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이거 긴장되는구만.”
“그러게요. 이거라도 드시죠.”
“넌 그렇게 먹고 계속 들어 가냐?”
“긴장 푸는 데는 주전부리가 최고죠.”
“긴장 좀 적당히 풀어라…….”
조팀장의 핀잔에도 이영걸은 그저 껄껄 웃으며 팝콘을 흡입했다.
B2B 관계자들은 사전에 배정 받은 좌석에 조금 일찍 자리할 수 있었다.
뒤이어 돌입하는 일반 관객들의 홍수와도 같은 인파 행렬에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큰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인원 중 절반 이상이 저런 고초를 겪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구성이니 말이다.
“이제 시작이네요.”
“그런데 일론 머스크는 도착한 건가?”
내가 걱정스럽게 질문하자, 홍기도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훗, 걱정되십니까?”
“그럼 걱정 안되겠냐?”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우리보다도 일찍 도착해서 진행팀과 브리핑을 모두 마쳤다고 합니다. 대본도 모두 숙지해 왔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성실함의 대명사 같은 사람이네.”
요즘 같이 워라벨의 중요성이 점차 대두 되는 시대 속에서 20년 간 1주일 이상의 휴가를 가져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사람이다.
게다가 공공연히 언론을 통해 자신은 20년 이상 주 100시간 이상을 근무했음을 역설하는 남자.
주당 40시간의 근무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100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며 설파하는 사람이다.
이에 대해 개인적인 호불호야 있겠지만, 어쨌든 대단하다고는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필요에 의해서 야근과 철야를 감수할 수는 있어도 평생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이제 곧 결혼을 하게 되면 나는 그때서야 내 꿈인 방구석에 틀어박혀 한량 같은 삶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하니까 입가가 제 멋대로 실룩댄다.
“그나저나 정말로 긴장이 되는 구만.”
유명세를 이용해볼 요량으로 홍기도와 짜고서 대뜸 사회자로 일론 머스크를 등판시키기는 했지만, 그가 과연 자신들이 전해준 게임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원활한 진행을 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조팀장의 불안에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진행팀 이야기로는 아주 잘 한다고 하네요?”
“그래?”
홍기도의 말에 조팀장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내 표정을 살폈다.
“어?”
“티, 팀장님.”
“저 친구, 웃고 있는데요?”
순간 주변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수작을 부려 놓은 것 아냐?”
“마, 마왕이라고 불리더니 요즘 진짜 그래 보이는데?”
“역시 사람이 이름 따라 간다더니…….”
거, 본인들이 별명 붙이셔 놓고 너무 하시네. 물론 내가 웃은 이유는 전혀 다른 문제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기둥소프트 대표가 회사 게임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미소를 보이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그림도 아니지 않는가?
정말로 각본 제대로 써서 한 방 먹여 주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불끈 샘솟는다.
간만에 각본가 표세인 다시 한 번 등장 시켜줘야 하나?
“아니, 진짜로 왜 웃는 건데?”
“……제가 웃는 것이 그렇게 이상합니까?”
“평소와 아주 다른 미소야. 묘해. 너무 묘해.”
“그러니까. 이건 마치, 오랫동안 숨겨온 꿍꿍이가 발동하기 직전을 맞이한 것 같은, 뭐 그런…….”
돗자리 까셔도 되겠다.
순간 오싹할 정도였다.
나는 속내가 너무 훤히 드러났다는 생각에 살짝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런거 아닙니다.”
“이, 이 녀석!”
“지금 말 더듬은 것 맞지?”
“저거 당황한 거잖아! 무슨 짓이냐! 일론 머스크는 무사한 거냐?”
아니, 일론 머스크 안위까지 물으시다니요. 스케일을 너무 키우시는 것 아닙니까.
남들이 들으면 내가 납치라도 한 줄 알겠네.
그때였다.
메인 진행자가 단상 위에 올라 게임쇼의 시작을 알렸다.
너무 빠른 탓에 나는 몇 마디 외에는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번역할까요?”
“아니, 괜찮아. 일론 머스크만 부탁할게.”
홍기도가 번역하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내밀며 일론 머스크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나중에 미튜브에 자막달린 영상을 확인하는 편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에서 였다.
