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80화 (280/346)

280.

“막내야. 이걸 보렴.”

“넵!”

표세종은 힘차게 대답하며 백용현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기에 있는 구문은 어차피 상위에 있는 조건식과 연계할 수 있으니, 여기서 손을 보면……. 봐라 훨씬 깔끔하지?”

“오오! 정말 그렇네요? 역시……. 맥시멈 스토리의 아버지! 게임의 신!”

“하하하, 뭘 그렇게까지. 니들 나이에는 나 욕도 많이 했을 텐데.”

백용현이라고 왜 모르겠나? 개발보다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악명 높은 맥슨이었다.

회장인 자신이 선두에서 그 모든 원망을 듣고있다는 것은 잘알고 있었다.

내려놓으니 보이는 것이 있는 법이다. 얼마전까지의 그였다면 펄쩍 뛰었을 테지만, 이제는 반대로 스스로가 자신의 오명을 담담하게 입에 담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닙니다. 살짝 비껴갔죠.”

“비껴가?”

표세종의 말에 백용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때는 정말로 맥시멈 스토리뿐이었고 과금 요소도 지금처럼 악랄……. 아니, 많지 않았거든요. 나름은 시간만 투자하면 어느정도 따라잡을 수 있었죠.”

“그래. 그랬었지.”

“그래서 제게 맥시멈 스토리는 어린 시절 최고의 추억 중에 하나인 걸요.”

“뭘 또 최고의 추억씩이나.”

백용현은 껄껄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조팀장과 눈이마주쳤다.

‘들었냐?’

‘아주 입 찢어지겠네?’

백용현은 다시금 표세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 밑에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장점은 의외로 스크립트를 꼼꼼하게 다룬다는 거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계속 예외처리를 다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쌓여서 반대로 원치 않는 결과를 내게 될 수 있다. 이거 명심해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표세종의 힘찬 대답에 백용현은 흐뭇하게 웃었다.

표세종이 마굴에 합류하게 된 이후 의외로 가장 가까워진 것이 바로 백용현이었다.

조팀장을 비롯해 함성준과 이걸영에게 표세종은 과거에도 안면이 있던 신입 직원이라는 이미지였지만, 백용현에게는 다소 달랐다.

일단 표세인의 동생이라는 것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말 한마디도 인자하게, 혹시라도 표세인에게 전달될 수 있으니,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침을 베플었다.

거기에 우연의 일치로 표세종은 과거 백용현이 개발했던 맥시멈 스토리의 팬이었고 쉴틈 없이 자신이 팬임을 역설하며 백용현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면서, 두 사람은 부쩍 가까워졌다.

“그런데 네 형은 맥시멈 스토리 안했냐?”

백용현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하긴 했을 건데, 저처럼은 아니에요. 저랑 형이 나이차이가 좀 있어서, 형은 어릴적에 CD게임 세대였거든요.”

“그렇군. 미묘하게 어긋난 모양이군.”

백용현이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맥슨의 찬란한 초창기 시절 배출한 기라성 같은 게임들이 대체 몇 개이던가?

하지만 반대로 그런 것들을 배출하지 못한 것은 또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게임업계의 마지막 이력을 이대로 종지부 찍지 않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심심치 않게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나오는 세상이다.

그 관점에서 자신은 아직 한창이었다.

“막내랑 그만 놀고 이쪽 좀 와주세요.”

“놀다니……. 막내를 잘 키워야 앞으로 우리가 편해 질 것 아니야?”

“얼씨구? 지난번에는 딱 이번만 같이 하시겠다면서요?”

“이 프로젝트가 단발성으로 끝날 각이 아니잖아. 나 백용현이가 손댄 프로젝트인데 당연히 대박나겠지. 안그래? 나 흥행보증수표잖냐.”

“클클, 소싯적에는 그랬지.”

“지금도 그래! 내가 개발 안해서 그런거야.”

“누가 들으면 남들이 개발에서 손 떼라고 등 떠민 줄 알겠네.”

“그러게요. 한 십년전인가 우리에게 아직도 체통 없이 개발하고 있냐고 경영진으로서의 무게감을 갖추라고 역설하신 분이 누구였더라?”

“……누가 영감들 아니랄까봐 뻑하면 옛날 이야기구만! 앞을 내다봐야지! 이래서 니들이 나한테 안되는 거야!”

“뭔소립니까, 지금 회사 주식 비교해볼까요?”

“그건 죄다 표세인이 작품이잖아!”

“그 표세인을 키운게 바로 우리가 만든 이 회사…….”

