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52화 (252/346)

252.

“대체 맥베스라는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한 게임 미튜버가 현직 개발자 게스트와 함께 토론의 장을 열었다.

“오행전기까지는 어디까지나 한국 개발사라는 느낌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뭔가 좀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었죠.”

“동의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스쿨런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죠.”

“정확히는 깨비몬부터가 아닐까요?”

“그렇군요! 제가 그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미튜버는 깨비몬을 떠올리며 그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깨비몬을 잊고 있었을까?

현재도 캐릭터 산업 분야에서 미친듯한 기세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괴물 IP였다.

21세기에 출범한 게임 IP 파워 중에서는 최고라 평가받는 깨비몬이었다.

“어쨌든 스쿨런도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메지션 크레프트와 메지션 서바이브. 이 이름만 비슷한 두 개의 게임이 현재 디젤 스토어의 인디게임 카테고리의 정상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죠.”

“슬슬 게임계에도 K-컨텐츠 돌풍이 도래하고 있다는 신호로 봐도 될까요?”

미튜버의 말에 게스트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저는 한국 개발사의 사정에 딱히 해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국 개발사들이 정체기에 머물러 있었다는 평은 질리도록 들어왔죠.”

“동감입니다. 하지만 근래 맥베스의 약진을 뒤 쫓기라도 하듯이 대형 개발사들도 차츰 AAA급 PC게임 개발 정보를 차츰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한명의 게임 팬으로서는 무척 고무되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튜버는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맥베스의 차기작이 너무나도 궁금지는 군요.”

미튜버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스쿨런 이후의 맥베스의 신작 게임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라면 조금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깨비몬, 오행전기, 스쿨런까지. 이 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음……. 공통점이라기에는 장르가 너무나도 다른 게임들인데요?”

“맞습니다. 장르는 다르지요. 그런데 이렇게나 색다른 게임들이 모두 한 사람의 손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한사람요?”

“이 모든 맥베스의 약진의 배후에는 이번에 대표이사에 취임한 표세인 디렉터의 솜씨라고 하더군요. 그는 적어도 지금까지 모두를 실망시킨 적이 없죠. 일각에서는 ‘마법사’라고도 한답니다.”

“마법사요?”

“이 영상을 보시죠. 한국 예능 프로에서 출연한 그의 모습입니다.”

“……맙소사, 이건!”

화면 속에서 발차기로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거나, 놀라운 축구 실력을 선보이는 남자.

표세인은 천재적인 게임 개발 실력과 발재간이라는 전혀 연관고리가 없는 묘한 재주로 암암리에 명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재주가 게임 개발과 관계가 있습니까?”

“없지요.”

“그런데 왜 굳이?”

“별명이 마술사라는데, 아마도 이런 재주 때문이 아닐까 했습니다.”

“하긴……. 그런데 이게 정말로 발차기로 가능한 일인가요? 무슨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인데…….”

미튜버는 한참이나 화면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아니, 잠깐 분위기가 이상해졌는데, 어쨌든 그래서 다음 신작은 뭘까요?”

“이건 제가 어렵게 얻은 정보인데…….”

“오오!”

“맥베스가 헐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와 미팅을 가졌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헉! 그러면 다음 신작은 헐리우드의 유명 IP를 이용한 게임이 될까요? 워너브라더스라면 셀 수 없이 많은 IP를 보유한 제작사가 아닙니까?”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렇게 보고있습니다.”

*

*

*

임원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밝았다.

전무자리를 손에 넣은 고전무는 말할 것도 없고 상무보에 오른 도이사도 처음에는 문상무에게 밀렸다는 것에 다소 침울했지만, 이제는 마음을 재정비한 모양.

그리고 내 곁에 앉은 양성태 부사장 역시 밝은 표정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밝은 표정인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새로운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번 방송출연 잘 봤습니다. 역시 우리 대표님 축구 실력은 명불허전이더군요.”

그런데 막상 시작부터 이상한 소리가 나온다.

고전무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로 곧장 방송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내들었다.

“그런데 응원석에서 부회장님 곁에 앉아있던 여성분……. 정말로 쉬린칭 맞습니까? 부회장님이 비춰져서 깜짝 놀랐습니다만, 쉬린칭은 대체 왜……. 게다가 홍기도라면 대표님 수행비서를 맡은 그 친구 맞지요?”

도경우는 특히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아아, 그분이 쉬린칭 국장입니까? 몰랐군요. 젊다고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젊은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부회장님……. 저는 그냥 연예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워낙 개발과는 별도로 일을 하는 재무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답게 고전무는 타 부서 사람들을 잘 못 알아 본다.

그들이 하는 업무의 비품비까지도 속속들이 외우고 있으면서도 정작 얼굴과 이름에는 약한 것이었다.

“쉬린칭과 홍기도에 관한 이야기는 향후 무조건 함구하시고 각자 내부 입단속에 철저하시기 바랍니다.”

양성태가 드물게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부사장님.”

도경우도 눈칫밥에서는 어디가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양성태의 경고가 가볍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함전무의 계보를 이어받은 인물이 아니던가? 중국통으로서 쉬린칭의 위상이 어떤 것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자, 잠깐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잠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 대표님.”

고전무가 대표로 대답했다.

