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58화 (258/346)

258.

회사에 출근하자, 홍기도가 나를 반겼다.

“일찍 오셨네요.”

“그래. 별일 없지?”

물론 아직 한참 이른 시간이기에 별일은 없을거라는 생각에 물은 것이었다.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식사 자리때 있었던 일로 머리가 복잡했다.

“있어요.”

“어?”

“제가 이 시간에 출근해 있는 것을 보면 모르시겠어요?”

“……넌 대표이사 비서잖냐. 당연히 일찍 출근해야지.”

“전 표세인의 비서입니다.”

“……뭔데 그게.”

묘하게 멕이는 느낌인데?

“어쨌든 이거 한 번 보세요. 할리우드에서 보낸 메일을 번역해 뒀어요.”

“이걸 지금 했다고?”

“아니요. 오기는 어젯밤에 왔어요. 아시잖아요. 미국과의 시차.”

어젯밤이든 오늘 아침이든, 살짝 감동이다.

다른 방송에 나갈 것이 아니라, 우리 홍켓몬이 달라졌어요. 라는 특별 코너라도 만들어서 출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강 내용은 뭔데?”

“한가지는 우선아씨의 지인이 발빠르게 움직여준 덕분에 제작사 측에서 빠르게 대응했다.”

“그거 좋네.”

역시 유명한 미술 감독 아니랄까 봐, 그녀가 움직이니 여태껏 답장이 없던 제작사 측에서 발빠르게 대응해준다.

“두번째는 좀 안 좋은 일인데……. 일단 튕기네요?”

“그래?”

나는 홍기도가 번역한 내용을 훑어보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보다 먼저 접선한 이들이 많으니 섣불리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

“역시 이렇게 나오나?”

아침 식사 때, 조회장님께 들은 이야기 그대로 흘러갈 줄이야.

다소 예상은 했었지만, 이쯤되니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어제 새벽에 담당자와 짧게 통화를 해봤는데, 앞선 경쟁자가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더라고요.”

“그렇겠지.”

세계적인 IP다. 당연히 경쟁자들이야 있을 것이고, 우리가 상당히 후발주자인 것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하실 건가요? 메일 내용 보시면 아시겠지만, 미국에 오면 만나주기는 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라. 이런 투잖아요.”

“그래. 무턱대고 움직이는 것은 좋은 수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방법은?”

“……그건 보통 임원이 비서에게 묻는 방식 아니냐?”

“그래서 방법은?”

“뭐 없지는 않지.”

“비밀입니까?”

“비밀은 아닌데, 어차피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네?”

나는 대답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어쩐 일이지?

“얼굴 좀 볼까?”

-뭔가 있는 모양이군. 좋아.

조연준은 흔쾌히 대답했다.

*

*

*

“직접 보자고 날 부를 줄은 몰랐네?”

조연준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제법 한국에 오래 있네?”

내 말에 조연준은 피식 웃었다.

“솔직히 나 같은 브로커야, 어디서 일하든 별문제는 없으니까. 물주와 가까이 있는 편이 낫겠지.”

“잘 좀 해서 계약 좀 연기해 보라고.”

계약직 드립에 조연준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마침 바라고 있던 내용이라서 그렇게 진행된 거야.”

“욱하는 것을 보니까, 내심 신경 쓰고 있던 모양이군.”

“……아니라니까. 그보다 무슨 일이지?”

조연준의 질문에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더 올 사람이 있어.”

“?”

그때였다. 마침 내가 부른 나머지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표사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지난번 총회 경비를 의뢰했던 염종수와 오정열이었다.

“잠깐 저 사람 지난번의 갱스터 아니야?”

“갱스터?”

염종수는 낮선 표현에 고개를 갸웃했다.

“너 갱스터 아니라면서?”

“……아니라니까.”

뭔가 묘하게 한방 되돌려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조연준은 지난번에 슬쩍 말한 것처럼 정말로 미국에서 갱스터나 마피아에게 시달린 경험이 있던 것인지, 눈에 띄게 불편해했다.

“그러고 보니 구면이군요. 염종수라고 합니다.”

“조연준입니다.”

염종수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는데도 조연준은 껄끄럽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

사실 이게 어쩌면 정상적인 반응일 수도 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연락을 주신 겁니까?”