백용현과 함&이 콤비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영양가라고는 1도 없는 시답지 않은 토론을 벌이는 것을 보며 조팀장은 혀를 찼다.

“정력 낭비는 그쯤하고 다들 이거나 좀 읽어라.”

“뭔데?”

“어? 시나리오 컨셉?”

모두는 조팀장이 건넨 시나리오 컨셉 문서를 받아들었다.

“어느새 이런 것을 만드셨습니까?”

“사실은 이거 예전에 TRPG용으로 준비하던 배경 컨셉이다. 그런데 우연히 로봇물을 기획하게 된김에 쓸모 있다면 적용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잠깐, 그러고보니 대체 TRPG는 언제하는 겁니까? 기대하라고 바람만 잔뜩 불어넣고서는 감감무소식이더니…….”

“요새 이래저래 바빴지 않나.”

조팀장은 TRPG 이야기가 나오자 찔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흠흠, 잠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스킬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거 무협 용어 같은 것들이 섞여 있는데요?”

“낭만 하면 로봇 이상으로 우리에게는 무협 아니겠나? 하하하.”

조팀장의 말에 모두가 한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이렇게 섞으니 참신하군요. 무공 시스템을 사용하는 로봇이라…….”

“로봇 조종사는 라이더라고 불리며, 로봇 조작이 가능할 정도의 초인이다. 그들은 고대유산인 블랙네트워크에 접속해서 힘을 다운로드 받으며, 댓가는 그들이 이룬 업적을 포인트화 하여……. 괜찮은데요?”

“나는 이게 마음에 드는군. 로봇을 운송하는 소형함은 스티드(말) 로봇은 카타프락트(중기병)라고 불린다. 기사라는 개념을 갖다 붙였군.”

“아, 그건 제국쪽만이야. 연방쪽은 일반적으로 워메크라고 하면 되겠지.”

“용어는 통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조건식에 팩션 값을 넣어서, 2종류 텍스트가 구분되어 나오게 하면 되지 않나. 그거야 뭐 어려운 일이라고.”

“하긴 그런게 또 세계관에 몰입도를 높이는 법이죠.”

“그래. 어차피 우리 게임은 매니아들의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목적이니까.”

대부분 호평이었다.

딱히 엄청나게 참신하다기 보다는 그럭저럭 시스템과의 접목성에 문제가 없고 나름의 참신한 해석이 더해져있다는 것이 좋았다.

“해외시장에서만 만들던 것을 기왕 우리 한국의 노인네들이 만드는 것이니, 우리의 낭만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것이 저들에게는 무척 참신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네.”

“무당파와 소림사의 방어 체계가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군요. 무당파는 패링계념이고 소림사는 방어도 자체를 끌어 올리는 개념. 무당의 부드러움과 소림의 강건함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군요.”

딱히 문파 이름 따위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지만 모두는 금방 파악했다.

“화산파 컨셉의 화려한 검술은 일루젼과 재밍을 합쳐서 상대에게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거 접근 방식이 골때리네요?”

이걸영이 이걸 보라며 모두에게 들이밀자, 그것을 확인한 다른 팀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어때? 써먹을 구석이 있어 보이지?”

“저는 찬성입니다. 나쁘지 않네요. 이런 느낌의 로봇물은 없었던 것 같구요.”

“생각해보면 한국 로봇물의 시초격인 태권브이도 무술을 사용하는 로봇이었지. 한국의 로봇은 무술을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지.”

“시스템적으로 재미있게 분류되어 있어. 이것은 해외 유저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거야. 아마 그들은 무공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생각도 못할 것 같지만.”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좋아. 그럼 한번 힘을 내보자고, 전에 말했듯이 표세인이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는 거야.”

“물론입니다!”

“당연하지! 내가 여기온 이유가 뭔데!”

“그, 그런데 그걸 세종이 앞에서 이야기 해도 되는 겁니까?”

이걸영의 말에 조팀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세종아.”

“네.”

“아직 이 친구들은 너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한번 그 대사 다시 읊어 줄 수 있겠냐.”

“물론입니다. 20년 넘게 하극상을 꿈꿔온 남자. 하극상 계에 아이콘라 불리는 남자. 표세종입니다. 여기 계신 누구보다도 표세인이라는 빌런에게 오랜 억압을 당해왔지요. 제가 이 원대한 목표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의외로 이런류의 멘트를 날릴 때는 묘하게 유창해지는 표세종이었다.

“역시 듬직하구만!”

백용현이 표세종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배경 설정 엄청나게 공들이셨군요.”

