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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71화 (271/346)

271.

“저희 왔어요!”

“왔냐?”

드물게 조회장은 현관까지 마중을 나왔다.

“별일은 없으셨죠?”

“별일이야, 우리보다는 네가 겪고 온 모양이더만, 클클.”

조회장은 가볍게 미소지었다. 아마도 일론 머스크와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모양.

“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일론 머스크. 만나보니 어떻더냐?”

“굉장히 독특한 사람이었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더군요.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이미지.

그러면서도 사리구분에 한 치의 빈틈도 없다.

분명 그는 처음 만나기로 결정했을 시점만해도 우리와 파트너쉽 제휴까지는 진행시킬 마음이 없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고는 재빨리 방향성을 선회했다.

그 결단력은 설득하는 내 스스로가 두려울 정도였다.

“그래. 그래. 세계에서 첫손에 꼽히는 부자와 손을 잡다니, 너도 정말 대단하구나.”

“첫손이요? 첫 번째 부자가 아니라요?”

“세상에는 재산 자체를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대부호들이 넘쳐난다. 일론 머스크는 21세기 이후에 막대한 부를 쌓은 덕분에 검증된 재산 순위가 많은 것이지. 모르긴 해도 그 보다 엄청난 부자들도 많을 것이다.”

조회장의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나는 좀 쉴게요. 일 이야기는 나중에 회사에서 해도 되지? 어차피 급하게 진행되는 일도 아니잖아?”

물론이다.

어차피 당장 우리의 클라우드 시스템도 준비가 끝난 것이 아니다.

어차피 급할 것은 없다.

“텍사스는 어떻더냐? 마빈이라는 사람은 어때?”

“만나 보신 것 아니었어요?”

“제임스 녀석 결혼식 때 본 것이 전부지. 그리고 어차피 영어로 대화해야 하는데, 내 영어 실력으로는 무리야.”

“영어 잘하시는 것 아니었어요?”

“어릴 때 문법이야 열심히 공부했지. 하지만 내 나이가 몇이냐? 이미 녹슬어서 회화는 무리야.”

조회장은 클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빈은 무척 유쾌한 사람이더군요. 그리고 행동거지 하나 하나에 매우 조심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결혼식 때도 정장 위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왔더군. 듣기로는 그쪽 남자들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던데, 조심스러웠다고?”

“하하하. 네, 정말로요.”

솔직히 마초적인 사고 방식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나에게는 무척 쉬운 상대다.

애초에 운동선수 출신들이야 다들 그런 성격이고 그런 쪽에서는 내가 또 나름 한가닥 하지 않나?

“무엇보다 집에 사격장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사격장? 대단하군.”

“네. 저도 모처럼 총을 손에 쥐니까 무척 즐겁더라고요. 연아도 의외로 즐거워했어요.”

“연아가?”

조회장은 연아가 올라간 계단을 힐끔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런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줄 알았는데?”

“로렌스가 잘 이끌어줬죠.”

“로렌스와 타냐는 언제쯤 귀국한다던? 그대로 미국에서 지내는 것은 아니지?”

조회장이 드물게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의 품에 안기게 된 손녀가 이대로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그것은 아닐 겁니다. 일단 로렌스나 타냐도 한국에 많이 적응했고 무엇보다 제임스가 기둥소프트를 맡아줘야 하니까요.”

다른 것은 몰라도 제임스가 미국으로 가버리면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내쪽이었다.

나는 말만 기둥소프트 대표지, 정작 그 회사를 컨트롤 하는 것은 제임스였으니까.

“그건 다행이군. 그건 그렇다치고 영화쪽은 어떻게 진행되는 거냐?”

“그건 일단 미국지부 담당자에게 맡겨두었으니, 조만간 연락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들을 토대로 판을 새로 짜볼까 합니다.”

이미 대형IP를 이용해 여론을 선동할 필요는 없어졌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와 파트너쉽을 채결했다는 것만으로도 맥베스의 주가는 다시금 껑충 뛸 것이다.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우리는 영화 보다 게임을 사들이는 속도를 높혀야 할지 모른다.

“클라우드 사업에 필요한 컨텐츠 보충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애초에 클라우드 서비스는 조회장이 초안을 낸 것이라고 했다.

연아는 그것에 보조를 맞추어 소일연을 영입한 것이 전부.

하지만 클라우드 시스템 구축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컨텐츠다.

유저들을 유혹할만한 매혹적인 게임 라인업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이야기 자체가 안 된다.

“요즘 국내 게임 시장이 슬금슬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나?”

조회장의 말에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아주 바람직한 변화지요.”

수집형 모바일게임 일변도였던 국대 게임 시장은 근래들어 차츰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디젤 스토어를 목표로한 AAA급 게임들부터 기발한 인디게임까지!

모두가 새로운 게임 시장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것은 유저의 한 사람으로서 기뻐할 수밖에 없는 바람직한 변화다.

국내 개발사들은 현재 AAA급 타이틀의 개발 소식을 앞다투어 공개하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었다.

“그것들 우리가 죄다 먹어보자.”

“그것들을 먹는다고요?”

“그래. 게임 퀄리티가 나날이 높아지면서 하드웨어 가격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지.”

“네. 그렇죠.”

“하지만 이래저래 불경기가 지속되고 있어. 이럴때일수록 클라우드 서비스가 활약할 때지.”

“하지만 보수적인 게임 업계가 쉽게 반응할까요?”

IT가 언제나 진보적인 행보를 보여왔다는 것도 옛말이다.

국내 개발사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안전한 다리만을 건너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자신들의 게임을 우리 클라우드 서비스에 제공하려고 할까?

