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98화 (298/346)

298.

[맥베스의 반란!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재판에 회부!]

[게임 회사에 노골적인 뇌물 알선을 요구한 녹취록 공개!]

[맥베스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국민들의 손에 재판의 결과를 맡기겠다!]

[김현룡 위원장. 단순한 투자 관련 상담이었을 뿐, 뇌물 요구가 아니다!]

[맥베스, 뇌물을 낼 바에야 차라리 자선 기금에 천억을 투자하겠다. 지난번에 이어 막대한 자선 기금 쾌척!]

[게임물관리위원회 존폐 위기? 김득주 의원 게임물관리위원회 폐지하고 선진국들처럼 사설 기관에 맡겨야.]

특종에 목 마른 언론은 맥베스와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법적공방을 두고 미친 듯이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녹취록에 이어 뇌물을 줄 바에야 자선기금을 천억이나 내겠다는 퍼포먼스부터가 여론을 들끓게 하기에 충분했다.

-봤냐! 이게 한국 개발사의 클라쓰다!

-무적태권 표세브인! 멋지다! 장하다!

-인간적으로 게임을 감독하는 기관은 뇌물 요구에 횡령에 배임에……. 그런데 정작 게임 개발사는 저렇게 자선기금을 내놓다니……. 누가 누굴 관리해야하는 건지…….

그리고 그 여론은 완벽하게 맥베스를 지지하고 있었다.

이러니 안 그래도 국민청원에 게임물관리위원회 폐지 청원 같은 글들이 끊이질 않고 올라오는 와중에 위원장이 뇌물 요구로 재판대에 올려지자, 여의도까지 한바탕 소란을 벌이고 있었다.

“이 참에 폐지합니다!”

“여론이 살짝 떠들어 댄다고 그렇게 쉽게 움직여서야 되겠습니까?”

“김현룡 위원장하고 잘 아는 사이시죠?”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이 사건의 여파는 여의도까지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었다.

“다음 총선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제대로 대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럴 때 대중과 엇나가면 뭇매를 맞는 수가 있습니다.”

여권의 약점을 노리는 야권과 그런 야권의 도전을 원천봉쇄하고 싶은 여의도에서는 다가올 총선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일단 재판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요?”

“녹취록 공개된 것 모르십니까? 이미 끝났습니다.”

“으음…….”

설마 뇌물을 요구 받은 대기업이 해당 기관장을 고발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까지처럼 적당히 유야무야 수습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

더욱이 맥베스는 뇌물관련으로 김현룡을 고소한 것과 동시에 무려 천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자선기금으로 쾌척하며 이미지를 쇄신했고 이것이 여론의 반응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고작 50억 뜯어 내려다가 이게 무슨 꼴인가…….”

“빨리 손쓰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불거질 수 있습니다. 어차피 지금 저런 작은 일에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남의 집에 난 불이다.

여의도는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문제에 도덕적인 잣대를 가져다 대기 보다는 향후 총선에 미칠 영향력을 계산하기에 급급했다.

“좋아. 안 그래도 김득주 의원 서슬도 피곤하던 참인데 이번에는 그쪽 손 한 번 들어주자고.”

어차피 주고받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이참에 가장 시끄러운 쪽, 손 한번 들어주고 무마하자.

여의도는 그렇게 중론을 모았다.

*

*

*

“장작은 이만하면 쌓을 만큼 쌓은 것 같죠?”

“그렇습니다.”

홍기도의 말에 염종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사람은 과거 총회 때 살짝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서로 바쁜 탓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걸 전달하면 끝인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홍기도는 염중수가 건넨 파일을 흔들었다.

“일단 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이게 뭔가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자금 세탁에 이용하려고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입니다. 만약 맥베스 측에서 그들의 뇌물성 투자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그 회사로 돈이 들어갔을 겁니다.”

뇌물 자체가 오가지 않은 상황이라면 실형까지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염종수는 그것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정보력을 총 동원해 페이퍼컴퍼니를 찾아냈다.

어차피 이런 자금 세탁은 자신들의 전문이었기에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군요. 와, 이런건 어떻게 구하시는 건가요? 무슨 007 같네요.”

“과찬이십니다.”

염종수는 홍기도가 표세인의 비서라고 소개했을 때부터 깍듯하게 대우하고 있었다.

“표세인 대표님과는 대학 시절 선후배사이셨다면서요?”

“저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술자리에서 지나가듯 들은 적이 있어요. 지난번 총회 때도 그렇고 항상 열심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지분께서 저 같은 녀석에게 고개 숙이실 필요 없습니다. 공짜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래야죠. 세금도 떼고.”

홍기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염종수 역시 슬며시 입가를 늘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아무튼 그것을 맥베스 법무팀에 무사히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거기까지가 딱 저희 일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차질 없이 전달하겠습니다.”

홍기도는 자료를 받아 서둘러 맥베스로 복귀했다.

*

*

*

-형법 제129조(수뢰, 사전수뢰)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

뜨거운 세간의 관심 속에서 계속된 맥베스와 게임물관리 위원회의 법적공방은 모두가 예상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맥베스측에서 공개한 녹취록을 토대로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손을 잡은 자금 세탁용 페이퍼 컴퍼니의 존재가 드러나기까지 하면서 재판은 빠르게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배심원들 역시 이러한 세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최고징역인 5년형을 외쳤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과해…….’

담당 판사는 배심원단이 내린 판결 권고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이번 사건을 맡게 되면서 온갖 연락에 시달렸다.

‘청탁도 아니고 뭐하자는 거야, 이것들이…….’

하나 같이 순리대로 잘 처리해 달라는 당부성 조언이 계속되었다.