음, 다른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고전무에게 대표라고 불리는 것은 아직 영 익숙치가 않았다.

“우선 이번 계획은 부회장님께 재가를 얻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좋군요. 아주 좋습니다.”

고전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내심 나와 연아와의 알력다툼이라도 걱정했던 모양이다.

“이번 차기 프로젝트는 헐리우드의 강력한 IP를 이용해볼 생각입니다.”

“헐리우드?”

고전무의 표정이 단번에 와락 구겨졌다. 회사의 재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해외 IP를 이용한다는 것을 기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로열티가 걱정되는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그 걱정은 틀리지 않다.

일반적으로 대형개발사들이 유명 IP를 이용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니까.

“굳이 해외IP를 이용하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대표님이라면 그런 것 없이도 충분히 놀라운 성과를 이뤄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고전무의 말에 도경우도 동의한 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런 점에서 고학현을 전무로 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과거 함전무 휘하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이유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하나는 맥베스의 네임벨류를 단숨에 격상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격상이요?”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깨비몬과 오행전기, 스쿨런에 이르기까지 맥베스는 다른 회사들이 주춤하는 불황 속에서도 거침없이 성장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내 한정의 이야기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맥베스의 위상은 아직 완전치 않다.

“저는 이번 기회로 맥베스가 명명백백한 글로벌 스케일의 개발사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내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모르지는 않는다.

블리자드나 베데스다, 락스타와 같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가 알만한 회사가 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누구나 알고 있는 대형 미디어 IP를 이용한다면?

만만치 않은 로열티가 발생하겠지만 그 홍보효과는 절대적일 것이다.

게다가 내가 예상하는 만큼의 성적을 거둔다면 단숨에 맥베스는 세계적인 개발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요즘 맥베스는 자체적으로도, 그리고 외부적으로도 자금 유동성이 최고조에 달한다.

로열티?

그까짓것 그냥 홍보비라고 생각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당장 쉬린칭부터가 우리에게 투자하겠다고 하는 액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IP입니까?”

모두가 기대감에 눈이 반짝였다.

“다들 워너브라더스 산하의 HBO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왕관의 게임을 알고 계실겁니다.”

“아!”

다행히 왕관의 게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이 컨텐츠에 대한 설명으로 회의가 늘어지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일단 유명 IP를 이용하려는 계획 자체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굳이 왕관의 게임을 타겟으로 생각하신 이유를 들을 수 있습니까?”

양성태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에 대한 답은 준비되어 있다. 오히려 고마울…….

아니구나.

나를 향해 슬며시 미소짓는 양성태의 미소는 이것이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는 티가 역력했다.

아마도 나를 위해 스스로 어시스트를 보낸 것이다.

양성태와 운동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는 멋진 어시스트를 연발하는 사령탑의 자질을 지닌 것이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양성태의 운동신경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천천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일단 드라마의 완성도에서 점수를 줄 수 있겠지요. 아시다시피, 이것은 소설원작의 드라마이고 호흡이 아주 깁니다. 일반적인 영화들은 게임화하기에는 그 호흡이 다소 짧아 어설프게 늘려야 하지만, 왕관의 게임은 그럴 필요가 없지요.”

“그건 그렇습니다.”

보통 2~3시간 정도 분량에 불과한 영화와는 달리, AAA급 게임의 경우 40~50시간은 기본이지 않나?

“그건 그렇군요. 일반적으로는 그 문제로 제작의 난항을 거듭하다가 무너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두 번째로는 무대가 중세 판타지라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고티 수상 목록만 뒤져봐도 중세 판타지 배경이 가장 돋보이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모두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기색을 보였다.

“마지막으로는 컨텐츠의 방대함과 구현화의 용의성입니다.”

“방대함이요?”

“예. 맵에 무작정 퀘스트 마크를 찍어놓고 유저들을 뺑뺑이 돌리는 식의 오픈월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지요. 모험과 탐험, 개인 전투와 단체 전투, 정치와 영지의 성장 등, 해당 컨텐츠에 있는 모든 내용들을 총망라하여 구현해낼 계획입니다.”

“그건……. 개발 리소스가 너무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근래 수많은 게임들이 좋은 소스들을 많이 구현해냈기에 레퍼런스 삼을 만한 것들이 풍부하죠. 이제는 어설픈 퀘스트 제작 보다 차라리, 깊이있는 시스템을 제작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힙니다. 게임 개발 엔진의 발전이 그것을 뒷받침하고요.”

내 말에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이런저런 계산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모두 이해했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꼬투리를 못 잡을 것도 없겠습니다만, 대표님께서 현재까지 보여주신 실적들 앞에서 무슨 잔소리가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그거고, 당장 그정도 거대 프로젝트를 우리 내부에서 소화가 가능할까요?”

도경우가 짚은 맥은 의외로 적절한 것이었다.

대형 개발사들도 산하에 두고 있는 여러 대형 스튜디오들이 협력해서 개발하거나, 외주의 도움을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거라면…….”

내가 뭐라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무척 밝은 표정의 쉬린칭과 그 뒤로 우중충한 표정의 홍기도였다.

두 사람의 표정 대비가 너무도 극과 극으로 나뉘는 탓에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기대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