오정열이 붙임성 좋은 얼굴로 용건을 물었다.

“사실 이번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서 여러분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설마 지난번 일로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기신 겁니까? 어느 쪽입니까. 말씀만 하시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순간 염종수의 눈이 뒤집힌 것을 본 나는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마사지했다.

“으음……. 형님. 상당히 아픈데요.”

“그래. 이제 진정 좀 되지? 흥분하지 말자. 분위기 곤란해진다.”

“죄송합니다.”

가벼운 스킨쉽으로 염종수를 진정시킨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여러분들 찌라시라는 단어 알고 계시죠?”

모르긴 몰라도 나 보다는 이들이 훨씬 잘 알 것이다.

증권가든 연예계든, 나처럼 별반 연이 없던 사람도 찌라시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때때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찌라시요?”

“네. 증권가나 연예계에서 떠도는 뭐 그런 것 있잖습니까.”

“알기야 아는데, 그걸 왜…….”

“인터넷 좀 뒤져보니 그런 찌라시를 전문으로 유통하는 업자들이 있다더군요. 작전세력들이 참여할 때도 있고, 어쨌든 그 쪽과도 좀 선이 닿으십니까?”

“네. 뭐 한 다리 건너면……. 그런데 이건 제 쪽보다는 염실장님이 전문 아닙니까?”

“전문?”

내가 염종수를 바라보자, 염종수는 턱을 긁적였다.

“이거 그렇다고 말하면 혼나는 일은 아니죠?”

“누가 들으면 내가 너 혼내는 사람인 줄 알겠다.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말해봐.”

“……저러면서 갱스터가 아니라고?”

조연준은 계속 뭐라고 구시렁거렸지만, 이 상황에서 괜히 대꾸해봐야, 귀찮기만 하단 느낌이라서 염종수에게 집중했다.

“찌라시 전단이 말입니다. 그거 의외로 돈이 됩니다.”

“돈이 된다고? 그냥 뜬소문 아니야?”

“그 원천 소스가 의외로 거짓은 아니거든요.”

“거짓이 아니다?”

“원래 말이라는 것이 한사람, 한사람 거치다 보면 묘하게 와전되는 법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원래 소설가만 소설 쓰는 것이 아니다. 사람 셋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소설 한 편 뚝딱인 법이 아닌가?

“예를 들면 찌라시꾼들은 저 같은 사람에게 돈을 주고 소스를 받아갑니다.”

“너에게?”

“예. 제가 관리하는 카지노나, 여러 사업에는 이래저래, 높은 분이나 돈 많은 사람과 연이 닿는 일이 생기니까요.”

“그렇군.”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모아 전단을 만들어서 요즘에는 PDF로 판매한다는데, 비싼 것은 월 500만이 넘는 다고 하더군요.”

“그렇게나?”

내가 화들짝 놀라자, 듣고있던 조연준이 혀를 찼다.

“500이면 싸지. 운좋게 좋은 소스 하나 얻어서 주식 뻥튀기 성공하면 기대수익이 얼마인데. 보통은 그 마저도 없어서 못구해.”

“드디어 네가 처음으로 주식 전문가라는 느낌이 드는 구나.”

“뭐?”

이런, 놀란 나머지 속마음이 그냥 튀어나가 버렸다.

“어쨌든 전문가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몇몇 업자들과는 면이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형님 관련으로 안좋은 찌라시라도 돌고있는 겁니까? 만약 그런거라면…….”

“내가 출장 안마사냐? 계속 손쓰기 귀찮으니까. 톤 다운 좀 해라.”

“……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니까. 천하의 염실장이 대표님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어버리니, 껄껄.”

오정열은 우습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일단 상황은 대충 알겠고,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저희쪽에서 이번에 새롭게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 부분에 관련해서 여론공작을 좀 펼칠까 합니다.”

“여론공작이요?”

“호오, 흥미롭군.”

조연준은 정말로 흥미가 동하는 표정이었다.

왜 아니겠나? 과거 미국지부를 공격할 때 NFT의 불온한 전망을 유도하며 여론 공작을 시도하지 않았던가?

사실 그래서 이 자리에 부른 것이기도 하다.

“너는 잠시 대기. 너는 미국쪽 일을 부탁해야 할 테니까.”

