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73화 (273/346)

273.

“흐흐흐.”

남궁원은 올테면 와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괴상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얘도 처음에는 참 괜찮았는데, 갈수록 이상해진다.

여기가 터가 안좋은가?

“먼저 운을 떼어주시죠. 저도 곧바로 출격하겠습니다.”

자신이 그간 구상해온 아이디어를 투하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남궁원은 불타고 있었다.

‘걱정이네.’

‘뭐 제 업보죠. 이래서 시키지 않은 일은 하는게 아니라니까요?’

일단 시간을 끌수록 남궁원이 입을 데미지는 속절없이 증폭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곧장 안건을 꺼냈다.

“이번에 우리가 제작할 게임의 원작 영화가 결정되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관의 게임 컨텐츠와 판타지 장르를 고려할 때…….”

“영화 제목은 스파이스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죠?”

“SF 대작 스파이스다.”

내 말에 남궁원은 나라 잃은 표정으로 함송희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지금 제대로 들은 것이 맞냐고 되묻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갑자기 변경되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스파이스도 왕관의 게임에 뒤지 않은 대형 IP야 그리고 SF 장르 역시 판타지에 뒤지지 않는 메인 장르지.”

“……SF라면…….”

남궁원은 홀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데미지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

“우리 모처럼 회식할까?”

“그렇죠. 사기진작을 위해서는 한우가 최고죠!”

“그, 그래요. 언니 기운내시고…….”

우리는 남궁원의 데미지를 컨트롤하기 위해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그럴때가 아니잖아요!”

“응?”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될 상황에서 회식은 무슨 얼어 죽을 회식이에요! SF 좋네요. 일단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아이디어부터 말씀해 주세요. 저도 들으면서 보완점을 생각해볼게요.”

크으…….

역시 우리 에이스.

언제 어느때라도 너만은 날 실망시키지 않는 구나.

요즘 좀 이상해졌다고 생각한거 미안하다.

너에대한 믿음이 부족했다.

나는 잠깐 말을 잇지 못하고 감동했다.

“왜 잘 진행되던 회식 이야기에 초를치냐!”

홍기도가 빽 소리쳤다.

“너는 왜 감동하는 내 심정에 초를 치냐! 한우는 쉬린칭에게 사달라고 하면 되잖아!”

“쉬린칭은 고기 잘 못구워요!”

“아니, 근데 이 녀석이 정신 나갔나, 어디서 큰 소리를……”

나는 요즘 들어 뜸했던 트레이너 전용 강제 종료 버튼을 눌렀다.

“끄악!”

이로써 말 안듣는 홍켓몬은 잠잠해졌다.

“꽁트는 거기까지 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자신이 준비해온 아이디어가 쓸모없게 되어버렸음에도 남궁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롭게 의욕을 불태운다.

정말로 기획자의 귀감 같은 캐릭터다.

“일단 대략적인 내용은 다들 알지?”

“몰라요.”

“전 알아요. 엄청 재미있는 소설이죠.”

의외로 남궁원이 모르고 함송희가 원작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럼 짧게 설명할게, 배경은 행성간 여행이 가능한 우주시대. 여기에 한 황량한 행성에서만 채취가 가능한 더스트라는 가루형태의 신비한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야.”

나는 원작의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우주 귀족들간의 정치다툼과 황략한 행성에 적응한 부족 단위의 강력한 종족.

그리고 예언자라 불리게 되며 강력한 예지능력으로 훗날 황제의 자리까지 거머쥐게되는 주인공의 여정을 설명했다.

“이거 원작 그대로 가는 건가요?”

역시 남궁원은 곧장 핵심을 짚어냈다.

원작 기반의 게임들은 2가지 선택지가 있다.

원작 내용 그대로 개발하거나, 혹은 그 배경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

“그것을 우선 고민해봐야지.”

“대표님이라면 이미 답을 가지고 계신 것 아닌가요?”

남궁원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각자 장단점이 있잖아? 원작 기반은 탄탄한 서사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반면 재창조는 원작의 배경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처음부터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지.”

“이거 호흡이 긴 소설이죠?”

“그렇지.”

“게다가 행성간 여행까지도 고려해야 하나요?”

