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염종수에게 받은 주소로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 4층짜리 빌딩이었다.
“나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염종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하셨습니까?
“그래.”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염종수는 금방 내려왔다.
“굳이 네가 있을 필요는 없잖아?”
“하하, 형님 일인데 제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고맙다.”
지난번 일도 그렇고, 과거의 앙금이 남아있는 탓에 내 태도는 여전히 뻣뻣하지만 내심은 고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혀, 형님.”
염종수는 그 자리에서 살짝 떨었다.
“뭘 그리 오바하냐.”
“그냥 예전 생각이 나서요.”
“애초에……. 아니, 일단 들어가자.”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도 없이 계단으로 4층을 올라가니, 다소 낡은 문과 촌스러운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사무실 입구가 나타났다.
“이게 그리 크게 돈이 되는 일은 아닌지라서, 다소 볼품없기는 합니다만……. 저희쪽도 이 업계에서는 평판이 괜찮습니다.”
“평판?”
“경호업으로 말입니다. 다른 쪽 일은 여기서 처리 안합니다. 그런 일은 대체로…….”
“잠깐.”
“?”
“위험한 정보 넘겨주지 마라.”
지난번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이 녀석 자꾸 쓸데없는 TMI를 선물하는 경향이 있다.
음지와 너무 깊게 엮이는 것은 좋지 않다.
비록 아는 인맥이 이녀석 뿐이라서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선에서 일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이야기는 염실장님께 들었습니다. 오정렬이라고 합니다. 그냥 오사장이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표세인입니다.”
“앉으시죠. 그래서 경호업무를 의뢰하려고 하신다고요?”
다소 후덕한 인상의 사장이 나를 맞이했다.
겉보기만으로는 음지쪽과는 전혀 관련 없어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소 다른 방식의 일이 될 것 같으니, 그 부분이 가능한지도 알고 싶습니다. 물론 보수는 부족함 없이 드리겠습니다.”
“흥미롭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흥신소와도 연계가 잘 되어있고……. 에……. 여러모로 다재다능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뭔가 께름칙한 정보를 언급하려던 것 같은데, 염종수의 눈치를 보더니 슬쩍 말을 돌렸다.
이상한 정보 좀 주지마라…….
듣는 사람 곤란하다.
애초에 음지쪽 일이라면 좀 숨겨야 하는 것 아니야? 뭘 속속들이 말하지 못해 안달이람?
“그래서 정확히 어떤 부분을?”
“일단 이것부터 확실히 하죠. 저는 뒷돈 같은 것 운용할 생각 없습니다. 필요한 금액은 정확히 계약서에 명시하고 이후 기타 부대비용 발생 시 반드시 정확한 영수증 첨부가 필수입니다.”
“저희 원래 그렇게 합니다만?”
“형님. 말씀드렸다시피, 여기는 그런 쪽이 아닙니다.”
으음……. 드라마나 뉴스에서 뒷돈, 뒷돈 하기에 여기도 그런 일이 있나 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요.”
“이해합니다. 아무튼,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세금 한 푼 떼어먹지 않는 양심적인 회사입니다. 애초에 건물 상태 보십시오.”
신뢰가 간다고 해야 할지……. 못 미덥다고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느낌이야.
“그런 부분은 좋군요. 그럼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곧 저희 회사에 주주총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주총꾼에 대응할 경호팀을 고용하시려는 거였군요.”
역시 업계 사람인만큼 착하면 척이다.
“네. 하지만 이번에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다른 방식이라고 하신다면 프로 주총꾼들이 대리인 자격으로 나서거나 용역 깡패 무리들을 대동하고 나서는 정도일까요?”
“어?”
뭐지 이 사람?
내가 살짝 당황해서 염종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염종수는 그저 목을 긁적이며 내 눈길을 회피했다.
“사실 염실장님께 무서운 분이라고 들었는데…….”
조폭이 일반인을 무서운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다니…….
어이가 없다.
물론 예전에 내가 한번 눈이 뒤집혔을 때의 사고 친적이 있기는 하지만…….
“빠른 진행을 위해 조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그러시죠.”
오정열은 염종수의 아랫사람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나보다 10살은 많아보였다.
그런만큼 과하게 예의를 차리는 것도 편치는 않았다.
