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03화 (303/346)

303.

1일 차와 2일 차.

2일 간 E3 최대의 핫이슈는 당연컨대 기둥소프트의 머신 라이더와 맥베스의 스파이스였다.

우리는 E3 한정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하하! E3 최고다!”

쇼케이스에서부터 호텔 라운지와 카지노까지 발을 들이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인사하고 환호하는 덕분에 마굴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그래도 코스프레를 하고 있던 여성들이 사진을 찍자고 할 때는 좀 낯부끄럽더군.”

“딸뻘 아이들을 보고 부끄럽긴.”

백용현의 엄살에 조팀장이 피식 웃으며 응수했다.

하지만 그러는 조팀장 역시 상기된 얼굴이었다.

모두가 환호하며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칭찬하고 관심을 보이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그들이 워낙에 독특한 멤버들인 덕분에 나는 곁다리에 불과하고 그들이 현재까지 압도적인 E3의 주인공 역할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아쉬워서 어쩌나, 표대표.”

“네?”

“우리 때문에 관심의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았나.”

“하하하. 제 직원이신 여러분들께서 만든 게임이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관심을 받고 계신 것이 어떻게 기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이게 게임에 대한 관심인지, 그냥 특이해서 관심을 보이는 것인지가 헷갈릴 정도였다.

한국이었다면 이 정도 관심은 아니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코스프레 차림의 아리따운 여성들이 노년의 개발자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달려드는 모습이라니…….

이런 그림은 정말로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래. 그래. 사실 이거야 그냥 헤프닝에 불과하지. 중요한 것은 게임 출시 이후에 결정될 일이지.”

“그렇지요.”

출시 전 아무리 관심이 뜨거워도 그것은 실제 판매량이나 게임 평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물론 관심 자체는 좋다.

마케팅이라는 것은 판매량과 직결되는 요소니까.

그리고 개발자들에게도 좋은 동기부여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출시 전 뜨거운 관심의 중심에 있다가 출시 이후 혹평을 받아 추락한 게임들도 한둘이 아니다.

지금부터 그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너무 취해도 곤란하다.

물론 마굴팀 중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없겠지만.

“푸하하하! 아 몰라, 난 모르겠어! 일단 1:0이지?”

“1:0?”

“아무리 봐도 이번 게임쇼 결과상 우리가 앞선거 아니야?”

“설마 스파이스와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이신가요?”

“당연하지! 표대표에게 사진 찍자고 한 사람 몇 명이나 됐어?”

“아니, 일단 인원수대로 나누고……. 게다가 업계 관계자들과 명함 교환 건수도…….”

“원래 마왕은 솔플이고 용사는 팀플이잖냐!”

“그럼, 그럼. 다구리에 장사 없다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패배하는 것이 마왕의 슬픈 숙명이지.”

앞에서 한 말 취소다.

지금 완전히 취해있다.

그래요. 즐기세요.

놀림 받는 대상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아무튼 1:0.”

조팀장이 나에게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1:0……. 악! 왜 나한테만 그래요!”

내가 자신의 손가락을 덥썩 쥐, 홍기도가 기겁해서 소리쳤다.

“니가 여기 낄 짬밥이냐?”

“지난번 조팀장님의 감동적인 인터뷰 기억 안 나세요? 우리는 보다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하는…….”

“그건 기둥소프트고!”

“대표님 기둥소프트 대표세요!”

“니가 맥베스라고 인마!”

“아?”

나는 잽싸게 앵클락을 걸어 홍기도가 미친 듯이 탭을 칠 때까지 괴롭혀 주었다.

아후, 이제야 그간의 체증이 조금 가시는 기분이다.

역시 트레이너는 가끔 씩 사랑의 채찍을 들어줘야, 몬스터와의 원활한 관꼐가 유지되는 것 같다.

“하여튼 저 녀석들은 언제든 잘 노는구만.”

“저런 것 좋아하십니까?”

