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50화 (250/346)

250.

“몸놀림이……. 좀 너무 좋은데요?”

“그러게…….”

코치의 말에 윤감독 역시 자신이 놀랐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공이 발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 콘을 지나는 와중에 공이 일정 거리 이상 발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없었다.

게다가 균형감각도 준수해서 상체에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원호가 감당할 짬이 아닌데?”

윤감독의 통찰력은 정확했다.

“앗!”

표세인은 주원호 앞에서 가벼운 상체 페인팅으로 상대의 중심을 흔들고 재빨리 반대 방향으로 지나쳤다.

-철렁!

텅 빈 골대가 경쾌하게 출렁였다.

“오오오!”

그리고 이어지는 주변의 탄성과 환호. 머리카락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표세인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고개 인사를 건넸다.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하시는군요. 확실히 주변에서 제대로 해보자고 했을만 해요.”

윤감독은 조금 전과는 달리, 열성적으로 표세인에게 질문 세례를 던졌다.

“주로 뛰던 포지션은 뭡니까? 아니! 혹시 일일 게스트 말고 고정으로 뛰실 생각 없습니까?”

그렇게 표세인이 질문 세례에 시달리는 와중에 홍기도 역시 주원호를 제치고 골을 넣었다.

“저 친구도 잘하는 군요.”

표세인 같은 상식 밖의 퍼포먼스는 아니었지만, 타고난 발재간으로 멋지게 주원호를 제치고 골네트를 흔드는 것에 성공한 홍기도는 호들갑스러운 세레모니를 펼치며 자리로 돌아왔다.

“좋아! 홍기도 최고다!”

멀리서 굉장한 응원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쉬린칭이었다.

“봤어요? 봤어요?”

“……네. 봤어요.”

조연아는 쉬린칭의 급발진에 상당히 당황하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 성함이……. 쉬린칭이라고 했었죠?’

‘맞아. 광시총국의 총국장이고 카이두 대주주. 그리고 홍기도의 전 여친.’

‘전……. 맞는 거죠?’

‘나도 모르겠네. 저 녀석, 중국 출장가서 일은 안하고 연애를 하고 온 건가?’

‘쉬린칭, 엄청 부자겠죠?’

‘아마 한국 최고 재벌하고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걸?’

자그마치 시가 총액이 600조에 달하는 텐센트의 대주주가 아닌가?

쉬린칭의 정확한 재산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세계적인 기준으로 논해야할 수준인 것은 확실했다.

“그런 부자가 이런대서 비명을 지르고 있네요.”

“홍기도 저녀석은 전생에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걸까?”

도무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던 남궁원과 함송희는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에 가깝게 응원하는 쉬린칭과 여전히 괴상망측한 세레모니 댄스를 이어가고 있는 홍기도를 번갈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만 해라. 여기가 클럽이냐?”

“그러니까요. 제가 클럽도 안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네요.”

그래서 아쉬워서 춤추고 있다 이거냐? 표세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쉬린칭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데,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 주지 그러냐?”

“……싫어요.”

“왜?”

“부끄러워서?”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아는 놈이 그런 춤을 계속 추는 거야?”

“이열치열이랄까?”

생각해보면 홍기도는 의외로 부끄러움이 많은 타입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남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부담을 느끼던 성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길었다.

“그래. 계속해라.”

표세인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홍기도는 즉시 춤을 멈추고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 붙었다.

실로 전생에 청개구리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좋아! 오늘 새로운 전력도 충원되었으니, 지난번과는 다를 거야.”

오늘 상대하는 팀은 예전에 한번 상대한 전적이 있는 팀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연예인팀의 참패.

나름 고교선출까지 보유한 강팀. 사실 인원 하나가 충원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없지만, 적어도 몇 골이라도 넣은다면…….

그 뒤는 제작진들의 편집 실력으로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 주리라.

“표세인씨. 자신 있습니까?”

윤감독의 말에 표세인은 피식 웃었다.

“그냥 골을 넣을 생각만 하겠습니다.”