“이미 한국에서 OTT 사업은 무서운 맹위를 떨쳤지. 다들 내심 이것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거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당한 매출 보장을 해줘야 할 겁니다.”

“그래. 그것도 사실이지. 내 생각에는 디젤 스토어 독점 1년 정도 이후에 우리에게로 넘어오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쪽에 왔을 때는 아주 후하게 대접해줘야지. 우리가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의 손해를 감수한다.

이것은 무척 공격적인 방식이다.

“확실히 그거라면 단순히 국내 개발사들만으로는 안되겠군요.”

“이미 공룡들이 고티급 개발사들을 집어 삼키고 있어. 내가 괜히 영화 제작사를 사들여도 나쁘지 않다고 한 것이 아니다. 이거 아주 큰 판이야.”

어디든 마찬가지이지만, IT분야 만큼 선점 효과가 강력한 업계도 달리 없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선두 주자 조차 아니다.

“하지만 진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없지요.”

대부분 말만 그럴듯한 반쪽짜리 서비스를 클라우드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상황.

정확히는 그저 정액제 게임 대여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 PC대여업에 가까운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 부분은 반드시 큰 차이점이 될 것이다.

“돈이 많다면 정액 요금이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고 돈이 없다면 하드웨어 보다는 우리 쪽을 선택하겠지. 확실하게 준비해서 단숨에 시장을 삼켜야 한다. 모 아니면 도야. 중간은 없어.”

조회장의 말은 틀린점이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은 모 아니면 도다.

어설프게 한발 걸치는 것으로는 서버 운영비도 벌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쉬린칭도 우리쪽에 손을 보태준다고 했고, 어이가 없지만 앰플쪽에서도 호의적인 제안을 보내온 상황이다. 이거 해야한다. 알겠지?”

조회장은 결연한 당부의 기색을 담아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까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해버렸다.

“……은퇴 결심하신 겁니까?”

“그래. 네가 일론 머스크까지 끌어들여 준 덕분에 아주 스무스하게 진행될 것 같더구나. 돌아오는 사업 설명회에서 연아가 신사업을 발표하고 나는 그 열기 속에서 조용히 내려가려 한다. 이미 주식 양도 문제도 거진 해결되었어.”

내가 미국에 가있던 사이에 조회장은 발빠르게 자신의 은퇴 준비에 열을 올린 모양.

물론 그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번에 그렇게 쉽게 발을 빼실 수는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뭐?”

“저와 처음 만났던 날부터 저와 회장님의 게임은 시작된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내 말에 조회장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제가 분명히 회장님 거취는 그렇게 마음대로는 안된다고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죠?”

“하하하! 대표자리에 앉혀놨더니, 이제는 회장 거취문제까지 쥐락펴락하려 드는 구나.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이렇게 하시죠.”

“뭘?”

“회장직은 내려놓으세요.”

“그렇게 할 거라니까?”

“그 후에는 제 팀으로 와주십시오.”

“네 팀? 네가 무슨 팀을 가지고 있지?”

“저 이래봬도 기둥소프트 사장입니다?”

내 말에 조회장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나보고 네 밑에서 일해라 그거냐?”

“누가 누구 밑에서 일하느냐는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기둥소프트에서 뭘 하면 되는데?”

“뭐긴요. 개발자가 게임 개발해야지 뭘 하겠습니까?”

“게임 개발?”

“안 그래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해서 게임 라인업을 채워야합니다. 이럴 때 쓸만한 개발자를 그냥 놀게 할 수는 없죠.”

“쓸만한 개발자라……. 내 나이가 몇인줄 아나?”

“누들 본사에는 72세 현역 엔지니어도 있다고 합니다. 아직 한창이시죠. 이참에 저와 같이 운동도 시작하시죠. 몸관리만 잘하면 한 10년은 더 써먹……. 아니, 더 오래 개발자로 활동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중간에 이상한 단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닙니다. 잘 못 들으셨습니다.”

“흠……. 기둥소프트라…….”

조회장도 내심 싫지는 않은지, 입맛을 다시며 뭔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애초에 한국에서는 5-7년 이상 현장 엔지니어로 근무하면 낙오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한명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도 그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해외는 다르다.

오히려 수십년 동안 현장 엔지니어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에 따른 호봉도 충실하게 보장된다.

나는 이것만큼은 확실히 해외 풍조에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조회장은 이번 홍기도 팀에서도 상당한 역량을 선보인 바가 있다.

그들이 개발한 매지션 크레프트는 지금도 디젤 스토어 매출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아니, 면접도 안 끝났는데 조건도 붙이시는 겁니까?”

“……면접 볼 거였냐?”

“농담입니다.”

내가 아는 어느 누구라도 감히 조회장을 면접 심사할 수 있는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없다.

굳이 꼽자면 홍기도 녀석인데, 그 녀석이야 조회장의 조자만 들어도 합격을 외칠 녀석이라서…….

“조건이 뭡니까?”

“내 팀 내가 꾸린다.”

“……제 팀에 참여하시라니까요?”

“네 팀은 네가 알아서 꾸려라. 내 팀은 내가 꾸리마.”

“요즘 묘하게 저를 따돌리시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죠?”

지난번 인디게임 개발 때부터 다들 나와 한 팀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꾸 환청인지, 타도 표세인 같은 구호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누구를 고려중이신데요?”

“그건 비밀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하지.”

“뭔데요?”

“내 팀원은 월급은 많이 안 줘도 된다. 하지만 건들지는 마라.”

뭔가요. 그거…….

너무 무섭잖아요.

너 쉬린칭한테 혼나고 싶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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