이걸영이 조팀장에게 슬쩍 미소를 지으며 접근했다.

이걸영이 운동에 딱히 능해보이지는 않지만 마른 체형인 조팀장에 비하면 체급 차이부터가 상당했다.

하지만 조팀장은 태연한 표정으로 한마디 툭 던졌다.

“너 백용현이 감당할 수 있겠냐?”

“으음…….”

조팀장의 말에 이걸영은 깨갱하며 물러섰다. 마굴팀에서 최고의 피지컬을 자랑하는 백용현과는 장난칠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백용현씨가 운동 좀 하시는가봐요?”

“하긴 뭘 해, 저 금수저가. 그냥 어려서부터 잘 먹어서 떡대만 좋은 거지. 그래도 블러핑 용으로는 쓸만하지. 어차피 다른 녀석들은 모르니까. 클클클.”

확실히 이런 것만 봐도 조팀장이 보통 영악한 캐릭터가 아니란 것이 느껴진다.

역시 리더답다면 리더다운 성격이다.

“그보다 이번에 일론 머스크에게 제대로 신세를졌구만.”

“그래도 그 친구 재산에 그 정도는 티도 안나지 않습니까?”

백용현의 말에 함성준이 되물었다. 하지만 조팀장과 백용현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린가. 본인의 시간을 내주고 우리 홍보를 도와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거야 그렇지요.”

“게다가 마지막에 바람도 참 애틋하더군.”

“애틋해요?”

“다음 작품은 스쿨런2로 해달라는 팬심을 유감 없이 드러내지 않았던가.”

조팀장의 말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회사 차기 프로젝트를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표가 못 정하면 누가 정하는데?”

“역시 마왕 아니랄까봐, 단물만 빨고 버리는 건가? 일론이가 불쌍하구만…….”

“그러게 우리 일론이 참 좋은 녀석인데…….”

어느새 우리 일론이가 되어버린 일론 머스크였다.

“그런데 어차피 개발할 것 아니었나?”

“그거야 그렇죠?”

“그럼 화끈하게 진행해.”

“하지만 조금 전에 말씀 드렸다시피…….”

“지금 우리 상황에서 두 개든 세 개든 뭐가 문제인가? 정 안되면 외부 개발 스튜디오와 계약해서라도 개발하면 그만이지. 어차피 우리 지금 있는 대로 긁어 모야 할 때가 아닌가?”

조팀장의 말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해서라도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고품질의 타이틀을 최대한 확보해야 했다.

“그거야 그렇기는 하죠.”

어쩌면 나는 이 말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어차피 너 혼자서 감당 못 할 것들도 많지. 깨비몬도 후속작을 내야 하고 말이지. 물론 오행전기야 아직 한참 남았지만.”

“네. 조언 감사드립니다. 제가 너무 대표 답지 않았던 것 같네요.”

내 두 손 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다소 소극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일개 개발자가 아닌 경영자다.

사고가 개발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곤란하다.

스스로도 계속 문제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이번에도 여실히 그 문제점이 두드러진다.

“반성하겠습니다.”

“클클, 뭘 반성까지야. 다들 겪는 일이다.”

“그렇지. 그렇지.”

조팀장과 백용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두둔해 주었다.

“저는 못 겪어봤는데요?”

“지금 자기들은 오너 출신이라고 유세 떠나보네요.”

반면 이걸영과 함성준은 콧방귀를 뀌며 작게 투덜거렸다.

“저런 말들은 전부 무시하세요. 우리 같은…….”

홍기도가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내가 말을 잘랐다.

“잠깐.”

“왜 그러세요?”

“너는 태생도 금수저인데다가, 지금은 쉬린칭과 만나고 있잖아. 네가 어딜 도매급으로 끼어들려고 그래?”

“그, 그러네? 블랙! 너는 저쪽에 가있어!”

“아버지 재산은 아버지 재산이고, 쉬린칭 재산은 쉬린칭 재산이죠. 저는 박봉에 시달리는…….”

