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대표가 되면 뭐가 달라지는데?”
엄마의 말에 나는 올바른 답안을 찾을 수가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훌쩍 뛰어오르는 연봉과 복지 등을 이야기 하겠지만, 그것뿐이라면 이미 기둥소프트의 대표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에 반복일 뿐이다.
그러게요.
뭐가 달라지는 걸까요?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강하게 밀어 붙일 수 있다는 것?”
내 말에 엄마와 아버지는 상당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게 다냐?”
“난 조금 더 극적인 무언가를 상상했었지.”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지.”
“그러게요. 진짜 별거 없네요.”
음, 사실 본인의 생각하는 대로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 보다 굉장히 큰일이지만, 정작 우리 부모님에게는 크게 다가오는 점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연아 없이 혼자 온 이유가 뭐야?”
저기요?
제가 이 집안 장남 표세인이거든요?
저 혼자서 부모님 집에 방문하면 안되나요?
나는 순간적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느겼다.
“크크크. 회사에서는 잘 나가도 집안에서는 고작 이 정도 대접인 법이지.”
“그래도 그걸 네 입으로 말하면 내 입장에서는 너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지지.”
“엄마! 형이 때려!”
나는 동생 놈의 등에 매달려 화려한 서브미션을 선보였다.
“애 좀 그만 잡아라! 이제는 회사 대표나 됐다면서?”
“그것을 위한 사전 작업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보다 명확한 위계질서를…….”
“솔직히 세종이가 너한테 이겨 먹은 적도 없는데, 양심적으로 이제는 좀 아량을 보여도 되는 것 아니냐?”
네. 안됩니다.
이것은 DNA에 새겨진 본능 같은 것이죠. 이 녀석에게 만큼은 긴장을 늦출 수 없어요.
-탁탁!
나는 동생 놈의 텝 사인을 받아낸 후에 떨어졌다.
“인간적으로 유도 선출에게 서브미션으로 텝 받아내는 것은 양심 없지 않음?”
“인간적으로 유도 선출이 서브미션에 텝 치는 것은 양심 없지 않냐?”
“나도 밖에서는 잘하거든?”
“지금 그 대사 녹음해서 혼자 다시 들어봐.”
“……씨이.”
동생놈은 그대로 나를 향해 눈을 흘기고는 제 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래서 그건 그렇다치고.”
그렇다치고?
아니, 어머님. 맥베스 정도의 대기업에 대표가 됐다니까요?
보통은 동네 입구에 현수막 걸고 자랑할 만한 일 아닙니까?
[우리 동네 자랑 표세인.]
뭐 이런거 달아도 될만한 일이라니까요?
물론 진짜로 그렇게 하시겠다면 제가 말리겠지만…….
“TV 출연은 이제 끝이야?”
“대표 취임 보다 TV 출연이 크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죠?”
“왜 아니야? 그런 거 한번 하면 동네가 난리잖아.”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까? 대체 급이 맞는 비교를 해야 말씀을 드리지.
“그래서 끝이야?”
“일단 예정되어 있는 것은 더 있어요.”
뜬금 없지만 홍켓몬과 함께 출연하는 조건으로 한번 더 TV에 얼굴을 내밀일은 준비 되어 있다.
평소에는 크게 존재감이 없던 맥베스의 홍보팀도 이 건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스쿨런의 홍보 효과와 더불어 스쿨런 체험판 공개 이후의 반향.
이것들이 더해진 상황에서 연아는 부장에서 대표로 비약적인 승진을 이뤄낸 나의 이야기를 다소 과장 섞인 컨셉으로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 같다.
물론 거기에 더해 쉬린칭의 홍기도 띄우기까지 더해진 것도 있다.
사실 나는 개발 외에는 이런 상황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크게 관심이 없기도 하고 말이지…….
“그래서 대표 노릇은 제대로 할 수 있겠냐?”
아버지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제가 이번에 계획하고 있는 것을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걸요?”
“나도 이젠 조심해야할 나이니까. 하지마라.”
정말이지, 나는 우리 가족들과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다.
“연아는 좀 어때?”
“가끔은 아들 상태도 궁금해해 주시면 안됩니까?”