함전무는 무려 100페이지에 가까운 설정 자료를 훑어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설정에만 메몰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는 느낌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이건 나중에라도 계속 참고본으로 써도 되겠는데요?”

“무엇보다 SF에 등장하는 제국이 한중일 컨셉이라는 것이 우습네요.”

“베드에스 느낌의 쿨한 악당 세력으로 연출되길 바란다. 연방쪽은 반대로 정의롭지만 내부가 곪아버린 답답한 세력으로 그려지면 합이 맞겠지. 이건 거의 클리셰잖아?”

“그렇지요. 이거 의외로 제국쪽에 손댈 북미, 유럽 유저들이 상당할 것 같네요.”

동양풍 비단옷을 걸친 제국 귀족들과 거기에 맞선 전형적인 연방의 우주군인들과의 대립 구도.

무엇보다 이들의 대리인으로 싸움을 이끌어갈 기업들의 이권 다툼.

여러모로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좋아. 시작해보자고.”

“그래서 TRPG는 언제 한다고요?”

“……조만간 할거라니까.”

*

*

*

“어떠냐?”

지난번에 이어 또 다시 벌어진 대표 호출.

조팀장의 호출에 나는 다시 한번 7층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지금 팀장이 대표를 호출한다는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조팀장이 준비한 배경 설정은 처음 기획한 로봇물 설정과 합이 맞으면서도 시스템으로 승화시키기에 너무도 훌륭한 컨셉이었다.

독창성.

게임으로서의 활용성.

배경적 탄탄함.

뭐 하나 문제될 것이 없다.

굳이 문제를 지적하자면 제국과 연방이 사용하는 용어가 다소 다르다는 것 정도지만, 지구 안에도 수백종의 언어가 있기 마련이다.

우주 스케일이라면 당연히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 정도는 유저들 스스로 납들할 것이다.

애초에 게임의 배경 설정이라는 것은 느끼는 것이지 달달 외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무협 요소를 이런식으로 접목시키실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사실 게임 쪽에서 드문 설정인 것은 맞지만, 소설업계에서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닌 것 같더구나.”

“소설도 읽으십니까?”

“웹소설에서 영감을 얻는 것은 너만 할 수 있는 재주라고 생각했냐?”

조팀장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무서운 분이십니다.”

“만만하게 보지 마라, 노인네라고 남의 장점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소 이해에 시간이 걸릴 수는 있어도. 내공이 있다. 너보다 더 오랜 시간 세상에 나온 좋은 소재들을 경험하고 그것들을 이용할 방법을 궁리해왔었다.”

조팀장의 말에 다른 팀원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는 연장자라는 부분에서 불필요한 프레임을 씌워 이들을 바라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라이더가 컨셉이 기사인데 그럼 주로 검을 사용합니까?”

“근접은 데미지가 높지만 제약이 있고 원거리는 데미지는 약해도 효율적이다. 이 밸런스가 라이더간의 전투에 핵심요소가 될 거다.”

“작은 함선 내부에는 로봇이 못들어가. 그리고 임무 중에는 함선 탈취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으니, 라이더 배틀 역시 로봇 배틀에 뒤지지 않을 만큼 중요할 거다.”

“아, 이거 안되겠네요.”

“뭐?”

내 말에 조팀장을 비롯한 팀원들 모두가 찔끔했다.

“왜, 왜지?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개발 규모가 문제인가? 물론 우리도 나름 절감을…….”

“아니, 반대입니다.”

“반대?”

“이거 규모 키우죠. 이 세계관 아깝네요. 두 세력과 기업들이 밀집해있는 중립 행성 혹은 우주 정거장 같은 것 하나 만들어서 라이더를 중심으로 한 시나리오도 추가하죠.”

“자, 잠깐 그러면 개발 규모가…….”

로봇 게임 하나에 일반 적인 액션 게임이 더해지는 겪이다.

스토리가 추가될수록 게임의 볼륨과 개발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어쩌면 별개의 두가지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든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가 재미있어 보여서 안되겠네요. 어차피 제 회삿돈으로 만드는거 아닙니까? 한번 질러보시죠. 자신 없으신 것 아니시죠?”

내 말에 마굴팀 멤버들이 눈썹이 꿈틀했다.

“지금 누구에게 그런 소릴 하는 거냐!”

“네가 코흘리게 시절부터 스크립트 짜던 나다!”

“네가 하는 것을 우리가 못할 것 같냐!”

“좋아!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라!”

띠링!

[크리티컬이 터졌습니다! [마왕 도발(광역기)]

신병 모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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