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65화 (265/346)

265.

일론 머스크는 주말에도 일을 쉬지 않는다.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이며 가장 유명한 경제인임에도 비서를 두지 않고 오늘도 스스로 메일을 검색하며 투자자들의 제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는 투자를 까다롭게 받아들이기로 유명했다.

하는 일마다 워낙 승승장구하는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지분을 아주 조금이라도 얻어내기 위한 투자 요청이 끊이질 않았지만, 지분에 관해서는 무척 엄격하게 컨트롤 하는 일론 머스크이기에 지분 문제가 언급된 투자 의향서는 단번에 무시했다.

메일 정리를 끝낸 일론 머스크는 잠시 짬을 내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가 휴식을 취할 때 하는 것은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요즘 푹 빠져있는 것은 맥베스라는 게임 회사에서 출시한 스쿨런이라는 게임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무척 독특한 방식의 게임 플레이로도 유명했는데, 어떤 게임에서는 방패 두 개를 양손에 쥔 전사를 육성하는 기행이 SNS로 퍼지면서 하나의 밈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스쿨런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게임이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만날 때마다, 그리고 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달라지는 NPC들의 반응이었다.

여러모로 훌륭한 전투시스템과 흥미로는 컨텐츠가 돋보이는 게임이었지만, NPC와의 상호작용만큼 일론 머스크를 사로 잡는 것은 없었다.

“흠…….”

무척 뚱한 표정으로 게임 패드를 조작하는 그의 모습은 즐기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실제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특유의 표정이 그가 가장 즐거울 때 종종 나타나는 표정임을 알고 있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때 순수하게 즐기기보다는 그것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으로 자신만의 즐거움을 도출하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명백히 후자에 속한 사람이었다.

-우우웅.

그때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스페이스 X의 외부 투자 담당자였다.

“무슨 일이지?”

-안녕하십니까. 다소 묘한 제안이 들어와서 연락드렸습니다.

“묘한 제안?”

기본적으로 해외 유명 투자자들은 일론 머스크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하기 마련이지만, 마땅한 파이프 라인이 없는 이들은 보통 각 회사로 먼저 연락하기 마련이었다.

이 같은 접근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담당자들은 무척 까다로운 기준으로 일론 머스크에게 전달할지, 말지를 판단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직접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요즘 스쿨런이라는 게임에 푹 빠져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어떻게 알았죠?”

일론 머스크의 질문에 담당자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NS 계정을 가지고 있고, 근래 그곳에 스쿨런이라는 게임에 대해 수없이 언급해 놓고서는, 어떻게 알았냐고 질문하다니.

하지만 담당자는 넉살 좋게 웃으며 그냥 본론을 던졌다.

-스쿨런을 개발한 맥베스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 가만 그런데 스페이스X 쪽으로 연락을 해왔다고?”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대표 회사는 다름 아닌 테슬라와 스페이스X였다.

이중에서 게임회사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곳이라면 나름 IT관련 사업을 계획, 추진중인 테슬라 쪽이었다.

하지만 지금 담당자는 분명히 스페이스X였다.

“설마 지분투자는 아니겠지요?”

자신이 스쿨런의 팬인 것은 맞지만 만약 지분 이야기라면 일고의 가치가 없이 쳐낼 뿐이다.

맥베스라는 회사의 규모는 자신에게 지분 투자를 요청할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거라면 제 선에서 정리했을 것입니다.

“그런가요? 그럼 어떤 요청이었습니까?”

테슬라가 아닌 스페이스X 쪽에 의견을 타진해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일론 머스크는 IT 분야의 깨어있는 사상을 좋아한다.

그 역시 가장 깨어있는……. 아니, 깨어있다 못해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면서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스타링크 시스템을 자신들이 고안중인 게임 클라우드 서비스에 접목시키고 싶다는 파트너쉽 제안이었습니다.

스타링크 그리고 클라우드 서비스.

일론 머스크는 살짝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과거 페이팔 합병이나, 기타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느꼈던 바로 그것이다.

스타링크는 위성 인터넷 제공을 제외하면 아직 이렇다할 사업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직 인공위성도 더 띄워야 했고 대도시 밀집 지역에서의 트래픽을 완전히 감당하는 것은 무리다.

하물며 게임 트래픽은 숫자는 모바일 이용보다는 비교 불가로 적을 테지만, 한번에 이용되는 데이터 량은 막중하다.

이 부분은 스타링크의 개발진들도 고민하고 있는 상황.

애초에 현시점에서 스타링크를 통한 위성 통신망은 대도시가 서비스 지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스타링크가 가야할 길이기도 했다.

-단순한 메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프로젝트와 스타링크의 시너지를 면밀하게 계산해서 제안했더군요. 무엇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게임 송출 자체가 아닌, 레이턴시만 해결해 주길 바란다는 것을 확고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역시, 자신이 오싹함을 느낀 감각은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론 머스크는 이성적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감각적 흐름대로 사고하는 편이었다.

리버럴한 공화주의자라는 어색한 정치관도 거기에서 기인한다.

“레이턴시……. 확실히 그거라면…….”

중증 게임 덕후인 일론 머스크는 곧장 그 의미를 깨달았다.

