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일론 머스크.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개인 자산 3,000억 불을 돌파한 인물, 우주항공, 전기차, 인공지능, 위성 인터넷, 초고속 열차등의 첨단과학기술 분야를 선도하며 SNS에 올린 한 마디에 주식시작을 들끓게 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
그런 남자를 만난다는 것.
정말로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어떤 사람입니까?”
“최고의 경영자.”
“일 중독 소시오패스?”
문상훈과 홍기도는 서로 상반된 의견을 내 놓았다.
“대체 무슨 말인가. 그런 건 다 언론이 만들어낸 헛소문이야. 대기업 회장들은 죄다 인격 파탄으로 몰아가지 않으면 성에 안 차는 거지. 애초에 인격파탄자가 사람들을 이끌면서 그런 엄청난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언론기사를 너무 믿으면 안 돼.”
“그 반대죠.”
“반대라니?”
“본인이 일중독이라는 것을 모르고 남들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쥐어 짜대고 결국 성공하는 거죠. 그런 것을 소시오패스라고 하는 것 아닌가요?”
“쥐어짠다니……. 듣기 좀 그렇군. 나중 일이야 모르는 거지만, 자네도 만약 높은 위치에 서게 된다면 맨파워를 극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될 걸세.”
나중 일을 모르기에는 홍기도 녀석의 신분이 장난 아니지.
가업을 잇든, 쉬린칭의 옆에 서든, 결국 엄청난 위치에 서게 될 것이 예정된 녀석이 아니던가.
물론 홍기도 본인의 캐릭터를 놓고 보면 나보다 더 빨리 가정의 기둥이 되는 업적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음…….”
“엇! 갑자기 한기가! 내가 위험해!”
순간 홍기도 녀석이 얄밉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녀석이 금새 눈치채고 가드를 올렸다.
젠장, 눈치만 빨라가지고선…….
“미디어 매체에서 논의되는 그의 성격을 가지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요. 그보다는 우리가 노릴 수 있는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제임스가 담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우리가 전원 한국계라는 것은 어떻게 받아 들여질지 생각해 볼까요?”
정작 한국계는 본인 한명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한국 국적자지만…….
이런 쓸데 없는 부분까지 괜히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
“다행스럽게도 일론 머스크는 한국에 상당히 우호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요? 그가 한국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
“그가 대학을 중퇴하고 실리콘밸리에 처음으로 회사를 창업했을 때, 처음으로 뽑인 인턴이 한국인 엔지니어였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한국에서의 테슬라 판매량과 스페이스 X의 초기 서비스 지역에 한국이 포함된 것. 근래 SNS에서 한국에 대해 언급한 것들을 두루 고려할 때, 적어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SNS에서는 한국욕했다고 하던데? 수십년 후에 한국 없어질거라고…….”
홍기도가 냉큼 제임스의 말을 물었다.
“그건 사실과는 다릅니다. 그는 단순히 세계적으로 저출산화가 가속되어가는 현세태를 우려하는 의미로 SNS에 글을 올린겁니다. 애초에 한국만 언급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한국이 출산율 하락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른 상황이기에 다소 두드러지게 보여진 것이지요. 반대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전혀 무관심하다면 이런 것 까지 알고 있겠습니까?”
“훗, 들었나? 언론이라는 것을 걸려들어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거지.”
문상훈은 제임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홍기도를 향해 턱끝을 치켜세우며, ‘내 말 맞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홍기도는 지지 않았다.
대체 왜 지지 않으려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제임스 개인의 분석이잖아요. 이것이 100%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언론도 믿지 말라면서 한 개인의 견해를 너무 맹신하시는 것 아닙니까?”
“으음…….”
의외로 논리적인 홍기도의 반격에 문상훈은 그답지 않게 말문이 막힌 모양.
“……제임스는 남다른 식견을 가진 남자야.”
“기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죠!”
“아니야. 없어. 우리 제임스 같은 사람 그렇게 흔하지 않아.”
제임스 같은 캐릭터가 절대로 흔하지 않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이런 말장난 같은 대화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문상훈의 모습도 퍽 우스웠다.
홍기도는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수준으로 낮추는 묘한 재주가 있다.
달리 말하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재주랄까?
어쩌면 나도 이 녀석과 너무 붙어다닌 탓에 필요 이상 가벼워 보이는 것일 지도 모른다.
순간 이 녀석 그만 팀장으로 보내버릴까? 하는 유혹이 생겼다.
“어쨌든 지금 기댈 곳은 인터넷에 있는 일론 머스크의 정보뿐이죠. 일단 그가 한국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중요하겠군요.”
의외로 글로벌 스케일 사업 협상에 있어서 해당 국가에 대한 선호도는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국 같은 곳도 그렇지만, 미국의 대기업들은 특히 공화당 지지자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미국과 각을 세운 국가에 앙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그는 IT업계 인물이면서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죠.”
“그가 이민자 출신이라서 정부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연기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많은 사람들이 일론 머스크를 태생부터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남아프리카 출신이다.
이 부분은 나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세계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미국계기업의 총수가 이민자라는 것이 퍽 묘한 느낌이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부터가 이민자 국가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금방 이해가 되었다.
오히려 현재 공화당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줄이려 하는데, 그런 공화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뭐랄까,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그것도 맞다고 봅니다. 다른 사업은 둘째 치더라도 우주항공 사업은 정부의 지원없이는 애초에 손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업이니까요.”
“그렇군요. 가급적 같은 IT업계 사람이라는 생각은 접어두는 편이 좋겠군요.”
