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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86화 (286/346)

286.

마굴팀은 백용현의 활약으로 손에 넣은 그래픽 리소스를 활용한 덕분에 본격적으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한편 남궁원이 주도하는 스파이스 프로젝트 역시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한 상황.

표세인은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신경 쓰며 틈틈이 개발까지 손을 내는 탓에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업무에 매진하던 나날이 이어졌다.

*

*

*

“요즘은 뭔가 한가하네요.”

“뭐?”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내 방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는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나 지금 죽어라 일하는 것 안보이냐?”

“대표라는 것은 원래 그런거 아닙니까?”

“비서는 대표가 바쁘면 같이 바빠야 정상 아니냐? 아니, 더 바빠야하지 않나?”

내가 비서 업무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다른 비서들은 대표가 바쁜 시기가 되면 더욱 난리가 나는 직무가 아니었나?

“원래라면 그래야 하는데, 대표님이 개발에 몰두하니 제가 딱히 할게 없잖아요.”

하기야, 내가 외부 일정을 거의 담당하지 않고 있는 덕분에 요즘 홍기도 녀석이 딱히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더군다나 원래도 묘하게 요령이 좋은 녀석인데, 비서가 되고나서는 더욱 요령이 생긴 것 같다.

뭔가를 지시하면 척척해내고,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재빠르게 해내고는 저렇게 여유작작이다.

물론 일을 잘하는 것이니 딱히 트집을 잡을 수는 없는데, 이 트집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묘하게 배알이 꼴린다.

“할 일 없으면 만들어줘?”

“뭐 그러시던지요.”

아니, 이놈이!

사실 딱히 줄 일도 없기는 하다. 그것을 정확히 알고서 저렇게 배짱을 부리니까 할말이 없네.

하지만 시킬 일이 없어도 막상 찾으면 또 생기는 것이 일이라는 것 아니겠나?

“흐음…….”

“쓸데 없는 고민을 하고 계시는군요. 일 잘해서 빨리 끝낸 직원에게 억지로 일감을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것도 올바른 대표의 태도는 아니죠.”

“바쁜 대표 앞에서 느긋하게 커피나 홀짝이면서 할 일 없다고 여유부리는 것도 올바른 비서의 태도는 아니지.”

“여기서는 반격에 나설 타이밍이겠군요.”

“오냐, 들어와봐. 그 전에 커피 한잔 가져오고.”

나도 마침 잠시 숨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이 녀석과 잠시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뇌를 쉬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비서실에서 이야기가 오가던 것을 우연히 들었는데요.”

“그런데?”

“칠층 멤버들이 아무래도 너무 어메이징 하잖아요.”

“그렇지?”

사실 백용현 전 회장까지는 나조차 예상을 하지 못했던 멤버다.

게다가 오자마자 리소스를 인수해서 작업 능률을 미친 듯이 상승시킨 공로까지 세우지 않았나?

늙은 생강이 맵다지만, 저쪽은 너무 타바스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게임 미튜버 김정학이라고 아시죠?”

“알지!”

예전에 좀비로얄을 띄울 때 가장 열성적으로 여론 몰이를 도와준 미튜버가 아닌가?

“그런데 그 사람은 갑자기 왜?”

“어디서 정보가 새나간 것인지,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고 하네요.”

“인터뷰?”

“3M의 회장 두 명이 속한 개발팀. 경력으로나 나이로나 여러모로 인상적인 팀 구성이잖아요?”

“하긴 그거야 그렇지.”

해외에는 드물게 이보다 나이가 많은 현역 개발자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국내에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확실히 게임 관련 미튜버에게는 재미있는 인터뷰 소재라고 여겨질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 이야기 칠층에도 전달 된건가?”

“아니요. 아닐걸요?”

“그래? 그럼 우리 잠깐 놀러갈까?”

“좋은 생각이십니다. 일도 가끔씩 숨 좀 돌리면서 해야지요.”

“너는 그만 숨 돌려, 산소도 지나치면 독이야.”

“어차피 죽으면 산소도 안녕인데, 지금 많이해야지요.”

한마디도 안 지는구나. 얄미운 녀석.

우리는 그렇게 칠층으로 향했다.

*

*

*

“아니, 이미 다 끝난 이야기잖아! 이제와서 딴 소리를 하는건 뭐야?”

