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05화 (305/346)

305.

“어제까지 E3 최대의 이슈는 머신 라이더와 스파이스입니다.”

일견 칭찬 같은 이야기로 들리지만, 목적을 알 수 없어서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게임의 신이라 불리는 미나모토 시게오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게임업계 인물로는 극히 드물게도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인 중 일인으로 뽑힐 정도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지금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대단한 쇼케이스였습니다. 저는 그 두 개의 게임을 본 순간 새로운 라이벌의 등장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게임 모두가 내가 주목하고 있던 표세인이라는 한 남자가 개발하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싱긋 웃었다. 마치 이 정도면 체면을 살려준 셈이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제부터 서서히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것인 모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게임 모두 최첨단 시스템의 적용이었습니다. 최신형 그래픽 엔진을 비롯해 페이스온 시스템까지. 사실 저도 페이스온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멋지게 게임에 접목시켰다니. 감탄했습니다.”

미야모토 시게오는 팔짱을 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자신의 말을 곱씹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일본인 특유의 과장된 동작이라고나 할까?

“멋진 그래픽과 검증된 명작 소설의 게임화. 그야말로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하지요. 하지만 그래서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간다.

“당신의 개발 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개발 철학이요?”

너무나 갑작스럽고도 의아한 질문이라서 나는 살짝 당황했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저는 복잡한 스토리나 설정을 유저들에게 강요하는 영화 같은 게임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하지만 제 견해와는 반대로 세상은 보다 더 영화적인 게임들로 이동하고 있지요.”

게임이란 유저 스스로가 즐거움을 찾고 즐겨야 한다. 그래서 자유도가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미나모토 시게오 다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게임은 점차 영화와의 간격을 좁혀가고 있다.

AAA급 게임일수록 스토리에 대한 중요성은 점차 증진되며 실제로 영화 각본가에게 게임 시나리오를 의뢰하거나 유명한 소설가에게 세계관 설정이나 배경 설정 등을 맡기기도 한다.

더 현실적인 그래픽과 몰입감 있는 시나리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게임들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했다.

하지만 반대로 미나모토 시게오의 철학은 정 반대였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가 주는 즐거움이란 분명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약속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유저 스스로의 상상력을 발휘하며 독자적인 즐거움을 얻어갈 기회를 제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미나모토 시게오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뭐지?

이건 공격인가?

다짜고짜 나를 불러 올리고는 우리 회사의 게임들을 칭찬하는 듯이 말하고는 난데 없이 자신의 철학과 반대되는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다.

이미 미나모토 시게오의 명성은 게임 업계 전역에 파다하며 세계 유수의 개발자들이 앞다퉈 가장 존경하며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는 상황.

게다가 지금은 이미 전설의 링크의 프로모션 영상을 시청한 후라서 모두가 감격에 젖어 있다.

여기서 말 한마디라도 실수했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 정도의 사람이 굳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목적을 읽어야 한다.

나는 잠시 그의 안색을 살폈다.

기본적으로 사람 좋아 보이는 웃는 상. 안광이 강하기 보다는 그윽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눈빛.

그의 표정 어디에도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느낌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미나모토 시게오는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공격이 아니라면…….

이것은 어쩌면 시험일 것이다.

그리고 시험이라면 그것을 통과했을 때, 무언가 보상이 기다리겠지.

왜 이런 시험을 나에게 제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기호지세였다.

여기서 어설프게 대답한다면 E3게임쇼는 지난 이틀간 거둔 성과를 모조리 잃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회사 차원의 이미지 실추까지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저는 미나모토 시게오씨의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현재 개발중이신 게임에는…….”

“하지만 모든 철학이 그렇듯 무언가가 옳다고 해서, 그와 다른 철학이 틀린 것은 아니지요.”

“호오…….”

내 대답에 미나모토 시게오는 나서려던 것을 멈추고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의 눈은 높아질 수는 있어도 낮아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고퀄리티의 그래픽이 게임의 질을 좌우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며, 고전 레트로 감성의 도트 그래픽 게임이라고 해서 단순히 그것만으로 AAA급 리얼리티 그래픽 게임에 비해서 저평가 받아서도 안되겠지요. 하지만…….”

나는 시선을 미나모토 시게오에게서 돌려 객석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이 더 높은 품질의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멈출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임의 품질이 반드시 기술과 자본으로 좌우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나는 미나모토 시게오의 말에 빙긋 웃었다.

“전설의 링크. 최신형 그래픽 엔진이나 복잡한 시나리오도 없는 유저들에게 탐험과 모험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명작이죠.”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군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에 단 하나의 게임만 남게 되는 것은 너무 무섭지 않습니까?”

“아……. 그렇게 나오신다? 이런 실례. 계속하시죠.”

