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55화 (255/346)

255.

“완샹하오!”

“타시죠.”

퇴근하려는 길에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그 안에는 쉬린칭과 홍기도가 타고 있었다.

“요즘 잘 붙어다니네?”

“업무지시잖아요!”

“지금 업무시간 끝난거 아니냐?”

“부사장님 초대를 거절할 순 없잖아요.”

“그렇다고 함께 올 필요는 없잖아?”

“…….”

홍기도는 입을 다물었다. 더 약 올리면 빽! 하고 튀어 오를 것 같아서 나는 쉬린칭을 바라보았다.

“저까지 챙겨주시고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덕분에 우선아씨를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쁜걸요? 후원행사도 따로 열지 않으시는 분이라서 만나뵐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이런 인연이 다 있네요.”

쉬린칭은 정말로 우선아의 팬인 모양이었다.

“부회장님은요?”

“조금 늦게 부사장님 댁으로 바로 오실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미팅이 잡힌 바람에 나와 연아는 따로 양성태의 집으로 가기로 한 참이었다.

“제임스는 집에 들려서, 아내분 차로 이동하신대요.”

“그렇군. 그럼 우리만 가면 되겠네.”

“고고고!”

쉬린칭은 유독 들뜬 모습으로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며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니 쉬무빙도 텐션이 오르면 갑작스럽게 애교가 많아졌던 것이 기억이 난다.

“쉬무빙은 잘 하고 있습니까?”

“네. 안 그래도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쉬린칭의 차를 타고 얼마지나지 않아 우리는 양성태의 집에 도착했다.

“딱 맞게 오셨군요.”

“오랜만이에요.”

마침 양성태의 집앞에 도착해 있던 제임스와 로렌스가 우리를 반겼다.

“모두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발 늦게 양성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언제나 말쑥한 정장차림만 보았었는데, 오늘은 슬랙스에 스웨터라는 보다 캐쥬얼한 차림새였다.

머리도 넘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헤어스타일 덕분에 원래도 동안이었던 외모가 더욱 젊어 보였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양성태의 집은 오피스텔 최상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가든 형식의 루프탑을 별도로 이용할 수 있는 구조 였다.

그리고 루프탑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음식을 준비 중이던 우선아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표세인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대표님.”

“아니요.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사적인 자리이니, 표세인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말에 우선아는 싱긋 웃으며 양성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양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대로 소탈하신 분이네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편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부디 편하게 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아 화가님!”

“네?”

드디어 쉬린칭의 공세가 시작됐다. 그녀는 홈파티 방문과는 다소 다른 느낌의 선물을 준비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무려 꽃다발이었다.

“이번 전시회에 가지 못해서 너무 안타까웠네요. 어쨌든 성공적인 전시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는 만난 것은 처음이지만, 이름은 아는 사이죠?”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다니!”

“어떻게 모르겠어요. 벌써 몇 번이나 제 그림을 구입해 주셨잖아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선아의 말에 쉬린칭은 뒤를 돌아보며, 들었어? 들었어? 하는 느낌으로 팬심을 뽐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표세인씨 파트너분은 좀 늦으시는 건가요? 함께 오신다고 들었는데?”

우선아가 연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네. 조금 늦게 올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늦게라도 오신다니 다행이네요. 저희 그이가 얼마나 기대하는 지 몰라요.”

“하하, 그걸 말하다니.”

양성태는 쑥스럽다는 듯, 멋쩍게 웃었다. 그 미소가 나는 조금 두려워서 급히 가지고온 청심환을 꺼냈다.

“부사장님.”

“아! 오늘은 편한 자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도 이름으로 불러주시죠.”

양성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죠. 안 그래도 사석 호칭 한번 정리하려 했었는데, 이제부터 사석에서는 저도 형님이라 부르겠습니다. 괜찮으시죠? 그리고 저는 세인이라고 불러주십시오.”

“하하, 뭔가 좀 쑥스럽군요. 알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양성태는 편한 호칭에 조금 적응이 필요한 타입인 모양.

어쨌든 나는 청심환을 양성태에게 건네주었다.

“형님. 일단 이거 하나 드시죠.”

“청심환? 숙취해소제가 아니라요?”

양성태는 청심환을 받아 들며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스마트폰이 울렸다.

-나 거의 다왔어.

연아의 메시지였다.

“일단 드셔주세요.”

“……알겠습니다.”

양성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청심환을 삼켰다.

그리고 벨이 울렸다.

“여자 친구분이 오신 모양이군요.”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그럴 수야 있나요. 호스트가 마중을 해야죠.”

“그럼 함께 가시죠.”

“알겠습니다. 저희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모두들 가볍게 와인 한잔씩 하고 계십시오.”

양성태의 말에 제임스와 홍기도가 드물게 똑같은 표정(뭔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솔직히 정말로 기대되는군요.”

계단을 내려가며 양성태는 말했다.

“그렇게 기대되십니까?”

“그럼요. 듣자 하니, 사내에서는 대표님 여자친구분을 두고 환상종? 뭐 이렇게 부르신다고 하던데요.”

환상종.

그래. 그렇게 불리고 있지.

그리고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에 도착했다.

이제 환상종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

“안녕. 성태 오빠.”

“어…….”

밝게 인사하는 연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양성태는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이게 맞아? 라고 되묻는 것 같았다.