“마! 니들 키우는데 들어간 돈이 얼만데, 건강도 걱정해야 하면 우리가 너무 억울하지 않냐?”
음……. 묘하게 맞는 말이라서 반박이 안 된다.
“연아는 별일 없어요. 조금 바쁜 것은 사실이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부회장 직함이라는 것은 만만한 것이 아니니까요.”
“안 그래도 연아 먹일 약 한 첩 지어 놨으니까, 나중에 갈 때 가져가.”
“약? 뭔데요?”
“장어.”
“그거 보통 남자가 먹는 것 아니에요?”
“네가 그것까지 먹어서 어쩌게? 세종이 팔이라도 부러트리게?”
으음…….
굳이 형제간의 정다운 스킨쉽을 끝낸 시점에 그런 말을 하시는 것은 반칙 아닙니까?
“세인아.”
갑자기 아버지는 가라앉은 톤으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네.”
“나는 너처럼 큰 회사를 다녀 본적이 없다.”
“예.”
“그리고 그런 높은 직함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 하나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지요.
“하지만 높은 직함이라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 다는 것은 안다.”
“예.”
평소와 다른 대화 톤에 본인도 살짝 부담을 느끼셨는지, 아버지는 멋쩍은 표정으로 목을 벅벅 긁으셨다.
“잘하길 바란다. 응원하마.”
스스로도 부끄러운지,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내게서 시선을 돌리셨다.
나는 멍하니 TV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살짝 울컥한 심정을 느꼈다.
“아버지, 어머니.”
“좀 조용히 해봐. 지금 여기 중요한 대목이야.”
“…….”
다음에는 꼭 연아와 함께 오자.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
*
*
“스쿨런 정식 빌드 올라갔습니다. 반응이야, 뭐……. 말 안해도 아시죠?”
“말 안하면 몰라.”
나는 살짝 토라진 느낌의 홍기도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엄청 납니다. 다들 난리 났어요. 어쩌면 고티 상위권도 노려볼 수 있을 지도 모르죠. 요즘에는 이래저래 대작 가뭄이라는 말이 많으니까요.”
“흐음~”
“왜 그러시죠?”
“아니, 칭찬은 너무 즐거워서 말이지.”
“항상 칭찬 들으시잖아요?”
“짜릿해, 늘 새로워, 칭찬이 최고야.”
“…….”
“그래서 내게 한 방 먹인다고 선언하신 어디의 누구 씨께서는 잘 되고 계시는지?”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홍기도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아마 이 녀석의 표정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양성태의 권유로 수행비서로 붙은 이후, 개발은 남궁원과 조회장에게 일임했다.
어차피 메인 기획이야 다 끝났으니, 다른 프로젝트였다고 하더라도 개발자 이동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마도 내 스쿨런의 진면모를 확인하니, 살짝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리라.
“비서가 대표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해봐.”
“우, 우리꺼도 진짜 나쁘지 않거든요?”
“와! 댓글 반응 난리도 아니구나?”
“안 들을거면서 왜 물었어요?”
나는 홍기도 말을 무시하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국산 게임 맞냐? 이건 미쳤는데?
-타격감 예술이다. 총알 밖히는 느낌도 예술인데, 근접공격으로 피니시 무브 손맛 느껴봤음?
-일단 미친 자유도와 밸런스가 지린다. 아무거나 선택해도 나름의 맛과 개성이 살아 있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계속 새롭게 반응하는 NPC 상호작용에 미칠 것 같다.
-이걸 인디 카테고리로 출시하다니? 그럼 정식으로 AAA급 게임을 만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애초에 이 퀄에 이 가격이 맞아? 앞으로 다들 인디게임만 만들면 좋겠다.
해외 서브레딧과 국내 커뮤니티의 반응은 예상대로 활화산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근래 AAA급 대작들의 연이는 출시 연기로 인해 이렇다 할 대작이 없던 시기라는 것도 주요했다.
‘게다가 가격이 또 착하지?’
AAA급 게임의 스킨을 씌워놓았지만, 근본은 어디까지나 인디게임이기에 가격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덕분에 예상 이상의 퀄리티와 대작 가뭄, 저렴한 가격이라는 점까지 더해지며, 스쿨런은 미친 듯한 판매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벌써 플레이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네요.”