“네.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타입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미 과거의 행적으로 현재의 그를 규정하는 것은 어렵겠죠. 하지만…….”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보수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자유주의라고 천명한 바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째서죠?”
“일론 머스크의 게임 사랑은 유명합니다. 게다가 일본계 서브컬쳐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지요. 일종의 오타쿠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적인 대재벌과 오타쿠.
정말로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또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가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이 우리가 노려야 할 맹점이지요. 사실상 우리의 사업 아이템이 어느 정도의 금전 가치로 인식될 지는 장담하기 어려우니까요.”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애초에 착안 포인트자체가 스타링크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발족시켰음에도 이렇다 할 파생상품을 언급하지 않았으니까요.”
고작 인터넷을 뒤져 얻어낸 정보이기에 완벽하다 보기는 어려운 정보이지만, 스타링크의 사업성은 대중 보다는 미국 정부, 더 깊게는 국방부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방부는 차세대 전술 통신망을 바랐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나사 보다 민간 기업이면서도 훨씬 싼 가격에 수주가 가능한 스타링크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며, 우리는 이것이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라는 것을 전제로 접근했다.
따라서 비어있는 사업계획에 슬쩍 한 줄 채워 넣기만 한다면…….
사실 기대 수익 자체를 기대한다기 보다 홍보 효과로는 오히려 영화사의 대형 IP를 손에 넣는 것 이상으로 크다는 생각에 갑작스럽게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그의 게임사랑은 게임어워드 같은 행사에 초청되어 관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게임을 사랑했고 그것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라고 몇 번이고 언급했으니까요.”
“지금까지 그런 인물이 왜 게임 쪽과는 인연이 없었을까요?”
“글쎄요. 어쩌면 취미와 사업을 분리하는 쪽이거나, 자신의 남다른 비전의 추구가 우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렇게 제임스를 중심으로 일론 머스크를 공략하기 위한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점검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계획을 수립하며 다가올 일론 머스크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그리고 비행기가 착륙하고 게이트로 빠져나올 때였다.
“웰컴! 웰컴!”
나와 비슷한 신장의 키를 지닌 백인 남성이 스쿨런이라고 적인 팜플렛을 머리위로 휘두르는 것이 포착되었다.
“저, 저기…….”
가장 먼저 발견한 문상훈이 손가락으로 남성을 가리키며 덜덜 떨었다.
잠시 후 우리도 문이사의 손가락을 쫓아 남성을 발견했다.
“맙소사…….”
“이건 정말 상상도 못했군요.”
일론 머스크라는 남자와의 첫 만남이 어떤 느낌일지.
나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하지만 맹세컨대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스쿨런 팜플렛을 들고 설치는 남자.
저 남자가 바로 세계 최고의 거부이자,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재계의 거인.
일론 머스크였다.
‘키가 나랑 브슷하네.’
나와 생각보다 체격이 너무 흡사해서 나는 다소 놀랐다.
“반갑습니다. 표세인입니다.”
“일론 머스크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무래도 제 일정에 맞춰달라고 부탁할 수 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시간을 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홍기도는 내 뒤에서 일론 머스크의 말을 통역해 주었고, 내 말은 제임스가 일론 머스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그 티셔츠…….”
“알아 보시는 군요! 혹시 좋아하십니까? 이 캐릭터가 제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입니다.”
알긴 아는데……. 그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고요.
메이드복을 입은 뿔난 소녀의 일러스트가 프린팅된 티셔츠.
나도 알기는 하지만 직접 본 적은 없는…….
뭐랄까, 상당한 덕력을 자랑하는 이들만이 알고 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일론 머스크쯤 되는 남자가 공항에서 이런 티셔츠를 입고 있다니!
“일단 장소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가시죠. 마스터 세인.”
마스터? 순간 홍기도가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해 못할 정도의 문장도 아니었다.
그런데 미스터가 아니라 정확히 마스터라고 발음했다.
뭐지?
그런데 갑자기 홍기도가 돌발 행동을 벌였다.
“질문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를 향해 번쩍 손을 들며 질문하는 홍기도.
그러나 일론 머스크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불쾌해하는 기색 없이 푸근한 미소로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말씀하십시오.”
“미스터가 아니라 마스터라고 하신 것 맞습니까?”
나도 궁금하긴 했는데, 그걸 이렇게 갑자기 질문하다니…….
정말로 홍기도는 다른 것은 몰라도 강심장 하나는 알아 줘야 한다.
“맞습니다. 정확합니다.”
“왜죠?”
“제가 스쿨런을 좋아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들고 있는 스쿨런 팜플렛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그거랑 마스터는 무슨 상관인가?
“그래서 이 게임을 개발한 표세인이라는 개발자를 검색해봤더니, 이런 동영상이 뜨더군요.”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그 속에는 내가 방송에서 익스트림 발차기 묘기를 선보인 그 장면이 연출 되고 있었다.
“아…….”
“그거 아십니까?”
“뭐요?”
“저는 UFC를 운영하는 엔데버그룹 홀딩스의 이사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괴롭힘에 저항하고자 여러 가지 동양 무술들을 배웠고, 지금도 격투기들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마스터 세인의 발차기는 정말로 멋지더군요. 한국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은 화려해서 좋았지만, 발로 병뚜껑을 따고,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는 모습은 정말이지…….”
일론 머스크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로 인상 깊었던 모양.
그리고 그 순간 내 뒤에서 문상훈과 제임스가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현하는 것을 포착했다.
저는 부끄러운데, 여러분이라도 기쁘셔서 다행이네요.
정말로 첫 만남부터 상상 밖이다.
무슨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