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
맥슨과 맥베스 직원들로 추정되는 청군, 홍군의 댓글 배틀은 예상치 못한 파장을 불러왔다.
-원래 맥슨이 옛날부터 짱 아님?
-시대 바뀐지가 언젠데 뭔 소리임?
어려서부터 각 회사들의 게임들을 즐긴 구독자들까지 합세해서 열띤 배틀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생각보다는 평범한 댓글 응원전으로 진행되어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돈도 버실 만큼 버신 분들이 갑자기 개발자로 컴백하신 이유가 뭡니까?”
“우리도 처음부터 그런 위치에 있던 것은 아니지.”
“그렇지. 우리도 젊었을 적에는 꿈이 있었지.”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같은 인프라나 기술력이 제공되지 않았기에 시도할 수 없었던 것들이 많지.”
“그래. 이제와서라기 보다는 지금 이 시점이니 도전하려 한다가 맞겠지.”
“그거 멋지시네요!”
김정학은 능숙한 미튜버 답게 조팀장과 백회장의 말에 적절한 리액션을 터트렸다.
“아빠 즐거워 보여.”
“맞아. 게다가 카메라 앞에서 긴장도 안 하시고 의외로 이런 것이 체질이신가봐?”
“마음에 짐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 모르지. 아빠는 확실히 경영자보다 개발자 일 때 더 빛나 보여.”
연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것이 몹시 예뻐 보여서 슬쩍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역시 장인어른께 팀장직을 제안했던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모처럼 연아와 단 둘이 오붓한 시간을…….
-쩝쩝, 짭짭!
단 둘이 아니었구나.
그래. 이 녀석이 있었지?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체하겠다.”
“뭘 모르시네요.”
“뭘 몰라?”
나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홍기도는 치킨으로 향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커플들이 꽁냥대는 타이밍이야 말로 솔로들이 배를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저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세요.”
“…….”
이 녀석은 사상이 너무 확고해서 이렇게 가끔 사람 말문을 막아 버린다.
그래. 많이 먹어라. 그리고 기억해라.
언젠가 쉬린칭이 돌아와 꽁냥대는 그 시점에 나는 한우를 흡입해 줄 테니까.
“훗.”
“?”
“제가 한우를 앞에 두고 한 눈을 팔 것 같습니까?”
이 놈이 또 허락 없이 내 생각을 읽어?
“혹시 아니? 삼국지에 양수라는 인물이 있었단다.”
“양수? 그게 누구에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렴. 갑자기 닭갈비 땡기네.”
“오늘 집에 가서 먹을까?”
“그러게 오랜만에 배달 음식도 좋겠네.”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
*
*
화면 속에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벨트에 내장된 방어막 기능을 활성화했다.
단검을 손에 쥐고 마주 선 두사람.
-캉캉캉캉!
짧은 단검이 눈이 돌아갈 정도의 속도로 공방을 교차하기 시작했다.
이 남자들을 조작하는 것은 표세인과 홍기도였다.
그들이 조작하는 스틱과 버튼에 따라서 캐릭터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거, 정말 특이하네요.”
“그렇지?”
홍기도의 질문에 표세인이 씩 웃었다.
표세인이 고안한 새로운 전투 조작 방식.
이것의 이름은 피드백 배틀 시스템이었다.
상대의 자세와 자신의 자세에 따라서 상호작용을 일으켜 같은 버튼을 눌러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여기에 특유의 보디밸런스 시스템이 더해져, 빠른 공방으로 상대의 밸런스를 무너트리면 공격기회가 발생하고 정확한 타이밍에 스틱과 버튼을 누르면 유효타가 들어간다.
마침 홍기도가 조작하는 캐릭터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순간 표세인은 정확히 스틱과 버튼을 눌렀고, 캐릭터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휙! 스슥!
상대의 움직임을 쫓아 반응한 캐릭터가 마지막 순간에만 긁듯이 상대의 빈틈을 노려 베어냈다.
그러자 허벅지가 베인 상대의 중심이 한 번 더 무너지고 다시금 유효타 버튼이 출력.
이번에도 스틱과 버튼을 올바르게 입력하니…….
