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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82화 (282/346)

282.

“따라서 성진규를 마굴, 아, 아니. 기둥소프트 팀에 지원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했습니다.”

결국은 성진규 지원 보내겠다. 이 짧은 한마디를 위해 문상훈은 일장 연설을 늘어 놓았다.

나와 양성태는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멍하니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본인 생각이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뭐랄까.

그림이 그려진다.

아마도 조팀장이 자신들의 약점을 깨닫고 성진규이 필요하다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내가 아닌 문상훈을 공략하는 편이 훨씬 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충 그림이 그려집니다만?”

내가 양성태를 보며 말하자, 그는 싱긋 웃었다.

“네. 그렇습니다. 문상무님이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 아니 정말로 제가 결정한 거라니까요?”

문상훈은 애써 조팀장의 압력을 부인했다.

이건 뭐랄까.

후환이 두려워서 일진을 감싸는 피해 학생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이게 학교에서라면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회사에서 그것도 상무급 인사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 우리 맥베스의 미친개라 불리는 문상훈을 이렇게까지 몰아 세우는가?

하기야 상대가 전대 마왕 혹은 사천왕급 인사들이니, 이건 뭐 답이 없다.

“일단 알겠습니다. 게다가 좋은 판단이십니다.”

“그, 그렇지?”

좋은 판단이라는 말에 금방 경어를 집어 던진 문상훈의 표정이 활짝 폈다.

요즘 왜 이렇게 귀여워 지시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 귀여워진다던데, 문상훈도 슬슬 50대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라서 그런 걸까?

“파츠 단위의 데미지 계산식부터 레벨디자인까지 고려하면 수학적 노하우가 필요하죠. 그리고 그 부분에서 성진규 실장만한 인재도 없고요.”

우리쪽에는 마침 남궁원과 함송희가 있기 때문에 그 방면으로는 크게 인원이 부족할 일은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전형적인 오픈월드 성장 공식을 답습할 예정이기에 레퍼런스 삼을 게임도 많지만, 저쪽은 워낙 새로운 도전이라서 완전히 새롭게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러모로 고민을 해봐도 성진규를 저쪽에 붙이는 것은 나쁘지 않은 계획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뒷공작은 곤란하군요.”

멘트와는 달리 양성태는 우습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게요. 그런데 정말로 왜 부사장님이 아닌 상무님을 계속 물고 늘어지는 걸까요?”

“나, 나도 그게 궁금해! 대체 왜 나야? 아, 아니 물론 이 건은 내 아이디어였지만!”

문상훈은 한발 늦게 자신의 아이디어임을 어필했지만 나와 양성태는 그저 안타까운 미소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부사장님.”

“예. 말씀하시죠.”

“결과적으로는 좋은 아이디어지만, 과정이 아름답지 않다는 느낌이네요.”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이참에 군기 한 번 잡아 볼까요?”

“구, 군기?!”

내 말에 문상훈이 화들짝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대표가 팀장과 팀원들 군기 한 번 잡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양성태는 또 한번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아마도 나처럼 이 상황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부사장님.”

“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워낙 쟁쟁한 상대들인지라 막상 양성태에게 부탁하는 것도 살짝 걱정이 됐다.

아무리 양성태라도 마굴 무리들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그거 아십니까?”

“뭔가요?”

“지난번에 홍비서와 대화하다가 재미있는 표현을 들었습니다. 홍비서의 눈에 7층 팀원들은 용사파티 같고 대표님은 마왕 포지션 같다더군요.”

“내가 마왕?”

세상에 이렇게 억울할 수가! 소싯적에 밑바닥 용사부터 출발했는데 이제는 마왕이라니?

“대표님이 마왕이면 저와 문상무는 사천왕 포지션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사천왕이라니……. 그러면 두 사람이 비는데요?”

“당연히 고전무와 제임스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럴듯하네요.”

양성태의 말에 나는 껄껄 웃었다.

“어쨌든 가능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문상무가 우리 중 최약체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오겠습니다. 그들은 아직 성검(성공작)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띠링!

[사천왕(양성태)이 용사파티를 무너트릴 음모를 계획합니다!]

*

*

*

“음……. 뭐지? 갑자기 한기가 도는데?”

“그럴 때는 보통 누군가 노리고 있다는 거죠.”

조양길의 말에 홍기도가 대답했다.

“누가 날 노려?”

“지금 상황이라면 뻔하지 않겠습니까?”

홍기도의 말에 조양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세인이 밖에 없긴 하지.”

너무나 간단한 문제였다.

대체 누가 이곳에서 조양길을 노릴 수가 있을까? 그리고 짚이는 문제까지 있었다.

“문상훈이를 이용해서 성진규를 빼돌린 것이 마음에 안든다 이거로군.”

확실히 올바른 체계를 지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개발자로서의 스위치가 켜진 조양길에게 그까짓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반드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든 체제에 반하는 행동을 무릅쓸 것이다.

이정도 패기 없이 어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겠나!

“그럼 어떤 방식으로 나올까?”

“그거 아세요?”

“뭘?”

“마왕군은 하청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조직인 법이지요.”

“하청?”

“마왕이 시작부터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으니, 우선 사천왕에게 지시를 내리기 마련이죠. 하지만 사천왕이라고 바로 모습을 드러내서야 되겠습니까?”

“옳거니! 그렇다면 또 하수인에게 지시를 내릴거라 이거로군. 그렇다면 사천왕이 누구냐에 따라서 대충 윤곽이 드러나겠군.”

“그렇죠. 제 생각에는 부사장님일거라고 생각하고 부사장님이라면…….”

띠링!