미나모토 시게오는 잠시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흘리고는 재빨리 웃음으로 무마하고는 손을 저었다.

“단순히 현실적인 최고사양 게임만이 답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유저들의 눈은 끝없이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저에게 내세울만한 철학 따위는 없지만, 결국 게임이라는 상품을 만드는 개발자로서 고객들에게 외면 받지 않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 칠 것이고 그를 위해서는 멋진 시나리오의 소설 원작에 최신 그래픽 엔진을 동원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런 하이퀄리티 게임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텐도 박스의 게임 연구 비용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전설의 링크가 결코 제작비가 저렴한 게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물론 그렇습니다.”

미나모토 시게오는 멋쩍게 웃었다.

그가 고안한 신개념의 게임기와 컨트롤러 등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무수한 자금과 연구의 나날이 더해져 만들어진 역작인 것이다.

“하지만 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샌 것 같습니다. 본론은 그래픽 수준 같은 이야기가 아니셨죠.”

“네. 맞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자유와 가이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미나모토 시게오는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내 말에 동의한 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모토 시게오씨께서 탐험과 성취감, 그리고 가족들을 위한 게임이 목표라고 생각하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게임이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치가 보다 높은 유저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너무 뻔한 이야기다. 미나모토 시게오가 자신만의 철학으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AAA급 시장은 달라졌으며 그것이 증명하듯 유저들은 보다 강렬한 경험을 기대한다.

눈은 높아질 수는 있어도 낮아지기는 힘든 법이다.

추구하는 방향성의 차이지, 본질적인 의미에서 모든 개발자들이 머리를 쥐어짜며 유저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은 똑같다.

“저는 이번에는 보다 내밀하고 강력한 카타르시스가 전달 될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어쩌면 미나모토 시게루씨의 철학과 합치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임을 개발할지도 모르지요.”

“욕심이 많으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제 개발 철학에 대해서 질문하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무척 고대하고 있습니다.”

“철학이라고까지 말하면 너무 거창하다는 느낌이지만, 저는 이렇습니다. 더 많은 유저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멈추지 않고 다양한 게임들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꿈꾸는 저의 이상향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마스터 피스라고 인간의 취향은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 계속 다양한 게임들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에게는 남들 앞에서 이렇다 할 개발 철학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이러한 행동이 다소 줏대 없고 가벼운 생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만의 작가주의적 작품관 따위를 인정 받기 보다는 내가 타겟으로 삼은 유저들에게 내가 제공한 게임이 잠깐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말씀을 듣고 있자니…….”

“?”

“제가 너무 고리타분한 늙은이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설마요. 미나모토 시게오라고 하면 혁신과 도전의 아이콘 아닙니까. 당장 전설의 링크만 하더라도 저는 그것을 통해 얼마나 많은 영감을 얻고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군요. 갑작스럽게 무례한 요청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꼭 대답이 듣고 싶었습니다.”

“대체 어째서죠?”

대체 무슨 이유로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인가?

왜 일면식도 없는 새파랗게 어린 후배에게 개발 철학을 질문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지금은 텐도 박스의 쇼케이스 차례가 아닌가?

“제가 당신이 만든 게임의 팬이라서 그렇습니다.”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게임의 신이…….

내가 만든 게임의 팬이라고?

“우선 처음 놀란 것은 깨비몬이었지요. 창의적인 접근 방식과 깨비몬들을 이용해 제작하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기쁨은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아, 물론 스쿨런 역시 그렇습니다.”

가슴이 뛴다.

정말로 이게 현실이 맞나? 혹시 나는 아직도 호텔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아직 E3 셋째날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이유요?”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서로 출시일이 맞물리지 않는 덕분에 전설의 링크는 스파이스와 경쟁하지는 않겠지요.”

“그건……. 좀 아쉽군요.”

스파이스로 그와 경쟁할 생각은 없다. 내가 아쉬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팬으로서 전설의 링크가 출시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제가 표세인씨를 불러낸 것은 개발 철학에 대해 듣고 싶었기도 합니다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도전장을 던지기 위해서입니다.”

“도전장이요?”

아니, 뭔가 이상하지 않나?

도전장을 던져야 할 쪽은 내 쪽이 아닌가?

“대화를 나누고 보니, 역시 내 스스로가 저물어 가는 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군요. 하지만 저도 아직 완전히 퇴물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70대의 노인임에도 아직 눈동자에 총기가 사라지지 않은 남자였다.

이것은 정말로 엄살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 이제부터 제 도전장을 보여드리죠.”

“어?”

순간 그의 뒤에 있던 스크린에서 지금까지 그 어떤 정보도 공개된 적이 없던 텐도박스의 최신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깨비몬?”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서프라이즈 맞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