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염종수는 빠르게 움직였다.
“앞으로 석달간 무조건 이 내용이 들어가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
업자들은 딱히 입을 열지 않고 주어진 내용만 읽을 뿐이었다.
무언은 긍정의 신호다.
주변인들의 인식에 염종수는 폭력배라기보다는 어딘가에 속한 경호원이나 비서 같은 인상이 강했다.
그 말은 적어도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쓸데없이 불편한 상황을 연출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 있는 업자들 중에서 염종수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금액은 계좌로 쏴드리겠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이거 혹시 주가 조작 관련입니까?”
한 업자의 질문에 염종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사설 붙이거나 소설 쓸 생각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부분 무척 중요합니다. 제가 따로 연락 드리지 않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짧은 한마디에 주변의 온도가 1도쯤 내려앉은 것 같았다.
염종수는 단순한 말 한마디로 주변의 온도를 낮추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찌라시 업자치고 산전수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없다.
그리고 그렇기에 염종수의 당부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 주기별로 내용을 쏴드리겠습니다.”
제법 알려진 업자들은 죄다 동원된 상황. 모두는 이번 일이 여느 때와 같은 가벼운 일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각자의 방식대로 염종수가 내어준 자료를 꾸밀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지체 없이 자신들이 지닌 메신저나 모임에 해당 내용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국내 대형 게임 개발사가 할리우드의 영상 제작업체를 인수하려는 정황이 포착됨. 관련 주가가 들썩일 전망.]
[무려 1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는 제보가 있음.]
[A사는 유례가 없는 거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와 발맞춰 할리우드 제작사들까지 엉덩이를 들썩이는 상황.]
업자들이 퍼나르기 시작한 정보의 홍수에 여러 B급 언론사들까지 이 정보를 토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표세인 조차 예상하지 못한 파급력이었다.
덕분에 표세인은 당황하고 있었다.
“주가가 오르고 있다고?”
“응.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표세인은 연아의 말을 듣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찌라시 좀 뿌리라고 했을 뿐인데…….”
염종수는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성심성의 껏 일을 해버렸다.
거기에 그간 맥베스의 실적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
눈치빠른 이들은 찌라시의 내용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이 모든 이야기의 주체가 맥베스라는 것을 깨닫고 뭉칫돈을 투척한 것.
“대체 무슨 찌라시를 어떻게 뿌린거야?”
애초에 마케팅 홍보로 주가가 오르는 예는 있지만, 고작 3억이라는 푼돈으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 표세인과 연아는 알지 못하고 있던 사실 하나.
조연준 역시 월스트리트에 맥베스와 할리우드에 관한 여론을 퍼트리며 해외투자자들의 시선까지 맥베스로 향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녀석들 일을 정말 잘하네?”
염종수와 조연준의 묘한 캐미스트리랄까? 따로 연락한번 하지 않은 주제에 손발이 척척 맞는 느낌이었다.
‘이거, 보너스라도 줘야 하려나?’
표세인은 그들에게 특별 상여금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
*
*
“역시 이번에도 마법을 부리셨군요.”
양성태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제가 부린 것은 아니지만요.”
모든 것은 염종수와 조연준의 활약이다. 내가 그들의 공로까지 염치없이 탐할 생각은 없다.
“이 업체……. 생소한 상호인데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군요.”
양성태는 염종수의 조직이 운영하는 마케팅 업체의 상호를 거듭 확인하며 말했다.
“대형 마케팅 회사도 아니고 어딘가에 특별히 광고를 넣은 것도 아닌데……. 우후죽순 후속 기사들이 따라 붙다니……. 이건 정말이지 놀랍군요.”
게임 마케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찌라시를 이용한 마케팅까지 손을 댄 회사는 없었다.
그저 할리우드 제작사들의 귀까지 들어가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였는데, 설마 본사 주식까지 상승세를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쪽 방식이 그렇게 몇 번이고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요.”
“쥐만 잘 잡으면 고양이의 털색은 상관 없는 법이지요. 저희야 그저 마케팅 의뢰를 한 것 뿐이지 않습니까?”
양성태의 말은 다소 의외였다.
“부사장님이라면 이런 방식은 달가워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증권가 찌라시를 이용하는 방식이요?”
“뭐랄까 빅리그의 방식이 아니란 느낌이지 않습니까?”
내 말에 양성태는 싱긋 웃었다.
“자세히 말씀드릴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회사라는 것은 때때로 법망의 경계선을 오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애초에 국내 대기업들 상당수가 세금으로 제 덩치를 불린 사례가 수없이 많다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부끄럽게도 그런 쪽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런 솔직함과 소탈함이 대표님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도 과거 정치인들을 만나거나, 기자들을 상대하는 등의 이런저런 열외업무를 담당하곤 했었습니다.”
“회장 비서라는 것은 정말로 바쁘군요. 아! 그런데 그런 부분까지 홍기도 녀석에게 가르쳐주실 건가요?”
“안됩니까?”
양성태는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안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 녀석이 그런 일을 제대로 해내는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 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쪽은 다른 느낌의 인재가 필요하겠지요. 안 그래도 이런 분야에서 대표님을 보좌할 새로운 비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새로운 비서요?”
“홍기도 과장이야. 수행비서 역할이고, 내근 비서는 따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사실 미국행을 고려해 경호원도 필요한데……. 뭐 그 부분은 경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군요.”
