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일론 머스크가 안내한 곳은 공항 안에 있는 작은 세미나룸이었다.
“먼 곳에서 오셨는데, 이런 곳으로 안내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제가 마침 몇시간후에 이동해야할 처지라서요.”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었는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하지만 먼저 사과부터 드려야할 것 같군요.”
“사과요?”
“스타링크는 이제 막 첫 걸음을 땐 상태이고, 아직은 게임의 영역에 손을 뻗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저희를 빠르게 불러주셨습니다만?”
내 말에 일론 머스크는 실실 웃으며 팸플릿을 들어 올렸다.
“말씀드렸다시피 스쿨런 개발자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저에게는 나쁠 것이 없는 이야기군요. 이렇게 만나주셨으니까요.”
어차피 요청을 한 것은 우리였지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만나버린 이상 반드시 사업이 추진되도록 노력해봐야겠지.
“당신의 게임 사랑은 유명한데, 당신 정도의 자본가라면 게임 개발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우선은 기름칠.
관심도가 약한 사업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보다는 어느정도 대화의 물꼬를 이어가며 상대를 파악해야겠지.
워낙에 내 주변에 독특한 캐릭터들이 많아서 이런 잔재주가 자연스럽게 늘어버렸다.
“생각은 무척 많이 했었지요. 하지만 인류를 화성에 보내는 것을 떠올리고 부터는 다른 쪽은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
“현재 상태에서는 200일이면 화성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화성인류는 스타링크를 통해 지구와 교신을 하게 되는 겁니다.”
공상과학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것을 이뤄가고 있는 남자의 말이었다.
무게가 남다르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무척이나 눈을 반짝였다.
즐거워 죽겠어. 너도 내 말을 들어보니 그렇지? 라는 듯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일단 인류는 화성으로 보내는 것과 뉴럴링크를 통해 진정한 유비쿼터스를 이루는 것. 당장 이것이 중요한 덕분에 사소한 사업 라인은 크게 고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계획마다 상식을 벗어나는 이야기들뿐이다.
하지만 한걸음씩 진정한 미래로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다소 감동까지 느껴질 정도.
“하지만 그 계획들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죠. 애초에 스타링크는 스페이스 X를 지원하기 위한 캐시카우로의 역할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만으로는 당장 이렇다 할 수익성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것이 스타링크였다.
게다가 스타링크는 차후 수익성이 확보되면 별도로 상장하겠다는 발표도 하지 않았던가?
결국, 일론 머스크가 돈벌이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다.
정확히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겠지.
“일단 기술적으로는 저보다 잘 아실 테니까. 주요개요만 설명하겠습니다. 게임 클라우드 시장은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유비쿼터스의 미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죠.”
“네. 저도 정확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클라우드 서비스 기술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데이터 전송량을 다른 기업에 비해 극한까지 낮출 수 있지요.”
소일연이 실리콘밸리에서 개발한 차세대 기술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상황.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마저도 그것을 들어봤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스타링크에 그 모든 데이터를 부담시키는 것은 당장은 무리겠죠. 그러니 레이턴시 문제만 해결해 주시길 바랄뿐입니다.”
“네. 솔직히 그 제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만날 일도 없었겠지요.”
스타링크는 갑자기 나타난 신기술이라기 보다는 그저 물량으로 압도하는 위성통신망일 뿐이다.
데이터는 매질을 타고 움직일수록 느려진다. 아무리 최고의 광섬유라 할지라도 직접 위성을 통해 삼각 교신을 하는 것 보다 빠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 상태로 우리가 가져온 것 보다도 매력적인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기업들 자체가 실제 영업이익보다는 일론 머스크의 비전과 이름값에 의해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도 스타링크의 가치가 여러 확장성을 지닌 시스템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레이턴시 데이터 처리 뿐이라면 충분히 현재 우리가 구축한 위성 통신망으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시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제가 얻을 것은 너무 미비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레이턴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우리도 그리 대단한 예산을 할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드디어 일론 머스크가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전환하게 된 시점.
이 곳이 분기점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스타링크는 아직 첫걸음마를 뗀 상황이며 우리는 그보다도 뒤쳐진 상태입니다. 만약 스타링크의 기술력이 높아지고 클라우드 게이밍 사업이 본 궤도에 이르면 우리의 파트너쉽은 전혀 다른 전환점을 맞이할 것입니다.”
“전환점이요?”
“현재 스페이스 X의 핵심 투자금은 미국 국방부와 해리스 테크놀러지와 수주한 3억달러 수준의 계약이라고 알 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 15억달러 수준의 투자를 받았지만 그것들 태반은 연구와 로켓 개발로 녹아버린 상황.
“그렇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순순히 인정했다. 이미 숨기려해도 하도 언론에 대서특필된 자료이기에 의미가 없기도 하다.
