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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01화 (301/346)

301.

비록 추첨된 게이머와의 대결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일론 머스크의 표정은 편치 않았지만, 그는 이후 게이머들에게 머신 라이더에 대한 사전 설명을 차분하게 읊어주었다.

“혹시 우려하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이 게임은 PVP 전용 컨텐츠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히려 PVP는 보너스에 가깝지요. 멋들어진 시나리오야 말로 이 게임의 핵심 요소입니다.”

이른바 성박사로 통하는 성진규 실장의 고군분투 덕분에 소름끼칠 정도로 철저하게 설계된 레벨 디자인 위에 수놓아진 스토리야 말로 이 게임의 핵심 요소.

아직은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탓에 게임쇼에서는 공개하지 못했지만, 그것의 테스트 버전을 플레이 해본 일론 머스크는 자신을 믿으라며 큰소리를 쳤다.

“장담컨대 내년 GOTY 랭킹 한자리는 이 게임을 위해 자리를 비워둬야 할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마지막 찬사와 함께 시연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우레와 같은 환호에 마굴팀 전원 역시 열심히 박수를 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일론 머스크를 선택한 것이 틀리지 않았어!”

“그렇죠?”

“최고야 블랙!”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래. 블랙 잘했다. 잘했는데, 마왕군 본진에서는 네 역할 뭐 안 해줄 거니?

“제 역할은 통역이죠.”

아니, 너 비서야. 통역은 그냥 열외 업무고…….

내 생각을 간파한 블랙은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조팀장 일행과 기쁨을 나누었다.

뭐 좋다.

어쨌든 이걸로 한시름 놨다.

나역시 기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수고하셨습니다.”

“클클, 아직 게임 출시한 것도 아니다.”

“그럼, 그럼. 아직 축하 받기에는 이르지.”

조팀장과 백용현은 입술을 씰룩이면서도 애써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즐길 때는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팀장님.”

“응?”

홍기도가 조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아나에게 메시지가 왔는데 시연 행사가 끝난 후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고 하네요.”

“인터뷰?”

“네. 유명 미튜버와 방송국 인터뷰라고 하네요. 역시 첫 시연부터 일론 머스크를 앞세워서 어그로를 끈 보람이 있는 것 같네요.”

“그래. 거절하면 안 되겠지? 하지만 내가 제대로 대응이 가능할까 모르겠구나. 솔직히 일론 머스크의 진행을 쫓아가는 것도 버거웠어.”

“제가 있잖아요.”

“역시 믿을 건 우리 블랙뿐이군.”

“그렇죠? 히히.”

조팀장은 홍기도를 믿음직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자 홍기도는 살갑게 마주 웃었다.

뭔가 굉장히 훈훈하고 애틋한 광경이다.

그런데 뭐랄까…….

진짜로 이 녀석 내 비서가 아니라, 조팀장 비서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제가 꼭 필요한 것들만 픽업해 둘게요. 영양가 없는 것들까지 전부 하실 필요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앞으로도 이런 요청이 더 들어올 것 같으니까. 더욱 필요한 것만 하는 편이 좋겠죠.”

“그렇지. 그렇지. 자네만 믿겠네.”

“…….”

“왜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세요?”

내 시선을 느낀 홍기도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너 일 잘한다?”

“모르셨어요?”

“…….”

그러게 나는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

이게 내 잘 못인지, 네 잘 못인지는 정말 언제 한번 제대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앗! 시작한다. 일단 관람에 집중하시죠.”

“…….”

으음…….

*

*

*

머신 라이더 이후로도 게이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수많은 신작들이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머신 라이더였다.

굳이 일론 머스크가 사회자로 나섰다는 이슈가 아니더라도 그 특유의 스케일과 박진감은 충분히 게이머들의 가슴을 들끓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예전에는 심심치 않게 출시되던 장르였는데, 요즘에는 아주 씨가 말라버렸으니까.”

