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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92화 (292/346)

292.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물의 등급을 분류 감독하기 위한 기관으로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기타공공기관이다.

해외에도 미국의 ESRB, 유럽의 PEGI, 일본의 CERO등의 기관이 존재하지만, 그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외국의 게임 심의 기구와는 다르게 법적 근거에 기반하여 자체적인 기준으로 게임물의 유통을 제한 및 차단할 수 있다는 것.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디지털 패키지 쇼핑몰인 디젤 스토어에도 손을 써 몇몇 성인 게임들의 한국 판매를 거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서, 한국 성인 게이머들은 성인 게임을 할 수 없다는 의아스러운 검열 행보를 이어오고 있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들은 3년 주기로 교체되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인물들은 신뢰성 확보를 위해 배제된다는 것이었다.

게임에 관심이 없거나 더러는 적개심만 가진 이들이 게임을 분류하는 것.

이것이 한국 정부가 게임 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게임은 만악의 근원.

그리고 자유보다는 검열 원칙이 우선시되는 한국의 현주소였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방문해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쪽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설동은 대표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게임쇼 준비로 프로토타입을 완성하기 위해 불철주야 내달리는 와중에 날아든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이거 괜히 설동은과 공동 관리 한다고 했던 건가?’

과거 백용현이 쥐고 있던 정계인맥을 설동은 손에만 맞기는 것이 탐탁지 않아서 공동으로 관리하자고 했던 것은 분명 나였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자 귀찮기 그지없다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역시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개발자인 모양이다.

게임 개발과 관련 없는 일은 그저 귀찮을 따름…….

“혹시 부사장님이나 다른 임원급 인사를 보내도 될까요?”

-그러셔도 상관없지만, 일단 연락은 각 회사 대표가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으음…….

첫 단추부터 어긋나면 좀 그러려나? 애초에 공공기관 관련 사람이라고는 인근 주민센터 외에는 만난 적이 없어서 좀처럼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일단 알겠습니다.”

-네. 그리고 노파심에 말씀드리는 것인데…….

“?”

-그곳 사람들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미리 염두하시길 바랍니다.

“우호적이지 않다고요?”

-네. 그들에게 게임이라는 것은 그저 관리 감독이 필요한 유해매체라는 인식입니다.

“설마 그정도로요?”

-애초에 자신들이 검열하는 게임들에 대한 회의록조차 비공개로 일관하는 이들입니다.

“어? 원래 그런 것은 비공개로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공정성이 중요한 관리 감독 업무라면 무엇보다 투명성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들의 논지는 등급분류 회의록을 전면 비공개하는 이유는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하더군요. 유사 심의기관인 방송/통신 심의위원회는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허어…….”

애초에 회의록 같은 것을 공개해줘야. 그 내용은 검토하고 사전에 문제 요소를 제거할 것이 아닌가?

물론 나름의 가이드라인은 제시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때로는 그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 라는 등의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확실히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시선이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권위를 우선시하는 집단임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이해했습니다.”

-네. 자세한 것은 양성태 부사장에게 들으시면 될 겁니다.

“네.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뵙지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설동은과의 통화가 끝나고 나는 즉시 양성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출석요청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사전에 숙지해야 할 사안이 있습니까?”

“으음……. 보통은 대표를 직접 부르는 일은 없는데……. 이번 세대교체로 한번 안면을 익혀두자는 뜻이겠군요.”

“안면을 익혀요?”

굳이 내가 그들과 안면을 익혀서 좋을 일이 뭐가 있지?

공정한 심사기관이라면 오히려 나와는 더욱 거리를 벌려야 하는 것 아닌가?

애초에 게임회사 대표와 심사기관이 가까워질수록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이렇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양성태는 살짝 난처하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대표님.”

“네.”

“정부과 기업은 본래 다소 지저분한 관계로 엮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으음……. 역시 그런 거였군요.”

갑작스러운 대표 호출.

설동은 대표의 탐탁지 않은 태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 느낌이 아니길 바랐다.

“자세한 내막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뭘 알아야 저도 대비책을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일단 알아두셔야 할 것은 정계인사들 중에 게임 업계에 호의적인 사람은 없다고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끔 게임 업계 편을 드는 정치인도 있지 않나요?”

“그것은……. 근래에 대두된 청년 투표율을 획득하기 위한 퍼포먼스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 건도 게임 업계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간 적은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은 게임업계가 벌어 들이는 막대한 수익에 한 조각 파이를 뜯어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과거 셧다운제를 앞세워 매출 1%를 게임중독 치료기금으로 납부하라는 목소리가 커졌던 것도 그와 같은 예시지요.”

“네. 그때는 놀랐지요. 과학적으로 중독성이 입증된 술과 담배 조차 치료기금은 0.04%에 불과한데 1%라니. 게다가 국내 해외 매출을 가리지 않고 그저 1%라니……. 이건 확실히 정도가 지나쳤지요.”

“당시에 각 기업 회장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쳐 맞선 덕분에 다행히 기금 자체 이야기는 사그라들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이 문제를 들먹이는 인물들은 있습니다.”

어째 대략 감이 온다.

“그렇다면 결국 이번 만남은…….”

“네. 돈입니다.”

양성태는 딱 잘라 말했다.

