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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93화 (293/346)

293.

“네. 의원님. 물론입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위원장. 김현룡은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인상을 팍 구겼다.

“제 놈들 뱃속을 채우려는 속셈인 주제에 유세는…….”

이번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내부 업무 시스템 개선 방안을 허가하면서 여야의 의원들은 앞다투어 자신들의 주머니를 불리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원래부터도 심의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게임 기금을 뜯어내어 의원들 주머니를 불리는 것이 본 목적이었다.

애초에 오랜 세월 정계와 유착한 유서깊은 기업들과는 달리 신생 게임업계는 이렇다 할 파이프라인 구축의 완성이 아직인 모양새였다.

그렇기에 틈만 나면 빨대를 꽂아 댄 덕분에 맥슨 같은 기업은 일본으로 본사를 옮기고 벨기에의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분산 소유라는 방식으로 조세 회피를 꾀하는 등의 사건까지 있었다.

물론 이 자체가 유독 정계와의 관계를 잘 구축했던 백용현의 노련한 일 처리 덕분이었지만, 당시 이 모든 것을 그저 눈뜨고 당하고 말았던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입장에서는 배알이 꼬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게입업계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맥슨의 시대는 저물고 맥베스의 시대가 도래했다.

맥베스는 맥슨과는 달리 과거에도 지금도 정계와 이렇다 할 연결 고리가 없었다.

“신임 회장은 이십대고 대표까지도 삼십대에 불과하다지?”

살살 구슬리고 적당히 으름장을 내놓으면 알아서 찔끔하며 돈 다발을 건넬 것이다.

요즘 세상에 예전처럼 박스에 현금담아서 거래하는 일은 드물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힘을 쥔 소수의 의원들이나 받을 수 있는 특별 대우였다.

기타공공기관에 불과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의원장인 김현룡 자신은 그저 유령회사를 선정해서 그 회사에 투자 명목으로 기부(?)할 것을 종용하고 약간의 커미션을 떼어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가장 큰 파이는 여의도로 흘러갈 것이다.

“기대되는군.”

엠씨소프트의 설동은 대표도 함께 동석하는 자리이지만 역시 메인은 맥베스의 표세인 대표였다.

“어린 놈이 뭔 돈을 이렇게 많이 벌었담. 고작 게임이나 만드는 녀석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의원장 답게(?) 게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상종할 수 없는 유해매체 제작자를 바라보는 시선과도 흡사했다.

그에게 게임이란 디지털 포르노요, 가상마약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고.

그런 매체를 감독하고 징계를 내리는 자신은 건전한 사회 건설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사회 역군이 아닌가?

“식사는 뭘로 할까?”

자신이 불렀으면서도 당연히 식대는 상대 쪽에서 지불할 것이라는 생각에 김현룡은 콧노래를 부르며 값비싼 호텔 레스토랑 리스트를 훑어보며 와인을 골랐다.

*

*

*

“오늘 게임물관리위원회에 간다고?”

“네.”

“흐음……. 양성태에게 이야기는 들었지?”

“네. 대충 상황은 전해 들었습니다.”

내 대답에 조팀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하루는 못 볼 꼴 보고 오는 자리라고 생각해라.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그냥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다 돌아오면 된다.”

“에이, 어떻게 그러나요? 그쪽에서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할 수도 있잖아요?”

“과거 게임 기금 때의 교훈이랄까? 게다가 그때는 게임물관리위원회만이 아니라 여러 부처까지 합세해서 게임 업계에 돈을 뜯어내겠다고 난리였지. 어쨌든 이제는 다르다. 그들도 대놓고 지독하게 굴지는 않을 거야.”

조팀장의 말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꼴을 보아하니…….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구나.”

“꿍꿍이라기 보다는 나름의 대비책은 세워두었죠.”

“……그거 괜찮은 거냐? 과거에 백용현이 저 녀석도…….”