-스슥! 서걱!
표세인의 캐릭터는 상대의 팔을 베고, 마지막으로 뒤로 돌아 목에 칼을 댄 다음 느리게 훑듯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거 신선하네요. 닌자풍 소울 시스템에 비슷한 시스템이 있었죠?”
“그렇지.”
“그런데 다대일 전투라면 정신 없지 않을까요?”
“적이 유효타를 날리려면 어차피 느려지니까, 오히려 밀리는 타이밍에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 이건 솔직히 컨트롤 좀 타는 문제야. 난이도 단위로 타이밍 계산 식에 유예를 둬야겠지?”
내 말에 홍기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던 남궁원 역시 입에문 펜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개성있고 나쁘지는 않은데, 난이도 조절이 관건일 것 같아요. 우리가 하드소울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누구나 표대표님 정도로 게임을 잘하지는 않을 테니까.”
“어쨌든 함송희.”
“네?”
“아주 잘했어. 최고야.”
내가 기획한 상호 피드백 전투 시스템을 함송희는 멋지게 구현해냈다.
“하지만 아직 그래픽 적으로 모션상의 기묘한 얽힘이라거나 어긋나는 것들이 있어요.”
피드백에 따라서 변수가 최고 100단위가 넘어가는 통에 당장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이거 사양 좀 많이 탈것 같네요.”
“AAA급 게임이야. 사양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지. 그리고 아직 최적화 작업을 신경 쓸 수준은 아니잖아?”
최적화는 개발 마무리 단계에서 고민할 문제다. 지금은 우리가 계획하는 것들을 하나씩 구현해 내는 것을 목표로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해도……. 이거 완성되면 상당한 반향이 있을 것 같네요.”
“그렇지?”
기존의 게임들은 정해진 동작을 정해진 트리거를 입력해서 실행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피드백 시스템은 상대와 나의 자세나 위치에 따라서 같은 버튼이라도 전혀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게다가 스파이스의 독특한 설정 덕분에 상대가 유효타를 노리는 순간 찰나의 둔해짐이 발생하는 덕분에 전투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
“그럼 우리 올해는 다시 게임쇼에 참가하나요?”
“그렇지. 이번 게임쇼는 우리가 먹는다. 국내 게임쇼만이 아닌, 북미와 유럽에서 개최되는 게임쇼 전부!”
“그렇게 많이요?”
“그래! 맥베스가 처음으로 AAA급 게임을 세상에 선보이는데, 이 정도 퍼포먼스는 해야지.”
영화 IP인수부터 이미 마케팅에 열을 올리지 않았던가? 이제와서 제동을 걸기에는 늦었다.
더 크게! 더 화려하게!
온 세상이 이 게임을 기대하며 갈증이 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더욱 훌륭하게 개발해야겠지.
“일단 전투 시스템 부분의 밸런싱은 그쪽에 맡길게. 튜토리얼 스토리 파트 작업에 신경을 써야겠네.”
게임쇼에서 그저 트레일러 하나만 달랑 공개하는 경우도 많지만, 역시나 유저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인게임 플레이 장면이다.
“커스터마이징은 각이 잡혔지?”
“네. 미국지부에서 개발한 페이셜 메이킹 시스템 참 좋네요.”
미국지부는 자체적으로 한 AI 그래픽 시스템을 인수했다.
해당 AI는 수십,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얼굴을 분석하여 자체적으로 새로운 인간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기술이었다.
이 자체는 여러 곳에서 개발 중이며, 특히 게임사만이 아니라 영화쪽에서도 관심을 갖는 기술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해당 AI에게 전달할 정보 값을 슬라이더 형태로 구현해 커스터마이징 UI 스킨만 씌우는 것으로 얼렁뚱땅 완성해버렸다.
표현은 얼렁뚱땅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래픽팀이 달려들어서 오랜 기간 개발해도 이만한 퀄리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완성도였다.
무엇보다 서서히 현실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퀄리티를 재현하기 시작한 게임 엔진 기술의 발달과 시너지를 일으키니, PC사양에 따라서는 진짜 사람 얼굴을 만들어 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진 입력 기능은?”
