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분위기가 달라졌다.’
제임스는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묘한 분위기가 있다고는 생각했었다.
이상하게 이 사람이라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일론 머스크를 상대로 대화의 주도권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분위기를 압도한다.
‘당신이 화성으로 사람을 보낼 생각을 할 때, 저는 화성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게임을 제공해야 할지만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이 표세인의 입에서 나온 순간, 모든 게임 개발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등의 유명한 인물들이 대중들을 설득할 때에도 청중을 휘어잡는 마법의 언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듣는 이를 단숨에 매료시킨다.
일론 머스크 역시 표세인의 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국 표세인에게 완전히 함락당했다.
마지막으로 다소 묘한 조건 하나만을 남기고 일론 머스크와 표세인은 악수를 나누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그것은 전율이라 불리는 감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의외로 평생 경험하지 못하는 단어.
‘나는 운이 좋군.’
표세인이라는 남자와 알게 된 것, 그리고 그의 곁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된 것.
어쩌면 자신은 지금 한 분야의 역사가 새로 쓰이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제임스는 그저 감탄을 거듭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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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일론 머스크와의 미팅이 끝나자, 나도 모르게 답답함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멋졌어! 아주 대단해!”
제임스와 문상훈이 곧장 찬사를 터트렸다.
“설마 일론 머스크를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는, 아니 거의 제압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무튼 감탄했습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자네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야.”
두 사람이 동시에 떠드는 탓에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대충 칭찬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아까 자네가 화성 어쩌고 할 때, 소름이 돋았어. 대체 언제 그런 멘트를 준비한 건가?”
“동감입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따로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일론 머스크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음을 어필해야할 필요를 느꼈죠.”
“정말 대단하군. 그렇다고 순식간에 그런 멘트를 떠올린단 말인가?”
문상훈은 여전히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다행입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사업 아이템에 대한 반응이 미적지근해서 걱정했습니다만, 한시름 놓았군요.”
제임스는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 조건은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글쎄요.”
일단 넙죽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나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필요할 때, 꼭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너무 황당한 조건이지만, 어쨌든 주요 파트너가 된다면 VIP다.
어차피 주요 VIP가 요구한다면 뭐든 들어줘야하지 않은가?
“하지만 일론 머스크씩이나 되는 사람이 내건 조건입니다. 방심하면 안되겠지요.”
제임스는 우려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제 생각은 다른데요.”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홍기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다르다고? 뭐 짐작가는 것이라도 있냐?”
열에 아홉은 헛소리만 늘어놓는 녀석이지만, 그 중에 한번은 놀라울 정도의 촉을 발휘해서 본질을 꿰뚫을 때가 있는 녀석이지 않나?
“제 생각에는 일론 머스큰는 관종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관종들은 대체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하는 법이지요. 표세인 대표님의 언변에 자신이 감명을 받아서 그대로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여 버렸으니, 뭐라도 하나 남기고 싶던 것이 아닐까요?”
“그말은 별로 신경쓸필요가 없다?”
“네. 제 생각에는 그래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천하의 일론 머스크야.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라고.”
“그 천재적인 두뇌를 SNS에서 어그로 끄는일에 엄청난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으음…….”
일론 머스크의 팬인 문상훈은 홍기도의 말에 불만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의외로 홍기도의 말이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구체적인 사안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 답지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군군.”
“신경쓰실 필요 없다니까요.”
유독 홍기도 혼자서 여유로웠다.
나 역시 이녀석 의견이 옳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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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은 어떠셨습니까?”
직원의 질문에 일론 머스크는 피식 웃었다.
“제대로 한방 먹었지.”
그는 표세인과의 대화를 곱씹고 있었다. 그럴수록 자꾸 웃음이 난다.
“그래.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
자신에게 소프트 엔지니어의 꿈을 갖게 했던 것 역시 표세인처럼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려던 게임 개발자들의 업적이 아니던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일론 머스크는 스스로 자신을 덜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소년 시절의 순수성을 잃지 않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본인의 장점이었다.
그가 항상 언론에 언급하는 한 주에 40시간 일하는 것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100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의 비결.
그것은 일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표세인은 적어도 게임을 개발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러한 열정과 즐거움을 지닌 사람으로 여겨진다.
“미리 조사한 것이 화근이야. 아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깨비몬에서부터 오행전기 거기에 스쿨런까지.
표세인이 메인 디렉터로 이름을 내건 작품들의 개발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퀄리티는 또 어떠한가?
그것들을 사전에 조사했기에 표세인의 설득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미래의 일론 머스크를 만들어낼 것인가?
그리고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 그 이후를 생각한다면 세상은 자신과 같은 이들로 가득차야 한다.
