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54화 (254/346)

254.

“양실장님 아내 분? 아아, 선아 언니?”

연아는 기억이 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안다기보다. 예전에 결혼식에서 본 것이 다야. 짧게 인사만 나눈 정도?”

“그렇구나.”

“그런데 왜?”

“할리우드에 있는 지인을 소개받을 겸, 마침 귀국하셨다고 해서, 자리를 만든다고 하더라고.”

“그래?”

“응. 우리 함께 갈까?”

“우리……. 그렇네. 이제 그럴 때가 되었구나.”

연아는 금방 내 말의 의미를 파악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사장님께는 슬슬 우리의 관계를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나는 운을 떼며 슬쩍 연아의 안색을 살폈다. 이미 지난번에 조회장님의 해금 선언이 있었다.

딱히 이 문제로 연아와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우리는 항상 너무나 바빴고 데이트 중에는 데이트에 전념하려 했었다.

“그보다 정말 걱정이네, 어머님도 지난번 통화할 때 걱정하시던데.”

“그렇지.”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덮친 판데믹으로 인해, 우리의 결혼 일정은 한참 뒤로 밀려버렸다.

하지만 서서히 판데믹도 종료되어 가고 있는 시점.

식장을 새로 예약하고 이런저런 준비들을 해야겠지만, 거기에 앞서 몇몇 지인들에게는 이 소식을 전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초대되는 사람들이 누구지?”

“너와 나, 제임스 부부, 그리고 쉬린칭과 홍기도 정도일걸?”

“마침 딱 좋은 멤버네.”

제임스 부부는 당연히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고 쉬린칭과 홍기도도 그랬다.

정작 양성태 부부만 우리의 일을 모른 다는 것이 문제.

“나에게 부사장님은 일종의 은인 같은 느낌이거든?”

“은인? 하긴 부사장님이 오빠를 많이 챙기긴했지.”

챙기기만 했다 뿐인가?

비록 첫 시작은 회장님의 지시였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선생님처럼, 때로는 든든한 지지자로 언제나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다.

사실 그동안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내내 진실을 숨겨왔다는 것에 상당한 부담이 있었다.

“나는 무조건 찬성이야. 부사장님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때, 내 눈치 볼 것 없이 오빠 편한 대로 해.”

연아는 그렇게 말하면 슬쩍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차라리, 그냥 혼인신고라도 올려 버릴까?”

“그래도 괜찮은거야? 세금 문제나 이것저것, 신경쓸 것이 많다고 하지 않았어?”

당장 제임스부터가 이 문제를 놓고 분주하게 일처리에 매진하고 있다.

더군다나 아직 연아는 조회장의 지분 상속문제도 남아 있다.

“오빠가 돈 같은 것을 신경 쓸 줄은 몰랐네?”

“내 돈은 별 상관없는데, 처가댁 재산은 신경 쓰이네?”

“뭐야, 그 말투는……. 크큭.”

내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연아는 내 팔을 치며 웃었다.

음……. 약간은 진심이었다.

이래봬도 맥베스의 대표 이사다.

오너 일가의 세대교체는 회사에 가장 큰 이슈 중에 하나다.

어찌 관심이 없을 수 있나?

게다가 그 오너일가가 내게는 처가기도 하니까, 도저히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우리 동거라도 시작할까?”

“회장님 쓸쓸하실 까봐 못하는 것 아니었어?”

“그것도 그렇긴 하지……”

연아는 다소 독특한 가족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 은근히 가족에 대한 집착이 있는 편이었다.

우리 가족들을 무척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이따금 아이는 많이 낳고 싶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하고는 한다.

나는 연아가 말하는 미래의 계획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무척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니까 말이지.”

“응?”

“내가 회장님 댁에 들어가서 사는 방법도 있지 않나? 어차피 남는 방 많잖아?”

많다 뿐인가?

나는 슬쩍 눈을 돌려, 연아의 집을 훑어보았다.

일일이 세기가 귀찮을 정도로 큰집이 아닌가?

나 하나 들어간다고 해도 티가 날까 싶을 정도.

“그거 멋진데? 그런데 오빠 괜찮겠어?”

“뭐가?”

“회사의 회장님과 한집에 사는 거잖아?”

“부회장님과는 데이트하는데?”

“크큭, 그런가? 하긴 오빠는 아빠랑도 잘 지내지.”

“그렇긴 하지.”

관계도만 놓고 보면 나름 사위 역할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거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는데?”

그때였다.

“뭘 진지하게 생각하냐?”

마침 조회장이 내려왔다.

“저 결혼 전까지 이 집에서 살면 어떨까 해서요.”

“니들 아파트까지 구입해 놓지 않았었냐?”

“사놓고서 들어가지도 못했죠. 요즘 이래저래 난리인데, 그냥 팔고 여기서 지내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파트야 새로 구입하면 되지요.”

내가 말해놓고도 참 어이가 없다. 아파트를 무슨 전구 갈아 끼우는 레벨처럼 논하고 있다니.

“그래. 그놈의 판데믹인지 뭔지 때문에 난리도 아니니까. 그래도 요즘 좀 잠잠해진 것 같은데 이대로 끝나면 좋겠군.”

어느새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판데믹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예전보다는 다소 가벼워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승차가 거부되는 등의 방역 활동이 한창이다.

이래저래 이 시점에 결혼식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연아는 국내 게임업계 굴지의 개발사의 부회장이자, 살아있는 IT업계의 산증인 격으로 취급받는 조양길의 딸이다.

어마어마한 하객들이 몰려들 텐데, 그것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어쨌든 회장님이 불편하시면…….”

