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57화 (257/346)

257.

“좋은 아침입니다.”

“오냐. 너도 잘 잤냐?”

잠에서 깨어나 식당으로 내려오니 조회장이 먼저 내려와 있었다.

“연아는?”

“더 잔다고 하네요.”

“잠도 많은 녀석이 지금까지 잘도 지각 한 번 안했다니까.”

대견하다는 것인지, 안쓰럽다는 것일지 분간이 가지 않는 묘한 말투였다.

“자, 먹자. 오랜만에 아침식사를 함께 먹는 구나.”

“연아는 보통 아침 식사를 안하죠?”

“그래. 나중에 네가 저 녀석 습관 좀 고쳐줬으면 좋겠구나.”

“차차, 도전해 보겠습니다.”

나는 조회장 옆자리에 앉았다.

부잣집의 아침상이라서 대단한 식단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간소한 찬이었다.

“저 고기찬은 네 몫이다. 나야 다 늙어서 아침부터 고기는 부담된다만, 연아가 너는 다르다고 특별히 가정부에게 부탁해 놓은 거다.”

“하하, 그랬군요.”

앞에 놓인 불고기를 냉큼 입에 넣었다. 간이 삼삼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입에 맞나? 평소에도 이런 느낌이긴 하지만, 아침은 특히 나 혼자만 먹는 탓에 간이 연해.”

“저도 딱히 자극적인 맛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무척 맛있네요.”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정갈하고 흠잡을 곳이 없는 맛이었다.

“그래서 조만간 미국에 간다지?”

“네. 할리우드에 가서 IP이용계약을 논의해 보려고요.”

“왕관의 게임이라고 했지?”

“아시네요?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재미야 있었지…….”

“왜 그러시죠?”

조회장이 슬쩍 말끝을 흐리는 것이 신경 쓰인다.

“그 정도 IP잖냐. 어딘가에 다른 계약으로 묶여 있을지 모르는 것이지.”

“예. 사실 저도 그런 것들 때문에 걱정이에요.”

우선아의 소개로 HBO측 담당자와의 미팅은 일사천리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되겠지.

“만약 누군가 그 쪽에 먼저 침발라 놓은 상태라면 어쩔테냐?”

조회장의 말에 나는 목을 긁적였다. 사실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유명 IP들도 고려해 보긴했었다.

“일단 파급력과 게임으로 구현했을 때의 파괴력을 고려할 때는 이 쪽이 최고이긴합니다만…….”

“그래도 생각해 놓은 대안이 있긴 한 모양이군.”

“대안으로는 SF영화인 스파이스와 미드인 워킹데스를 후보로 생각해봤습니다.”

두 작품 모두 미디어로 대성공을 이루었지만, 게임으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타이틀.

이것들 역시 AAA급 게임으로 개발한다는 이슈를 터트리면 상당한 반향이 올 것은 분명하다.

“스파이스라……. SF 좋지.”

“SF 좋아하십니까?”

“내 나이때에 서브컬쳐계에 발 좀 들여본 사람치고 SF장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하긴 오히려 예전이 SF작품들의 품이었지요.”

“그런데 워킹데스는 이런저런 게임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아직 제대로된 오픈월드로 개발된 것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로열티 때문이겠지요.”

“그렇군. 좀비 아포칼립스는 이제 한국에서도 다뤄질 정도로 대중적이 되었지. 과연 어떨까…….”

확실히 조회장의 우려는 나도 동의한다.

좀비물은 게임 업계의 사골이나 마찬가지다. 하도 아직도 흥행보증수표나 다름 없는 AAA급 타이틀도 줄줄이 나올 정도.

게임으로 개발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느정도 차별성을 둘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반대로 SF게임은 제작 단가가 껑충 뛰겠지.”

“예. 디자인 문제부터 불거질 테니까요. 물론 영상물 자체의 판권을 사면 디자인을 새로 고민할 필요는 없겠죠.”

어느새 왕관의 게임이 아닌 다른 IP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당히 높은 확률로 무산 될거라고 보시는 것 같네요?”

“왜 아니겠나?”

“어? 정말요?”

“클클클, 이럴 때는 또 신임 대표티를 내는구만.”