“일단 천천히 심호흡하시고…….”

천하의 양성태가 이렇게까지 당황할 줄이야. 손가락이 떨리는 레벨이 뭔가 심상치 않다.

역시 사전에 청심환을 먹여놓기를 잘했다.

“그동안 숨겨서 미안해. 우리 아빠 성격 알잖아.”

“아…….”

아무래도 머릿속에서 처리할 정보들이 너무 많아서 가벼운 패닉을 일으키는 모양.

“우리 오빠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줘. 어쩔 수 없이 아빠 지시에 따랐을 뿐이야.”

“아……. 하하하. 하하하하!”

양성태는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야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하는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벌주 석잔을 3000CC잔에 따라줘도 할 말이 없다.

“사실은 저도 가끔 회장님의 조카 정도는 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었는데…….”

양성태는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간의 일들을 회상하며 퍼즐을 맞춰보는 모양.

“정말로 미안해.”

“정말 죄송합니다.”

나와 연아는 동시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흠……. 그렇죠. 이건 제가 칼자루를 쥔 상황이군요.”

서서히 충격이 가셨는지, 양성태는 살짝 장난기가 감도는 미소를 지었다.

“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용서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연기를 잘 하시는 군요. 이렇게나 감쪽 같이 모두를 속이시다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양성태는 홀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혼잣말을 하며 충격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기색이었다.

“연아씨!”

“늦어서 미안해요.”

연아가 등장하자 쉬린칭이 재빨리 달려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이!”

“로렌스!”

연아는 로렌스와도 활짝 미소를 띤채로 인사했다.

“너무 반가워요. 저는 우선아라고 해요.”

“무척 오랜만에 뵙네요.”

“우리 만난적 있어요?”

우선아가 살짝 당황했다.

“예전에 두분 결혼식에서 살짝 뵈었었는데, 소개가 늦었습니다. 조연아라고 해요.”

“조연아? 부회장님?”

“네.”

연아는 머쓱하게 한쪽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어머나……. 세상에……. 당신 정말 몰랐어요?”

“부끄럽게도 정말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양성태 역시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놀라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제임스 내외야……. 그렇죠. 당연히 알았을 것이고 홍기도 과장도 알았습니까?”

“저 녀석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눈치를 채 버렸습니다.”

“……오른팔이다 이거군요?”

“훗.”

홍기도는 갑자기 기분이 사는지, 와인잔을 슬쩍 들어올리며 잘난척을 했다.

아니, 이거 눈치챈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잘난척까지 하고 있냐.

그런데 정작 양성태에게는 의미가 있었던 모양인지, 양성태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정말로 거듭 죄송합니다. 회장님께서 하도 신신당부를 하셔서요.”

“아닙니다.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사실……. 덕분에 우리가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한다.

처음부터 연아의 남자친구로 소개를 받았다면, 다른 사람들과 지금 같은 인간관계를 이루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보다 빠르게 묘한 사내 정치에 휘말렸거나, 친분을 나누기보다는 겉핥기식의 직장동료 선에서 머무르는 선에서 그쳤을지 모른다.

조회장님이 어디까지 생각을 하시고 비밀엄수를 강요하셨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느낌.

“그래도 결혼 전까지는 계속 비밀이겠지요?”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이제 슬슬 가까운 분들께는 말씀드릴 생각이긴 합니다.”

정작 문상훈도 그렇고 우리 팀원들에게도 서서히 이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오랫동안 숨겨왔다.

“일단 고기를 먼저 구워볼까요?”

드디어 충격에서 빠져나온 양성태가 그릴에 고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제 솜씨가 표세인씨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양성태는 나에게 완전히 말을 놓는 것은 편하지 않은 모양이다.

굳이 강요할 일도 아니니, 좀 더 익숙해질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겠지.

“이런 야외 그릴은 제 전문이 아닙니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굽는 것과 야외에서 굽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무엇보다 딱히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이 부분에서는 내 실력을 자신 할 수가 없다.

“다행이군요. 어쨌든 대접은 호스트의 몫이니까요.”

라고 말하면서 양성태는 집게로 고기를 뒤집었다.

“소시지를 밖으로 두르는 편이 낫지요.”

의외로 제임스가 양성태를 거들었다.

“경험이 좀 있으신 모양이네요?”

“미국에서는……. 무엇보다 로렌스의 친정에서는 거의 매일 같이 야외에서 고기를 구웠었죠.”

아무래도 택사스에 있다는 장인댁에 관한 이야기인 모양.

“그러고보니, 말씀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조연준에게 투자 부분을 어느 정도 위임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 미국 출장 갈 때, 택사스에 좀 다녀올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런데 굳이 그걸 왜 저에게…….”

“기둥 소프트와 맥배스의 대표가 아니십니까. 제 휴가를 누구에게 질문하겠습니까?”

아!

다른 것은 몰라도, 현재 기둥소프트는 대표이사인 나와 전무이사인 제임스 단 둘뿐이다.

“그럼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괜찮다면 함게 가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함께요?”

“헐리우드에서의 계약이 끝나는 대로 텍사스에서 짧은 휴가를 즐기고 오시죠. 로렌스가 연아도 함께 가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더군요.”

“그런거라면 거절할 수 없겠군요. 물론 좋습니다.”

여성들은 테이블 주변에서, 남자들은 그릴 주변에서…….

술자리의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악의는 없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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