“어허! 갑자기 내 이름은 왜 꺼내?”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백용현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래. 뭐 저 녀석과 맥슨의 행보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섣부르게 정치권과 각을 세워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그저 순리대로…….”

“순리를 따라야 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그쪽이죠.”

“어?”

내 말에 조팀장은 화들짝 놀랐다.

“결국은 돈 달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돈을 주는 제가 그쪽에 굽신거릴 필요가 있습니까?”

“정계 인사들은 높낮이와 관계없이 앙심을 품으면 반드시 보복하려는 심산을 지닌 이들이다. 그들의 심보를 얕잡아 봐서는 안된다.”

내 말에 조팀장은 여전히 우려스러운 표정이었다.

“걱정마십시오. 제가 무턱대고 그쪽에 돈 줬으니, 이제 내 앞에서 기어라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역시 불안한데…….”

“걱정할 것 뭐 있나? 표세인 대표잖나. 자네는 저 친구를 아군으로만 상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적으로 만나면 정말이지 손도 발도 내밀 수 없는 괴물같이 느껴지지. 그러니 이번에도 잘 할 거야.”

의외로 백용현이 내 손을 들어주었다.

“이크, 이제 슬슬 시간이 되었네요. 아무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부디 큰 사고만 치지 말거라.”

“노력해보겠습니다.”

“끄응…….”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지 조팀장이 살짝 신음했다.

“대표님이 이런 취급을 받을 때가 다 있네요?”

“무슨 취급?”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바라보는 느낌? 지금 팀장님의 시선이 딱 그런 느낌이었는데요.”

“뭐 그분 연배에서는 그렇게 보일 만도 하지.”

“그런데도 지르실거죠?”

“말했다시피, 그건 어디까지나 대비책이야.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내 행동은 당연히 달라지지.”

나는 홍기도에게 아까했던 말을 반복하며 차에 탔다.

*

*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위원장 김현룡은 후덕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나와 설동은을 보고는 활짝 만개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를 보니 코 끝에 돈의 향기가 스치는 모양이다.

“안녕하십니까. 맥베스 대표 표세인입니다.”

“게임물관리위워회 위원장 김현룡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기쁘군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나가실까요?”

“나가요?”

“식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뜸 식사부터?

아직 용건도 꺼내지 않은 상황인데? 역시나 불편하다. 아니 불쾌하다.

“아니요. 일단 이야기부터 나눈 후에 식사하시죠.”

대화 내용에 따라서는 속이 더부룩해서 식사가 어려울 수도 있지 않겠나.

게다가 계속 신경을 거슬리는 한 가지.

운동선수 출신이라서 일까?

게임회사는 선수,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심판이라는 느낌이다.

선수와 심판이 나란히 식사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다.

“흠흠……. 뭐 그러시다면야.”

“저는 찬성입니다.”

김현룡은 다소 당황한 듯이 미간을 찌푸렸고 반면 설동은은 재미있다는 듯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준비해온 모양이군.’

설동은의 표정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련한 CEO답게 그는 돌아가는 사정을 보며 섣불리 나서지 않고 자신의 이득만 취할 요량인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는 나에게도 그것이 편하다.

“일단 용건부터 알 수 있을까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사내 전산망 개편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네. 그러시군요.”

내 말투가 다소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느껴졌는지, 김현룡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패였다.

“말투가 조금 공격적으로 들립니다만?”

“아,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서요.”

“무엇이 이해가 안 간다는 말씀입니까. 본건은 시작도 안 했는데요.”

“애초에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사내 전산망을 개편한다는 이야기를 왜 제가 듣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나 할까요?”

“음…….”

내 말에 김현룡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물 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아시다시피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업무라는 것이 대중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임이라는 컨텐츠를 관리 감독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대중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라…….”

“우리의 취지가 그런 만큼 게임 개발사들 쪽에서 올바른 게임 문화 형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 손 거들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있자니, 예전에 저희 부모님께 한 심판이 올바른 판정을 내릴 수 있게 도움을 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아, 아니 이 이야기를 어떻게 그쪽에 같다 붙일 수가 있습니까?”

