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96화 (296/346)

296.

‘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위원장, 김현룡은 TV에 나와 거침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김득주 의원을 지켜보며 식은 땀을 흘렸다.

“아니, 그 지랄 같던 군정부 시절에도 자료는 남겼습니다! 그런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대체 뭐기에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고 비공개원칙을 유지한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횡령에 배임까지, 지금껏 드러난 비리, 부패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대체 누가 그 뒤를 봐주고 있는 겁니까!”

역시 여의도의 도사견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남자였다.

침을 튀겨가며 맹공을 펼치는 서슬에 상대편 의원들이 넋이 나가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고 많은 문제들이 산재한 국정감사 중에 게임물관리위원회라면 그저 푼돈이나 챙길겸 몇몇 의원들이 돌려가며 찾는 곳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저 정도 먹잇감을 내주고 김득주 같은 위험 인물을 달랠 수 있다면 나쁜 장사가 아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난 뒤에는 자연히 곳간은 채워질 것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그쪽은 조사하기로 하지요.”

결국 문화체육부장관이 백기를 들었다.

“그쪽 못 믿습니다. 특검 꾸려서 제 쪽에 맡겨주세요.”

“자, 잠깐 특검이라니!”

놀란 것은 오히려 김득주의 아군 진영이었다. 고작해야 게임물관리위원회에 특검이라는 카드를 써버리면 다른 큰 문제에는 손도 발도 대지 못한다.

결국 특검까지는 확정 짓지 못한 채로, 늘 그랬듯이 문제만 늘어놓고 수습은 못한 국정감사는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빌어먹을…….’

김득주의 일갈이 심각한 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뿐이라면 김현룡과 연결되어 있던 윗선에서 예전처럼 유야무야 덮어줄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 김득주 의원 진영에서 조차 게임 관련으로 특검까지는 너무 나간 것이라며 당황하지 않던가?

하지만…….

[온라인, 패키지, 콘솔, 모바일 등 게임물에 대한 사전 심의 의무 폐지에 관한 청원.]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청원.

문화체육부 분야로 올라온 이 청원글은 단숨에 소관 위원회 회부 조건을 달성하며 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었다.

[헌법 21조,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라는 내용으로 해외 선진국들처럼 법에 의한 게임물 사전 심의 의무를 폐지하고 심의를 민간에 완전 이양 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인터넷에는 과거 김현룡을 비롯한 게임물관리위원회 역대 위원장들의 망언이 속속들이 올라오며 규탄받기 시작했다.

[게이머의 눈높이와 사회적인 기준의 눈높이에 갭이 있습니다.]

[디젤 스토어는 포르노 사이트나 마찬가지.]

[코스프레 하는 사람들 보이시죠? 이 사람들 게임 많이 하겠죠?]

지금까지 뿌려놓은 갖은 망언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오며 게이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내가 사회인이 아니란거냐! 내가 어떤 학교를 나오고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 너희가 아냐?]

[지금 시대가 어느땐데 포르노 운운이냐! 한두개 성인작품을 근거로 이게 말이 되냐!]

[코스프레가 죄인이냐? 대체 이건 무슨 헛소리야!]

게임물관리위원회 홈페이지는 이미 박살이 난 상황 게다가 횡령과 배임까지 다시 언급되기 시작하면서 도덕적 비판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버렸다.

“의, 의원님.”

-앞으로 이 번호로 연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를 비호하던 여의도 윗선 조차 발을 빼버렸다. 하다못해 본인도 아닌 비서를 통해 가지치기 의사를 밝혔다.

“빌어먹을 새끼들이…….”

결국 참다 못한 김현룡은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맥베스에서 출시한 게임들 싹다 재분류 실시해!”

“뭐부터 하면 좋을까요?”

“깨비몬이 아이들이 많이 하는 게임이잖아! 그것부터 찍어!”

“하지만…….”

“뭐야!”

“이 게임은 인게임 구매 자체가 없는데요?”

“없다니, 전에 NFT로 수조원 매출 기록하고 지금도 엄청나게 벌어 들이고 있잖아!”

“그건 외부 NFT 거래소에서 거래하고 그마저도 성인 인증을 거치는 사이트입니다. 인게임 자체적으로 아이들은 돈을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구조입니다.”

“전에 회의에서도 상당히 모범적인 접근이라고…….”

“닥쳐!”

김현룡은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트집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일단 재분류심사 공지라도 띄워!”

일단 표세인과 다시금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무수한 이슈를 만들어내고도 무사했던 위원장 직이었다.

김현룡 이전에도 수없이 망언을 일삼던 위원장 중에서 임기 도중 탈락된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그 시발점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드디어 스마트 폰이 울렸다.

표세인이었다.

*

*

*

“와, 엄청나네요. 이번에는 정말로 그냥 안 넘어가겠는데요?”

홍기도는 놀랐다는 표정으로 TV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뭐 다들 그만큼 쌓인 것이 많았던 거지.”

애초에 게이머들의 불만은 당연했다.

밖에 나가서 술 마시고 다니는 것은 건전하고 집에 틀어박혀서 조용히 게임을 즐기는 자신들을 사회 낙오자 취급하는 이들이 게임을 검열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특성상 검열의 필요성을 전면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잣대와 기준이 너무도 불투명하며 세태와 맞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쉬지 않고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고자, 게이머들을 사회부적응자이자, 교정이 필요한 이들로 낙인 찍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이미 오래도록 쌓아온 장작이다. 애초에 불똥 하나만 튀었어도 활활 타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위원장 교체되면 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될까요?”

홍기도의 질문에 나는 피식 웃었다.

“예전에 내가 선수 생활 할 때.”

“네.”