“크~ 좋네요. 그 대답. 그래서 몇골을 생각하십니까?”

“열골이요.”

“네?”

순간 진행자는 표세인이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표세인의 얼굴은 진지했다.

“열골 넣는 것만 생각하겠습니다.”

“?”

*

*

*

인천 몬스터즈는 나름 조기축구 리그에서는 알아주는 강호였다.

게다가 과거 이 프로의 오프닝 매치에서 연예인팀을 무차별 폭격하며 자신들의 힘을 증명한 전적이 있었다.

“오늘은 사전에 말한 대로 새로 온 게스트 두 명이 투톱에 선다. 일단 이 두 사람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으니, 초반에는 두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공을 몰아줘.”

“네!”

우렁찬 대답과 함께 모두는 경기장 위에 올라섰다.

“표세인 파이팅!”

“홍기도 파이팅!”

조연아와 쉬린칭을 중심으로 한, 여성 응원진들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기도야.”

“네.”

표세인은 중앙선에서 홍기도에게 말을 걸었다.

“초반에 공 좀 집중해서 내쪽으로 뿌려줘.”

“원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요?”

“그것 보다 더.”

“흠……. 형수님께 잘 보이실 생각이시군요.”

“…그래.”

형수님이라는 말에 표세인이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삐익!

그리고 호각이 울렸다.

홍기도는 툭 공을 차서 표세인에게 보냈다.

‘새로운 얼굴이네?’

낯선 얼굴에 상대는 자세를 낮추고 다가오는 표세인을 상대할 채비를 했다.

‘어? 빨라?’

상대와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표세인은 갑작스럽게 속도를 올렸다. 그저 대각선으로 공을 보낸 후에 내달리는…….

이른바 치달이라 불리는 개인기라고도 뭣한 단순한 드리블.

하지만 치달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들이 모두 그렇듯이 이 속도가 만만치가 않았다.

“막아!”

그럼에도 아직 11명 전원이 상대 진영을 가득 채운 상황.

이것을 혼자서 모두 돌파하는 것은 무리였다.

-툭!

표세인은 뒤에서 쫓아오는 홍기도에게 공을 내주고 냉큼 다시 뛰어갔다.

그리고 홍기도는 재주 좋게, 공을 띄워 수비수들의 키를 넘겼다.

“이대일 패스 죽이는데?”

윤감독은 감탄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체력 낭비하기 싫은 홍기도가 반사적으로 표세인에게 공을 돌려준 것 뿐이었지만…….

세팍타크로 클럽에서 단련된 서브와 리시브 실력이랄까?

띄워 올리는 부분에서 홍기도의 패싱 솜씨는 절묘했다.

덕분에 결과적으로 그림 같은 패스가 만들어졌다.

수비수들은 골포스트 안으로 달려드는 표세인을 막아서려 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철렁!

홍기도의 높은 패스를 헤딩으로 멋지게 방향을 틀어 슈팅에 성공한 표세인은 별다른 세레모니도 없이 골대 안의 공을 들고 중앙선으로 달려갔다.

‘이제 1골…….’

아직 갈길이 멀었다.

“지, 지금 뭐야.”

시작하기가 무섭게 혼자서 달려나가 수비수 몇을 제치는가 싶더니, 그림 같은 이대일 패스 한번으로 골네트를 흔들었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일까? 윤감독을 포함한 벤치는 그저 입을 떡 벌리고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런 그림을 예상했던, 벤치 응원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표세인! 표세인!”

우선 가장 먼저 응원 피켓까지 준비해온 함송희가 피켓을 미친 듯이 흔들며 환호했고!

“좋아! 좋아! 좋아! 봤냐! 이 것들 아! 이게 표세인이다!”

남궁원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며 춤추듯이 몸을 리듬을 탔다.

“좋았어.”

차마 직원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 없던 조연아 역시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하지만 응원석의 하이라이트는 그녀들이 아니었다.

-촤라라락!

“?”

“?”

“?”

갑자기 텅빈 벤치 한켠에 펼쳐지는 현수막.

[축 홍기도 어시스트 1호!]

