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다녀왔어.”
“어서 와. E3는 어땠어?”
며칠간의 짧은 출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 연아가 반갑게 맞이했다.
“최고였어.”
“다행이네.”
“나는 피곤해서 먼저 올라가서 쉴테니까, 둘이서 대화하거라.”
“네. 푹 쉬세요.”
조팀장이 방으로 향하고 나는 적당히 짐을 정리하고 연아와 함께 쇼파에 앉았다.
“나에게 할 말 없어?”
“헤헤헤.”
내 질문에 연아가 배시시 웃으며 슬쩍 내 품에 안겼다.
“많이 놀랐어?”
“솔직히 심장 뱉을 뻔했어.”
미나모토 시게오가 새로운 게임을 공개하는 순간 전혀 상상도 못한 게임이 모습을 드러내었기에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복셀아트로 이루어져 있던 깨비몬이 이번에는 살아있는 셀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카툰랜더링으로 변환되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베이스 케릭터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폰 형태의 깨비몬을 들고 있는 소년과 소녀가 배를 타고 낯선 섬에 도착하는 광경.
미나모토 시게오 특유의 발랄하고 따뜻한 연출 덕분일까? 묘하게 지브리 스튜디오를 연상케 하는 퀄리티의 그래픽.
‘설마?’
‘맞습니다.’
미나모토 시게오의 눈빛에서 내 예상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깨비몬은 지브리 스타일의 카툰랜더링 게임으로 다시 태어난 것.
밝은 햇살이 비추는 아름다운 풍경의 섬을 탐험하며 여러 종류의 깨비몬들을 만나거나 만들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들 만의 작은 마을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도구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깨비몬의 설정을 이용해 완성된 다양한 기믹의 스킬을 이용한 전투까지.
미나모토 시게오의 손으로 새롭게 빚어낸 깨비몬2는 또 한번 모두를 매료시키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놀라운 이야기의 배후에는 연아가 있었던 것이다.
“서프라이즈~”
장난스럽게 두 손을 활짝 펴고 말하는 연아의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살짝 그녀의 뒷머리칼을 쓸었다.
“그래도 조금은 언질을 줄 수도 있던 것 아니야?”
“그러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난데 없이 왜 나를 무대 위로 불러 들이는 건가 싶었어.”
“무대 위로 불러?”
“몰랐어? 네가 요구했던 것 아니야?”
“외주 개발 협력에 그런 부가 조항까지 일일이 설정하지는 않지.”
연아는 정말로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미나모토 시게오의 돌발 퍼포먼스였다는 거다.
“후아, 깨비몬 후속작을 미나모토 시게오의 손으로 완성하게 되다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획자가 오빠의 작품을 맡아준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야?”
연아는 내 대답이 무척 기대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물론 나는 그녀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 안에 살짝 숨겨진 일말의 불안감까지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말하지 않고서 일을 처리한 것에 대해서 혹시라도 내가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까 궁금해 하는 것이 틀림 없었다.
“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잖아?”
“……음, 그렇지?”
자신이 기대하던 대답이 아니라서 일까? 연아가 살짝 걱정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나는 게임 자체를 좋아하고 미나모토 시게오의 팬이잖아. 그 사람이 깨비몬 후속작을 개발해준다니……. 솔직히 감동적이더라.”
“헤헤헤, 그러면 걱정할 필요 없겠네. 서프라이즈 맞지?”
연아가 다시금 내 품으로 쏙 안기며 내 가슴에 머리를 부볐다.
나는 연아의 머리에서 풍기는 샴푸향을 맡으며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칼을 쓸었다.
“고마워. 정말 멋진 선물이야.”
왜 아니겠나?
게임의 신이 만드는 깨비몬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재창조가 될 것인가?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이미 전설의 링크를 통해 오픈월드 장르에서도 신은 신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몬스터 육성 및 크레프팅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마스터피스가 나올 것인가?
E3에서 공개된 깨비몬2의 프로모션 영상은 아직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영상만으로도 보는 이를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의 매력적인 잠재력을 뽐냈다.