“좋아. 재미있으니, 한번 들어보지.”

조연준은 순순히 물러났다.

“어느정도 효과를 바라십니까?”

염종수의 말에 나는 싱긋 웃었다.

“이 나라를 넘어 미국 시장까지 닿을 정도?”

다름 아닌 영화와 게임에 관한 내용이다. 규모도 수천억 원에 달하는 규모.

이 정도면 국내를 넘어 외국 투자자들의 관심을 사는 정도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규모가 어느정도입니까? 일, 이 백억 정도로 그정도 파장은 없을 텐데요.”

지난번부터 느꼈는데, 이 녀석 은근 통이 작다?

아니면 맥베스와 나를 얕보는 건가?

“맥베스가 차기작 게임 개발을 위해 영화 제작사를 인수, 혹은 투자하려고 하며, 그 규모는 수천억에서 최대 1조.”

“1조?”

“쿨럭, 쿨럭.”

터무니없는 금액에 염종수는 물론 오정열까지 기침하며 난리가 났다.

“정말로요?”

“그래.”

“그런데 왜 찌라시입니까? 그냥 기자들 만나서 대서특필 보도해도 큰 이슈가 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약빨이 약하지.”

“네?”

“기자가 언제 가장 흥분하는 줄 아나?”

“그, 글쎄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자신이 먼저 알았다고 생각 할 때지.”

내 말에 조연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월스트리트의 전신은 할 일 없던 은행가들이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씹으며 떠들던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어. 그리고 그들이 떠들던 것을 기자들이 물어서 외부로 퍼트리기 시작하면서 월스트리트의 가치가 높아졌지.”

조연준은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들이켰다.

“대기업 자제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것을 배우지. 미끼란 것은 절대 직접 던져주면 안 된다고, 제가 발견했다고 생각해야만 그 파급력이 큰 법이니까.”

라고 말하면서 나를 향해 묘한 눈빛을 보냈다.

“뒷골목 후계자 교육이라도 받은 건가? 점점 더 정체를 모르겠군.”

갑자기 우리 아버지를 뒷세계로 등떠밀다니? 사돈만 아니었으면 진짜 한 대 때렸다.

“제발 부탁이니, 나를 그쪽으로 몰아 넣지 말아줘.”

“그럼요. 표세인 형님, 아버님은 시장에서 정육식당을 하십니다?”

“정육?”

“네.”

“예전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위장 사업으로 꼭 정육점을…….”

와, 조연준 이녀석 고집있네. 아니, 창의적이라고나 할까?

어떻게든 나를 어둠의 세계로 등떠밀고 싶은 건가?

“내가 진짜 그런 계통이면 말 조심 하는 것이 어떨까?”

“……내가 실수했군. 사과하지.”

아니, 진짜로 사과하지는 말고…….

얘도 은근히 농담이 안 통하는 타입이다.

“대충 내용은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정보만 찌라시꾼들에게 띄우라고 지시하면 되는 거로군요.”

“그렇지. 돈 걱정은 말고. 이것도 나름의 마케팅이니까. 홍보비 명목으로 계산할거야.”

결국 찌라시도 일종의 바이럴마케팅 아니겠나?

사람들 스스로가 알음알음 이 정보를 퍼트리기 시작하면서, 맥베스가 손댈 제작사를 물색하기 시작할 것이다.

갑작스러운 인수 소식은 주가를 띄우기 마련.

무엇보다 지금 맥베스의 성장세와 한국 미디어 컨텐츠 사업의 창창한 미래를 고려해보면 이 소식을 접한 투자자들의 코끝이 돈 냄새로 찌릿찌릿할 거다.

그렇게 먼저 주식쟁이들이 움직이고, 그 뒤를 기자들이 쫓고 마지막으로 일반 대중들의 귀까지 닿으면…….

“그럼 나는 한국시장이 시끌시끌해지는 시점에 월스트리트에 여론공작을 취하면 된다는 거로군.”

“맞아. 정답이야.”

역시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음험한 공작은 조연준이 칼 같이 알아듣는다.

자, 콧대 높은 할리우드의 제작사들을 어느 수준까지 조련할 수 있을지, 한번 시작해 보실까?

다스베이더식 리더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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