“그럼요. 저 아직 따끈따끈한 신입이사 아닙니까.”

내 말에 조회장은 우습다는 듯이 킬킬 웃었다.

“맥베스가 할리우드 쪽에 기웃거린 적은 없었지만, 오래도록 일본 만화 IP를 이용한 적은 있지 않냐.”

“아! 그렇죠.”

“갈 때마다 이런저런 문제로 골치를 얼마나 앓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할리우드? 이야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게다. 솔직히, 그냥 새로 만들고 해외 유명 배우들을 출연시켜버리라고 하고 싶구나.”

조회장의 말에 나도 모르게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단순히 맥베스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것만 생각하다보니, 시야가 좁아졌던 것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작검토중인 대작 IP의 판권을 사서 동시 출시를 해보는 것도 좋겠군요.”

“클클, 그래.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 군.”

“그럼 이거 생각보다 판이 커질 수가 있겠는데요?”

“여러모로 넓게 보자는 거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상황이라면…….”

“제작사를 인수할 수도 있다고요?”

때마침 연아가 내려왔다.

“잘 잤어?”

“안깨워주고 혼자 내려갈 줄은 몰랐네.”

“……문을 부수면 싫어할까봐.”

“내가 그렇게 못일어났어?”

“클클, 네가 못일어나는 거야.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뭘 놀란 표정이냐.”

“흥.”

연아는 아침대용 오렌지 주스를 한잔 마시며 콧방귀를 뀌었다.

“아침 식사 시간부터 무슨 그런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확실히 아침 식사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웠지.

“하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잖아? 다 들었지?”

“응.”

“역대 최고 제작비를 투입한 해적영화의 수입이 고작 10억 달러 수준이지. 하지만 중국에서 개발한 멀티플랫폼 게임이 2년 만에 37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잠깐, 잠깐. 패키지 게임과 모바일 게임 매출을 동일 선상에 놓고 계산하려는 건 아니지? 게다가 오빠는 게임에 확률성 아이템 같은 것을 넣고 싶지 않다면서?”

연아는 정확히 내 생각을 짚어냈다.

“맞아.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그 정도 개발비를 투자하지는 않을 거잖아?”

“로우 리스크라는 건가?”

“게다가 영화가 흥행하면 그 수익도 투자 지분만큼 우리 몫일 거잖아.”

“영화 흥행을 점치는 것은 게임 이상으로 어렵다던데?”

“그렇지. 그러니 이 부분은 철저히 마케팅비로 계산해서 접근해 봐야겠지.”

“흐음…….”

연아는 냉장고에 몸을 기대고 잠시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생각해?”

“리스크라기 보다는, 애초에 계획에서 조금 벗어나는 느낌이랄까? 유명 IP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판권을 따내는 것과 제작사를 인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역시 사업 부문에 빠삭한 연아다. 정확히 맥을 짚어냈다.

“그냥 그런 쪽 길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뿐이다. IP판권 쪽은 닭 쫓던 개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곳이니까.”

“그건 또 안되죠.”

연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 나와 조회장 보다도 연아가 훨씬 더 공격적인 성향이다.

닭 쫒던 개가 되는 상황을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길 성격이 아닌 것이다.

“일단 이 부분은 고전무와 사업부쪽과 병행해서 논의해 보도록할게.”

“그래주면 감사하지.”

“그보다 아빠 쪽은 어때요?”

“내쪽?”

“슬슬 이번 분기 실적 발표 올려야 하는 시점이잖아요.”

“아아, 매지션 크레프트 말하는 거구나. 요즘 성적 무척 좋으신 것 같던데요?”

스쿨런과는 다른 루트, 다른 성격의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맥베스의 신규 IP.

매지션 크레프트는 나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듭하고 있었다.

“클클, 곧 깜짝 놀랄 소식이 있을 거다.”

“그래요?”

“쉬린칭이 직접 나서서 중국 서버쪽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하더구나.”

“와아……. 진짜 요즘 쉬린칭 만능열쇠네.”

이름만 나왔다하면 놀랄만한 성과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진짜 현대판 모세가 아닐까 싶다.

중국 시장 규제여, 갈라져라. 하면 홍해처럼 갈라지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제대로 말씀 못드렸는데, 정말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지?”

