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90화 (290/346)

290.

영화배우 섭외는 사업부에서 진행하기로 했지만, 결국 일론 머스크를 섭외하는 것은 내 몫으로 남겨졌다.

“이게 가능하려나?”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가 누군가?

각종 게임쇼에 제 발로 참석해서 메스컴에 얼굴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 사람이었다.

여기에는 그가 지닌 서브컬쳐에 대한 애정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일론 머스크에게 전할 말들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대표님.”

“응?”

갑자기 홍기도가 들어왔다.

“미국에서 전화왔어요.”

“미국에서?”

“네.”

이미 한참 늦은 시각, 미국은 이제 막 출근 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미국 누구?”

나는 당연히 미국지부라 생각해서 질문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일론 머스크요.”

“뭐?”

“직접 전화했는데요?”

“여, 연결해주고 너는 통역 준비하고,”

“넵!”

그러자 곧장 노트북에 일론 머스크의 모습이 출력 되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렇네요. 오랜만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 가득한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별건 아니고, 이번에 게임쇼가 있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연락을 못 받아서요.”

“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저와 연관이 없는 다른 쇼케이스도 연락이 오는데, 맥베스에서 연락이 없다는 것이 의아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번에 참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와, 맙소사.

허락해줄지 아닐지를 걱정했는데, 그 수준을 넘어서 왜 연락이 없냐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이 사람 게임에 진짜 진심이구나?

“물론 참가합니다. 안 그래도 연락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하하하, 예의상 하시는 말 아닙니까? 서운합니다.”

“이걸 보시면 그런 말씀 못하실 겁니다.”

나는 일론 머스크와 통화할 내용을 메모하던 메모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오케이. 그래서 정식으로 저에게 참석을 요청하시는 겁니까?”

“가능하다면 간단한 대화 형식으로 진행에도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호~ 예를 들어?”

“한 명의 게이머로서 저에게 질문을 해주시면 됩니다.”

“한 명의 게이머로서라……. 그거 좋지 않은 생각이신데요? 라이브로 진행하실 거라면 더더욱.”

“어째서요?”

“저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솔직히 명작과 망작의 경계에 위치한 게임들의 차이를 보면서 답답할 때가 많지요. 조금만 더 신경 쓰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달까요?”

역시 본인부터가 타고난 워커홀릭에 빼어난 업무능력을 가진 남자답다.

그리고 일정 부분은 나조차 동의한다. 개발자가 아닌 게이머의 시선이 되면 원래 쓴소리부터 나오는 법이다.

“가감 없이 그런 생각들을 저에게 던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은 절대 짜고치면 재미없으니까요.”

“맥베스 게임쇼가 망가질 수도 있을 텐데요?”

“그 정도로 망가질 거라면 당신의 손에 망가지는 편도 괜찮지요.”

“자신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흐음, 무척 궁금해지는 군요.”

일론 머스크는 당장이라도 우리가 개발중인 신작게임을 플레이 해보고 싶다는 듯이 손을 비볐다.

“이번 게임쇼에서 프로토타입을 보시고 짧게나마 플레이 하실 기회도 있으실 겁니다.”

“정말입니까?”

“예. 당신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관객들이 지켜봐도 된다면 말이지요.”

“난이도가 많이 높습니까?”

“하드라이크 수준은 아니지만, 낮지는 않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저 이래 봬도 게임 좀 하는 편입니다. 하드라이크 게임들도 즐기는 편이고요.”

SNS에 클리어했다는 인증샷은 올리지 않으시지만.

뭐 굳이 이것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수락하시는 겁니까?”

“수락이요? 오히려 제 쪽에서 부탁하고 싶습니다. 너무 기대가 되는군요.”

“잘됐군요. 스타링크를 통해 처음으로 서비스 되는 게임인 만큼 당신에게 평가를 받고 싶었습니다.”

“저 깐깐한 타입입니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세상에 일론 머스크가 깐깐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그 깐깐함으로 제가 만든 게임을 재대로 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개선사항 지적도 환영입니다. 아직은 개발 단계에 불과하니까요.”

“빠르군요. 솔직히 여느 개발사들처럼 홍보 영상이나 올려놓고 지키지 못할 포부들만 늘어 놓고 끝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요.”

“하하하. 저희는 속도가 생명이니까요. 맥베스 차원에서는 한 개의 게임만 개발 중이니까요.”

“맥베스 차원에서는? 그럼 그 외에는 뭐가 더 있다는 말씀입니까?”

“기둥소프트에서도 별도의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쪽은 로봇 게임이죠.”

“오! 그거 흥미롭군요!”

예상 이상의 반응이었다.

“로봇에 관심이…….”

이 사람 로봇에……. 아! 그렇지.

기술력만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로봇 개발에 착수할 사람이겠구나?

애초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이라는 기사도 본 것 같은 기억이 났다.

“관심이라니요! 저는 미래에 로봇이 인류의 노동을 대체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입니다.”

역시 공상을 현실화하는 남자답다.

“무엇보다 제 어린 시절은 로봇 에니메이션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지요. 예전에는 게임도 제법 있었는데, 근래에는 그런 류의 게임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으니까요.”

일론 머스크도 50을 넘긴 나이다. 마굴팀원들 보다야 조금 낮은 연배지만 어쨌든 아슬아슬하게 그들과 비슷한 낭만을 공유할 수 있는 세대였다.

그걸 잊고 있었다.

“그것도 이번 게임쇼에 나옵니까?”

“시연 영상까지는 모르겠지만 홍보 영상은 나갈 예정입니다.”

“스쿨런2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그래도 흥미로운 소식이 있어서 기쁘군요. 안그래도 지난번 말씀드렸다시피, 스쿨런2. 언젠가 개발하시는 거겠죠?”