“Let's Showtime!”
진행자의 간드러진 외침과 함께 무대에 장치된 폭죽이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함성!
그리고 그 모든 환호 속에서 드디어 모두가 예상 못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둥소프트 쇼케이스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일론 머스크?”
“잠깐! 이거 깨비몬 개발사 아니었어? 깨비몬 개발사가 일론 머스크 소유였어?”
“자, 잠깐 거기 주가가!”
“빌어먹을 비상장 회사잖아!”
일론 머스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게임쇼 관중들은 집단 패닉에 빠졌다.
등장만으로도 이 정도 파급력이라니, 최강의 광역 혼란기라는 느낌이다.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이 회사는 비상장 회사이며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주식을 찾아보실 필요 없으시니 제게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론 머스크의 말에 정말로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검색하던 몇몇 사람들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스마트폰을 내려 놓았다.
“우선 이 게임을 개발하신 기둥소프트 개발진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기쁘게도 얼마전 이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받아서 플레이해봤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공에 게임패드를 쥔 시늉을했다.
“육중한 머신의 움직임에 따라 전달되는 섬세한 진동과 타격음! 장담하건데 타격감 하나만으로도 올해의 고티를 노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게임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후아!”
나도 모르게 일론 머스크의 말에 가쁜 숨을 토했다.
설마 이 정도까지 과격한 칭찬을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놀란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와, 이거……. 내가 영어 실력이 줄었나? 잘 못 들은 것 아니지?”
“그럼요. 최고 수준 찬사 맞습니다.”
“타격감 만으로도 고티라고? 훗, 뭘 좀 아는 군.”
“실실 쪼개면서 뭘 무게 잡는 척이냐.”
“그러는 너야 말로 주먹 좀 풀어라.”
마굴팀은 저마다 발그래 상기된 뺨을 자랑하며 입가를 씰룩거렸다.
톡 하면 빵하고 터질것처럼 입술과 뺨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
하지만 저 정도 찬사라면 누구라도 이런 감정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애가 타실테니, 더 이상 괴롭히는 것은 안되겠지요. 일단 시연 영상부터 공개하겠습니다.”
임펙트 있는 등장과 짧은 찬사만을 남기고 일론 머스크는 뒤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리고 드디어 마굴팀의 최초 역작인 머신 라이더의 프로모션 영상이 공개 되었다.
-고오오오!
행성 궤도에 진입한 거대한 함선이 전면부에 배치된 레이저를 집중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위태롭게 모아진 에너지가 단숨에 행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대기를 찢고 구름을 밀어내며 지표면에 도달한 레이저에 의해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지상 건축물들을 단숨에 녹여버렸다.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거대한 금속의 병기들.
-쿠궁쿵!
압도적인 사운드에 가슴까지 울리는 기분이었다.
머신이 바닥에 도달하는 순간 카메라가 머신의 되퇴부의 실린더가 압축되는 순간과 허리의 유압기관의 운동을 집중 조명하며 그 섬세한 디자인을 드러냈다.
“오오오!”
모두가 홀린 것처럼 낮은 신음 같은 환호를 토해냈다.
“그래. 이런 거지.”
“이게 낭만이지.”
모두가 고요속의 환호를 흘리는 순간을 만끽하며 마굴팀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미 현역 개발자를 꿈꾼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비웃음을 살 걱정부터 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뛰어들어 자신들의 낭만을 빚어내었고 그것이 서서히 사람들의 환호를 자아내고 있다.
-위잉!
이윽고 형광 빛의 안광이 터져 나오며 머신이 기동을 시작했다.
내 딛는 걸음마다 흙이 뭉텅이로 파여나가며 점차 가속력이 붙기 시작한다.
“어? 빨라?”
거대하고 묵직한 중량감을 여지없이 드러낸 머신이었지만 막상 지표면을 내달리며 블레이드와 탄환을 사출하는 머신의 움직임은 예상과는 다르게 민첩하다 못해 호쾌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방마다 벽을 타고 움직이거나 공중제비를 돌아 상대의 배후를 점하는 아크로바틱한 묘기도 유감 없이 선보인다.
-투타타타타!
-콰쾅캉!
