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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51화 (251/346)

251.

“소리 소문 없이 등장하는 것은 무슨 매너냐?”

“연락해 주길 바랐어?”

“…….”

홍기도는 쉬린칭의 도발에 입을 꾹 다물었다.

방송 촬영이 끝난 우리는 다함께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출연진들과의 회식 이야기가 있었지만 우리는 연아와 쉬린칭을 핑계로 우리는 회식을 거절하고 따로 움직였다.

‘지금 이 대화……. 제가 생각하는 그거 맞나요?’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다 맞을 것 같으니까. 입밖에 내지 마라.’

나는 남궁원에게 살짝 눈짓했다.

“그래도 내 덕분에 응원도 받았으니, 잘 된 것 아니야?”

“너무 요란하잖아. 나 약올리려고 준비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인데?”

“나는 고작 그런 일에 돈 쓰지 않아.”

쉬린칭의 갑작스러운 등장.

대충 그녀가 한국에 들어오면 이런 그림이 나올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정말로 홍기도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나…….

‘둘만 있게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야?’

‘아직 단둘은 부담스럽대.’

연아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그렇게 답했다.

쉬린칭의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뭐랄까…….

‘의자가 편한 곳을 고를 것을 그랬네요.’

‘맞아요. 여긴 좀 불편하네요.’

‘내 잘 못이다. 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직접 경험하기도 했고, 조회장과 양성태가 연달아서 의자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던 중국행이었음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신경을 못 썼다.

“흠흠. 아무튼 이런 자리에서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 멋없다는 것은 알지만, 마침 이렇게 모인 김에 잠깐 이야기 해도 괜찮을까요?”

“네. 물론입니다.”

내가 모두를 대표해서 대답했다. 다른 이들 역시 그것이 싫다기 보다는 무슨 내용인지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쉬린칭 국장님께서 본사에 계시는 동안 그 수행은 홍기도 과장님께서 담당해주시기로 한 것 기억하시죠?”

“……네.”

홍기도는 찝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시 한 번 당부드리지만, 쉬린칭 국장님은 본사의 가장 중요한 VIP입니다. 이 부분 거듭 강조드립니다.”

연아는 드물게 강압적인 말투로 당부했다. 사실 워낙 홍기도와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우리 쪽에 조건 없는 호의를 보이는 쉬린칭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보면, 쉬린칭이 어떤 인물이며, 그녀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지?

쉬린칭의 갑작스러운 말에 우리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표세인 대표님께서 이렇게 빨리 진급이 되지시 않았다면, 표세인 대표님께 수행을 부탁드리고 싶기도 했었거든요.”

“저를요?”

“네.”

나는 슬쩍 연아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연아는 특유의 살짝 눈을 내리깐 상태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연아도 알고 있던 대목인 모양.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맥베스가 낳은 천재 개발자잖아요. 당연히 관심이 갈 수 밖에요.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기회를 갖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면서도 은연중에 홍기도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그냥 내가 홍기도랑 친하니까, 인맥관리 좀 해 놓겠다는 것 아냐?

장수를 쏘기 전에 말부터 쏜다 이건가?

전혀 업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멘트였다.

“그래서 정말로 언제부터에요?”

홍기도가 연아에게 질문했다.

“당연히 지금부터죠?”

“지금?”

“딱히 회사 밖에서까지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요.”

“끄응…….”

홍기도는 대놓고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기도야.”

“네.”

“쉬린칭 국장님 잔 비웠다. 음료 새로 더 필요하신지 여쭤봐야지.”

“다 들리잖아요. 코앞인데 왜 귓속말을 해요?”

“그게 네 일이니까?”

이래야. 재미있으니까?

“그렇네요. 딱히 더 마실 생각은 없는데, 한잔 더 가져다주면 좋겠어요.”

쉬린칭은 내가 던진 떡밥을 냉큼 물었다.

“으윽……. 같은 것으로 주문하면 될까요?”

“네. 부탁합니다.”

쉬린칭의 말에 홍기도는 와락 표정을 구기며 카운터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요?”

