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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44화 (244/346)

244.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나는 퇴근 후 조회장님 댁을 방문했다.

“클클, 우리 표대표님 많이 바쁘신가 보군.”

“아직은 업무가 조금 낯설어서 정신이 없네요.”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곧 적응할거야. 오빠는 뭐든 잘하잖아.”

“나도 그러길 바라.”

연아의 상냥한 말에 나는 싱긋 마주 웃었다.

“그보다 요즘 어떠세요?”

“뭐가?”

“인디 프로젝트요. 그쪽도 이제 막바지 준비중 아닌가요?”

“이제 나까지 쪼는 건가? 표대표. 무섭구만?”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야 사내 일에 두루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 아닙니까?”

내 말에 조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그래야지. 잘하고 있어. 오늘 도상무보쪽에도 한 마디 하고 왔다면서?”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요. 함께 향후 진행상황을 논의한 거죠.”

다른 팀들이 유난히 빠른 속도로 마무리한 것이지, 전무군단 쪽이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모바일 게임만 만들던 이들이 처음으로 PC용, 그것도 기존과는 전혀 결이 다른 게임을 개발하는데, 문제가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의아스러울 것이다.

“이제 막 승진해서 다들 정신이 없을 거야. 당분간은 살살 다뤄주라고.”

아니, 그러니까. 쎄게 안한다니까요?

그런데 퇴근 후에도 회사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까, 뭔가 나도 오너 일가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얼마후 정식으로 연아와 결혼하면 이것이 내 앞으로의 인생이 되는 거겠지.

솔직히 당장은 좋다, 싫다라는 감정보다는 얼떨떨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우리 신임 대표께서는 차후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신가?”

“비전이요?”

“인디 게임 프로젝트도 저마다 완료 수순을 밟고 있지. 그럼 다음번 프로젝트도 진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거라면 연아가…….”

나는 슬쩍 연아에게로 공을 넘겼다.

“나는 이 기회에 파트를 나눴으면 좋겠어.”

“파트를 나눠?”

“나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에머리가 가져온 사업 계획를 주로 처리할 거야. 그 과정에서 쉬린칭 쪽과의 연계도 계속 담당해야 겠지.”

“라는 것은…….”

대강 하려는 말은 알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한 번 더 의뭉스럽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알면서 뭘 물어. 오빠가 잘하고 관심있는 분야는 오빠에게 맡기겠다는 거지.”

“개발업무는 표세인이가 담당한다? 그거 좋군. 이참에 회사 대표로서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것도 좋겠지. 좋은 조합이야.”

조회장 역시 연아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계획은 있겠지? 사실 회장으로서는 스쿨런 후속작은 어떨까도 싶은데, 그거 처음부터 인디 수준에서 머물만한 스케일은 아니었잖아?”

회장으로서입니까? 아니면 유저로서입니까?

지금도 거실에는 조회장이 플레이 도중 정지해 놓은 스쿨런의 화면이 떠있는 상황.

“솔직히 잘만들었죠?”

“그래. 어째 네놈이 원하는 답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좀 배알이 꼴리는 느낌이지만, 거짓말은 할 수 없지. 잘 만들었다.”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머릿속에 있던 기획이, 기획서 그대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하지만 스쿨런의 경우는 정말로 내가 생각한 그대로 구현이 되었다.

애초에 좀비로얄의 노하우를 빌려오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겠지.

나중에 박대표와 이팀장에게는 선물이라도 듬뿍 안겨줘야겠다.

“스쿨런 후속작도 좋은 방편이 될 수 있겠지만, 당장은 다른 것을 먼저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실험?”

“예. 이제부터 제가 생각하는 것들은 아무리 가능성을 엄밀히 타진한다고는 해도 실험이라는 단어를 지우기는 어렵겠지요.”

“실험이라니…….”

“뭐 저 같은 녀석을 대표 자리에 앉히셨으니 각오는 되신거죠?”

내 말에 조회장은 어이 없다는 듯이 웃었다.

“누가 들으면 싫은 물건이라도 떠 안겼다고 생각하겠구만.”

그러게요. 우리 이야기 누가 들으면 참 묘하다 하겠죠?

*

*

*

“이건 심각한 문제군요.”

대표에 취임한 이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이라고 한다면, 점심 식사 시간 조차 미팅의 일환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양성태가 조율하고 홍기도가 안내하는 대로 이 사람, 저 사람 두루 만나가며 식사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양성태와 홍기도.

내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편안한 식사시간이 되었어야 했다.

“심각한 문제라니까요? 제 말 듣고 계시죠?”

“어. 듣고 있어.”

나는 짜장면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언짢으신 일이라도?”

젓가락질조차 고상한 우리 양성태씨는 울면을 우아하게 먹고 있었다.

“대표씩이나 되었는데, 짜장면이 웬 말입니까?”

“그럼 대표는 뭐 먹어야 하는데? 점심부터 고기 먹냐?”

“그게 베스트지만, 그게 아니라도…….”

“헛소리 그만하고 어서 먹어. 이거 다 너 때문에 먹는 것 아냐.”

“저때문이라고요?”

그래도 면이 부는 것은 싫었는지, 홍기도 녀석은 냉큼 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네가 지난번에 자장면 먹고서 제정신 차린 것 같기에…….”

“아, 잉아 이어이에요?(아, 진짜 이러기에요?)”

“다 먹고 말해라. 튀기면 혼난다?”