“그렇지. 게다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AAA급은커녕 B급 정도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니 문제지. 아무래도 장르가 장르다 보니, 그래픽적인 눈 요기도 무척 중요한 장르니까 말이지.”

“맞아. 그러니 너무 들뜨지는 말자고, 어디까지나 로봇물이야. 대중픽은 아닌 게임이야. 지금이야 흥분했다고 하더라도 유저들이 지갑을 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

마굴팀은 시연 행사가 끝나자마자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현실적인 분석을 시작했다.

확실히 전원 임원 출신들 아니랄까봐 세태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그 보다는 힘을 실어주고 있을 정도.

“다 맞는 말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응에는 의미가 있지요.”

“흠흠, 표세인 대표 생각에는 그래도 희망적이다 이거지?”

“물론입니다. 게다가 과거 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찬스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습니까?”

“전혀 다른 찬스?”

“그 시절에는 PC시장이 없었습니다.”

대형 로봇 물이 등장하던 시기에는 PC 시장 상황이 좋지 않던 시기였다.

따라서 콘솔 시장에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현재 콘솔 시장만으로도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게임 시장이 커졌다는 것.

“일단 가장 최근에 출시한 거신 낙하라는 타이틀만 하더라도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그러야 그렇지.”

“애초에 그 게임이 없으면 기획 단계에서 이 게임 접었지.”

“하지만 그 게임 보다 이 게임이 메카닉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높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승산은 충분합니다.”

거신낙하 역시 훌륭한 게임이지만 어디까지나 메카닉은 거들뿐이고 실제로는 일반적인 파일럿들 중심의 FPS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머신 라이더는 분명히 이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머신 라이더는 어디까지나 메카닉에 집중했고 머신에 어떠한 컨셉과 무장이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플레이 방식을 선택해야 할 정도로 메카닉 팬들의 기호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컨텐츠로 무장했다.

그러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가?”

“역시 그렇지?”

“표세인 대표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조금 쯤은 들떠도 되겠지?”

“으하하하! 사실 나는 아까부터 참을 수가 없었다고!”

결국 이걸영을 시작으로 모두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제 준비하시죠. 다들 제가 말씀드린 옷들 준비해오셨죠?”

“아, 그렇지.”

홍기도의 말에 저마다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마굴팀.

“뭘 준비시켰냐? 설마 뭐 제다이 이런거 아니지?”

조팀장님의 요다 분장 같은 것은 관심은 간다 만은 아무리 그래도 다소 걱정이 된다.

“에이, 전직 임원급 분들이 그렇게 체통 없이 행동하면 안되죠.”

“현직 대표인 저는 체통 없이 행동해도 됩니까?”

“음……. 제가 맞춤 정장 추천해드렸어요.”

“정장?”

“네. 미국까지 와서 인터뷰까지 할 건데 좀 있어 보이면 좋잖아요?”

“아니, 잘했는데…….”

진짜 너무 잘해서 살짝 불쾌할 정도인데? 왜 저쪽에만 그렇게 까지 잘한다는 느낌이지?

뭘까 이건…….

소외감 같은 걸까?

나에게는 눈길도 안주는 우리집 고양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애교 떠는 것을 보는 주인이 된 기분이랄까?

“그런데 나는 왜 뭐 추천 안 해주냐?”

“오늘은 마굴팀 파티잖아요. 대표님이 주목 받으면 안되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그럼 내일은 내 차례인데?”

“아! 준비 되셨나보다.”

홍기도는 쏜살같이 달아났다.

……두고 보자 블랙.

*

*

*

모두가 멋들어진 슈트로 무장한 마굴팀은 그대로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재미있게도 인터뷰 장소는 호텔에 비치된 비즈니스 룸이었다.

텐션높은 미튜버의 질문 공세에도 마굴팀은 저마다 자신만만하게 자신들의 비전과 향후 계획들을 늘어 놓았다.

고령에 이미 업계 정점의 커리어를 이룬 상태에서도 다시금 현역 개발자에 도전하는 이유.

머신 라이더에 핵심 세일즈 포인트.