“태권도협회 협회장들은 항상 부정부패로 말이 많아서, 자주 교체됐었거든?”

“그런데요?”

“하나도 달라지지 않더라고.”

“그럼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응. 그렇다고 생각해.”

고작 윗사람 하나 교체했다고 달라질 거였으면, 이미 고쳐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애초에 횡령도 배임도 위원장 혼자만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나, 다른 임원들도 업무시간 중에 사무실에서 코인 채굴 장비를 돌리는 등의 문제가 끊이질 않는 곳이다.

“그럼 이번 일의 목표는 뭔가요?”

“뭐긴 게임 심의 구조 자체를 개편하는 거지.”

“워……. 스케일 크게 나오시네요.”

“어차피 그리 탄탄하지도 않은 조직이야. 그리고 앞으로를 생각하면 이게 맞아.”

“앞으로요?”

“우리도 이제 국내 내수용 모바일 게임에만 목숨 걸것이 아니잖아. 글로벌 시장 공략이 메인이 될텐데, 걸리적거리는 것은 이참에 한번 싹 치워내는 거지.”

“치워내요? 지금 상황이 난리긴 한데, 과연 거기까지 갈까요?”

“지금 상황만 보는 것은 아니야. 당연히 이파, 삼파 될 때까지 하는 거지. 예전에 경험해봤잖냐. 꼭 들어가야 하는 기획이면 우리가 어떻게 했어?”

“작전 세밀하게 짜서 밀어 넣는 거죠.”

홍기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대표님.”

“부사장님?”

양성태가 내 방을 방문했다.

“이거 대표님 작품이시죠?”

TV를 가리키며 양성태가 질문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자중하길 바라신 것은 알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쪽에서 반응이 왔습니다.”

“반응이요?”

“보시죠.”

양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물관리위원회 사이트를 보여주었다.

[맥베스 게임에 대한 전면적 등급 재분류 작업 착수.]

“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일단 이정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이겠지요.”

“걱정되십니까?”

“솔직히, 대표님께서 지금까지 진행하신 프로젝트들이야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기존의 게임들은 다르지요.”

“안심하셔도 됩니다.”

“네?”

“이거 시작 하기도 전에 위원장은 아웃될테니까요.”

내 말에 양성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직접 보여드리는 편이 좋겠지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크큭.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이렇게 연락을 주시는군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이 사람 정말 감이 없나?

“지금 제 발에 불이 떨어졌습니까? 그건 몰랐군요. 저는 위원장님이 괜찮으실까, 연락을 드린 겁니다.”

-하하하, 이 바닥을 잘 모르시는군요. 여론이 좀 떠들어 댄다고 공공기관장 자리까지 위협하는 일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럴까요? 저는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느낌인데요?”

-시작? 당신……. 설마 또 무슨 짓을?!

“아, 잠시만요. 혹시 모르니 녹음을 해야겠군요.”

-녹음?

나는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홍기도에게 질문했다.

“혹시 우리 회사 서비스품질관리로 녹음한다는 안내 내용 지금 전송이 될까?”

“그렇게는 안되는데요.”

홍기도는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통화내용이 녹음 될 수 있습니다.”

용케도 이런 멘트를 통째로 외우고 있다. 나는 엄지를 한번 들어 보이고는 통화 녹음을 눌렀다.

“들으셨습니까? 지금부터는 말씀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수작입니까?

“지난번에 말씀하신 불법 자금 공여 건 같은 문제 요소가 있는 대화가 또 나오면 곤란하기 때문이지요.”

-하! 당신 제정신이야? 그 이야기 밖으로 꺼냈다가는 당신 절대로 무사할 수 없어.

“흐음, 조금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오히려 저보다도 국내 정치에 무디신 것 같은 느낌이시네요.”

-뭐라고?

“어쨋든 지금 우리를 향한 협박성 재분류 심사는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저라고 그쪽과 척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고 싶지 않을 뿐이죠.”

-자꾸 말끝마다 불법, 불법하는데, 증거 있어?

“저 지난번 대화 내용, 전부 녹음했습니다.”

-뭐? 자, 잠깐! 상대에 허락을 구하지 않은 녹취는 불법…….

정말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법에 대해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 당사자가 대화를 녹음한 것은 형사법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이에 대한 대법원 판례도 존재한다.

따라서 위법이 아니며, 민법상으로는 다소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직까지 민사법적 관점에서 비밀녹음을 원칙적으로 불법이라고 선언한 대법원판결은 없다.

고로 문제가 있는 상대와 만날 때는 녹음은 필수라는 거다.

“어쨌거나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저희도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게다가 뭔가 착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착각?

“법적공방으로 들어가면, 위원장님 개인과 맥베스라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거대 IT기업과의 다툼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물러날 생각이 없습니다. 어떠한 위법적인 제안과 그로인한 협박과 제제. 저는 정면으로 맞설 생각이니.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자, 잠깐만!

나는 급히 통화를 종료했다.

“설마 이거……. 명분을 위한 녹음이었습니까?”

역시 양성태는 눈치가 칼이다.

“네. 맞습니다. 곧 지난번 녹음한 내용으로 위원장 목을 날릴 계획인데, 혹시라도 여의도 높은 분들이 제게 악감정을 가지면 안되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라는 증거를 마련해 두려는 거죠.”

“자, 잠깐만요. 애초에 우리에게 제제를 하도록 유도하신 겁니까?”

“저 사람들이 하는 일이야 뻔하지요. 항상 저런 식으로 협박성 재심의로 장난치는 것이 장기 아닙니까.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지요. 너무 패턴이 뻔해요.”

내 말에 양성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은 못하고 입만 벙긋 거렸다.

다시 묻지요. 최대 형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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