“그러게 빠르네.”
게임 미튜버들은 앞다투어 게임 플레이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저마다 각자만의 루트를 선택하며, 하나같이 최고라는 말을 연발하며 호평하기 여념이 없었다.
“어? 잠깐만 이거 뭐죠?”
스마트폰을 보던 홍기도가 법석을 떨었다.
“왜 무슨 일인데?”
“이거 보이세요?”
홍기도가 내민 스마트폰에는 한 남자가 SNS에 남긴 스쿨런에 대한 짧은 감상이 있었다.
“이, 일론 머스크?”
자신의 캐릭터 사진과 함께 일론 머스크는 스쿨런에 대한 짧은 찬사를 보냈다.
-정말로 멋진 게임입니다! 저는 지금 며칠 째 학교에 도착하지 않고 배회하고 있습니다. 부서진 풍경을 이렇게나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괴랄한 플레이로 유명한 일론 머크스답게 메인 스트림을 쫓지않고 배회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스쿨런의 경우는 그것이 보다 큰 노림수이긴 하다.
부족한 메인 볼륨을 유저 스스로가 채워가는 것.
“일론 머스크……. 우리 게임도 할까요?”
“음……. 딱히 인디게임까지 손대는 것을 본 적은 없는데…….”
스쿨런에 비해 홍기도 팀이 개발한 게임은 인디게임의 색이 보다 짙은 편이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는 대체로 AAA급 게임에 대해서만 SNS에 언급하는 편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가능성이 높다고는 못하겠다.
애초에 스쿨런 자체를 언급한 것 부터가……. 아니, 국산 게임 자체를 언급한 것이 처음이 아니던가?
“지난번에 했으니. 이번에는 안 할게요.”
“뭘 안해?”
“항복선언.”
“기죽지마. 너희 프로젝트도 괜찮잖아? 애초에 다른 방향성에 다른 시장을 노리는 거잖아.”
홍기도의 프로젝트는 디젤 스토어에서 시작한다. 반면 스쿨런은 콘솔게임 3사를 시작으로 PC출시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약속된 기간 독점을 끝마친 이후에나 PC시장에 진출할 것이다.
물론 그 때는 고티 수상작으로서 당당하게 PC시장을 접수하러 가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 한방 먹이겠다는 것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조금 쯤은 놀라게할 자신이 있어요.”
“그 자신 좋네.”
“그럼 가시죠.”
“어딜?”
“점심 시간이잖아요?”
홍기도의 말대로 어느새 시간은 점심 시간이 되어 있었다.
“그렇구나. 오늘은 다른 약속은 없나?”
“있어요.”
“누구?”
“우리 팀원들이요. 남궁원이랑 함송희도 간만에 맛있는 것 한 번 사줘야지요.”
음…….
갑자기 남궁원과 함송희를 들먹이시겠다?
너무 속이 빤히 보여서 웃음이 난다.
“그래. 걔들도 중국집 좋아하지.”
“아니! 걔들한테까지 자장면만 먹이실 생각이세요?”
“아니. 걔들은 코스요리 먹지. 자장면은 너만 먹어야지.”
“진짜 언제까지 이러실 거에요!”
“네가 제정신 차릴 때까지?”
“이거 알약쌈 때문에 이러시는 거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자장면을 좋아할 수도 있잖아?”
“거짓말!”
“아! 하긴 너에게도 곧 맛있는 식당들 추천해줘야하겠구나?”
“갑자기?”
홍기도는 기쁨과 경계가 반반씩 섞인 모호한 표정으로 슬쩍 한 발 물러섰다.
이 녀석은 정말로 탈주 닌자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아니, 아직 야생의 피가 남아있다는 느낌이랄까?
뻑하면 달아날 기세다.
“걱정마 이상한 이야기 아니야.”
“뭔데요?”
“곧 쉬린칭 오면 접대해야 하는데, 그거 네 역할이잖아?”
“빽!”
적어도 사람 말로 해라…….
나는 뒤에서 빽빽 거리는 홍기도를 무시하며 중국집으로 향했다.
헐리우드에 관심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