“표세인씨께서 겪고 계시는 모든 문제……. 솔직히 저희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문제입니다.”
“일상이요?”
아무리 그래도 백회장의 술책 같은 일이 매일 같이 벌어진다고?
“우리 나라는 외국과는 다르게, 주총시즌에, 그것도 대개 금요일에 무더기로 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간도 무척 짧고요.”
“그렇습니까?”
사실 나야말로 부끄럽게도 주주총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총꾼들의 벌이라고 해봐야, 한 철 장사에 불과하지요. 물론 나름 큰손이라 할만한 치들도 있기는 합니다.”
주총꾼들의 수입은 총회에 가서 난동을 부리지 않는 댓가로 소정의 뒷돈을 받는 것이다.
“덕분에 빠른 동선설계와 이름값으로 최대한 많은 총회를 돌아다니며, 뒷돈을 챙기는 것이 그들의 노하우지요.”
“뒷돈이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돈벌이는 조금 전 말씀하신 상황처럼, 사주를 받아 목돈을 챙기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듣고 보니 이해가 된다. 확실히 한철 발품을 팔아 소소하게 용돈 벌이를 하느니, 경쟁사의 사주를 받고 총회를 방해하거나, 누군가에게 유리한 안건을 상정 혹은 반대하는 것이겠지.
“이해하신 것 같군요. 게다가 부수적으로 그들은 해당 회사에 마음껏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이런 일을 겪으면 다음번에는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만 봐도, 버선발로 달려가서 돈 봉투를 내밀 테니까요. 시간도 절약되고 몸값도 올리고, 일석이조랄까요?”
“어느 세계나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군요.”
솔직히 다소 황당할 지경의 이야기이긴 한데, 듣고 보니 은근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경호가 아닌, 데미지 컨트롤까지 희망하시는 거겠지요?”
“물론입니다.”
약간 느낌이 다른 양실장 같은 타입이다. 척하면 척이랄까?
원하는 답이 척하면 척 나오는 덕분에 대화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는 와중인데도 살짝 흥이 날 지경이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미쓰리!”
우와, 요즘 세상에도 이렇게 호명하는 사람이 있구나!
“네.”
“여기……. 다방 커피 괜찮으십니까?”
“네.”
딱히 커피를 이것저것 가리는 편은 아니다.
“커피 두 개에 쌍화차 하나.”
“네.”
다소 사무적이지 않은 복장의 여성이 힘차게 대답했다.
“염실장님 연락을 받고 다소 긴장한 탓에 제가 정신을 놓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신경쓰실 것 없습니다. 그런데 쌍화차라니……. 오히려 그게 신기하군요. 탕비실에서 쌍화차까지 만듭니까?”
“만드는 게 아니지요.”
“?”
만드는게 아니야?
“잠깐 걸릴테니, 일단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네. 그러시죠.”
오정렬의 말대로, 지금 쌍화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 데미지 컨트롤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상황 주총꾼에게 대리인 자격을 맡긴 주주를 찾아서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전에 저희가 알 방법은 없지 않습니까?”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주의 동향을 이들이 파악이 가능하다는 건가?
이건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미쓰리라 불린 여성이 영화에서나 보았던 다방 보자기를 들고 들어섰다.
“하하. 특이하지요?”
“네.”
아닌게, 아니라 살짝 당황스럽다. 당연히 탕비실에서 타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방에서 직접 가져온다고?
“아래층이 다방입니다. 이런 부분이라도 상부상조해야지요.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이웃들이라서요.”
“그렇군요.”
묘하게 호감이 간다. 어쩐지 우리 아버지와 만나면 금방 형님, 동생하는 관계가 될 것 같은 이미지랄까?
“어머! 미남!”
“쓸데없이 끼부릴 생각 마라. 네 깜냥으로 가능한 분이 아니야.”
“그건 모르죠?”
“죄송합니다만, 저 곧 결혼합니다.”
“에이…….”
-탁!
아무리 그래도……. 커피를 내려치듯이 놓고 나가다니.
여러모로 놀랍다는 느낌이다.
“죄송합니다. 쟤가 나쁜 애는 아닌데……. 혼자서 애를 키우다보니, 애가 점점 기가 세져서요.”
