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95화 (295/346)

295.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한들, 이렇게 많은 숫자.

거기에 하나 같이 운동으로 다져진 떡대들이 상대라면 1:1로도 쉽지 않다.

그런 이들이 수십 명이었다.

호프집 밖의 지하 주차장까지 이동한 염종수 일행은 유도부에게 둘러싸인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우린 오늘 죽었네.”

“죽어도 몇 놈은 보내고 죽어야지.”

유독 홀로 전의를 불태우는 염종수였다.

‘하나만 조진다.’

염종수는 속으로 타겟을 정하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건방진 새끼가!”

느닷없이 옆과 뒤쪽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염종수는 변변이 손도 발도 쓰지 못하고 이리 저리 튕겨졌다.

“비겁한 새끼들이!”

그 와중에도 악을 쓰며 공격을 날렸지만, 주먹 한 번, 발차기 한 번의 대가로 그에 몇 배나 되는 구타가 돌아왔다.

“살살해라. 그러다 문제 생기면 골치 아프다.”

유도부 3학년 박진수는 호프집에서부터 이 상황이 무척 찜찜했다.

‘나중에 표세인하고 문제 생기면 골치아픈데…….’

그는 이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슬픈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스탑!”

정말로 드라마처럼 표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프집에서 시비가 붙은 시점에 염종수의 동기 하나가 급히 표세인에게 호출을 한 것이었다.

‘아, 저노마 짜증 제대로 났나 보네.’

박진수는 미간을 찌부리며 입맛을 다셨다.

고등학교 이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온 덕분에 표세인과는 제법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왔나?”

“형. 계셨네요.”

“이거 나름 속사정이 있는 상황이다. 내 몇 번이나 점마한테 그만하자 했었다.”

“예. 형이 누구랑 쉽게 시비 붙으시는 성격 아니라는 것은 알죠.”

표세인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짜증 섞인 표정이었다.

물론 그것은 단지 갑작스러운 호출 때문에 자신의 승급전이 망했기 때문이었지만, 박진수는 이 상황 때문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너 뭔데?”

그런데, 마침 표세인을 알지 못한 유도부 2학년 하나가 거들먹거리며 표세인에게 위협적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180 후반인 표세인 보다는 조금 작았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은 체격과 거친 인상의 남자는 갑자기 나타나서 상황을 통제하려는 표세인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마! 하지 마라. 일마 랑은 엮이면 안 된다.”

지금은 비록 순한 양처럼 지내고 있지만, 당장 양아치 같던 태권도부 선배들을 전부 인간 개조해버린 것이 표세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태권도 짜바리가, 뭐 좀 된다고 생각하냐?”

라고 말하며 그가 표세인의 멱살을 잡는 순간, 표세인은 곧장 그의 손목을 꺾고 상대의 다리를 걷어차, 넘어트려 버렸다.

“이 새끼가!”

남자는 넘어진 몸을 일으키며 다시 달려들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표세인이 재빠르게 그의 뒤로 돌아 목에 팔을 감았다.;

“끄으으…….”

유도부도 감탄할 만한 조르기였다. 물론 백초크에 가까운 이런 기술은 시합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장면이었으나…….

유도 시합이었다면, 깔끔한 조르기 한판 승이었을 것이다.

“세인아! 고마해라!”

“진수형.”

“와?”

“여기 시합 나갈 사람 몇 명입니까?”

표세인의 질문에 박진수는 순간 오싹한 한기에 몸을 떨었다.

열 명도 넘는 유도부를 상대로 전원 부상 탈락 시켜버리겠다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그저 웃어 넘기겠지만, 벌써 이미 한 놈 기절 시켜 버린 참이었다.

‘돌아삐겠네.’

박진구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차기 주장으로서 만약 시합에 지장이 생길 수 있을 정도의 사고가 벌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알았다! 알았다! 고마 우리가 물러날게.”

박진수는 곧장 항복 선언을 하고는 기절한 후배를 들쳐 업고 주차장을 벗어났다.

“형, 아무리 그래도 한명인데…….”

“니들은 점마를 몰라서 그런다.”

“우리는 열명도 넘잖아요.”

“그래. 응급실 빈자리 열 개 있나, 걱정해야 할 판이지. 일단 닥치고 따라 온나.”

그렇게 유도부 일행이 물러나자 표세인은 바닥에 널부러져 엉망진창이된 후배들의 상태를 살폈다.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지?”

“네. 감사합니다.”

“갑자기 이런 일로 연락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 니들은 정말 죄송해야지. 내가 어떤 약속을 미루고 나왔는데…….”

“헉! 설마 소개팅이라도 하고 계셨어요?”

“내가 소개팅 따위를 이렇게 아까워하는 사람으로 보이냐?”

물론 게임 승급전 하나 놓쳤다고 이렇게 까지 아까워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씨발새끼들……. 다 죽었어. 하나 씩 찾아가서…….”

이 순간조차 정신을 못 차린 염종수의 말을 듣고는 표세인이 벌떡 일어났다.

“염종수.”

“뭐요?”

이미 잔뜩 흥분했기 때문일까? 평소에는 볼 수 없던 거친 대응이었다.

“쌈박질이 좋으냐?”

“누가 좋아서 합니까? 하지만 얕보이면……”

“너는 아직도 중2병에서 벗어나질 못했구나. 장래 희망이 무슨 세계관 최강자라도 되냐? 네가 유도부 사람하고 싸워서 이기면 누가 챔피언 벨트라도 준대?”

“아, 뭐래 씨발…….”

“일단 일어나라.”

표세인은 손을 까딱이며 말했다.