그렇게 홍기도에게 주의를 준 후에야 식사에 전념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서로서 대표님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부사장님 한 말씀 해주시오.”

“잘먹었습니다.”

“그거 말고요.”

“이 집 울면 괜찮군요. 요즘 울면이 메뉴에 없는 집도 많은데, 말이죠.”

뭐랄까.

양성태도 드디어 홍기도를 대하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물론 원래의 양성태라면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도 다소 늦은 것 같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감을 못잡는 것을 고려하면, 역시 양성태 답다는 느낌이다.

“백회장 관련은 설대표를 앞세워 무사히 마무리 되었습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맥슨은 향후 우리에게 어떠한 적대 행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 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그나마 정계와의 파이프 라인을 쥐고 있던 백회장이 있으니까, 신경이라도 쓰였던 것이지.

맥슨은 이미 맥베스와 비교가 안 될정도로 주저 앉아 버렸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에게 이빨을 들이댄다?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리고 현재 설대표 측은 별다른 불온한 기색은 없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설대표의 성격상, 이런 상황에서 괜한 리스크를 짊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설대표가 우리를 따돌리고 백회장의 인맥을 독차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이 부분은 전적으로 양성태에게 맡겼다. 물론 결정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내가 나가야할 일은 있겠지만, 그 외에는 그저 양성태에게 맡기면 될 뿐.

“그렇군요. 그 외에 특별한 일이 더 있습니까?”

“두가지가 있습니다.”

두 개씩이나?

“우선 첫 번째는 조연준에 관한 일입니다.”

“아!”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주가 방어 어쩌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런데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주가방어……. 이걸 성공했다고 봐야 할까요?”

“저도 난감하지만……. 액면 그대로라면야, 성공했다고 봐야겠지요.”

방송을 통한 스쿨런 홍보효과. 그리고 경쟁사들의 부진을 계기로 맥베스의 주가는 당시 보다도 오히려 소폭 상향되었다.

주가하락을 2%내외로 막아내면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이었으니…….

그 말대로라면 조연준은 해낸 셈이다.

“하지만 조연준 본인은 이 부분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요. 낯이 두텁지 않은 인물이라면 이 기회를 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생각해보니 양성태는 조연준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은 전적으로 내 판단에 의지하고 싶은 심정인 것 같다.

“조연준이 어떻게 나오던지, 이 문제는 전적으로 제임스에게 맡기도록 하지요. 기둥소프트 투자부분은 이미 제임스의 재량에 맡겨둔 상태니까요.”

“알겠습니다.”

양성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번째입니다.”

“네.”

아마도 처음부터 본론은 이 두 번째 안건이었으리라.

“쉬린칭이 곧 본사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에?”

“왜요?”

나 보다도 홍기도가 더 크게 놀랐다. 아니, 어찌보면 당연하지.

나에게 있어서야 쉬린칭은 그저 업무 파트너 느낌이지만 홍기도에게는…….

대체 이들의 관계는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연아는 내심 쉬린칭을 응원하는 분위기인데…….

“아시다시피 쉬린칭의 재력은 굉장하지요. 그리고 그녀가 운용하는 투자금을 대폭 저희쪽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본능적으로 이 부분은 에머리와 연계된 연아의 프로젝트와 상당부분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인 진행이야 부회장님 측에서 처리하시겠지만, 저희도 준비는 해야지요.”

공식석상에서 중요 비즈니스 파트너를 상대하는 것은 대표인 나의 역할일 것이다.

비록 프로젝트 자체야 연아와 쉬린칭이 주관한다고는 해도, 내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부분은 부사장님께서 잘 처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두 번째 안건을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것이요?”

“문상무나 소이사 관련이랄까요?”

사실 당면한 문제는 이쪽이 아니던가?

“아시는 바와 같이 문상무와 소실장은 미국지사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당분간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소일연은 문상무의 미국 센터장 직위를 물려 받고 미국지사는 이후 스트리밍 서비스 개발 쪽에 전념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 쪽에서 신경쓸 일은 없겠습니까?”

“네. 없습니다. 미국 쪽은 완전히 정리가 끝난 상황이니, 문상무 혼자서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하니까요.”

양성태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말씀하신대로, 쉬린칭 관련 안건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홍기도 과장님.”

양성태가 홍기도를 호명했다.

“아……. 아니에요. 그거 아니에요.”

“…….”

자장면도 별 소용 없었구나. 이 놈의 헛소리를 결국 막을 수 없는 건가?

“안타깝지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에요.”

“없습니다.”

“이건 잘못된 거예요.”

“홍기도 과장님. 어리광은 그만 부리시고, 쉬린칭이 입국하면 그녀를 담당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악!”

홍기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부사장님.”

“네?”

“훌륭하십니다.”

“?”

드디어 나 외에도 홍기도 조련사 자격 보유자가 탄생했다는 느낌이랄까?

양성태에게 홍기도를 맡기길 참 잘했다는 느낌이다.

“대표님! 저 연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홍기도가 벌떡 이러나 손을 들며 소리쳤다.

연수따윈 싫다면서 냉큼 발뺀 녀석이 이제와서 연수를 찾다니?

“그러냐? 정말로 연수 갈거냐?”

“네!”

“그래. 그런데 그거 아냐?”

“뭐요?”

“연수 장소 중국…….”

홍기도는 스스륵 의자에 주저앉았다.

적어도 사람 말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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