“그래! 지금 바빠 죽겠는데 팀킬에도 정도가 있지!”

칠층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왁자지껄한 소란을 목격했다.

“오! 무슨 일 터졌나보다.”

“재미있겠네요.”

“잠깐 지켜볼까?”

“당연히 그래야죠!”

우리는 각자 입구 좌우에 붙어 슬쩍 내부를 염탐했다.

“핑크! 네가 그쪽하고 붙으면 어째!”

“아니, 그게 아니라 성진규 실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진정하시고…….”

“나는 왜 이름으로 불러? 너는 정 멤버다 이거냐? 나 실버라니까?”

“아, 아니……. 실장님 지금 우리가 같은 편…….”

“끝까지 이러네? 너 나 견제하냐? 아! 그렇구나. 너 원래 최기환 라인이지? 나 견제하려고 하는구나?”

성진규는 돌연 눈을 부릅뜨며 한명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고, 한명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떡 벌렸다.

“실버는 무슨 누구 허락받고 실버야?”

“그러니까. 너에게 실버가 가당키나 하냐? 실버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쿨가이어야 한다고.”

“저, 저도 쿨할 수 있습니다.”

“말더듬없잖아! 아웃!”

“기, 긴장해서 그래요. 금방 적응할 겁니다.”

긴장했다기에는 너무 잘 노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야.’

‘네.’

‘핑크? 실버? 지금 저게 뭐하는 거냐?’

‘요즘 감성으로 직급과 호명체계를 닉네임으로 하겠대요. 팀장님은 레드고요. 느낌오시죠?’

‘아! 그래서!’

바로 이해가 됐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칠층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칠층의 노괴물들과 편하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을까?

나 조차도 조금만 방심하면 절로 회장님 소리부터 튀어나올 것 같지 않나?

“또 옆길로 새는 것 같으니, 일단 중요한 안건부터 논의하죠.”

“이게 더 중요해! 너는 핑크 달았다 이거냐? 정멤버라 이거야?”

“어허, 것참……. 실버. 이러시깁니까? 지금 우리가 손을 잡은 상황이잖아요.”

“크큭, 그래. 그렇게 하라고.”

성진규는 정말로 만족했다는 듯이 냉큼 태세를 전환했다.

하지만 다른 전대원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

“누구 마음대로 실버래! 실버는 따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뽑을 거라고!”

“진짜 왜들 그러십니까! 저를 부르신 것은 여러분들이잖아요! 그럼 저는 왜 부르셨어요.”

“너는 조력자 포지션 아니야? 성박사 어때?”

“오! 그거 좋네. 밋밋한데다가 맨날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지만, 그래도 복잡한 공식 같은 것은 잘 다루니까 딱인데?”

“바, 박사?”

성진규는 잠시 골똘히 고민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박사와 실버 중에서 무엇이 더 괜찮은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

뭘까, 이 느낌…….

마치 미국지부에 다시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헉!”

“제임스!”

마침 염탐중이던 우리 뒤쪽으로 제임스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가 일부러 그랬을리는 없고, 그만큼 내가 방심하고 있던 거겠지. 아니, 집중하고 있었다고 해야할까?

“흠흠, 이곳에는 무슨 일로?”

“그건 제가 여쭈어야 할 질문 아닙니까?”

듣고보니 그렇네.

대표가 갑자기 방문했으면, 내가 용건이 있으려니 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

“미튜버관련으로 인터뷰 이야기가 나왔다기에 한번 방문했습니다.”

“그렇군요. 마침 저도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그래요?”

“부사장님께서 전해주셨습니다. 인터뷰 이야기가 있는데, 나름 파급력이 큰 스트리머가 요청한 것이니, 신작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면서요.”

“잘됐네요. 함께 가시죠.”

“예.”

우리는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기습?”

“앗! 기습이냐?”

기습?

나를 발견한 함성준과 이걸영이 동시에 외쳤다.

요즘 이분들 궁합이 너무 잘 맞는 것 같다.

“잘 왔군. 들어보게. 자네가 생각하기에 성진규가 실버에 가당키나 하나?”

“박사 포지션이 딱이지?”

