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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48화 (248/346)

248.

“요즘 좀 어렵네요. 아무래도 계속 패배를 거듭하다 보니.”

“음…….”

피디의 말에 윤성환 감독은 짧게 신음했다.

굳이 피디의 말이 아니더라도 윤감독 역시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연예인들로 구성된 축구팀을 꾸려, 조기축구 리그에서 고군분투 하는 것이 이 프로의 취지였다.

하지만 당초의 목적은 조기축구 리그를 씹어먹고 네셔널리그(실업팀 리그)의 팀들에게 도전장을 던진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정작 승률은 30%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지난번 중학교 축구팀과의 대결에서 12대 0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패배한 것을 계기로 시청률이 눈에 띄게 추락했다.

“이러다가 조기종영을 걱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피디의 말에 윤감독은 또 한 번 신음을 흘렸다.

감독으로서 거듭된 패배에 딱히 할 말이 없었지만, 진짜 축구팀 감독과는 달리 제대로 된 훈련을 시킬 여건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선수 영입조차 제작진에게 전적으로 일임할 수밖에 없었기에 살짝 불만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피디를 포함한 제작진들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이번 편은 좀 다를 겁니다.”

“다르다고요?”

“축구 실력이 아주 좋은 게스트들을 모셨거든요.”

“게스트라고요?”

게스트라는 말에 윤감독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고정 맴버가 아닌 게스트라면 고작해야 1경기 후에 사라질 맴버가 아닌가?

“지금은 게스트 보다는 실력있는 고정 맴버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압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쉽지 않습니다.”

조기종영을 걱정하는 판에 어디서 새로운 맴버를 구해온단 말인가?

“하지만 이번 게스트는 다를 겁니다. 국장님이 아주 열성적으로 지지하시는 분이시거든요.”

“국장님이요?”

갑자기 뜬금없이 국장이 웬 말인가?

“누군데요?”

그래도 국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허튼 소리를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윤감독은 솔깃했다.

“혹시 요즘 발로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

피디의 말에 윤감독은 입을 떡 벌렸다. 요즘 미튜브에서 가장 핫 한 영상 중에 하나가 아니던가?

“전직 태권도 선수라고 했지요.”

표세인이 들었다면 현직 개발자로 불리지 않는 것에 무척 실망했겠지만, 대중들에게는 발차기의 임팩트가 원체 컷던지라, 전직 태권도 선수로 기억되고 있었다.

“네. 아시는 군요!”

윤감독이 출연자를 알고 있다는 말에 피디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정작 윤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멋진 발차기 솜씨는 인상적이었지만, 그걸로 축구를 잘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윤감독의 우려는 타당한 것이었다. 발차기 실력으로 축구를 잘한다면, 전직 태권도 선수 출신 축구선수들이 줄을 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나름 사내체육대회를 휩쓴 경력이 있는 검증된 실력파라고 합니다.”

사내 체육대회를 휩쓴 것을 두고 검증된 실력파라…….

윤감독은 슬슬 다음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오셨습니까?”

웬일로 홍켓몬이 나보다 일찍 도착해있었다.

“너는 웬일로 일찍왔냐?”

“저희집 이 근처 인 것 아시잖아요.”

아! 그랬지?

생각보니, 이곳은 예전 체육대회 때와 같은 장소였다.

“뭔가 예전에도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런가요?”

홍기도는 딱히 기억이 안난 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대표님!”

“어?”

남궁원과 함송희였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

“저 녀석이 김밥싸오래서요.”

“니들 사귀냐?”

쉬, 쉬린칭의 투자금이 떠나갈 위기?

“제가 머리에 총맞은 것으로 보이세요? 대표님을 위해서 준비한거죠.”

“그럼요! 그럼요! 홍과장님은 그냥 곁다리죠.”

뭔가 고마우면서도 가차없구나.

하지만 정작 홍기도는 제 목적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딱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대표님이 폭주하는 모습을 보겠네요.”

“폭주?”

“대표님이 운동장에서 내달리는 모습을……. 폭주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뭘 또 폭주씩이나.

그렇게 우리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예상치 못한 방문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헛! 부회장님.”

내 등 뒤로 다가온 연아를 함송희가 먼저 발견하고 급히 인사했다.

“부회장님?”

연아에게 들은 바가 없었기에 나 조차 살짝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쉬린칭…….”

그래. 그래서 여기까지 함께 온 것이로군.

“오랜만이네요.”

“네. 반갑습니다.”

굳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냐는 말은 묻지 않았다. 너무나도 뻔한 일이니까.

나는 슬쩍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으윽.”

홍기도는 대체 왜 이 자리에 쉬린칭이 나타난 것이냐며, 나를 향해 항의성 가득한 눈빛을 발사했다.

하지만 나라고 알겠는가?

그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회장님도 대표님을 응원하러 오신거군요?”

쉬린칭을 모르는 함송희는 그저 밝게 웃으며 연아에게 말했다.

“네. 맞아요. 그리고 오늘은 회사 밖이니까. 가급적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애초에 오늘은 평일도 아니다.

연예인팀이 아닌, 상대팀의 일정에 맞춰야 하기에 이 프로는 주로 주말에 녹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체 여긴 왜 온 거야?”

“글쎄? 나는 그저 부회장님의 안내를 받아서 온 것뿐이야.”

쉬린칭은 새침한 얼굴로 시침을 뗐다.

“어쨌든 잘해. 응원할게.”

“나야 뭐, 대표님께 공만 보내면 임무 완수지.”

아니, 그게 어려운 거잖냐.

내가 한마디 보태려 할 때였다.

“축구 규칙은 모두 섭렵했어.”

“네가? 너 운동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잖아.”

