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배우는 결정하셨어요?”
남궁원의 질문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스파이스가 영화 IP인 만큼 이름값 있는 영화배우를 섭외하여 이슈를 몰이를 하는 것이 어떻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몫이 되었다.
“글세, 사실 나도 배우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니까. 누가 제일 좋을까?”
“솔직히 저에게 물으신다면, 저는 로다주가 좋아요!”
대뜸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를 픽하는 남궁원이었다.
“그분 출연료가 얼마나 되려나?”
“전에 인터넷에서 얼핏 본 바로는 영화 한편에 77억 정도라고 들은 것 같아요.”
“확실히 세긴 세구나.”
그 정도면 어지간한 게임 하나 만들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니까 그 보다는 낮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연기력도 그정도까지는 필요 없으니까요. 어차피 대본 녹음이 대부분이고 표정 부분은 페이셜 캡쳐로 딴 것을 AI합성으로 제작할 테니까요.”
해당 내용은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미국에는 이러한 페이셜&모션 캡쳐 스튜디오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다.
“배우를 섭외해서 얼굴을 따다니……. 내 평생 이런 일을 고민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대표님은 훨씬 더 큰 야망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완벽하게 설계된 계획대로 착착 진행해 나가시는 것 아니었나요?”
남궁원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나에 대해 굉장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맥베스에 오기 전까지의 나는 그저 하루 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것이 고작인 일반적인 회사원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에 연아 덕분에 장인어른과 만나 게임을 시작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내가 바란 것은 그저 하루빨리 은퇴해 집에 틀어박혀 연아를 내조하는 것 정도를 바라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어쨌든 남궁원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과는 천만광년쯤 떨어진 것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뭔가 나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건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그 사람이 괜찮다면 그 사람에게 접근해 보면 좋지 않겠어?”
“그냥 그렇게 바로요?”
“유명한 사람이잖아?”
할리우드 배우들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은 나였기에 대충 나도 알만큼 유명한 배우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로다주 좋은 선택이네요. SF 배경과도 잘 어울리는 캐릭터니까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홍기도와 함송희도 동의한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역시 배역은…….”
“이 캐릭터 밖에 없죠?”
“그렇지.”
주인공을 위해 부족과 대립하고 후에 주인공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캐릭터.
안 그래도 스토리 비중이 가장 높은 캐릭터라서 모델링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는데, 이 캐릭터라면 충분히 반향을 일으킬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오케이. 이거 바로 사업부에 전해.”
“알겠습니다.”
홍기도는 즉시 스마트폰을 꺼내 메시지를 전했다.
“그럼 이번에도 대표님이 섭외하러 가시는 건가요?”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런 것을 전부 처리하면 미국 지부는 뭐하겠어.”
“일론 머스크 때는 직접 움직이셨잖아요?”
“그거야 사업 관련이니까.”
아무리 대단한 배우라 할지라도 섭외를 위해 개발사 대표가 움직이는 것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물론 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슈 몰이 요소가 더 큰 상황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빠지면 당장 남궁원에게 돌아갈 부담이 너무 커진다.
“어쨌든 튜토리얼 라인 수정해서 인트라넷에 올렸으니까, 확인하면 바로 시작해줘.”
“알겠습니다.”
남궁원은 그렇게 대답하고 등을 돌렸다.
*
*
*
“게임쇼 진행이요?”
“네. 맞아요.”
김인숙의 말에 나는 목을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 항상 이렇게 김인숙 실장은 뜬금없는 안건만 가져오는 걸까.
물론 그녀의 포지션이 사업부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요?”
“한국 게임쇼는 전문진행자를 고용하는 편이 나으니까요.”
남궁원이 로다주 섭외로 미국에 갈 거냐는 말에 미국지부는 그럼 뭐하냐고 발을 뺀 것이 고작 얼마 전인데, 또 이렇게 미국에 가야 할 상황에 처하다니.
“혹시 오해하실까 봐서 말씀드리지만, 이거 단순한 진행 문제로 부탁 드리는 것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대체 뭣 때문에 나에게 이런 것을 부탁하는 건가?
“적합한 단어가 없어서 진행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요즘 미국 게임쇼에서 메인 디렉터나 대표가 참가자들에게 게임을 소개하고 회사 비전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알고 계시죠?”
“네. 인터넷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노리는 시장은 글로벌 시장이죠. AAA급 게임을 개발하는 이상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고요.”
“물론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직접 그렇게 진행하고 있는 일이다.
당연히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 영화 IP까지 끌어오고 이번에는 유명 스타배우까지 등장시킬 예정이지 않은가?
“아직 맥베스는 해외시장에서 그리 친숙한 이름이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 회사의 비전도 그들은 알지 못하죠.”
비전…….
비전이라…….
그러고 보니 맥베스의 비전이 뭘까?
이거 질문하면……. 안되겠지.
뭔가 그럴듯한 것을 생각해내거나, 연아나 조팀장을 찾아가봐야겠다.
“그렇죠. 비전. 비전 중요하죠.”
“네. 그런 것들을 대표님께서 이 기회를 통해 제대로 전달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사업부의 판단입니다.”
“혹시 회장님 지시입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연아의 지시가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는 것.
하지만 사업부의 논지에 문제는 없다. 가급적 긍정적으로 검토해야겠지.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김인숙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런데 대표님.”
“네?”
“혹시 일론 머스크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할까요?”
“일론 머스크를 움직여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시는대로 회장님 주도하에 현재 사업부는 클라우드 서비스 구축에 필요한 게임들을 협상 중에 있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개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벽!