“네. 그렇죠. 말이 안되죠.”

나도 인정한다. 억지 논리다.

하지만 애초에 정부기관인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무언가를 하는데, 우리에게 돈을 대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나?

“지금 저희 쪽과 척을 지시겠다는 태도로 보여집니다만?”

“글쎄요? 딱히 척을 질 생각은 없는데, 반대로 너무 친하게 지내도 안되지 않겠습니까?”

“이보세요!”

결국 참다 못한 김현룡이 분개했다.

“일단 흥분 가라앉히시고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정확히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일 우리 선에서 진행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의도에 계신 높은 분들과도 연관이 있는 일입니다.”

“그렇습니까?”

“본론을 원하신다니, 말씀드리지요. 이번 전산망 개선 작업을 맡을 업체가 있습니다. 거기에 투자하세요. 투자금은 50억입니다. 어차피 사람들 중독시켜 번 돈 두둑하게 쥐고 있는 분들이시니,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겠지요?”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중독시켜 번 돈이라……. 개인의 기호와 여가에 대한 비용 지출을 그렇게 표현하신다니, 유감이군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이라는 분께서요.”

“어차피 여자 알몸이나 드러내고 저열한 총질로 사람들 현혹시키는 것으로 돈 버는 것이 게임업계 아닙니까?”

이것이 게임업계를 바라보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입장이라는 것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어쨌든 알아서들 하시죠.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하셔야 할 것이. 이번 일 제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그 뒷감당은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김현룡은 나름 최대한 무게를 잡으며 나를 위협했다.

“뒷감당이라면 예전처럼 뭐 게임중독치료기금 같은 것 말입니까?”

“잘 알고 계시군요. 어디 매출 1% 한번 뜯겨 보시겠습니까?”

영업이익도 아닌 매출의 1%를 강제로 뜯어가겠다는 협박.

당시 게임 업계 인사들이 얼마나 간담이 서늘했을지가 상상이 갈 정도다.

하지만…….

그거 어차피 이미 실패한 전략이잖나?

“이미 실패한 수작을 다시 써먹으려 드시다니, 정말로 발전이 없으시군요.”

“뭐?”

“그래도 순리대로 해결하라는 조언을 생각해서 어지간하면 그렇게 해보려고 했는데, 제 밥그릇 가져다주는 사람에게 짖어 대는 개를 마냥 오냐 오냐 할 필요는 없겠지요.”

“개? 당신 지금 말 다 했어?”

김현룡은 눈을 부릅뜨며 침을 튀겨댔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에도 관심이 없다.

“고작 50억 뜯어내 보겠다고 여의도 윗선까지 언급하며 안달하는 모습은 좀 귀엽기는 한데, 도무지 거기에 어울려 주는 것은 마음에 안 드네요.”

“이거 뒷감당 할 자신이 있다 이거야?”

“뒷감당은 내가 아닌 그쪽이 하셔야겠지요. 그리고 게임 업계로 인한 문제를 우리 더러 해결하라고 하셨지요?”

“그, 그래! 이게 전부 당신 같은 사람들이 국민 정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잖아!”

“지난번 자선기금으로 천 억 내놓았는데, 이번에도 천 억 내겠습니다.”

“처, 천억?”

천억이라는 단위에 김현룡의 눈이 뒤집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돈은 이런 사람에게 들어 가서는 안 된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 50억을 뇌물로 바치느니, 차라리 천 억을 좋은 일에 쾌척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제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생각보다 재미 없는 자리였군요.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형님, 어떻게 되셨습니까?

“시작해라.”

-예!

어차피 계속 마음에 안 들던 게임물관리위원회의 행보였다.

이 참에 한 번 갈아 엎어 버리는 것도 좋겠지.

너랑도 놀아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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