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70화 (270/346)

270.

“HAHAHA! 좋은 아침!”

마빈은 아침부터 기운찼다. 그리고 그것은 로렌스나 타냐, 제임스까지 모두 똑같았다.

그리고 나나 홍기도 역시 아침을 힘들어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 중에서 오직 한 사람.

연아만이 부스스한 몰골로 자신의 저혈압과 싸우고 있었다.

“피곤하면 더 자지?”

“모처럼 텍사스까지 놀러 왔는데, 여기에 맞춰야지.”

얘는 논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보다 아침 메뉴는 뭔가요?”

“당연히 스테이크지!”

“오오!”

마빈의 말에 홍기도가 작은 환호를 터트렸다.

“저쪽은 토스트를 먹고 있는데요? 쟤들은 도시 사람이 되었잖나. 텍사스에 왔는데, 스테이크 아니면 뭘 먹겠나.”

마빈은 한껏 웃었다.

“텍사스 로드 하우스는 들어봤겠지? 미국 1위의 스테이크 하우스라고! 텍사스 스테이크는 세계 제일이야!”

“저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에요. 알 리가 없죠.”

네. 그 말대로 처음 들었습니다.

“기다리라고 내가 기가 막히게 구워주지.”

“저도 거들겠습니다.”

“무슨 말이야! 손님에게 일을 시킬 수는 없지. 앉아 있으라고.”

“하지만…….”

내가 머뭇거리며 제임스 가족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정말로 신경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어른에게 식사 준비를 맞기는 것이 영 어색하지만, 아무래도 이것도 미국 스타일인 모양이다.

그리고 마빈이 스테이크를 가져왔을 때, 나는 살짝 놀랐다.

이 정도 두께와 크기는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엄청나군요?”

“HAHAHA! 웰컴 투 텍사스!”

정말로 예상 이상이었다.

두깨가 무색할 정도로 부드러웠고 육즙을 잘 담아낸 마빈의 솜씨도 훌륭했다.

“어떤가?”

“정말 최고네요!”

“HAHAHA! 그렇지?”

마빈은 정말로 기쁜 것 같았다.

*

*

*

“그럼 오랜만에 사격장에 가볼까요?”

로렌스의 말에 제임스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가야지.”

라고 말하며 힐끔 내 눈치를 살피는 제임스. 마치 나에게 ‘이미 제가 언질을 주었던 것 기억하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HAHAHA! 스테이크와 총이야 말로 텍사스의 자랑이지.”

아니, 무슨 텍사스에 세계적인 총기 제조사가 있는 것도 아닐텐데 굳이 총이 자랑인 것은 좀 아니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마빈과 로렌스를 쫓아 사격장으로 향했다.

사격장은 너른 들판에 토대를 쌓아놓은 장소였다.

우리가 도착하니, 마빈의 목장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커다란 총기박스를 트럭으로 옮기고 있었다.

“무, 무슨 전쟁이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HAHAHA! 그래도 2천 정쯤은 소지허가를 받은 것들이야. 걱정할 것 없어.”

2천 정 이후로는 받지 않았다는 거군요.

“와, 세상에 K2를 여기서 보네요?”

“생긴 것은 좀 투박하지만, 그 총도 나쁘지는 않지. 코요테 라이플로는 나름 괜찮다는 평이야.”

“음, 좀 다르네.”

K2가 민수용으로 미국 총기 시장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보니 느낌이 다소 달랐다.

무게와 그립감 무엇보다 단발로 밖에 발사되지 않는 점이 무척 어색했다.

“동양인은 활을 잘 쏘고 서양인은 총을 잘 쏜다고 하지.”

“그래요? 그래도 한국은 사격도 강국인데요?”

애초에 한국인 입장에서야 활은 논할 가치가 없다.

국가대표선발전이 금메달리스트 선발전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사격도 특히 권총 부분에서는 금과 은을 번갈아 가며 한국이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홍기도가 이 점을 지적하자 마빈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가? 올림픽은 잘 보지 않는 편이라서 HAHAHA! 그런데 다들 총 쏠줄은 아나?”

마빈의 질문에 나와 홍기도는 피식 웃었다. 한국 성인 남성에게 총기 사용에 대해 묻다니.

“넌 좀 쏘냐?”

“훈련소 만발로 전화찬스 얻은 몸입니다.”