애초에 일중독자로 유명한 그는 과거 모잠비크로의 2주간의 휴가를 떠났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해맨 경험이 있었고 이후에는 일주일 이상 장기 휴가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정말 죽을 뻔 했어요. 그래도 휴가에 대한 교훈은 확실하게 배웠죠. 휴가 가면 죽을 것이다.]

그의 유명한 인터뷰 역시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

덕분에 그는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게임이나 취미생활에 할애하는 편이었다.

어쨌든 그런 그였기에 게임 데이터가 아닌 레이턴시만을 이용하겠다는 맥베스의 요청의 핵심을 바로 파악했다.

“이건 만나봐야겠군.”

이 작은 파트너쉽이 커다란 사업적 아이템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낙후지의 위성 통신망을 제공한다는 것 외에는 명확한 사업 아이템이 없는 상황.

물론 스타링크의 잠재적 가치는 다른 분야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사업적 기회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게임 업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온 그였다.

당장은 여력이 닿질 않은 탓에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이참에 기회가 된다면 슬쩍 한 발 내디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군. 내 일정을 검토해봐야겠군.”

-그러실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연락해줘서 고마워요.”

만약 둔한 사람이었다면 큰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이런 자잘한 요청을 묵살해버렸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고 직접 연락을 주었다는 사실이 무척 고마웠다.

-별말씀을요. 저도 스쿨런 좋아하거든요.

갑작스러운 담당자의 커밍아웃은 일론 모스크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저는 지금도 붙잡고 있습니다.”

-저는 세 번이나 엔딩을 봤습니다.

“엔딩이 중요한 게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엔딩을 볼때마다 내용이 바뀐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저는 천천히 즐기는 편입니다.”

-네, 네. 그러시군요.

“…….”

-…….

일론 머스크는 폭군에 가까운 경영방침을 앞세우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권위주의적인 인물은 또 아니었다.

특히 스페이스X 초기 출범 당시 작은 섬을 양도받아 직원들과 함께 숙식하며 지냈을 정도로 허물이 없는 인물이기는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담당자는 보너스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것.

*

*

*

“후우……. 후…….”

문상훈은 아침부터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많이 긴장되시는 모양입니다?”

“그럼! 당연하지. 천하의 일론 머스크야. 기업인들 중에서 그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나?”

예상보다 빠르게 스페이스X 측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보낸 사업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기쁜 이야기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덧붙인 한 마디.

무려 일론 머스크가 직접 우리를 만난다는 것.

덕분에 우리는 스페이스X의 본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주 호손이 아닌 일론 머스크의 거주구인 텍사스로 향하게 되었다.

“안그래도 텍사스로 가려고 했었는데, 일이 묘하게 진행되는 군요.”

“나는 텍사스에 갈 예정이 없었는데 말이지.”

“그럼 지금이라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도 좋다. 라고 하려고 한 순간, 문상훈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슬쩍 말을 돌렸다.

“정작 영화 제작사들과의 미팅은 제 손을 떠났다는 것이 다소 아쉽군요.”

일론 머스크와의 만남이 더 중요했기에, 나는 그와의 협상 결과에 따라서 영화 제작사들과의 미팅을 진행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따라서 미국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기에 나는 이대로 텍사스에가서 일론 머스크와의 협상을 진행한 뒤, 미국 지부의 아나 알론소에게 뒷일을 부탁했다.

어차피 타겟으로 노리고 있는 IP에 대해서는 말해둔 상황이고, 진행만 그녀에게 맡길 뿐이다.

“그런데 정말로 의외로군요. 일론 머스크가 직접 우리와 만나겠다고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지? 대체 왜 일까?”

그의 사업스케일을 고려할 때, 아예 맥베스 자체를 인수해버려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작해야 레이턴시 데이터 처리를 위해 스타링크의 위성망을 조금 이용하겠다는 정도의 제의를 한 것 뿐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를 텍사스까지 오라면 비행기표까지 끊어서 보냈다.

당연히 우리가 움직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오만함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굳이 비행기 표까지 끊어준 것은 약간은 대접을 받는 기분이라서 나쁘지 않았다.

“제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제임스는 드물게 흐뭇한 표정이었다.

“텍사스에 좀 더 빨리 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네. 아내와 아이가 너무 보고 싶군요.”

제임스는 사진을 향해 애틋한 시선을 보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마트폰이 아닌 실제 사진을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 참 묘하다는 느낌이었다.

“가족을 정말로 사랑하시는 군요.”

“네. 저희 가정사가 다소 복잡하다 보니, 저는 어려서부터 저만의 가정을 꿈꿔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연아와도 상당 부분 겹치는 느낌이 있었다.

“아이는 더 생각이 없으십니까?”

“나중에는 모르지만 당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연아는 가끔 아이를 많이 가지고 싶다고 하거든요.”

부회장 업무도 바쁠텐데, 아이를 많이 낳으면 과연 감당이 될는지…….

그때쯤에는 나도 내 원대한 야망을 이루어 집에 틀어박혀 육아와 살림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저도 기쁘네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저도 연아와 만나게 되니까요.”

제임스의 가족과 연아. 우리는 그들과 텍사스에서 만나 짧은 휴가를 보내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의 초대 덕분에 이 일정이 다소 빨라지게 되었다.

“여러모로 기대되네요.”

이제는 익숙해진 퍼스트 클래스의 좌석에 몸을 기대며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상상했다.

주먹을 불끈 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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