“아마도 그들 선에서 먼저 우리에게 기부금 내지는 후원금을 받아낼 방편을 마련해 놓고서 넌지시 요구할 것입니다.”

“흐음……. 만약 거절하면?”

“말씀드렸다시피 게임 업계에 호의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도 철퇴가 가해지겠지요.”

“철퇴라면 어느 정도일까요?”

“갑작스러운 금융감사 정도가 아닐까요?”

“우리 문제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IT업계 자체가 다른 업계의 기업들에 비해 클린한 편입니다. 애초에 신생이기에 꼼수를 구축하거나 관습처럼 내려오는 악폐습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이번에 회장님의 승계건으로 주식 양도 같은 부분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아서 공격할 수는 있겠죠.”

“그 부분에서 문제가 있습니까?”

“법적으로는 없지만, 언제나 재벌 승계 문제는 매스컴의 좋은 먹잇감이죠. 단순히 뜬소문으로 여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만해도 국민정서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으음…….

이거 상당히 난처한 일이다.

“솔직히 이번건에 한해서는 그냥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달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그들은 엄청난 액수를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솔직히 액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아마도 양성태는 내가 돌발 행동을 취할까봐 우려스러운 모양인지, 나를 달래려는 것 같다.

“사무용 PC 재구입이나, 사내 서버 구축 같은 것을 돌려 막기 구조로 우리에게 부담을 전가하겠지요. 한 50억 정도일 테고, 이것은 각 대형 게임사들이 나눠서 부담하는 형태가 될 겁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상당히 언짢으신 것 같습니다?”

“네. 솔직히 그렇습니다.”

무턱대고 돈 내놓으라는 수작인데, 이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기업을 운영하다보면 다소 손에 흙이 묻는 경우를 피하기 어렵지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네?”

“중국에도 꽌시문화가 있지만, 솔직히 이거 없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쉬쉬하는 것 뿐이지요. 하지만 문제의 요점은 그게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걸리시는 겁니까?”

“우리가 얻을게 없다는 것이 짜증납니다.”

“아…….”

“동물도 밥 주는 사람에게는 꼬리를 흔드는 법인데, 듣자 하니 돈은 돈대로 받아먹으면서 계속 우리를 내려다 보면서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 다는 점이 화가 나는군요.”

나라고 인터넷도 안보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대형 기업들은 크든 작든 정부와 연관이 되어 서로 상생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나랏돈으로 회사 체급을 키운 회사들이 정부에 얼마나 많은 뒷돈을 상납했겠나?

깨끗하다 더럽다의 문제를 떠나서, 이건 전혀 상생이 아니지 않나?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일방적으로 호구 취급 당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상대는 정부기관입니다. 섣불리 대응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 기관이라고는 해도, 직원 수 고작 100명 언저리에 불과한 기관이 아닙니까.”

물론 그 기관에 빨대를 꽂은 몇몇 의원님들의 지대한 관심이 쏠린 곳이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그 자체는 별 볼 일 없는 곳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대충 상황은 파악했으니, 나름의 대책을 준비해야겠군요.”

“나름의 대책이요?”

“네.”

결국 상대가 법망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공격을 취해올 거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에게도 그에 합당한 패가 있다.

*

*

*

“요즘 자주 뵙는군요.”

“그래. 네가 위법적인 일만 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됐으니까.”

“요즘은 정말로 법 바깥의 일은 하지 않습니다.”

염종수는 손사레를 치며 말했지만, 나라고 바보는 아니다.

법망에 덜미를 잡히지 않을 선을 지켜가며 움직인다는 것이겠지.

어쨌든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너 원래 떼인 돈 받아주는 것이 특기라고 했었지?”

“짬이 안될 때는 대부분 대부업부터 시작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형님이 왜? 설마 형님 돈을 떼먹은 놈이 있습니까?”

염종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 나도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물론 돈을 떼인 것은 아니고 떼일 것 같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뭘 그렇게 놀라?”

여전히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염종수에게 한마디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누굽니까 그게?”

“왜? 손 좀 봐주게?”

“그것도 그렇지만…….”

“?”

“스카웃하고 싶군요. 표세인의 돈을 떼먹다니……. 그 배포라면 이 업계 기준 최고의 재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니네 업계 기준에 나를 포함시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직 떼인 것 아니다.”

“그럼 무슨 일이십니까?”

“너 찌라시 배포 업자들과 가까운 사이잖냐.”

“네. 그렇죠.”

“게임물관리위원회라고 아냐?”

“그럼요. 우리 쪽은 해외 카지노 관련이라서 크게 연관은 없지만 불법 사행성 게임 업장을 운영하는 녀석들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들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거기에 돈을 뜯길 처지거든?”

“아아, 이해했습니다.”

염종수는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관련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혹시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있나?”

내게 목줄을 씌우고 싶겠지만, 순순히 당할 생각은 없다.

나와 상생을 할 생각이 없는 기관이라면 나는 반대로 그들에게 목줄을 채울 생각이다.

나는 기업인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공공기관은 나에게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지, 내가 설설 기어야 할 기관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내가 용인하는 선을 넘지 않는다면 이런 대비책까지는 필요하지 않겠지만, 본능적으로 이번 일에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내 말 이해하나?”

“물론입니다.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밥 주는 사람에게는 개도 꼬리를 흔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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