내 말에 조회장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천생 개발자 스타일이라는 느낌이다.

요즘들어 생기가 팍팍 돈다.

“아닌게 아니라 컨셉과 확장성까지 뭐 하나 나무랄점이 없는 게임이죠.”

교회를 맹신하는 광신도들과 그들에게 핍박당하던 마법사.

마법사는 이후 지하 던전을 만들어 적들의 침공을 막아내는 한편, 이따금 마을을 공격해서 교회에 압수당한 이단의 성물(마법사 전용템)과 주문들을 입수하며 강해진다.

크레프팅 요소와 핵앤슬래시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 게임은 우리 게임이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멋진 게임이다.

플레이 타임이 멀티요소까지 더해져서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스쿨런 못지 않은 잠재력이 있다.

물론 이미 고티 상위 티어로 손꼽히기 시작한 스쿨런의 위상에는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뭐 스쿨런이 디젤 스토어에 입점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최대한 활약해봐야지.”

“아직 독점기간 한참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매지션 크레프트도 콘솔 시장으로 넘어오게 되지 않겠습니까?”

“클클, 우리는 더 늦을 계획이야. 아직 넣고 싶은 시스템이 한가득 있다고.”

“잠깐, 그건 좋은데……. 남궁원과 함송희는 돌려 주셔야 합니다. 그 녀석들은 제가 따로 안배해둔 일이 있어요.”

“한부장과 세종이만 있어도 된다. 내가 기획으로 붙으면 그만이지.”

“아니, 세종이는 몰라도 한부장은 부장이에요. 부서관리해야죠.”

“개발하는 부장도 한명쯤 괜찮잖아. 본인도 그걸 원하고.”

크윽…….

순수 개발자 두명이서 붙어버리니, 떼어낼 방법이 없다.

안 그래도 개발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 때문에 석연찮아 하던 한부장이 아닌가.

“부회장님 생각은?”

“뭐, 매지션 크레프트 매출 추이를 보면……. 어쩔 수 없다는 느낌?”

소수의 인원만으로 수백억, 장차 천억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직급 문제로 메인 개발자를 빼낼 수는 없는 거겠지.

“한부장은 살살 다뤄주세요.”

“누가 들으면 내가 괴롭히는 줄 알겠구나.”

물론 조회장님은 의도치 않게 말년병장의 신병놀이(?) 퍼포먼스까지 해야 했을 정도로 홍기도 녀석들과 허물 없이 지냈다.

“홍기도도 빠져나와서 한참 적적해 하실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한부장과 세종이도 제법 재미있는 친구들이더군.”

“그, 그렇군요.”

뭐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아무튼 조언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수가 떠올랐습니다.”

“좋은 수가 떠올라?”

“생각해보니, IP 판권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다소 소극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는 느낌이네요.”

“그게 무슨 말이지?”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돈이 있네요.”

결국 이러쿵 저러쿵 말은 많아도, 이건 일종의 쇼핑이라고 생각해보면 쉽게 풀릴 이야기다.

조건이 까다로워? 안맞아? 경쟁자가 침발랐어?

그러면 테이블 걷어차고 나오면 될 일이다.

“여론 조작 좀 해서, 거꾸로 그들이 우리 쪽에 하소연하게 만들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그들이 우리쪽으로? 그게 가능하겠나? IP장사치들 배짱은 만만치 않다.”

조회장은 살짝 우려가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네. 마침 상황이 그게 될 것 같아요. 하하, 기대해보십시오. 이미 대본 작성 끝났어요. 배우들에게 큐사인만 내리면 될 것 같네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런데 우리나라 증권가도 찌라시 하나로 요동치잖아요. 미국도 그렇죠?”

“우리나라 증권가 문화중에 미국에서 건너오지 않은 것은 없어.”

“오케이! 저 먼저 출근하겠습니다.”

나는 후다닥 달려나갔다.

빨리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을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절로 다리가 분주해진다.

‘회장님과 함께 사니까, 이런 혜택도 있네.’

아침 식사 시간 중에 묘수를 발견하게 되다니, 재벌가의 일원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느낌이다.

찌라시도 바이럴 마케팅이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