역시 남궁원도 나와 똑같은 루트로 사고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행성 단위로 스케일을 확장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니까.

“솔직히 행성간 이동까지 매끄럽게 다루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크지.”

어설프게 맵 단위로 쪼개서 그것들을 행성입네 하는 방법도 있지만, 어쩐지 그것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기왕이면 작더라도 확실한 오픈월드로 만들고 싶다.

“그럼 결정된 셈이네요. 저도 찬성이에요. 부족한 것은 차기작에서 해결하면 될 일이니까요.”

“좋아. 일단 그러면 내 희망사항을 이야기할게, 이건 개발자로서가 아닌 유저 표세인의 희망사항이니, 어떤 반론이든 환영한다. 알지?”

“알지만, 보통 유저 표세인은 감이 남다르더라고요.”

남궁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일단 나는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어서 진행하길 바라. 게임에 장점 중의 하나는 내가 진짜로 이 게임 속 세상을 탐험한다는 현장감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내가 커스터마이징한 캐릭터니까.”

“그건 그렇죠.”

“더스트맨이라 불리는 행성 원주민들은 이 세계관의 핵심이 되는 더스트 능력을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원작에서도 이들에 대한 정보가 잘 짜여있으니, 이 종족을 기반으로 설계하면 어떨까 싶어.”

“일종의 비하인드 스토리군요?”

“그렇지.”

애초에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같은 유명 IP들을 이용한 게임들도 종종 이런 식으로 작중에서 지나쳐간 사건이나 언급 등을 재조명해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프리퀄을 다뤄보고 싶어. 주인공이 이야기 전면에 등장하기 전의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면 괜찮을 것 같아.”

“스토리 컨셉은 이해했어요.”

“좋아. 그럼 이제 내적 시스템에 관해 논의하면 되겠네. 일단 더스트가 주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 예지라고 하니까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면 좋겠지.”

“예지능력이라…….”

“당장 생각나는 것은 예지 트리거를 도입해서 시간이 느려지게 하고 조작 캐릭터가 적들을 쓰러트린 다음, 그것이 빠른 속도로 재생되게 하는 정도야.”

“그러면 전체적인 게임의 속도감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그렇지. 그래서 이거 하나만으로는 좀 약하지만 그래도 시스템적으로 예지란 곧 선행이라는 의미로 풀어내는 것이 가장 쉬운 접근방식일 테니까, 시간이 느려지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긴 할 거야.”

“이해했어요.”

“저기요. 질문 있습니다.”

함송희가 슬쩍 손을 들었다.

“뭐지?”

“기왕 캐릭터 컨셉을 잡는 거라면 저는 더 많은 요소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원작에 등장하는 황제의 광전사라던지, 기계식 사고자라던지, 클론 같은 요소들이요. 분명 원작 설정에 죽은 사람을 클론으로 부활시키는 단체도 있지 않았나요?”

“아! 그렇지.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가 바로 그런 설정이었지.”

“그러니까 그 단체가 더스트맨의 전투능력에 주목하고 강력한 전사를 클론으로 부활시키고는 기계식사고까지 주입했다는 설정은 어떨까요? 이러면 스킬 트리도 훨씬 다양해질 것 같은데요.”

“그거 정말 멋진 아이디어야! 그런 사람이 탈출 혹은 사고로 인해서 기억을 잃은 채로 더스트맨들과 합류하여 악독한 귀족 가문의 음모에 맞서게 되면서 차차 자신의 탄생 비화나 과거사에 접근하게 되는 식으로 전개하면 되겠네.”

“듣기에도 그럴듯하네요. 그거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이해도 쉽고 접근성도 좋고요.”

게임 시나리오의 핵심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게다가 원작 기반의 게임인 만큼 캐릭터에게 원작 설정이 다양하게 접목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

“훌륭한 아이디어야. 고마워.”

나와 남궁원은 동시에 함송희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로 바로 채택된 건가요?”

정작 아이디어를 낸 함송희가 화들짝 놀랐다.

“뭘 그리 놀라? 너도 기획팀이잖아.”

“……그렇긴 하죠.”