그것은 바로 수많은 게임들을 우리 클라우드 서비스 속에 등판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연아와 사업부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나 역시도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론 머스크를 움직여야 하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지?
설마 그에게 게임 회사들을 소개해 달라고 할 것도 아닐 텐데?
“자사 클라우스 서비스의 핵심 요소 중에 하나는 스타링크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번 시연회에 일론 머스크가 나선다면……. 그 홍보 효과는 엄청날 것 같은데요. 단적으로 말해서 다른 게임사들을 들러리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서요.”
“으음, 물론 그렇지만……. 알겠습니다. 한번 연락은 취해보겠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물론이죠. 그럼 물러가 보겠습니다.”
김인숙 실장이 물러나자, 홍기도가 들어왔다.
“일론 머스크에게 연락할까요?”
“아니. 일단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칠층부터 갑니까?”
“그래. 일단 회사 비전이라는 것이 뭔지 들어봐야지. 만약 조팀장님도 모른다고 하면 그 후에 회장님에게도 가봐야겠지.”
“대표가 회사 비전을 모른 다는 것이 참 슬픈 일이네요.”
“내 나름의 비전은 있어!”
“뭔데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
“그럼 그걸로 하면 되잖아요.”
“그래도 좀 없어 보이니까.”
회사 비전이라는 것은 뭔가 그럴듯해 보여야 하는 것 아니야?
스티브 잡스의 혁신이라던가, 일론 머스크의 갈망이라던가.
이런 건 평소에 좀 생각을 해 두어야 했는데, 너무 개발에만 정신이 팔려있나 보니,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다.
나는 그렇게 홍기도와 함께 칠층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냐?”
“마침 계셨군요.”
“내가 가면 어딜 간다고.”
조팀장은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데?”
“전 회장으로서 생각하시는 맥베스의 비전은 뭔가요?”
“갑자기?”
조팀장은 뜬금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사업부에서 이번 북미 게임쇼에서 회사 비전에 대해 설명해 주기를 바라더군요.”
“그렇군. 사실 우리 나라는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미국은 그런 기회가 많은 것 같더군.”
“그렇지. 명망있는 CEO라는 것에 대한 환상은 우리보다 미국쪽이 훨씬 강하지.”
백용현이 끼어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이런 기조를 이끌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업설명회라고 할까? 미국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행사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강했지.”
“그건 몰랐네요.”
“그래서 대표라는 놈이 비전이 뭔지 궁금해서 전 회장에게까지 찾아왔다 이거냐?”
조팀장은 재미있다는 듯이 클클 웃었다.
“네. 뭐 특별한 것 없습니까?”
“특별한 것?”
“스티브 잡스는 혁신, 일론 머스크는 갈망. 뭐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다들 말은 멋들어지게 하는 구만.”
“그런 포장이 중요한 법이지.”
백용현은 옳다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클, 아직도 정신 못차렸구만. 게임 회사가 게임만 잘 만들면 되지, 포장이 뭐가 중요해. 비전? 재미있는 게임을 만는 것이 내 비전이다. 알겠냐?”
“아아…….”
“왜 그러냐.”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나요?”
“있다고 해봐야 뭐가 달라지냐?”
“네?”
“어차피 이제 회사를 이끌어갈 사람은 연아와 너다. 너희의 비전이 곧 회사의 비전이지.”
예상은 했었지만 그 이상으로 별거 없이 결론이 나버렸다.
“역시 처음부터 회장실로 갈 것을 그랬네요.”
“클클, 헛걸음 했구만.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하기 바란다.”
“네. 경청하겠습니다.”
“게임쇼라는 것에 대해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그것은 역시 투자설명회와는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구나.”
확실히 이따금 개발자나 경영자가 회사 비전에 대해 떠들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메인은 회사가 개발 중이거나 곧 출시할 게임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업이라는 것은 유저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지. 그들이 과연 쓸데없이 장황하고 멋들어진 회사 비전에 관심이나 있을까?”
“음…….”
“너는 그냥 가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오면 된다. 이 경우에는 게임 소개겠지.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우리가 만드는 게임들은 모두 멋들어지게 만들어지지 않았더냐.”
역시 연륜이라는 것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쓸데없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단숨에 핵심을 짚어주신다.
그런데 뭔가 하나 찜찜한 것이 있다.
“우리가 만드는 게임이요?”
“그래. 너도 만들고 나도 만들고 있잖냐.”
“이거 맥베스 게임쇼인데요.”
“어?”
“기둥소프트도 게임쇼 나가시려고요?”
“어?”
“그러면 팀장님이 직접 행사 진행하셔야겠네요.”
“자, 잠깐만 설마 우리 게임은 쏙 빼놓고 맥베스 게임만 소개하려고?”
“일단 별개의 회사 아닙니까. 당연히 따로죠. 애초에 기둥소프트 게임을 맥베스 게임쇼에서 선보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 잠깐! 어차피 이곳 대표도 너잖아!”
“대표로써 지시하겠습니다. 게임쇼 잘 부탁드립니다.”
“이,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미국 출장은 이코노미 석이면 되죠? 부디 맥베스에 뒤지지 않는 멋진 게임쇼 부탁드립니다.”
이코노미석 타보기는 하셨으려나?
이참에 용사가 3D업종이라는 것도 깨달으면 뭔가 영감이라도 얻으시지 않을까 싶네요.
띠링!
[용사에게 퀘스트가 하달되었습니다!]
게임의 신과 싸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