연아의 질문에 쉬린칭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방식이 홍기도 과장에게 잘 먹힐까요? 혹시 자존심이라도 상하면…….”

“하하, 쟤는 절대 자존심이 상하지 않죠.”

“그렇죠. 그렇죠. 자존감이 엄청 높은 타입이라서 일단 자존심이 상할 만한 상황 자체를 이해 못할 걸요?”

연아의 말에 대답한 것은 쉬린칭이 아닌, 남궁원과 함송희였다.

“그러고보니 우리 통성명도 못했네요. 쉬린칭입니다.”

“남궁원입니다.”

“함송희라고 불러주세요.”

주문을 위한 줄이 제법 길었기에 여성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초면에 실례인지 모르겠지만, 이거 그거죠?”

“그거?”

“쉬린칭씨가 홍기도에게 관심이 있는……. 그런 상황인거죠?”

남궁원의 질문에 함송희도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꺄! 대박, 대박!”

쉬린칭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원과 함송희는 입을 가리고 꺄, 꺄 비명을 질렀다.

“비밀로 해주실거죠?”

“저희는 애초에 여기있는 멤버 외에는 딱히 대화할 사람도 없는 걸요?”

“홍기도에게요.”

“아! 그럼요. 당연하죠.”

“하지만 현수막도 그렇고……. 본인도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

함송희 말이 맞다.

저 촉 좋은 녀석이 쉬린칭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모를 리가 있나.

아니, 이건 홍기도가 아닌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다.

“아무튼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굳이 그 부탁이 아니더라도 담당자를 물색해야하는데, 일반적인 기준으로 선별해도 홍기도 과장이었을 테니까요.”

주요 바이어나, VIP를 수행인원을 선정하는 요인 중에 개인적 친밀도가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차피 쉬린칭이 부탁하지 않았어도 우리 쪽에서 제시할 카드는 홍기도였다.

“그런데……. 진지하게 궁금해서 그러는데…….”

“?”

남궁원이 갑자기 심각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대체 홍기도 저 녀석 어디가 매력이에요?”

오오! 핵심을 찌르는 남궁원의 질문에 쉬린칭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 모두가 바짝 귀를 세웠다.

정말로 궁금하다.

설마 외모 때문은 아닐테고…….

“처음에는 얼굴이었고요.”

“쉬린칭씨 정도면 주변에 미남들이 줄을 서지 않나요?”

“대학교 시절에 저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어요.”

지금의 쉬린칭은 숏 컷에 귀여운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미인이지만, 과거에는 얼굴을 반쯤 가리는 안경을 쓰고 공부벌레라 불렸다고 했었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그러다가 홍기도가 접근해서 사귀자고 하기에 연애를 시작했는데, 점점 살면서 제 주변에서는 본 적 없던 타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쉬린칭의 말에 우리 모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쉬린칭씨 주변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저런 또라이는 만나기 힘들죠.”

“그쳐. 그쳐. 중국이 아무리 커도……. 아! 딱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함송희는 열심히 남궁원을 거들다가, 슬쩍 발을 뺐다.

“처음에는 저도 정신나간 타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사이엔가 저도 모르게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헤어진지 한참 되신거 아니에요?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차츰…….”

“아니요. 대학 시절 이후로 연애 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물론 대학 전에도 마찬가지고.”

“잠깐, 홍기도외에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요?”

“네.”

쉬린칭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무슨 각인효과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만나봐야, 비교도 해보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운좋게 한번에 원하는 것을 찾았더니. 그 외에는 관심이 가질 않더군요.”

쉬린칭의 대답에 우리는 뭐랄까……. 다소 숙연해진 분위기가 되었다.

‘모태솔로보다 더 질이 나빠 보이는 것은 뭘까요?’

‘정말로 위험하단 느낌인데요?’

‘나에게 답을 요구하지 마라. 나는 이 건에 대해서 어떤 의견도 낼 생각이 없다.’

걸스토크에 아저씨 혼자 덜렁 끼어있으려니, 심적부담이 너무 컸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어?”