“그것도 완성되었죠.”
우리는 AI 시스템을 적용하는 김에 유저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적용하여 그와 매우 흡사한 캐릭터 메이킹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결국 게임 캐릭터라는 것은 아바타다. 유저의 분신이라는 말이다.
자신의 분신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질수록 유저가 느끼는 몰입감은 기하 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이제 정말로 시나리오와 오픈월드의 상호작용 요소들만 잘 채워넣으면 해볼만하다고 생각할 수준에 도달할 것 같다.
“인게임 인트로와 커스터마이징, 그리고 초반부 배틀 몇 번 보여주는 것이 전부라고 하셨죠?”
“그래. 너무 길어도 안되니까. 최대 10분 최소 5분 이상으로 준비해 볼 생각이야.”
“그거라면 당장이라도 어느 정도 손만 보면 되겠네요. 보정훈 실장님 지원도 필요 없겠네요.”
“그렇지. 그쪽은 지금 배경 디자인에 열을 내고 있으니까. 우리도 엔진과 툴을 다룰 수 있으니까. 가급적 우리 손으로 해내고, 검수만 받자고.”
요즘 게임 엔진은 단순이 성능만 일취월장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개발 편의성까지 압도적으로 발달하는 덕분에 프로그래머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기획안에서도 이런 저런 짜깁기가 가능할 정도였다.
“좋아. 그럼 나는 올라가서 튜토리얼쪽 기획을 더 검토해 볼게.”
이미 시스템과 굵직한 내용은 정해졌지만, 세부적으로 추가하거나 손봐야할 내용이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살짝 걱정했었는데 말이죠.”
“무슨 말이지?”
“갑자기 팀장이 되어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대표님이 계속 붙어있으니까.”
“아! 이런……. 나 때문에 팀장 위신이 깎이는 느낌인가?”
“설마요. 무척 든든하고 기뻐요. 우리팀이 이대로 해체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거든요.”
“하하, 너 답지 않게 왜 갑자기 감성적이냐?”
“넌 닥쳐!”
사실 이번에는 홍기도의 말에 동의했다. 남궁원 답지 않은 말이기는 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에요. 솔직히 저 혼자서는 좀 벅찬 프로젝트이기도 하고요.”
고작 30대 기획자에게 AAA급 개발을 홀로 진두지휘하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나도 아직까지는 30대지만.
어쨌든 내가 우려하던 팀장 위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만약에 말이지.”
“네.”
“내가 이곳에 자주 얼굴을 비추지 못하게 되더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거나 용건이 있으면 언제든 부담갖지 말고 나에게 연락해. 알겠지?”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엄청나게 바쁘시다는 것 아니에요?”
“내가 우리 팀 챙기는 것보다 바쁜 일이 뭐가 있겠어.”
“오! 감동이에요! 역시 표세인! 그저 빛과 소금!”
대답은 남궁원이 아닌 함송희쪽에서 튀어나왔다.
“어쨌든 이 느낌이면 칠층팀에게 패배할 일은 없겠죠?”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칠층팀과 경쟁중이잖아요.”
경쟁? 아니, 딱히…….
아니, 경쟁 맞나?
사실 칠층 마굴에서 일방적으로 마왕타도를 외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걸 여기서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문상무님 요즘 텐션 장난 아닌 것은 아세요?”
“문상무님이?”
지난번 셔틀 위기에서 구해주고는 딱히 칠층과 별일 없지 않았나?
“아마도 거기서 무언가 이야기를 듣고오신 모양인데, 절대로 거기에는 질 수 없다면서 칼을 가시더라고요.”
“으음…….”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어요.”
“뭐가?”
“대표님은 우리편 맞으시죠?”
남궁원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럼 마왕이 용사편을 들까?
“그쪽 프로젝트가 재미있어 보여서 몇 번 아이디어를 준 적은 있고, 일단은 내가 대표니까 신경 쓴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직접 개발하는 것은 스파이스잖아?”
“그쵸?”
“아! 물론 우리편 아닌 사람이 하나 있긴하네.”
“그게 누구인가요?”
-호다닥!
탈주 닌자 블랙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직접 하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