이 동네는 TMI가 기본 사양인가 보다. 덕분에 미쓰리의 개인사까지 알게 되어버렸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정렬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쌍화차를 후후 불며 한모금 들이켰다.
나 역시 커피로 살짝 목을 축인 후에야,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일단 주주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역시 내 추축이 맞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주총꾼놈들을 털어봐야죠.”
“턴다고요?”
“주총꾼도 나름 등급이 있고 대리인을 맡을 정도의 인물들은 나름 분기별로 영역을 나눕니다.”
“아!”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회사를 돌아야하는 주총꾼들인 만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나름의 영역분담을 한다는 거다.
“이게 또, 주총꾼들이 너무 몰려들면 앙심을 품은 회사들이 지갑을 닫으려는 일도 생기니까요. 그래서 주총꾼 사이에도 나름 상도의가 있지요.”
“라는 말씀은, 저희 회사가 속한 지역의 담당 주총꾼들을 찾으면…….”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여기 계신 염실장님이 특기지요.”
“네가 특기냐?”
“나름 흥신소도 몇 곳 운영하고 있습니다.”
염종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체 두분은 무슨 관계이십니까?”
“네?”
“머리 꼿꼿하기로 소문난 염실장이 어쩜 이렇게 순한 양처럼 행동하시는 지……. 하하하. 놀랐습니다.”
“하하, 별거 아닙니다. 형님께 맞아보면 누구나……. 아, 죄송합니다.”
뭘 다 말해놓고 미안하데.
“가만, 예전에 회장님이 말씀하신 그 일반인이……. 표세인씨였습니까?”
“예.”
염종수의 말에 순간 오정렬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저, 저는 그런쪽이 아닙니다. 머리와 혀 담당입니다!”
대체 구회장은 나에대해 뭐라고 말하고 다닌 걸까…….
“아니, 전 말씀하신 그대로 일반인이고 제 몸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절대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습니다.”
살면서 이런일로 해명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흠흠, 죄송합니다. 제가 소싯적에 큰일을 당한 적이 있어서, 간이 쪼그라들어서요.”
“그러셨군요. 아무튼, 이제 대충 각이 잡힌 것 같습니다.”
나는 행여 과거사까지 듣게 될까 두려워서 다급히 업무 쪽 대화로 방향을 틀었다.
“대리인 자격을 손에 넣은 주총꾼을 찾아서 정보를 획득하고 미연에 방지. 그러면 상대가 고용한 용역업체 쪽은?”
“일단 저희 쪽 애들이 서 있으면 웬만한 상대들은 알아서 길 겁니다. 일단 저희는 족보부터가 다르니까요.”
“족……. 그, 그렇군요.”
하마터면 족보가 뭐냐고 물을 뻔했다.
“일단 저희가 철저히 선별해서 ‘그쪽’ 친구들은 아예 발을 못 붙이게 할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대로 상대가 순순히 물러날까요? 회사 앞에서 소란이 벌어지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저희 명함으로 안되는 상대라면 그 부분 역시 염실장님이 담당해 주실 겁니다.”
“이 녀석이요?”
“……제가 나름 이름이 통하는 편입니다.”
지난번 내가 툭 쳤을 때, 옆구리 잡고 비실대는 모습을 봐서는 영, 모르겠는데…….
뭐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다.
“그렇군요. 대충 알겠습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견적부분으로 넘어가죠.”
“그렇죠. 뭐 다른 분도 아니고 염실장님 지인이시니 깔끔하게 큰거 한 장으로 끝내시죠. 경비용역비는 인원수가 그리 크지 않으니 대단치 않더라도, 그 외 조사와 일 처리에 따른 비용이 훨씬 크니까요. 이거 절대로 바가지 아닙니다.”
큰거 한 장?
생각보다 저렴하다?
“그렇군요. 생각보다 싸군요. 저는 그래도 2, 3억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네?”
“?”
“혀, 형님. 천만원입니다. 억단위가 아니에요.”
뭐 이렇게 싸?
이렇게 싸니까, 부자들이 틈만 나면 용역들 고용해서 난리를 부리는구나…….
“조폭은……. 많이 버는 줄 알았다.”
“그, 그래도 버는 곳에서는 좀 법니다?”
염종수는 찔끔해서 소리쳤다.
적성에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