저도 총 맞으면 죽습니다?
경호원은 뽑아주세요.
“그래도 미국은 위험하니, 경호원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예전에야 일개 사원 신분이었으니, 그렇다치지만 이제는 어엿한 대표다.
나도 경호원을 대동하고 움직여 보고 싶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미국 지부에서 처리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긍정적인 반응이던가요?”
“네. 담당자도 바뀌고 무척 적극적이더군요.”
흔한 저작권 협상이 아닌, 무려 1조원 가량의 막대한 자금이 투자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무성해지니, 서서히 콧대 높은 할리우드가 슬그머니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좋은 일이군요.”
“물론 조금 늦었지만요.”
“늦었다고요?”
“이제 칼자루는 우리 손에 쥐어진 셈입니다. 제가 문상무에게 다른 제작사쪽에 접근해보도록 요청을 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더군요.”
“몇군대나 요청이 왔죠?”
“이름만 대면 알법한 대형 제작사들이 즐비합니다. 단순 IP 관련만이 아닌 투자 쪽으로 접근한 것이 그들을 사로잡은 것 같습니다. 근래 판데믹으로 투자가 여의치 않은 상황인 모양이니까요.”
역시 조회장의 혜안은 훌륭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로 투자를 감행할 계획이 있으신겁니까?”
“하하, 글쎄요? 그건 계산기를 좀 두드려봐야하지 않겠습니까?”
“훌륭한 답변이십니다.”
양성태는 내 대답이 무척 흡족한 것 같았다.
딱히 거짓말을 하려는 생각은 아니지만, 투자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나?
이리저리 따져보고 계산이 서지 않으면 당연히 투자는 중지 되는 것이 맞다.
“한번 느긋하게 기다려보죠. 저들이 우리의 지갑을 열고자 얼마나 노력하는지.”
내 말에 양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래서 일은 잘 되어가고 있다고?”
오늘은 모처럼 조회장과 나 그리고 연아. 이렇게 세사람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모두 바쁜 관계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네. 말씀해주신 조언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진행 될 것 같습니다.”
“아니, 뭐. 돈 다발 쥐고 있으니 좀 흔들어 보라고 했을 뿐인데…….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주가까지 띄워버리는 거냐.”
조회장의 말에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로 이 건에 관해서는 예상 밖의 일이다.
“그래서 다음주에 미국에 간다고?”
“네. 할리우드를 방문한 다음에는 제임스네 부부와 함께 텍사스에 가보려고요.”
“나는 텍사스로 바로 갈 거에요.”
“그렇군. 적적하겠구만.”
조회장의 말에 연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굳이? 오빠가 여기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원래도 저는 자주 출장다녀왔었고요.”
“이 녀석이 들어온 덕분에 이렇게 식사도 자주 함께 하게 되었잖나. 너는 원래 방에서 일하면서 대충 때우기 일쑤였으니까.”
“그럼 함께 가실래요?”
“아니. 너희 둘다 가면 나라도 회사에 남아 있어야지.”
“부사장이 잘 하겠죠. 요즘 아빠가 회사일 하는게 뭐가 있다고요.”
“오너는 자리를 지키는 것도 일이다.”
조회장은 그렇게 말하며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번 일에 조연준 그녀석도 한 몫거들었다고?”
“네. 의외라고나 할까요? 솔직히 제 기대를 훌쩍 넘은 성과를 보여주네요. 이러니 저러니해도 실력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애초에 연아와 제임스도 그렇고……. 조씨집안 일솜씨 하나는 기가 막힌 것 같다.
조연준은 인성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요즘 자주 얼굴을 보다보니, 조금 정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제임스에게 그녀석을 붙여줄 줄이야. 어려서부터 눈만 마주치면 찬바람 쌩쌩 불던 녀석들인데……. 참으로 별일이 다있군.”
“그런가요? 일단 제임스에게 듣기로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네가 의외로 이 집에 복덩이로 구나.”
“하하하, 그런 표현은 처음이네요.”
다소 옛스러운 표현이지만, 은근히 싫지는 않다.
“참! 미국에 간 김에 해결해 줬으면 하는 일이 하나 더있어.”
“뭔데?”
“앰플에 방문해서 에머리와 앞으로의 일을 좀 논의해줘. 그리고 그쪽의 게임사업 진척도도 좀 확인해줬으면 좋겠어.”
“그렇네. 말이 나온 것도 제법되었는데, 정작 그쪽은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
앰플은 게임 시장 진출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에머리는 그 일로 우리에게 파트너쉽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아직 이렇다 할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앰플이 의외로 일 처리가 더뎌. 이대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야.”
“그러면 곤란하지, 소일연의 프로젝트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었어?”
“뭐 그렇긴한데, 그게 아니더라도 스트리밍 시스템은 확보하려고 했었으니까, 겸사 겸사지.”
“오케이, 앰플쪽과 스트리밍 시스템 쪽도 신경쓸게.”
뭔가 대표다운 일이 들어왔다는 느낌이네.
“그런데 홍기도 과장도 함께 가는 거지?”
“일단 그렇지 않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번역기(?) 용도라도 홍기도는 필요하다.
“쉬린칭이 많이 서운해하려나?”
“흠, 확실히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모양인데, 갑자기 떼어놓으려니 미안하네.”
“설마 함께 간다고 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에이, 설마 아무리 쉬린칭이라도…….”
설마…….
아니겠지?
팬심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