“제법이네?”

확실히 사격은 기초 운동신경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종류의 재주다. 물론 홍기도가 운동신경이 어디가서 빠지는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은근히 이런저런 잡기에 능한 녀석이니 사격도 나쁘지 않은 모양.

“뭐 형은 물어볼 필요가 없겠죠?”

“너희(일반병)가 말하는 만발을 우리는 진짜 1만발로 계산하거든?”

가끔 인근 훈육부대에서 탄이 남으면 죄다 우리에게 넘어와서 미친 듯이 사격으로만 시간을 보내던 나날도 있다.

애초에 사격만큼 반복숙달이 중요한 재주도 없다.

게다가 여기 사로는 기껏해야 100m도 안된다.

“내기할까?”

“제가 너무 불리하지 않나요? 마빈! 우리 형과 내기 해볼래요?”

“HAHAHA 내기라고? 그거 좋지!”

마빈은 특유의 호탕한 웃음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럼 뭘로 할텐가?”

“주종목이 뭔가요? 소총? 권총?”

권총이 특기는 아니지만, 이래봬도 복무시전에는 특급사수였던 나다.

민간인에게 져서야 체면이 안살지.

“권총이 특기지만 자네에게 선택권을 주지.”

“그럼 저는 소총으로 하겠습니다. 잠시 영점 좀 잡아봐도 되죠?”

“아니, 그전에 내기라면 조건을 걸어야지.”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이렇게하지, 내일 오후 로데오 체험이 있어. 자네가 지면 거기에 출전하는 거야.”

“NO!”

제임스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로데오는 안됩니다. 이 사람이 우리회사에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줄 아십니까?”

제임스가 마빈에게 달려들 듯이 소리쳤다.

“헹, 남자라면 한 번쯤 도전해봐야 하는 것이 바로 로데오야. 내가 젊었을 적에는…….”

“그 덕분에 지금도 매일 허리를 부여잡고 괴로워 하시지 않습니까?”

“으음…….”

제임스의 말에 이번에도 마빈은 신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이 두사람의 관계 역학은 확실하게 기울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로데오 흥미는 있는데…….”

TV로만 봤던 것을 직접 체험할 기회. 솔직히 살짝 흥미가 동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내 말에 제임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는 두통이라도 온것처럼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연아에게 말했다.

“연아야. 네가 말려보렴.”

“왜? 원하는 것 같은데 시켜보지?”

“그러다 다치면?”

“다친 오빠 간호 한 번 해보고 싶긴해. 감기도 안걸리는 사람이라.”

아니, 감기도 안걸리다니…….

나도 가끔 걸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서 티가 안나서 그렇지.

“그러면 마빈이 질 경우에는요?”

홍기도의 질문에 마빈은 턱을 매만졌다.

“그렇군. 내가 이 나이에 로데오에 나갈 수도 없으니, 내가 아끼는 비장의 컬렉션을……”

“한국은 총기 반입이 금지입니다.”

“누가 총이라고 했나!”

마빈은 그렇게 말하고는 허벅지에서 손잡이가 화려하게 장식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이것으로 말하자면…….”

“도검류도 개인 반입은 안돼!”

그런가?

아니, 그보다 제임스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있지?

“저에게도 예전부터 자꾸 총이나 칼을 선물하려고 하다보니…….”

그랬군요.

텍사스에 오고부터 제임스는 묘하게 몇 년쯤 늙어버린 것 같다.

애초에 미친 듯한 드라이브 자체가 이곳에서 겪을 일들을 대비한 사전 스트레스 해소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으음……. 이거 정말로 귀한 물건인데…….”

마빈은 정말로 안타까워 보였다. 나름 신경써주는 모양인데, 대놓고 번번이 성의를 거절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뭐 그래도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좀 그러니, 반입 문제는 제가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만약 제가 이긴다면 기쁘게 그 나이프 받겠습니다.”

“HAHAHA! 역시 자네는 진짜 사나이로군!”

당신의 사위도 진짜 사나이에요. 마빈. 그런데 왠지 미국에 와서 저런 스타일로 웃는 사람들에게 묘하게 사나이 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미국인들은 마초 이미지를 무척 사랑하는 구나.

“그럼 시작해 볼까요?”

나는 민수용 K2를 들어 올렸다.

“좋아. 한번 보자고.”

