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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42화 (242/346)

242

“그럼 어디……. 시작해볼까?”

스스로를 대치동 장산범이라 말하는 주총꾼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다.

그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체격 좋은 용역업체 직원들을 보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 아주 크게 한건 해보는 거다.’

산신령이나 호랭이 같은 네임드들에 비하면 자신은 아직 그 정도까지 유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부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니, 그 이상의 유명세를 탈 것이다.

“다들 준비 됐지?”

“네.”

용역업체 직원들 역시 뱃지로 위장한 소형카메라를 다시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보…….”

“거기 잠깐.”

“?”

장산범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염종수와 부하들이었다.

“대치동 장산범 맞나?”

“뭐, 뭐야?”

염종수의 눈빛에 겁을 먹은 장산범이 뒷걸음질을 치자, 용역업체 직원들이 염종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SD쉴더스 맞나?”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용역업체 직원이 목을 좌우로 풀면서 위협적인 면모를 과시하려 했다.

하지만 그 모습에 염종수와 부하들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염종수라고 하는데 혹시 모르나?”

가급적 회사 인근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이름도 통하지 않을 정도의 잔챙이라면 오히려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여, 염종수?”

다행히도 그렇게까지 족보가 없는 상대는 아닌 모양이었다.

“안다니 다행이군. 일 키우기 전에 우선 그쪽 사장에게 연락 먼저 해보도록 해. 나랑 척을 지고 싶냐고.”

염종수를 알아본 용역업체 직원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뭐냐?

“사, 사장님.”

-왜?

“여, 염종수가 있습니다.”

-뭐?

“카지노 염종수요.”

-여, 염종수가 거기 왜 있어? 니들 설마 그 사람에게 뭔가 한 것 아니지? 거기랑 붙으면 인마 우리는…….

그때 염종수가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용역업체 직원은 난감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염종수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SD쉴더스의 장대표입니다.

“이야기가 통하는 분 같으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번 일 손 떼시죠.”

-하, 하지만 저희도…….

“제가 방문해서 대화하시는 편이 나으시겠습니까?”

방문이라는 말에 장대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대부업계의 염라대왕이라 불리는 그와 마주하고 무사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해했습니다. 저희는 손 떼겠습니다.

“장대표.”

-네?

“기억하겠습니다. 나중에 곤란할 때, 한 번 연락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염종수는 다시 스마트폰을 넘겨주었다.

“사장님?”

-당장 회사로 튀어와.

“정말 괜찮겠습니까? 위약금은?”

-너 염종수 감당할 수 있냐?

“당연히 없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혓바닥이 길어?

“알겠습니다.”

용역업체 직원은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용역업체 직원들은 공손히 인사하고는 등을 돌렸다.

“자, 잠깐 나도…….”

홀로 남겨진 장산범이 덩달아 등을 돌리려는 순간 염종수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장산범씨는 저랑 대화 좀 나누시죠.”

“네?”

“걱정 마십시오. 저를 깡패로 대하지 않으시면 거친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깡패로 대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그저 묻는 말에 3초 이내로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염종수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

*

*

“주총꾼들을 들이지 않으시겠다고요?”

“네.”

양실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오히려 손해일 수 있지 않습니까?”

“계속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일종의 과시입니다.”

“과시……. 그렇군요.”

역시 양성태는 곧장 내 의도를 파악했다.

총회때마다 경호업체를 계속 고용하는 것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차라리 여느 회사들처럼 주총꾼들에게 적당히 용돈을 쥐어주고 돌려보내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힌다.

애초에 그것을 주총꾼들 역시 알고 있으니, 이런 시장이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명백히 경쟁사의 방해 공작이 들어온 상황.

“우리를 건드려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필요가 있지요.”

“그 말씀은……. 단순히 주총꾼들을 쫓아내는 것으로 멈추실 생각은 없으시다는 거군요?”

“네. 물론입니다.”

팀장 표세인은 그저 게임을 만들거나 상대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선에서 끝이었다.

하지만 대표이사 표세인은 어떨까?

대표란 회사를 이끄는 자리다.

그리고 회사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작은 돌부리 하나도 남겨 둘 수는 없다.

“그리고 조금 전 대답을 약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정이요?”

“주총꾼 ‘한 명’은 들여보낼 것입니다.”

“한 명?”

“네. 우리 쪽에서 통제 가능한 인물을 하나 들여보낼 것입니다.”

통제가 가능한 인물을 들여보낸다?

양성태는 이번에도 금방 표세인의 목적을 깨달았다.

“정말 무서운 분이십니다.”

양성태는 싱긋 웃었다.

“그런가요?”

표세인 역시 마주 미소지었다.

“이것으로 총회를 마치겠습니다.”

결산보고에 이어 새로운 임원진 임명까지 모두가 끝난 상황.

총회의 진행을 맡은 김대표는 자신의 마지막 임무가 무사히 끝났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사봉을 내리치려했다.

그러나 그때!

“씨발! 누구 맘대로 끝낸다는 거냐!”

대치동 장산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정하시고 앉으세요. 발언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사회자가 다급히 외쳤지만 장산범은 생수통으로 위장한 휘발유를 바닥에 뿌렸다.

“꺄악!”

순식간에 벌어진 아비규환.

“휘발유는 좀 지나친 것 아닙니까?”

“500ml면 청소도 그리 어렵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표세인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미소지었다.

“멈춰!”