현직 개발자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마굴팀원들은 사이 좋게 이러한 질문들을 나누어 대답했다.

오히려 가장 대답한 횟수가 적은 것이 조팀장이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궁금하시는 부분인데, 여러분들의 업무 환경은 어떻습니까? 정확히 어떤 분위기입니까? 아시아의 오피스 환경이 다소 권위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차별적인 발언이라면 사과드리고 이번 기회에 저희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정말로 궁금합니다.”

사회자의 말에 마굴팀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씩 웃었다.

“일단 한국 회사의 사내 문화가 다소 권위적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렇습니까?”

“일단 우리 정도 나이가 되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에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공포요?”

“네. 그래서 더욱 급진적인 변화에 눈길을 돌릴 때도 있지요.”

“의외군요. 일반적으로는 나이를 먹을수록 보수적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영어가 부족해서 이것이 정치적인 이야기라면 제 언변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게임 이야기에 정치만큼 어울리지 않는 소재는 없지요.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행이군요. 딱히 제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자만,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사고방식에 안주하는 것은 게으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으름이요?”

“예. 물론 보편적인 논리들이야 시대가 어떻든 큰 변화가 없으니 상관 없지만, 관습이라고 하는 것들은 크게 변화하기 마련이지요. 말씀하신 권위적인 부분 같은 것을 절충하기 위해서 우리 팀은 서로의 닉네임으로 호명하고 있습니다.”

“오! 어떤 닉네임인가요?”

“이쪽부터, 블루, 그린, 옐로우. 핑크는 아쉽게도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헛! 애, 애도를…….”

“……핑크는 젊습니다. 우리가 전부 노인네들만 모아 놓은 것은 아닙니다.”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리더의 닉네임은 뭔가요?”

“레드입니다.”

“어? 레드? 블루, 그린, 옐로우, 핑크? 설마 이건…….”

미튜버도 대강 이것을 이해한 듯 싶었다. 그래. 이 전대물 색깔 놀이는 대충 세계 공용어 수준이지.

“어쨌든 우리도 현직 개발자분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노하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여러분들이라면 일반 개발자들의 몇배나 되는 노하우가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미튜버의 질문에 다시 한 번 조팀장이 나섰다.

“제가 경험한 시장은 예전 시장입니다. 흔히 노인이라고 하면 혜안이라는 단어가 덧붙기 마련인데, 지금 제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런 것이 있어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이유가 뭐죠?”

“전부 경쟁자니까요.”

“네?”

“노인이라고 무작정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어 안달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분들은 존경 받아 마땅한 분들이지요.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다릅니까?”

“저는 지금 도전자입니다.”

“도전자요?”

“저는 이 인터뷰가 다른 현직 게이머들에게 나는 경험 많으니 내 가르침을 배워라~ 하는 식으로 전달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가만 도전장을 뭐라고 해야 하지?”

조팀장의 질문에 홍기도가 급히 나서서 귓속말을 했다.

“thrown down the gauntlet.”

도전장의 표현이 건틀렛을 던진다고 표현하는 거였군. 나도 처음 알게 됐다.

뭐, 내가 모르는 단어야 수두룩하지만, 어쨌든 조팀장의 멘트는 계속 이어졌다.

“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도 아닌데, 건방지게 조언 따위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도전자이며, 머신 라이더는 우리의 도전에 첫걸음에 불과합니다.”

멋지다.

우리 장인어른.

우리 팀장님.

정말 멋지십니다.

나는 속으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분의 최종 목적지는 무엇입니까?”

“마왕을 쓰러트리는 것입니다.”

조팀장과 팀원들은 멘트 끝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기필코 쓰러트릴 겁니다.”

“반드시 쓰러트릴 겁니다.”

“꼭 쓰러트릴 겁니다.”

“완벽히 쓰러트릴 겁니다.”

제가 대표이자 사위인 것은 기억하고 계신거죠?

그렇게 인터뷰는 종료되었다.

이것이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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