3억달러라면 약 4천 2백억 정도 수준.
“아직도 불안전하다는 클라우드 서비스의 연매출 수준은 484억 달러, 영업이익은 167억 달러 수준입니다.”
“네. 게임 시장이 큰 돈이 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 우려스럽습니다. 제가 알기로 맥베스는 아직 클라우드 서비스 제품을 선보이지도 않은 상황 아닙니까.”
일론 머스크가 한 번 더 조심스럽게 나를 훑어보았다.
본질적으로 상대의 허실을 탐하는 성격인 모양.
하지만 지금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이론적인 기대치를 충족하게 되면 더이상 값비싼 PC나 콘솔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겁니다. 넷플릭스 같은 괴물 OTT가 시장을 장악하며 덩치를 불려가고는 있지만,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대형 게임 IP하나의 수익이 할리우드의 1년치 수입 전체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개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가 없군요.”
“말씀하십시오.”
“그 대단한 업적을 당신이 어떻게 달성할 수 있다고 믿으라는 겁니까?”
일론 머스크는 핵심을 찔러 들어왔다. 시장의 흐름이 그렇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장의 수혜자가 우리가 될 거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이제 진짜 도박을 걸어봐야 하는 시점이 왔다.
“테슬라는 수년전까지 차 한 대도 팔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 기업가치가 한국 굴지의 자동차 회사를 넘볼 수준까지 이르렀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는 급히 일론 머스크의 말을 잘랐다.
무례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극딜에 나선 상황에소 상대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줄 수는 없다.
“당시 테슬라의 가치는 비전과 일론 머스크라는 남자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모두가 언젠가는 막연히 다가오리라 예상한 전기차의 시대.
하지만 그것을 누가 이뤄낼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겠나?
“일단 저희쪽 비전은 충분히 납득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저도 클라우드 서비스가 차세대 주요사업 아이템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저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겠군요.”
“……예. 지금까지는 무척 흥미롭습니다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군요. 좀 더 저를 설레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방면의 대 선배다운 여유랄까? 일론 머스크는 인자한 미소로 내 말을 기다렸다.
“저와 당신은 어쩌면 정반대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요? 그러면 안되지 않습니까?”
“아니요. 됩니다. 한 번 들어보시죠.”
나는 앞에 있던 물잔으로 입을 축였다.
“당신은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흥미가 동하는 일은 뭐든 건드려 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죠.”
“그렇습니다.”
전자상거래, 전기차, 우주 로켓, 뉴럴링크. 하나 같이 미래지향적인 사업들이지만 하나로 묶기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프로젝트들이다.
“반면에 저는 오직 하나에만 미치는 타입입니다.”
“호오…….”
“게임. 저는 재미있는 게임을 개발해서 유저들을 기쁘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지요.”
“게임 개발자로서는 무척 멋진 이야기지만, 사업 파트너로서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비행기안에서 나는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에 대해 공부했고, 반대로 나 자신과 비교해보며 우리가 전혀 다른 성향을 지녔고, 그렇기에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당신이 화성으로 사람을 보낼 생각을 할 때, 저는 화성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게임을 제공해야 할지만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으음…….”
순간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일론 머스크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공격이 먹히고 있다.
“자율주행이 완성된 시점에 자동차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 스스로 말씀하셨지요? 자동차는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갈망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자율주행이 완벽히 보급되면 더 이상 사람들은 운전대와 창밖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동 중에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을 원하겠지.
“게임이든 영화든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1억 원도 넘는 차에 천만 원 정도 더해서 최고급 PC 기능을 제공하고 가능하면 좌석 역시도 게임과 영화 관람에 특화된 설비가 추가될 수 있다면 좋겠지요.”
“정확히 저희도 그런 비전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갈망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클라우드든 OTT든 서비스 회사가 그 모든 내용을 채워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너는 아직 약속한 갈망을 보여주지 못했다.
언젠가 투자자들이 비전 이상의 실현을 요구할 때 당신 곁에는 이를 함께할 파트너가 필수적이며, 게임은 그곳에 빠질 수 없는 극히 중요한 선택지다.
“저희와 손을 잡으시죠. 지금은 기술력 향상에만 집중하셔야겠지만, 언젠가 기술력이 갖춰진 그때, 당신은 당신이 약속한 갈망을 선물해야 할 것이고 저는 반드시 거기에 도움이 되는 사람입니다.”
나는 확신을 갖고 말했다.
단순히 내 능력을 떠나서 나 역시도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그가 약속한 새로운 개념들에 멋진 게임 경험이 더해지길 바란다.
나의 세일즈에 일론 머스크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드디어, 일론 머스크가 입을 열었다.
후속작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