[홍켓몬이 예지를 시전합니다.]

“한명수 부장 아닐까요?”

“아아, 그래. 그 친구 정도는 되어야지.”

한명수라면 과거 기획 잡아먹는 귀신이라 불렸던 남자다. 요즘 들어 표세인과 붙어먹은(?) 이후로는 그 기세가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칠층 마굴 멤버들에게 액션을 취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 정도뿐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조양길의 질문에 홍기도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럴때만큼은 누구 못지 않게 아이디어가 샘솟은 홍기도였다.

“한명수 부장에게는 오직 정공법뿐입니다.”

“정공법?”

“우리의 비전을 보여주고 오히려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지요. 그리고 저는 우리의 프로젝트가 지닌 비전이 그정도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흐음……. 양성태가 널 교육해보겠다 했을 때는 잘 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쓸만하군.”

비서라는 것은 결국 임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량으로 평가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확실히 홍기도의 자질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데 ‘우리’라니? 너 표세인이 비서 아니냐?”

가장 중요한 포지셔닝에 하자가 있다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결국 블랙은 적진에서 남모르게 주인공들을 돕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군. 내가 레드로군.”

“잠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발언이다!”

갑자기 백용현이 버럭 소리쳤다.

“왜, 네가 레드야? 키도 작은 게!”

“레드가 키가 뭐가 중요하냐? 그리고 레드란 리더와 어감부터 비슷하잖냐. 결국 리더가 레드인셈이지.”

“쳇, 팀장이라 이거냐?”

“그럼. 내가 팀장이지.”

“낙하산 팀장인 주제에 생색은…….”

“너는 블루가 어울려.”

“뭐 맥슨 심볼 컬러가 블루긴 하지. 좋아, 이번에는 넘어간다.”

“그럼 나는 그린?”

“잠깐 형님이 그린이면 나는 남는 것이 없잖아요! 옐로와 핑크는 여성 멤버 아닙니까?”

“옐로는 뚱보나 덩치 속성이 담당하기도 하지.”

“그, 그런 겁니까?”

함성준은 인터넷으로 전대물 5인의 법칙 같은 내용까지 보여주며 이걸영을 다독였다.

“일단 대충 정해졌네요. 그럼 모두 힘을 합쳐 마왕(표세인)을 무찌르는 겁니다!”

“오오!”

모두는 홍기도의 표어에 주먹을 치켜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조양길은 한가지가 걸렸다.

대표 비서가…….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건가?

새삼 맥베스의 인사 시스템에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홍기도의 예상대로 표세인의 지시를 받은 양성태가 찾은 것은 한명수였다.

“제가 칠 층 담당이라고요?”

“네. 일단 그쪽은 아직 팀 단위니까. 부장급 인사가 배정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성진규 실장도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부장급인 제가 뭘…….”

“성진규 실장은 지원 역할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서 통솔은 부장의 권한이지요. 이 건에 한해 결정권자는 한명수 부장님이 되는 거지요.”

“하긴, 개념상으로는 그렇게 되겠군요.”

개발 도중 조력자로 참가한 포지션이라면 결국 부서관리 부분에는 참가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저는 어쨌든 맥베스 소속이지 않습니까? 칠층은 기둥소프트 아닙니까?”

“자회사입니다. 본사에서 컨트롤 타워를 보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그, 그것도 그렇군요.”

하나부터 열까지, 양성태의 논리에 빈틈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명수는 뭔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거 사내 정치에 연관된거죠?”

한명수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질문하자, 양성태는 피식 웃었다.

“다름 아닌 표세인 대표님과 조양길 팀장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내 정치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렇지요. 두 분이 워낙 사이가 돈독하신…….”

“아니요. 포인트를 잘 못 짚으셨습니다.”

“네?”

한명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이 돈독한 관계이니 사내정치라는 단어가 붙을 만한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대표와 팀장이 어찌 사내 정치를 하겠습니까? 파워 게임에도 격이 있는 법입니다.”

“파, 파워 게임?”

“한명수 부장님.”

“네.”

“오랫동안 팀장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그렇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제는 지난 일이지만 정말로 오랜 기간 승진을 하지 못하고 팀장직에 머물러 있었다. 부장으로 승진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다소 씁쓸한 추억이다.

“본인의 연배와 경력을 믿고 팀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팀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절대로 그 꼴은 못 보지요! 회사에 나이가 어디 있습니까? 직급과 직책에 맞게 행동해야지요!”

한명수의 말에 양성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바로 그겁니다. 그럼 반대로 대표에게 보고하지 않고서 체제 밖의 편법으로 일을 벌이는 팀장은 어떻겠습니까?”

“아아…….”

그제서야 한명수는 깨달았다.

확실히 이건 사내 정치 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성태의 말과는 달리 이건 파워게임인 것은 맞다.

표세인과 조양길이 기둥소프트라는 굴레로 새롭게 관계를 다져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진통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무려 전 회장의 고삐를 잡으라는 명을 받게 된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말씀드렸다 시피, 저는 정치 놀음 같은 것 안 합니다. 그냥 제가 맡은 부서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할 뿐입니다. 이점 명확히 해주시죠.”

일개 부장임에도 여전했다.

부사장 면전에서…… 아니, 대표의 지시라는데도 사내 정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딱 잘라 선을 긋는 남자.

이런 인물이기에 믿을 수 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도 한 가지 확답을 받고 싶습니다.”

“말씀하시지요.”

“부장은 팀장보다 높습니다. 맞습니까?”

“그, 그거야 당연하지요.”

한명수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양성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제 1차 사천왕 VS 용사의 결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배신자는 처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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