“아니야. 그냥 들어와 살아. 결혼한 이후에도 쭉 살면 더 좋고.”

“어? 예전에는 싫다면서?”

연아의 말에 조회장이 피식 웃었다.

“예전에야 네가 무슨 놈팽이를 달고 올지 몰라서 했던 말이고……. 표세인이 이놈은 함께 노는 맛이 있잖으냐. 커플 게임도 함께 즐길 수 있겠지.”

자식들이 죄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탓에 조회장은 커플 게임류를 사놓고 처박아 놓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말하며 아쉬워했었다.

물론 나야 함께 플레이하는 것은 상관없는데, 특정 게임 몇 가지를 제외하면……. 회장님과 나의 수준 차이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인데?”

“하하하.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도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진행해 보겠습니다.”

“말씀 잘 드려라. 혹시라도 아들놈 눈칫밥 먹을까 봐 걱정하실 수도 있으니까. 뭐 너희 부모님도 네 녀석이 어디 가서 눈칫밥 먹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계실 테지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연히 우리 부모님이야, 자식놈들이 배만 태운다면 다른 것은 크게 신경 안 쓰실 분들이다.

나도 그렇고 동생몬도 그렇고…….

여간해서는 어디 가서 눈칫밥 먹는 캐릭터가 아니니까.

*

*

*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양성태의 말에 제임스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와인이라도 준비해가면 될까요?”

검은 머리 미국인이기 때문일까? 나름 홈파티에 익숙한 듯, 제임스는 곧장 의견을 냈다.

“아! 그런 느낌의 파티군요? 그럼 저는 뭘 준비하면 좋을까요?”

음식을 가져가는 종류의 파티는 처음이라서 나는 살짝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하, 신경쓰실 것 없습니다.”

호스트의 뻔한 겸양은 무시하고 나는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보통은 음식이지만,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군요.”

“아니요. 정말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보통 선물은 뭐가 좋죠?”

“대부분은…….”

나와 제임스는 양성태의 말을 무시하고 우리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쉬린칭이 참여 의사를 내비칠 것은 예상치 못했군요.”

“예. 우선아 화가님의 팬이라고 하시더군요. 작품도 3점이나 구입하셨다고 하셨었죠.”

“그리고……. 파트너로 홍기도라니……. 이건 노린 거겠죠?”

양성태의 질문에 나와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아저씨들인지라, 요즘 젊은 사람들의 연애방식에 해박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쉬린칭은 무척 올곧고 거침없이 스스로를 어필한다.

“홍기도 과장도 아예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특히 지난번 차를 준비해오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더군요.”

“그렇죠? 제 생각에도 두 사람의 관계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다는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저씨들도 모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법이다.

“이게 득이 될지, 실이 될는지…….”

“왜요?”

“만약에 두 사람이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양성태의 말에 나와 제임스는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니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애초에 쉬린칭은 현재 상태로 봐서는 단순히 연애가 아닌, 결혼까지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자유롭다 못해 제주도 칼바람 같은 홍기도가 아닌가?

“애초에 그 녀석이 결혼에 관심이나 있을는지…….”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대표님 결혼 문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으신 겁니까? 판데믹이라서 다들 결혼을 미루는 추세이긴 한 모양이던데요.”

“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픈 상황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번에 함께 오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했었는데, 양성태가 먼저 운을 떼었다.

“네.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말로?”

오히려 가만히 듣고 있던 제임스가 화들짝 놀랐다.

“예. 함께 갈 계획입니다.”

나는 제임스를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그러자 제임스는 알겠다는 듯이 입을 닫았다.

“흠……. 무척 기쁘군요.”

양성태는 제임스의 반응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지만, 굳이 그 부분을 캐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곧 만나게 될 것이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홈파티 초대 관련은 그렇다치고, 조연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쿨런이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관심을 받은 덕분에, 조연준은 공짜(?)로 약속한 성과를 이뤄내 버렸다.

약속은 약속이니만큼 조연준에 관한 사항을 제임스에게 맡긴 상황.

“일단 외부투자 자문으로 영입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해두었습니다.”

“자문이라면…….”

“예. 일종의 계약직이라는 말이지요. 성과에 따라 언제든 계약을 해약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준비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편이 나중에 책임 추궁에도 편하니까요.”

아무래도 제임스는 조연준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것은 우리 모두 동감하는 바였다.

“그럼 오늘은 이 정도 이야기로 마무리하면 될까요?”

“뭔가 다른 일정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회의를 빠르게 종료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양성태가 질문을 던졌다.

“네. 결혼 전까지 여자친구 집에서 동거하게 될 것 같아서…….”

“동거?”

이번에도 제임스는 그답지 않게 화들짝 놀랐다.

“미국에서는 흔한 일 아닙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제임스는 무려 내 손윗 처남이라는 포지션이기에 동거라는 주제에서는 그의 눈치가 살짝 신경 쓰인다.

“아니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정말 괜찮으십니까? 여자친구분 집에는 여자친구분 혼자가 아닐 텐데요?”

아무래도 나와 연아의 관계를 숨겨주려다 보니, 제임스의 말투가 다소 어색했다.

“네. 괜찮습니다. 이미 허락은 얻었으니까요.”

“심히 걱정이 되는 군요.”

제임스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모르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군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일 텐데도, 양성태는 은은한 미소로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사장님.”

“네.”

“곧 전부 아시게 될 겁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그거 기대되는군요.”

아무래도 선물 목록에 우황청심환이라도 추가해야 하는 것 아닐지 모르겠다.

환상종 등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