어딘가 업체 직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분주하게 거대한 현수막을 벤치에 펼쳐놓았다.

‘이, 이건 뭐죠?’

‘와……. 스케일 미쳤네.’

‘프로 경기에서도 이렇게는 안 하잖아요. 그쵸?’

‘아니, 지금 문제가 그게 아니네.’

‘왜요?’

‘저기 1호라고 써있잖아.’

‘헉! 설마!’

1호가 있다면…….

2호도 있고, 3호도 있을 수 있다는 말.

공만 주면 골을 넣어버리는 득점 기계 표세인과 투톱인 홍기도가 아닌가?

과연 오늘 몇 개의 현수막이 설치될 것인가…….

“…대, 대단하네요.”

“흥. 흥.”

조연아의 감탄에 쉬린칭은 팔짱을 끼고서는 콧김을 뿜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시스트는 골 만큼이나 중요하죠.”

“그, 그렇군요.”

쉬린칭은 옆자리에 고이 모셔둔 축구 규칙서에서 읽은 내용을 그대로 읊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야. 야. 저거 봐라.”

“……안 봅니다.”

“뭔 줄 알고 안 본데?”

“그냥 안 볼거에요.”

“저걸 보니까, 오히려 네가 굉장해 보인다.”

“축구에 집중 하시죠!”

“아! 그래야지.”

드물게 홍기도가 표세인을 각성시켰다.

“와. 홀란드가 따로 없으시네요. 표란드라고 불러드려야 겠어요.”

아까 스쿨런을 칭찬했던 오기석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하, 홀란드는 좀 어리죠.”

“차붐은 너무 늙었는데요?”

“내 영웅을 함부로 말하지 마라.”

표세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튼 표란드씨. 계속 잘 좀 부탁합니다.”

“네.”

그렇게 경기는 계속 되었다.

*

*

*

-삐익!

“경기 종료!”

심판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종료되었다.

“역시 맘처럼은 안 되는 구나.”

경기가 끝나자, 표세인은 땀을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아니. 부족해.”‘

표세인은 오늘 무려 7골을 터트렸다.

5골 이후 부터는 상대팀은 아예 의지를 잃어버렸을 정도였다.

엄청난 성과였지만, 그럼에도 표세인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기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목표가 몇 골이었는데요?”

“열골.”

“으음……. 부회장님 의외로 가혹하시네요.”

“가혹하다기 보다는 축구라는 게임을 잘 모르는 거겠지.”

“야구가 아닌게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보다 진짜 대단하구나…….”

표세인은 응원석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오늘 홍기도는 어시스트 6개와 1골을 기록했다.

덕분에 무려 7개의 현수막이 등장했다.

“저거 몇 개나 준비해왔을까…….”

“쟤는 정말이지, 호들갑이 지나쳐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신선하단 느낌이네.”

표세인이 그렇게 입맛을 다시던 중이었다.

“오늘 정말 굉장했습니다. 정말로 축구를 하셨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아, 물론 맥베스 같은 대기업의 대표이사님이시니……. 가만 지금 제가 너무 엄청난 분을 뵙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오기석은 여전히 호감가는 미소로 감탄을 연발했다.

“아닙니다. 모두 여러분들 덕분이지요.”

“하하, 솔직히 저희는 수비도 제대로 못해서 몇골 먹기까지 했으니, 면목이 없네요.”

총 스코어는 8대3.

보는 이들에게는 무척 즐거운 경기였으리라, 하지만 오기석의 말대로 연예인팀의 수비실력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표세인씨.”

그리고 그때 윤감독이 달려왔다.

“네.”

“오늘 정말 최고였습니다. 정말로 고정 생각 없으십니까? 출연료 문제는 저도 함께 제작진에게 사정해 보겠습니다.”

출연료…….

그러고 보니 표세인은 자신이 출연료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딱히 돈은…….”

표세인의 반응에 윤감독은 그제야 상대가 맥베스의 대표이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어떻게 안 됩니까?”

윤감독은 절실히 애원했다.

조회장님이 평범해 보일 정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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