그동안 막내 신분으로 의견을 내기보다는 수용하기만 했던 탓일까? 함송희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번 메인 캐릭터 컨셉 및 스킬 트리 부분은 함송희 너에게 맡길게.”

“네? 제가요?”

“그럼. 딱 봐도 네가 제일 잘 아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걱정마. 나도 금방 읽고서 도와줄게. 하지만 보통 이런 것은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맞는 편이 낫지. 그리고 어차피 나는 시스템 기획 쪽을 신경 써야 할 것 같으니, 컨셉 기획은 네가 담당할 수 있으면 좋지.”

“왜? 부담돼?”

“부담이라기 보다는 살짝 긴장되긴 하네요.”

무려 AAA급 게임의 컨셉 디자인을 설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막내 일 수는 없다.

이미 남궁원은 팀장이다. 이제 함송희도 기획파트에서 남궁원을 보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침 원작에 대한 이해도도 놓으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나?

이번에도 뭔가 술술 풀리는 기분이다.

“일단 대략적인 것들은 이해했습니다. 금방 원작 살펴보고 시스템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준비해 볼게요.”

“고마워. 그럼 남은 것은 일단 디자인팀이겠네.”

“안팀장님이요?”

“아니, 이 경우에는 스케일이 워낙 크니까. 그보다는 보정훈 실장과 만나서 상의해보는 편이 좋겠지.”

안문주도 능력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지만, 보정훈이 속한 그래픽팀의 역량과 규모가 훨씬 크다.

어차피 모두 함께 작업을 해야 할 텐데, 그러면 당연히 직급상으로도 보정훈과 먼저 상의하는 것이 순리다.

“보실장님도 실력 좋으시죠.”

말해 뭐하나?

이 회사 그래픽 출신중에서 최고의 인재가 아닌가?

“그럼 일단 대충 정리가 되었으니, 나는 바로 보실장에게 가볼게.”

“그럼. 모두 수고 하도록.”

“넌 언제 일어났냐?”

어느새 깨어난 홍기도의 거만한 인사에 남궁원히 콧방귀를 뀌었다.

나와 홍기도는 그길로 보정훈을 찾았다.

*

*

*

“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직접 방문하자, 보정훈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예전에는 실장 삼인방 중에서 가장 여유가 있어보이던 타입이었는데, 막상 내가 대표가 되고보니 인상이 다소 달라졌다.

“새로운 프로젝트 관련으로 논의할 일이 있어서요.”

“그런거면 그냥 부르시죠. 직접 여기까지 오시다니…….”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기획자가 그래픽 디자이너를 방문하는 것뿐이잖습니까.”

“기획자요? 아아, 전에는 그랬었죠.”

아무래도 명함에는 사람을 달라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도 저 자신은 스스로를 기획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개발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는 대표가 아닌 기획자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쉬울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보정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나름 여유를 되찾은 모양.

“쉽지 않으시더라도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확실히 대표님께서는 수더분하시군요.”

“네.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듣는 편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정해진 겁니까?”

“네. SF작품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스파이스라고 아십니까?”

“물론이지요. 제가 이래봬도 SF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게임 업계에 투신한 사람입니다.”

“SF 배경을 많이 디자인해 보셨습니까?”

“솔직히는 사이버펑크나 아시아 특유의 깔끔한 근미래 디자인 건축물을 많이 디자인하기는 했지요. 정통 SF의 투박한 디자인은 많이 작업하지는 못했습니다. 취미삼아서 이런걸 만들어 보긴했었지만요.”

보정훈이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주었다.

멋들어진 3D 모델링 우주함대였다.

“그나저나 스파이스라니……. 이거 정말 큰 건이군요.”

“네. AAA급 SF 오픈월드. 은근히 많지는 않은 장르죠.”

“이거 가슴이 뛰는데요? 사실 이런 쪽으로는 제가 은근히 숨겨놓은 아이디어들이 많습니다.”

뭔가 일이 술술 풀리는 느낌이다.

그때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렸다.

-회장님 퇴임식 일정이 결정되었습니다.

양성태가 보낸 짧은 메시지.

드디어 회장님의 퇴임식이 결정되었다.

용사(초고령)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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