“가급적이면 온화한 선배로 남고 싶었는데…….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도 선배의 의무겠지.”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대련이면 몰라도 막 싸움이면 다릅니다. 저 지금 눈 돌아갔으니까 적당히 하세요.”

“자세 잡아.”

표세인의 말에 염종수는 혀를 차며 가드를 올렸다.

어쩌면 예정된 일일지도 모른다.

염종수는 항상 자신의 주변사람들이 자신에게 겁먹은 시선을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타입이었다.

워낙 표세인이 서글서글하게 대해주었기에 부딪칠 일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

“너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싸움 못해. 그걸 깨닫고 앞으로는 자중하길 바란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냐고!”

그 순간 표세인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

*

*

“그래서요?”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오정열의 질문에 염종수는 멋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딱 한방에 블랙아웃이었습니다. 그 때 깨달았죠. 저 진짜 싸움 못한다는 것을요.”

“그럴리가요. 저는 지난번에 분명 봤습니다? 이종격투기 프로선수와 스파링하시던 것을요.”

“그건 그 친구가 적당히 상대해준 것도 있고……. 뭐 그때 보다야, 운동 경력이 길어진 만큼 좀 늘기야 했지요. 하지만…….”

“?”

“진짜 타고나는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일단 표세인 형님은 체격 부터가 다르지 않습니까? 게다가 얼굴이 좀 느낌이 달라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그 사람 옷 벗으면 뼈대부터가 다른 사람입니다.”

“흐음……. 이거 참 워낙 현실감 없는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염실장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게다가 힘은 또 어찌나 센지. 장난처럼 어깨 한 번 쥐어도 끔찍하게 아픕니다. 이건 정말 당해본 사람만 압니다.”

띠링!

[홍기도가 염종수의 코멘트를 좋아합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표세인 형님과 만나서 조금은 사람다워졌는데……. 결국 막판에 일이 이렇게 되어서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에이, 그래도 우리 회장님부터가 옛날 깡패 스타일 안된다고 역정내시는 분이 아닙니까?”

범죄와의 전쟁 이후 한국 건달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물론 과거처럼 일반인들에게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명맥을 이어온 조직들은 서구식 인텔리전스 갱스터의 변화 흐름에 발맞추어 철저히 사회와 자신들의 세계를 분리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주먹 쓸 때는 쓰지 않습니까.”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만큼 볼썽사나운 일은 없다.

염종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의 업을 외면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덕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군여. 예전에 사무실 하나가 쓸려 나갔을 때의 이야기는 무슨 도시괴담 같아서 듣기가 괴로웠는데, 그래도 이건 좀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군요.”

오정열의 말에 염종수는 목을 긁적였다.

“그거 진짭니다.”

“네?”

“진짭니다. 괜히 회장님이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표세인 대표님. 우리 쪽에 오셨거나, 하다못해 이종격투기 선수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모두를 더해도 지금의 절반도 벌 수 없었겠죠. 여러모로 대단한 형님입니다. 어쨌든 선별 작업은 끝났습니까?”

염종수의 말에 오정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도 많아서 뭐부터 찔러야 할 지를 모르겠네요.”

“뭐가 있습니까?”

“일단 가짜 회사와 짜고 치는 식으로 시스템 구축 비용 빼돌린 횡령 사건을 시작으로 IARC(국제등급분류연합) 회의 출장 관련 부정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무슨 간부급 인사가 사무기기로 비트코인을 채굴한 것을 국정감사 기간이라고 입 단속해서 막고 있다는 것까지……. 이거 너무 문제 투성이입니다.”

“확실히 많긴 하군요.”

“애초에 이 사람들 일을 안 합니다. 회의록 작성도 안해, 다른 게임들은 철저히 검열하면서도 뒷돈 받은 사행성 게임에는 허가를 주는 등…….”

“잠깐, 만약 그게 하늘이야기 2라면 그건 빼죠.”

“아! 그래야겠지요.”

자신들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음지쪽 이야기가 나오면 일이 괜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염종수는 브레이크를 걸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이미 수 면위로 올라와 있는 상황인데도 어떤 조치도 내려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당장 표세인 형님을 불러다가 대놓고 돈을 내놓으라고 할 정도입니다. 아마 윗선의 뒷주머니를 채우는 여러 기관중에 하나니까, 상당한 비호를 받겠지요.”

“그럼 역시 김득주 의원쪽으로 진행해보는 것이 좋겠지요?”

김득주는 여의도의 아웃사이더면서도 다른 정치인들의 부정행위나 여타 문제들에 게거품을 물며 메스컴에 떠들어대는 것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구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네. 그분이라면 이런 떡밥을 얼씨구나 하면서 받아들이시겠지요. 이참에 그분 후원회에 지원도 좀 하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거 청문회 레벨까지 키우실 겁니까?”

“당연하죠. 증인 확보는 제 손에서 진행하겠습니다. 어차피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턱이 없으니, 찾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염종수는 표세인이 전달한 녹취록을 재생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일 우리 선에서 진행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의도에 계신 높은 분들과도 연관이 있는 일입니다.

-그렇습니까?

-본론을 원하신다니, 말씀드리지요. 이번 전산망 개선 작업을 맡을 업체가 있습니다. 거기에 투자하세요. 투자금은 50억입니다. 어차피 사람들 중독시켜 번 돈 두둑히 쥐고 있는 분들이시니,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겠지요?

가장 중요한 대목을 다시 한번 반복해 들은 염종수와 오정열은 피식 웃었다.

“이거면 끝장이지요.”

“네. 맞습니다. 역시 녹취록이 최고지요.”

그로부터 일주일 후.

이미 공개되었지만, 그동안 쉬쉬하며 덮어온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가 매스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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