“예. 그럴 예정입니다.”

1위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수의 고티를 수상한 스쿨런이었다.

당연히 이만한 타이틀을 인디 스케일에서 끝낼 이유는 없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언제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당장은 스파이스와 로봇 게임 개발에 집중해야 하니까.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기대에 부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행사 일정 관련으로는 조만간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지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영상 통화가 끝났다.

“후우.”

내가 살짝 피로감을 느끼고 넥타이를 슬쩍 느슨하게 풀었다.

“왜 그렇게 피곤해 하세요?”

“이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쉽지 않네. 뭔가 태풍을 맞이하는 기분이야.”

솔직한 심정이었다.

일론 머스크라는 이름값을 제외하더라도 대화의 템포가 빠르고 연신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며 허실을 가늠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나 역시 빈틈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하긴, 중간에서 통역하던 네가 더 힘들었겠구나?”

“그냥 이따금 말이 빨라질 때 조금 숨이 차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문제 없어요.”

“생각해보면 너도 참 대단하다, 영어도, 중국어도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해내잖아. 그것 말고도 가능한 언어가 있어?”

“스패니시 정도 가능하죠.”

이래저래 대단한 녀석이라는 느낌이다. 애초에 듣기는 했지만 이전 회사에 입사한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아무리 설렁설렁 다니고 싶었다고는 해도, 이 녀석 정도면 훨씬 큰 회사에 입사도 가능했을텐데…….

“갑자기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아니, 새삼 네가 이전 회사에 입사한 것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운이 좋았죠.”

갑자기 이건 무슨 말이지?

“덕분에 대표님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홍기도 답지 않은 말이었다.

녀석은 유난히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감동 같은 것을 느끼며 덕담으로 보답하겠지만, 나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녀석의 어깨를 붙잡았다.

“좋은 말로 할 때 불어라.”

“왜, 왜 그러세요.”

“네가 이유 없이 이런 멘트를 날릴 이유가 없지. 안 그래?”

“크윽……. 마, 말할 수 없다!”

“갑자기 독립 투사 코스프레라도 하고 싶냐? 스포츠 마사지, 동계 훈련 코스를 네가 아직 경험 못 해봤지? 이건 세종이 놈도 기어나갈 정도로 뼈마디가 야들야들해진다.”

이거 몸에 좋은 거다.

그리고 몸에 좋은 약은…….

자세한 설명은 여기까지.

잠시 홍기타의 연주를 감상한 끝에 나는 원하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마굴팀이 일론 머스크를 노리고 있어요!”

“마굴팀이?”

“네. 게임쇼 진행을 하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렇지.”

“자신들로는 대표님과 승부가 안 된다면서 이슈 몰이를 위해서 일론 머스크에게 진행 자체를 맡겨버렸어요.”

이런! 어쩐지 놀란 리액션을 한 것 치고는 딱히 세부사항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더라니…….

“그렇군. 갑작스럽게 연락이 온 것이 아니라, 너와 대화한 이후에 나에게 연결된 것이구나?”

“……넹.”

이로써 모든 의문이 해결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결국 마굴팀과 홍기도가 움직여준 덕분에 내가 직접 일론 머스크를 섭외할 필요를 덜었다는 것이 아닌가?

“이봐 블랙.”

“왜요?”

“너희 목적이 날 쓰러트리는 것이라고 했지?”

“그렇죠.”

-딱!

“악! 왜 때려요?”

“미안하다. 막상 네 입으로 직접 말하니까, 무척 기분이 상하네.”

“하지만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시대의 흐름이라…….”

“왜요?”

내가 손을 풀자 홍기도가 제 어깨를 주무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칠층 팀원들에게 시대의 흐름 같은 것으로 공격 받는 다는 것이 좀 재미있다 싶어서.”

“나이로 차별하는 겁니까? 칠층 팀원들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고리타분한 느낌도 싹 지워졌어요.”

“그래. 그래. 그건 정말 멋진 것 같아.”

새삼 내 주변에는 정말로 멋진 사람들만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미 손자들 재롱을 즐길 나이임에도 개발자적인 감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라니…….

역시 장인어른을 개발자로 전환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는 느낌이다.

“가서 전해라.”

“뭘 전하면 될까요?”

“제대로 보여 달라고.”

“제대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에 따라서 진짜 프로젝트에 참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이야.”

“진짜 프로젝트? 그럼 이건 가짜에요?”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스파이스 개발이 종료되면, 내 비장의 무기를 선보일 때를 맞이하게 되거든.”

“뭔가 꿍꿍이가 있군요. 역시 마왕……. 아니, 이제 슬슬 대마왕으로 진화하게 되나요?”

“그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그럴 수도 있지?”

마왕이든 대마왕이든 상관 없다.

뭐라고 부르던 그때가 되면 그때는 정말로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가요?”

“뭐긴.”

“?”

“게임의 신과 한판 붙을 계획이지.”

“네?”

띠링!

[마왕은 신과의 싸움을 준비중입니다.]

“신이라니 괜찮으세요?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나를 마왕이라 부르고 자기들끼리, 레드니, 블랙이니 호칭하는 사람에게 이런 눈빛을 받게 되다니…….

뭔가 좀 억울하다.

“아무튼 곧 알게 된다. 그러니 이 말 제대로 전해라. 이번 프로젝트 제대로 성공시켜달라고.”

“알겠습니다. 뭔가 좀 찜찜하지만 확실히 전달하겠습니다.”

홍기도, 아니, 블랙은 나에게 경례를 붙이고는 호다닥 칠층으로 달려갔다.

힌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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