.”

“용역업체?”

“기본적으로는 사설경호업이 주이긴 한데…….”

“몸싸움까지 번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까?”

“예. 최악의 경우 거기까지도 계산해야 할 것 같은 상황입니다.”

대주주의 대리인 자격을 등에 업은 용역업체 직원들의 난동이라니…….

이건 총회가 미뤄지는 정도의 문제를 떠나서 대서특필까지 진행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백회장이 아무래도 제대로 칼을 뽑아 든 모양입니다.”

“폭력사태의 레벨은 어느 정도 일까요? 책상이라도 내려치며 소리를 지른다?”

“하하하, 설마요.”

역시 그렇게까지 품위 없는 장소는 아닌 것이겠지?

“일반적인 주총꾼들도 의자나, 책상 정도 집어 던지는 것은 흔합니다. 뚜껑이 열린 물병 정도 집어던지는 것은 주총꾼이 아닌 일반 주주들도 종종 벌이는 행위이고요.”

“……총회라는 것은 보다 품위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걸린 일이지 않습니까. 돈 앞에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란 의외로 몇 없는 법입니다.”

“만약 이번 총회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큰 문제는 없겠지요.”

어라? 예상과는 다른 답변?

“그저 부회장님에 대한 불신임안 정도가 몇 차례 올라올 수는 있지만, 그거야 무시하면 될 일.”

불신임안.

“잠깐만요. 불신임안이라고요? 그거 최악 아닙니까?”

“국내 대기업 오너 중에 불신임안 몇 번 정도 겪지 않은 인물은 손에 꼽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연아에게 불신임안이라니…….

게다가 이미 연아는 실적면에서는 더없이 훌륭한 성과를 자랑한다.

내 여자는 꽃길만 걸어야 한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일단 이건 양보가 안 된다.

“어차피 그들 숫자로 어떤 안건도 수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부회장님 얼굴에 먹칠을 하겠다는 것이 본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백회장…….

진흙탕 싸움을 원한다는 건가?

“백회장은 이미 용역업체들을 이용해 유혈사태를 일으킨 전적이 있는 인물이죠.”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용역업체를 움직인다 이거군요.”

“예.”

나는 잠시 고민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연아를 공격해 들어오는 상황.

그리고 하필이면 나에게는 이 상황을 180도 뒤집을 수 있는 카드가 있다.

개발자 표세인은 결코 선택하지 않을 카드.

하지만 경영자 표세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저는 고작 팀장 나부랭이라서, 다른 것은 모르겠고, 좋은 게임. 좋은 회사를 만들면, 자잘한 것들은 모두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잘 보일 것은 고객들이지, 권력자들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거 내가 백회장에게 날렸던 발언.

하지만 이제 나는 팀장을 넘어 대표이사 직위를 노리고 있다.

맥베스 대표 표세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양실장님. 이 분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지난번 조연준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번에도 다소 음지세계와 손을 잡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양실장의 방에서 나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너 나랑 일하나 하자.”

-일이라니요. 그저 지시만 내려주십시오.

“아니, 대가는 치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백회장님.

팀장 표세인이 아닌, 대표이사 표세인은 조금 수가 다를 겁니다.

큰 거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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