탄환에 피격 당하거나 블레이드에 타격 당할 때마다, 해당 부위의 장갑이 부서져 허공을 날아 올랐다.
[해당 영상은 실제 게임 플레이 장면입니다.]
“자, 잠깐 이거 인게임 영상이라고?”
“그럼 실제로 저 수준으로 파츠 장갑들이 부숴져 나간단 말이야?”
그제서야 대기진입 이후의 장면들이 실제 게임 플에이 영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유저들의 비명과도 같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어 콕피트 내부에서 홀로그램 패널을 이용한 1인칭 시점 플레이 영상이 나왔다.
-콰직!
-투콰콰콰!
상대의 콕피트를 손으로 잡아 고정한 후에, 그대로 거대한 탄환을 쏟아 붓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코 앞에서 펼쳐지자, 숨 막힐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장면은 그 다음이었다.
-타타탕!
어딘가에서 날아온 탄환에 고개를 돌려도 상대의 모습을 감지하기가 어렵자, 머신은 관측드론을 사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화면이 다시금 3인칭으로 전환되었다.
“와! 이게 이렇게 시점을 바꾸는 구나!”
“가만, 그러면 상대의 드론을 부수면!”
눈치 빠른 게이머의 예상대로였다. 정체불명의 머신이 드론을 하나씩 쏘아대자, 화면이 불안정해짐과 동시에 결국 1인칭 시점으로 강제 전환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상대가 갑작스러운 시점 변화에 당황하는 사이, 배후에 달려든 적 기체는 블레이드를 이용해 재빠른 난도질을 시도해 상대를 무력화 했다.
“오오! 이거 의외로 조작성과 전략성 모두를 신경 써야겠는데?”
“지금 이거 기체별 상성을 보여주는 거지?”
역시 요즘 유저들의 연륜은 굉장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간파한다.
그러나 아직 영상은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다른 머신들에 비해 확연히 육중한 체급에 4족 보행의 머신이 등장했다.
카메라가 4족 보행 머신의 콕피트로 이동한 순간, 해당 머신은 엄청난 숫자의 미사일과 화기를 총동원해 방금 전 등장한 재빠른 머신을 난타했다.
민첩한 머신은 이번에도 특유의 빠른 움직임으로 포격지점을 벗어났지만, 포화 장소에서 튀어 오른 거대한 돌덩이에 다리를 가격 당하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FUCK! 설마 주변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이 이 정도라고? 지금 미사일이 아니라, 돌 파편에 맞아서 부서진 것 맞아?”
“세상에! 저런게 구현이 가능한 거였어?”
물론 가능하다. 애초에 저 돌덩이 자체가 집중포화 스킬의 이펙트로 딸려있는 부가 기능이니까.
이후 민첩한 기체는 벽면 뒤에 엄폐하고 처음 등장했을 때와 똑같은 정밀한 사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상대는 장갑부터가 처음의 기체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 헤비급 머신이었다.
헤비급 머신은 상대의 공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달린 화기들을 분리해낸 뒤에 엄청난 도약력을 뽐내며 민첩한 기체 위로 떨어져, 반파한 이후 손으로 상대의 헤드 파츠를 뽑아버렸다.
“오오오오!”
“미쳤어! 미쳤다고! 대체 이건 뭐야!”
“이거 정말 인게임 맞는 거겠지? 사기 치는 것 아니야?”
“좋아! 내가 졌다. 가챠 얼마야? 얼마면 되냐고!”
저마다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열광의 도가니가 펼쳐졌다.
그리고 다시금 일론 머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제 말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끄, 끝이 아니라고?”
“아직 시간 남았거든요? 추첨을 통해서 단 한 분. 저와 대결하실 분을 뽑겠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게임 패드를 들어 올리자, 객석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환호를 터트렸다.
“그리고 만약 저를 이기신다면, 제가 큰 선물을 약속 드리겠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말에 모두가 기대에 찬 표정이 되었다.
그것을 확인한 일론 머스크는 자신만만하게 추첨을 시작했고…….
진짜 와장창 깨졌다.
이곳에 모인 사람 대부분이 게임에 미친 진성 게이머라는 사실을 모르나?
우리는 도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