나는 몇 차례 영점을 잡아 보았다. 확실히 아직은 길이 좀 덜 들었지만, 반대로 영점을 잡기는 쉬웠다.

“전부 빗나갔잖아!”

내 9발의 영점사격이 모두 표적의 인물도 옆에 밖힌 것을 보고 마빈이 껄껄 웃었다.

아무래도 영점 사격을 모르시는 모양인데?

“나는 이것으로 쏠거야.”

그는 다소 올드한 사냥용 라이플을 꺼내들었다.

“신식 총기가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그걸 사용하시게요?”

“나는 이런 옛스런 감성의 도구가 좋아.”

뭐 취향이라니, 말리지는 않겠다. 나름 스코프도 있으니…….

물론 이정도 거리에 스코프가 나설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 시작하시죠!”

홍기도의 신호에 맞춰 우리는 표적지를 향해 총구를 당겼다.

그리고 결과는…….

“자네 진짜 엄청나군.”

살짝 과장을 보테서 10발의 탄착군이 페트병 하나로 가려질 정도.

예전에는 과장할 필요 없이 간단했었는데, 아무래도 나도 이제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는 예비군도 끝나서 사격을 안한지 꽤 되었으니, 솜씨가 많이 녹슨 모양.

하지만 그저 표적지 인물도에 맞추기만하면 탄착군이든 뭐든 신경쓰지 않는 일반인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사격 할 때마다 총의 견착을 풀고 약실을 당기는 것을 확인했을 때부터 이런 결과는 예상했었지만…….

“하하, 오랜만에 사격을 해보니까. 정말 재미있네요. 다른 총도 써봐도 될까요?”

“저는 이거요!”

나와 홍기도는 신이나서 총을 골랐다.

“너도 해보지 않을래?”

“나는 총은 좀 무섭네.”

연아는 손을 휘저으며 사양했다. 이미 예상보다 큰 총 소리에 괴로운 표정이었다.

“한번 쏴보면 스트레스도 풀릴 거에요. 반동이 작은 총들도 있으니, 한번 도전해봐요.”

“으음…….”

연아는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로렌스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는지, 그녀가 골라준 총을 들고 사로에 섰다.

“엄지와 검지 사이 손아귀가 손잡이 최대한 위쪽에 닿도록 쥐는 편이 좋아. 그리고 오른손은 그저 쭉 뻗고 왼손으로 총을 받치는 느낌으로…….”

“이렇게?”

“응. 잘했어.”

호신용의 작은 권총은 연아의 작은 손에 잘 어울렸다. 정작 본인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지만, 의외로 자세는 그럴 듯했다.

“자, 쏴봐.”

-탕! 탕! 탕!

로렌스가 골라준 총은 확실히 반동이 세지 않은 듯 했다. 연아도 무리 없이 3발을 내리 연사했다.

“잘 쏘네?”

“정말?”

“총구 내리고…….”

순간 총구가 내 턱밑으로 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호신술 발동할 뻔했다.

“와! 나 맞췄어!”

탄착군은 엉망이었지만, 어쨌든 25m 거리에서 3발 모두 인형도에 꽂아 넣은 것은 초보자에게는 기쁜 일일 것이다.

로렌스를 포함한 모두가 박수를 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 좀 더 큰 총을 쏴보고 싶은데?”

어? 갑자기 연아에게 묘한 스위치가 들어갔다.

*

*

*

“정말입니까?”

“제가 본사까지 와서 헛소리나 늘어놓겠습니까?”

“클클클, 이건 정말로 어이가 없군.”

본사로 복귀한 문상훈이 전한 소식에 조회장과 양성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론 머스크……. 스타링크…….”

“가서 영화 IP나 물어오라고 보내놨더니, 느닷없이 일론 머스크를 물어오다니……. 정말이지 이 녀석은 변함이 없군.”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다.

언제나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결과를 이뤄낸다.

“그럼 본건이었던 영화 쪽은?”

“그쪽은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투자금과 일론 머스크와 손을 잡았다는 것을 은근슬쩍 흘려 놓은 탓에 그들은 이미 쩔쩔매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중에서 입맛에 맞게 고르면 될 일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이름이 지닌 무게를 새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또 바빠지겠군요.”

양성태는 기쁜 듯이 미소지었다.

내 팀은 내가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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