“어쨌든 모두 섭렵했어. 어시스트는 골만큼이나 중요한 거지.”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게스트로 참여한 우리의 포지션이 어떤 것일지는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어시스트는커녕, 둘이서 골문을 지켜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힘내. 응원할게.”

“적당히 할거야.”

홍기도는 이런 순간에도 본성(?)을 잃지 않았다.

“그럼 다 같이 응원석으로 가요!”

함송희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싱글벙글 웃었다.

‘잘해. 파이팅.’

연아 역시 응원석으로 향하며 내게 눈빛을 보냈다.

‘열골 기대할게.’

공격수가 아니면 어쩌려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짝 미소지었다.

“출연자분들은 이쪽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때마침 제작진들이 출연자들을 불러 모았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알 듯 말듯, 어딘가 낯설면서도 친숙한 얼굴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TV를 자주 보지 않는 편이라서 이름까지는 몰라도 대충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 같은 얼굴들이 대부분이었다.

“반갑습니다. 맥베스 대표 표세인입니다.”

“대표?”

“네?”

내 말에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제작진까지 화들짝 놀랐다.

“지난번 방송에서는 부장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담당 피디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네. 그땐 그랬는데……. 어쩌다보니 지금은 대표가 되었습니다.”

“어쩌다보니……. 네. 그러시군요.”

피디는 끝까지 당황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맥베스라면 엄청난 대기업 아닌가요? 저도 게임 좀 하는 편이라서 약간은 압니다. 특히 요즘 맥베스에서 출시한 스쿨런!”

한 연예인의 말이 나를 기쁘게했다.

“스쿨런 해보셨습니까? 어떠시던가요?”

“정말로 최고입니다. 개적으로는 올해의 고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원래도 잘 생긴 얼굴에 후광까지 비추는 것 같다.

“저도요! 저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아마도 MC로 보이는 여성 연예인이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이 사람도 얼굴에서 후광 효과가 나오는 것 같다.

개발자의 천성이랄까? 손수 개발한 게임을 칭찬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다.

어? 가만, 이 사람은 지난번에도 봤던 사람이다.

“어? 지난번…….”

“네. 저 기억하세요?”

기억한다. 분명 이름이…….

“조하나씨?”

“네. 맞아요. 역시 낯설어 하시는 것을 보니, 아직도 저에대해 잘 모르시나 보네요?”

네. 죄송합니다.

“그런데 원래 게임을 즐기시는 편이셨습니까?”

지난번에는 딱히 그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었다.

“요즘에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데뷔 전에는 많이 했어요. 요즘에는 일정이 없을 때, 집에서 즐기는 정도? 사실 바빠서 진득하게 할 시간이 없어서 푹 빠진 게임이 없었는데, 스쿨런은 표세인씨가 개발했다고 해서 열심히 플레이했죠. 덕분에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지난번 출연 때만 해도 딱히 조하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스쿨런을 칭찬하기 시작하니 호감이 백배쯤 상승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 짧은 시간에 부장에서 대표가 될 수 있는 건가요?”

“하하하, 회사 내부의 일이라서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군요.”

사실은 워낙 이런저런 요상한 일들이 겹친 탓인지라…….

남들에게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그런데 오늘 함께 출연하시는 분, 성함은?”

“안녕하십니까! 현재 대표님 수행비서를 맡고 있는 홍기도라고 합니다.”

홍기도는 갑자기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지, 답지 않게 힘찬 자기 소개였다.

“요즘 최고로 핫한 레몬핑크의 리더를 맡고 계신 조하나씨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네요.”

“아! 그러고보니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죄송합니다.”

“크크큭. 아니에요. 괜찮아요.”

레몬핑크란 그룹은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확실히 유명한 그룹이니까.

나도 아저씨인지라, 그룹 이름은 알아도 구성원들 이름까지는 모른다.

사실 이건 어렸을 때도 그랬던 것 같지만…….

“$#^%^&%&^”

응원석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중국어가 터져나왔다.

“응원석에 중국분이 계시나봐요.”

“……저희쪽 VIP입니다. 응원차 방문해 주셨습니다.”

“굉장히 열정적이시네요.”

“저쪽은 무시하시고, 사진 한번만 부탁할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조하나가 흔쾌히 허락하자, 홍기도는 냉큼 나에게 스마트폰을 맡겼다.

“대표님! 제가 세팅 다 해놨으니, 그냥 촬영버튼만 누르시면 됩니다.”

아니, 이거 뭐랄까…….

“$#^%^&%&^”

우리 회사 VIP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샤우팅을 날리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VIP 심기를 거슬러도 되나? 하는 심정인데?

하지만 조하나씨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므로 일단 사진을 찍었다.

“감사합니다! 히히힛!”

“너 저분 팬이었냐?”

“아니요. 우리 조카들이 좋아해요. 저는 저 그룹의 경쟁 그룹인 뮤지온스를 좋아해요.”

“아…….”

그걸 대놓고 본인 앞에서 말해?

이놈은 진짜로 어딘가 망가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

“죄송합니다. 일단 악의는 없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래도 조카분들이 팬이라고 하시니까, 그거라도 감지덕지죠.”

조하나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졌다.

“저기요!”

그때였다.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체격 좋은 남자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집합하라는 말 못 들으셨어요? 놀러 온 거야, 뭐야.”

뭐지?

텃세인가?

일단은 제작진 측이 아닌, 출연자로 보이는 남자였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네. 못 들었으니. 듣고 나서 집합할게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로, 홍기도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자 우리에게 소리쳤던 출연자가 눈을 부릅떴다.

카메라 돌기도 전부터 험하구나, 정말…….

그냥 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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