“네가 어떻게 박봉이냐. 말은 똑바로 해야지.”‘

맥베스로 넘어온 이후 연봉이 급상승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다.

물론 나에 비할바는 아니라고는 해도 홍기도 이 녀석도 나이를 고려할 때, 어디 가서 남부럽지 않은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지 않나?

“아니, 그래봤자죠!”

“게다가 애초에 넌 처음부터 부모님이 한강뷰 아파트까지 지원해주신 덕분에 집세 걱정 같은 것도 없잖아? 어디서 엄살이야?”

“아니, 블랙이 그 정도였어?”

“어쩐지 귀티가 난다싶더라니…….”

“아옳옳옳(억울하다! 나는 억울하다!)!”

홍켓몬은 오랜만에 심해종 모드에 돌입하여 뭐라뭐라 지껄였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관심을 딱 끊었다.

따지고보면 백용현을 제외하면 태생적인 금수저가 없었기에, 나름 프롤레타리아들의 분노로 동지애가 형성된 모양.

“어쨌든 일론 머스크에게는 나중에 따로 감사를 전한다 치고……. 그러면 이번 E3에서 우리의 역할은 끝인데, 내일은 관광 기분이라도 내면서 느긋하게 쇼케이스를 즐기면 되나?”

조팀장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내일이야 말로 진짜 거물들이 등장하는 날이 아니겠습니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마지막날에는 출시 전부터 그 해의 고티 후보로 주목되는 대작들이 줄줄이 등판한다.

나 역시 내가 맡은 역할이 끝났기 때문에 내일은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행사를 즐길 생각이었다.

“역시 제일 강한 것은…….”

“아무래도 그것 뿐이죠.”

쟁쟁한 후보작들이 늘어선 가운데도 누구나가 첫손에 꼽을 수 밖에 없는 최강의 타이틀.

텐도 버튼의 구명줄 중에 하나이자, 오픈월드의 새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시대의 대표 명장.

전설의 링크 시리즈의 최신작.

그것에 대한 최신 소식이 발표될 차례였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플레이 영상까지는 아니겠죠?”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텐도 버튼의 장인 정신이야 유명하지.”

일본 게임 개발사 자체가 워낙 장인 정신이 투철한 탓에 게임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유명하다.

다른 외국 개발사들 중에도 개발에 엄청난 시간을 들이는 곳들이 많지만, 일본은 대부분의 개발사들이 공통적으로 느리게 개발한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면서도 최적화 같은 문제는 고치지 못하지. 이것도 그쪽 고질병이야.”

백용현은 마냥 지기 싫다는 듯이 툴툴 거렸다. 물론 그런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전설의 링크 정도 되는 슈퍼 타이틀은 최적화 이슈나 치명적인 버그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전설의 링크의 개발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이 바로 미나모토 시게오라는 거성이 아닌가?

지금이야 누구나 알만한 쟁쟁한 스타 개발자들이 줄을 선 시대지만, 과거 미나모토 시게오는 비디오게임 업계 최초의 스타 개발자로 여겨진다.

그의 손을 거친 수많은 명작들에 감명을 받은 후배 개발자들이 업계를 선도했다.

천상계에 발을 들인 모든 스타 개발자들이 우러러보는 그야말로 게임의 신.

“클클, 그러보고니 지난번에 게임의 신에게 도전장 어쩌고 했던 기억이 나는군.”

“하하하. 그렇죠. 어차피 언젠가는 넘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늙었지만 그 분은 70도 넘었어. 승부가 되겠나?”

“그럼에도 정정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도전자가 챔피언의 사정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거장을 걱정하기에는 지금도 너무나 엄청난 작품을 배출하며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지 않은가?

“아! 이제 시작이네요.”

“후우……. 드디어.”

무대의 조명이 바뀌며 스크린에 텐도 버튼의 로고가 떠올랐다.

나는 한 사람의 팬에 입장에서 나는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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