다급히 달려온 경호원들에 의해 장산범은 금새 제압 당했다.

그는 경호원들의 손에 끌려나가며 회의실 가장 뒤편에 있던 염종수를 바라보았다.

염종수는 슬며시 엄지를 치켜세웠다.

“뭐 좋은 배우는 아니었지만, 어차피 지나가는 씬이니 큰 문제는 아니겠지요.”

표세인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기지개를 켰다.

“곧장 시작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닙니다. 백회장도 좀 즐길 시간을 줘야지요.”

“그렇군요.”

양성태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

*

*

[MBS 뉴스 속보입니다. 금일 오전 국내 굴지의 게임개발사인 맥베스의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분신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찰의 조사 결과 해당 주주는 이른바 대치동 장산범이라 불리는 주총꾼으로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고의적으로 맥베스의 총회를 방해할 목적이었음을 시인했습니다.]

[검찰은 해당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곧바로 조사에 착수할 것을 발표…….]

-삑.

백회장은 말 없이 TV를 종료했다.

“내가 실수한 걸까?”

백회장의 말에 설동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론적인 일이긴하지만……. 그런셈이 되었습니다.”

“이건 말이 안돼. 보통은 일이 이렇게 진행되지 않아.”

경쟁사에 주총꾼을 보내서 방해공작을 펼치는 일은 암암리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주총꾼이 자신을 고용한 뒷배까지 순순히 털어 놓는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저들 세계에도 나름의 상도의가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앞으로 누가 자신을 찾겠는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라는 점이지.”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누가’라는 부분의 해답은 이미 머릿속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대체 표세인 그놈은 뭐하는 놈이지?”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가, 자신 보다도 음지의 일을 더 잘 처리하다니?

나름 이정도 노하우를 익히기 위해 백회장 역시 기성 재벌들과 연을 맺으며 영향력을 키워오지 않았던가?

아무런 뒷배없이 돈만 믿고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다.

어디에 돈을 먹여야하고, 누구를 다독여야 뒷탈이 없는 가?

이런 것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걸음 배워갈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는 다면 더더욱 혼자서는 깨우칠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라니…….”

이번 일 만큼은 정말로 예상 밖이다. 아니, 상식 밖이다.

고작 부장급에 불과한 애송이가 자신의 계략을 모두 막아내고 그것을 역이용한다?

“나도 늙었군.”

백회장의 어깨가 축 내려 앉았다. 순식간에 몇 년은 더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저쪽에서는 어찌 나올 것 같은가?”

“일단……. 백회장님의 퇴진이 가장 우선 사항 아니겠습니까?”

이미 백회장과 맥베스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다 못해 게임 마케팅 싸움까지는 그나마 업무상 경쟁이라고 생각할 여지라도 있다.

하지만 주총꾼을 이용해 맥베스에 오물을 투척하려던 것은 악의적인 공격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 백회장의 심정도 그랬다.

주총꾼을 이용해서 맥베스의 주가를 흔들어봤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가 있겠나?

그저 조연아를 필두로 맥베스의 이름값에 먹칠이나 하려던 심산이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검찰출두를 걱정하게 생겼다.

“그래도 검찰 출두까지 가는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이 업계에서 백회장님 만큼 정계와 연이 깊은 인물도 또 없지 않습니까?”

MC소프트든, 맥베스든 정권 교체시기 때마다 정부의 으름장에 돈을 상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그쪽과 선을 대며 활동한 것은 백회장 본인이었다.

애초에 상납금이라 할 수 있는 뒷돈의 액수를 받아와서 전파하는 것부터가 백회장의 역할이었으니까.

“하지만 여론은 무시 못 하지.”

주총에서 주총꾼들의 성화로 조연아의 이름에 먹칠하는 정도야, 별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일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미 휘청거리고 있는 맥슨의 주가는 아예 지하실 바닥까지 처박힐지 모르는 상황.

“좋아. 항복이야.”

“빠른 결단. 훌륭하십니다.”

백회장의 결단에 설동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설대표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중재를 맡아주겠다는 의미겠지?”

“그렇습니다. 이 일이 더 커져봐야, 게임업계를 향한 여론이 나빠질 뿐이니까요.”

세계 어디를 가든 게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만큼 학부모들이 지닌 게임에 대한 혐오가 강한 나라가 또 있을까?

계속된 국내 개발사들에 대한 못마땅한 시선이 이어지는 와중에 맥베스와 맥슨과 같이, 국내를 대표하는 게임사들의 갈등이 수면위로 올라오는 것은 업계 전체의 문제였다.

“맡겨주신다면 제가 한번 중재해보겠습니다.”

“대가는? 나 백용현이의 자리인가?”

국내 개발사들의 수장이자, 정계와의 파이프라인을 손에 쥔 남자.

그것이 백회장이 오랜 세월 구축해낸 입지였다.

“은퇴하신다면 어차피 후임자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아들놈들도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중재까지 맡아가며 사정하는 것이지요.”

“흥, 내 아들놈들이 깜냥이 안된다는 말을 잘도 돌려서 말하는 군.”

백회장도 알고 있다. 자신의 아들 중에 설동은 정도 되는 인물은 없다.

그리고 내심 그도 설동은을 자신의 후임자로 생각하던 참이었다.

“표세인. 그 놈 위험한 놈이야. 알고 있지?”

백회장의 말에 설동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암기는 욕망으로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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