다소 오만하며 독선적인 생각이지만, 그것이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의 정체성이다.
모두가 워라벨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세상에 유독 그것이 잘 못되었음을 설파하는 남자.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분야에 확실힌 비전과 꿈을 지닌 사람들에게 약할 수 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사람이야. 나도 모르게 마지막에 욱하고 말았어.”
이대로 홀린 듯이 끌려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괜한 조건을 덧붙였다.
하지만 실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쩐지, 그와는 단순한 파트너 쉽 이상의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무척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동시에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모두가 공상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야에 도전하여 그것을 한단계씩 달성하기까지는 계산 보다는 감각과 신념에 의존한 결과가 아니었던가?
“차라리 다른 일정을 미룰 것을 그랬어. 더 다양한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을…….”
“그거 의외로군요.”
“하지만 오히려 그러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지.”
“네. 그렇습니다. 그랬다가는 괜한 꼬투리를 잡아서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는 인연이 어긋날지도 모르니까요.”
그의 부하직원은 정확히 일론 머스크의 단점을 꼬집었다.
일론 머스크는 일반적인 잣대에서 한참 벗어난 타입의 사람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문화적으로는 자유주의라는 종잡을 수 없는 성정.
게다가 본인이 지닌 공격적인 성향까지 더해진 덕분에 그와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그렇게 모난 사람인가?”
“본인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스스로의 공격성을?”
“어린 시절에 주위의 괴롭힘을 당하던 사람은 누구나 공격적인 성향을 갖게 되지. 나름의 자기방어 기제라고?”
“그래도 극복하셔야지요. 그런 생각을 품은 것과 드러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괴롭힘을 많이 당했습니다.”
“정말로?”
“……직원들 절반이 학창시절 너드로 분류되었던 타입입니다. 본인이 속한 업계의 특징 정도는 알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군. 그럴 수도 있겠지.”
의외로 날카로운 지적에 일론 머스크는 순순히 수긍했다.
“그보다 스타링크의 한국 시장 진출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예정된 시간까지는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난번 임원회의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한국은 인프라가 지나치게 우수한 국가이기에 별다른 메리트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 메리트가 생길 것 같군.”
“그렇군요. 맥베스와 파트너쉽을 맺게 된거로군요.”
워낙에 일론 모스크 본인의 원맨쇼가 강한 회사다 보니, 이렇게 일론 머스크가 움직일때마다 회사의 방향성이 뒤바뀌는 일이 종종 있었다.
새로운 파트너쉽 체결 정도야 놀랄 일도 아니었다.
직원은 묵묵히 이 내용을 적어 담당부서에 이메일로 송부했다.
“이 내용은 우리쪽에서 별도로 신경쓸만한 일이 있습니까?”
“없어. 홍보도 그들 쪽에서 할 거야. 우리는 그저 반사이익만 챙기면 돼.”
“반사이익이요?”
“스타링크가 게임 업계에 한발 들였다. 스타링크는 이렇듯이 여러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프로젝트다. 이것만으로도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이 두팔들어 환영하겠지.”
좀 더 확실한 계획을 세우기 전까지는 스타링크를 통한 별도의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지는 않으려는 계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분야와 비즈니스 모델들을 검토하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제안들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즉흥적으로 결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외부의 시각에서는 이것이 일론 머스크의 단점이라 지목되는 부분. 하지만 일론 머스크 본인은 스스로 이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확실히 다른 것은 몰라도, 데이터 처리 용량에 관한 부분에서는 이상적인 계획이었습니다.”
다른 데이터는 필요없고 레이턴시 문제 하나만 해결하면 된다.
이것이라면 아직 걸음마 단계인 스타링크로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생각났군.”
“무슨 일이십니까?”
일론 머스크가 갑자기 소리 치자, 직원은 화들짝 놀랐다.
“표세인에게 제시할 조건이 떠올랐어.”
“조건?”
일론 머스크가 조건 하나를 덧붙였음을 알지 못하는 직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직원에게서 신경을 끄고 홀로 자신의 아이디어가 그럴듯하다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게임 회사와 파트너쉽을 맺는 것은 이런 장점도 있군. 나중에는 투자라도 해볼까?”
“만약 업무에 관련된 것이라면 제게도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비서까지 잘라버린 탓에 그를 보좌하는 역할을 겸임하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이럴때마다 무척 곤란하다는 느낌이었다.
“별거 아니야. 개인적인 일이야.”
“그렇다면 문제없습니다.”
“흠, 흠. 맞아. 완벽해.”
일론 머스크는 연신 자신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자신이 요즘 미친 듯이 빠져버린 게임.
스쿨런.
그 스쿨런의 후속작을 출시할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한 최고의 부탁이었다.
웰컴 텍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