자신이 경력이 얼마며 사회적 지위는 또 어떤가? 이 나이에 이런 조언 같지도 않은 조언이 줄지어 날아든 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김현룡의 선처를 호소하는 청탁성 연락이라면 화가 날 지언정 이렇게 어이가 없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뇌물이 오간 것도 아니고 요구선에서 그친 상황.

물론 그들은 페이퍼 컴퍼니까지 동원하는 등의 죄질이 좋지 않은 꿍꿍이가 있음이 드러났다.

‘그래도 5년은 판례에 맞지 않다.’

판사는 최대한 궁리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페이퍼 컴퍼니까지 동원해 뇌물을 요구하고 자금을 세탁 및 횡령하려는 피고의 죄질이 가볍지 않다. 따라서 3년 6개월을 선고한다.”

-탕탕탕!

판결이 떨어지자,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설마 실형까지는 아닐 것이라 굳게 믿고 있던 김현룡은 핏기 없는 얼굴로 그대로 주저 앉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표세인은 감정없는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통쾌함도 그렇다고 이렇다 할 큰 감흥도 없이 그저 한가지 일이 끝났다는 정도의 딱 그런 미지근한 온도의 눈빛이었다.

*

*

*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법무팀에서 하셨지요. 제가 뭐 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준비된 멘트 한번 하고 변호사의 질문에 예, 아니오를 몇 번 반복한 것이 내가 이번 법정에서 수행한 역할의 전부였다.

모든 것은 법무팀과 물밑에서 노력한 염종수의 공로였다.

“그런데 정말로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은 몰랐습니다. 여의도에서 게임물관리위원회 폐지를 정식으로 상정한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우리도 글로벌 스텐스에 맞출 때가 되었지요.”

사실 나는 게임 검열 제도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내가 개발하는 게임은 검열에 크게 휘둘릴 정도의 선정성을 강조하는 게임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기로 업계를 쥐락펴락하는 무리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눈엣가시처럼 불쾌한 일이다.

그러던 차에 마침 기회가 생겼고 나는 물어 뜯었다.

솔직히 자체적으로 너무 심하게 부패해 있던 상대였기에 내 예상보다도 너무 쉬웠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부정에 분노하고 폐지에 열광하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일이 이렇게까지 수월했던 것은 게이머들이 게임물관리위원회에 갖고 있던 반감이 상상을 초월했던 덕분이다.

사실 나로서는 들끓던 사회적 분위기에 기름 한방을 투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

“그럼 이제 미국 출장을 준비하셔야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제 다시 개발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뭐요?”

“저희 주가가 또 반등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가가요?”

“뇌물 요구에도 굴하지 않고 거액의 자선기금을 쾌척한 일로 개미투자자들의 매입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하하하. 그건 예상하지 못했군요.”

“정말 예상하지 못하신 겁니까?”

“그럼요. 제가 무슨 점쟁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솔직히 그렇다고 하셔도 믿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의 행보는 정말로 마법처럼 보입니다.”

왕년에 마법사라 불렸던 남자가 나에게 마법을 운운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나저나 칠층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근래 법정 문제와 스파이스 개발에 정신이 팔린 탓에 칠층을 신경 쓰지 못했다.

명색이 기둥소프트 대표이기도 한데, 그쪽에 너무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할 지경이다.

“아, 마침 저도 가보려던 참인데 함께 가보시겠습니까?”

“그러시죠.”

안그래도 가볼 참이었기에 나는 기꺼이 양성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가 칠층에 도착했다.

그런데 묘하게 분위기가 시끌벅쩍했다.

“와하하하! 너는 아직 내 상대가 아니야!”

“제가 경험이 부족한 것 뿐이지 않습니까?”

“할 말은 그게 전부인가 패배자씨?”

“크윽…….”

이걸영의 조롱에 문상훈은 구겨진 얼굴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아, 왔군. 그러보고니 표대표는 게임 좀 하나?”

이걸영이 묘하게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가서 못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는 편인데요. 그런데 혹시 프로토타입 완성된겁니까?”

“일단 대전 스테이지 1개와 2인 대전 정도만 겨우 완성됐지. 튜토리얼 마무리 검수만 끝나면 우리 쪽도 게임쇼 준비 완료라고!”

“그거 멋진 소식이군요.”

“어때, 한 판 붙어볼까? 재미를 위해서 내기라도 하면 어때?”

이걸영은 나에게 게임패드를 건넸다.

“표대표. 이거 사기야. 저쪽은 이미 계속 플레이하면서 내공을 키운 상황이라고. 게다가 이 게임 조작이 엄청 복잡해 초심자가 쉽게 접근할 만한 게임이 아니야.”

문상훈이 나를 걱정하며 말했다.

“상무님도 내기를 하신 겁니까?”

“……오늘 술 한잔 사기로 했어.”

“그렇군요.”

그래도 나름 건전한 내기라서 다행이다.

“그럼 저는 뭘 걸면 될까요?”

“음……. 퍼스트 클래스?”

“네?”

“뭘 놀라 이번 게임쇼에 팀장님만 보내겠어? 우리도 함께 갈거야.”

“간만에 미국 여행 한번 하는 거지.”

함성준도 킬킬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코노미라면서? 만약 내가 이기면 퍼스트로 올려줘.”

“그럼 제가 이기면 자비로 가시는 거죠?”

“어?”

내 말에 이영걸과 함성준이 동시에 당황했다.

“이야, 이것이 애사심이라는 것이군요. 감탄했습니다.”

“어?”

“그럼 감사한 마음으로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패드 잡으시죠.”

이 감동을 담아.

전심전력으로 상대해 드리죠!

우리 같은 편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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