마침 주문을 끝낸 홍기도가 돌아왔다.

“아,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이니까. 너 잠깐 나가있어라.”

“뻔히 내 이야기하는 것 다 아는데, 뭘 나가있어?”

“대표님, 담배 한 대 태우셔야죠.”

남궁원의 묘한 압박에 나는 힐끔 연아를 바라보았다.

‘다녀와.’

연아도 지금 대화가 흥미진진한지, 슬쩍 내 등을 떠밀었다.

“기도야.”

나는 일어나며 슬쩍 고개짓을 했다.

“흥!”

홍기도는 삐졌다는 어필로 콧김을 한번 뿜고는 나와 함께 흡연실로 향했다.

“내 욕했죠?”

“그런거였으면, 나도 안 불편했겠지.”

“제 뒷담화가 안 불편해요?”

“왜 불편해야 하는데?”

“?”

“?”

아니, 인간적으로 너 사고뭉치잖아. 그리고 우리 원래 각 파트 돌아다니며 서로 씹어가며 정치공작(?) 펼쳐왔잖아.

“뭘 새삼스럽게. 우리 항상 그랬잖아.”

“저만 한 것 아니었어요?”

“……그럼 네가 내 욕하는 것은 되고, 내가 네 욕하는 것은 안된다는 거냐?”

“당연하죠!”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갑자기 쉬린칭이 떠올라서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쉬린칭은 대체 너의 어디가 마음에 드는 걸까?”

“그런 이야기 하고 있던 것 아니었어요?”

“네가 중간에 와서 쫓겨났잖냐. 궁금했는데…….”

“별거 없어요.”

“넌 알아?”

“당연히 알죠. 예전에 질리도록 들었는 걸요?”

알고 있었던 거로군.

“그런데 저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어필하는데, 마음이 안 움직이냐?”

“적극적이다 못해 지나치다는 생각 안드세요?”

음, 이건 노코멘트.

“그래서 진짜 문제가 뭐야? 네가 싫은 사람이랑 이렇게까지 엮일 캐릭터가 아니잖아?”

정말로 쉬린칭이 싫었다면 애초에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중국 출장부터 거절했을 것이다.

이 녀석이 남들처럼 회사 짤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녀석도 아니고…….

나 조차 가끔 잊고 있지만, 쉬린칭에게 비교될 바는 아니더라도, 이 녀석도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집안의 금수저가 아니던가?

아! 갑자기 이 녀석의 집안을 생각하니, 일전의 알약쌈이 떠오른다.

그건 너무 가혹하다…….

아직도 가끔 홍시가 나도 먹는데, 넌 못 먹냐는 듯이 으스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쉬린칭은 저를 원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원석?”

“네. 완성이 아니라, 미래의 저에 대한 묘한 기대를 갖고 있달까요?”

“음…….”

이 요망한 녀석이 나중에 커서 어떤 모습이 될까?

겉모습은 아버님 쏙 빼닮긴 했었지만, 이 녀석 아버님은 무척 중후하고 무게감 있는 분이셨다.

외모만으로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게다가 쉬린칭 부모님도…….”

“아아!”

그렇구나! 부모님이 반대할 수도 있구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조회장님이 워낙 특이한 캐릭터라서 나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쉬린칭의 집안 정도 되면 사윗감에 대한 기대가 한 없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쉬린칭 본인이 워낙 한국말을 잘해서 생각 못했는데, 일단은 국제 커플이 아니던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반대가 심하셔?”

“아니요.”

뭐?

“너무 좋아하셔서 무서워요.”

그런건 빨리 말해 이 자식아.

“조회장님이 특이한 캐릭터라고 생각하시죠?”

“응?”

가끔 이녀석이 내 속을 너무 훤히 들여다봐서 좀 무섭다.

“쉬린칭의 부모님은……. 장난 아니에요.”

조회장님이 평범해 보일 정도라고?

불안하다.

어쩐지 쉬린칭의 부모님까지 보게 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엄습한다.

웃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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