함성준과 이걸영이 느닷없이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솔직히 그렇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성진규에게 실버라는 포지션은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비맞은 강아지 같은 느낌으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성진규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요, 용사파티 일을 마왕군에 문의하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오오! 저를 이곳의 일원으로 인정해주시는군요!”

성진규가 반색했다.

아니, 그 어려운 계산식과 레벨디자인을 쳐내는 일원을 이렇게까지 홀대한단 말인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으면, 이 작은 한마디에 이렇게나 얼굴이 활짝 피는 거람?

“하긴 그것도 그렇군.”

“저쪽에 문의할 이야기는 아니지. 그보다 오랜만이군 블랙.”

“훗. 오랜만입니다. 그린. 옐로우.”

너, 너도 여기 멤버였냐? 너 마왕의 심복 같은 놈이야.

거기다가 블랙은 보통 정체가 발각되면 죽거든? 그건 알고 있니?

“화기애애한 업무환경 조성은 칭찬할만하지만, 업무방해 수준까지 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쏴아아…….

겨울의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느낌이다. 주변의 온도가 갑자기 내려가고 모두 저도 모르게 슬쩍 옷깃을 여며야 하나? 하고 생각할 지경.

맥베스의 얼음왕자.

제임스가 지닌 특유의 분위기는 기둥소프트에와서도 여전했다.

상대가 회장이 아니라 국가통수권자라 하더라도 제임스의 이러한 기질은 변함이 없겠지.

정말 멋있다.

“차, 찾았다!”

“맞아!”

“시, 실버……. 아, 아니! 실버는 나야!”

하다 못해 성진규까지 순간 넋이 나가버렸다.

맞아! 내가 생각해도 여기서 실버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제임스다.

“넌 박사라고!”

“……아무나 실버하고 일 이야기 계속하면 안될까요?”

“하하하! 안타깝지만 실버는 제 쪽입니다. 마왕군 사천왕의 일각이지요!”

“실버도 블랙처럼 원래 적진에 있다가 넘어올때가 클라이막스지!”

“실버라 부르든, 골드라 부르든 아무래도 좋습니다. 팀장님은 어디계십니까?”

“레드는 잠깐 블루와 화장실에 갔어. 이제 곧, 아! 왔네.”

마침 레드와 블루 그리고 세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손님들이 많이 왔군.”

“레드! 저는 손님이 아닙니다! 저는 실버에요! 저도 이곳 멤버에요.”

“누가 자네보고 말했나. 그리고 실버라니? 그렇게 결정된거야?”

조팀장은 뭔가 좀 석연치 않다는 시선으로 성진규를 바라보았다.

“결정은요. 박사 포지션으로 합의봤습니다. 그리고 실버는 찾았고요.”

“그래? 누군데?”

“짜잔! 여기있습니다.”

이걸영이 제임스를 가리켰다.

“오랜만입니다. 블루.”

제임스는 백용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미국지부에서 지낸 덕분일까? 제임스는 은근 맞춰줄 때는 맞춰주는 타입이다.

아니, 사실 이름으로 호명하기는 불편하니 냉큼 닉네임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군. 전에 연봉협상 때 봤었지.”

“면접이라고 하기에는 통보에 가까웠지만요.”

“하하하. 솔직히 무보수 봉사도 각오했는데, 제대로 값을 쳐줘서 고맙네.”‘

“페이는 정확히 계산을 해야.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역시 훌륭해.”

백회장은 옳다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실버…….”

“저것이 카리스마.”

함성준과 이걸영은 때 아닌 제임스 앓이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클클, 이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는 녀석이 실버라니. 하긴 실버는 농담 같은 것 던지는 타입이 아니지.”

텍사스에 함께 가셨으면 아마 조팀장은 기절했을 것이다.

그때의 제임스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돌아오기 무섭게 원래의 얼음왕자로 빙의했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야?”

“인터뷰 관련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수락하는 쪽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냥 하라 이거다.

“실버가 하라면 해야지.”

“그럼. 그럼.”

“두 분은 죄송하지만,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물론 짧은 질문 정도는 오갈지도 모르지만요. 대상은 레드와 블루입니다.”

“나, 날카롭다.”

“이 금속성 향기가 나는 예리함. 크으, 역시 실버야. 아껴두길 잘했어.”

“그래서 업무 이야기는 대체…….”

이래저래 한명수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마굴팀은 실버를 손에 넣었다?

청군 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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