“그런데 용케도 텐도 박스와 손을 잡을 수 있었네?”
“사실 이건 그쪽에서 우리에게 먼저 제안한 거였어.”
“정말로?”
강력한 퍼스트 파티를 구축하고 자신들의 IP가 아닌 작품은 손대지 않는 그들인데,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깨비몬부터 스쿨런까지 미나모토 시게오는 오빠의 팬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아…….”
무대에서 했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건가? 게임의 신이 내가 만든 작품의 팬이라니…….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도전장이라고 했지.”
“응? 무슨 말이야?”
“E3 무대에서 미나모토 시게오가 나에게 도전장을 던진다고 하더라고.”
“으음……. 오빠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전장은 오빠가 던져야하는 것 아니야?”
“그렇지. 사실상 그 사람이 챔피언인데…….”
세상에 어떤 개발자도 미나모토 시게오를 상대로는 한 수 접을 수 밖에 없다.
그만큼 그는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니까.
그런데 나에게 도전장이라……. 단순히 겸손함만이 이유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미나모토 시게오가 가진 특유의 장난스러운 분위기.
70대의 노인임에도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타고난 동안 보다 그 순진무구한 장난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천재라고 할 만한 모든 요소를 지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난 거야?”
“응?”
“지금 웃고 있잖아.”
“아아, 그렇구나. 나도 모르게……. 하지만 재미있겠다 싶어서.”
“긴장 같은 것은 되지 않아?”
“되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대감이 크네.”
“그런데 이해가 안되네. 도전장이라고는 했지만, 그게 승부가 가능한 일인가?”
연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판매량이나 고티 순위 같은 것일까?”
“아니, 그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승부 방식이 아닐 거야.”
“미나모토 시게오와 만난 적은 없지 않아?”
“그렇지. E3에서 처음 봤지.”
그 조차도 짧은 대담에 불과했다. 나는 깨비몬 후속작 프로모션이 끝남과 동시에 그와 함께 단상에서 내려온 이후 그대로 헤어졌다.
하지만 그 짧은 만남 속에서도 어쩐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말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알맞은 표현을 찾지 못할 것 같지만, 그냥 알 것 같았다.
“흐음, 뭐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해줘.”
“뭐가 궁금해?”
“지지 않을 거지?”
“물론이지.”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
*
*
“E3 영상을 봤습니다. 미나모토 시게오의 갑작스러운 호출이라니……. 많이 당황하셨겠습니다.”
양성태의 말에 나는 멋쩍게 미소 지었다.
“많이 티가 나던가요?”
“티가 났다기보다는 그냥 일반적인 감상 아니겠습니까?”
“혹시 부사장님께서는 깨비몬 후속작 외주 개발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몰랐습니다. 이번건은 사업부 독단으로 회장님의 지시하에 극비로 처리된 일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대표와 부대표에게 일언반구 없이 사업을 진행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법도 하지만, 워낙 나와 연아의 관계가 특별한 덕분에 나도 양성태도 불만은 없었다.
게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나에게 깜짝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는 귀여운 속셈이었으니, 더더욱 불쾌감 따위는 낄 자리가 없다.
“대담중에 도전장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요. 그것을 놓고 인터넷도 시끌시끌 합니다. 거성과 신성의 대결이랄까요? 모두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상황인가요?”
괜한 구설수로 현재 개발중인 프로젝트나 회사에 누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전장이니, 승부니 하는 말들이 있기는 했지만 내기 상품 같은 것 따위도 정하지 않은 반쯤 장난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전혀요. 솔직히 이번 E3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우리입니다. 솔직히 셋째날 조차 화제의 중심에 서게 해준 미나모토 시게오씨의 조력에 감사해야한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분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신 걸까요?”
양성태의 말에 나는 살짝 턱을 괴고 대답했다.
“아마도 딱히 어떤 의도나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닐 겁니다.”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고요? 하지만…….”
양성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도 부탁하지 않은 그의 돌발 행위 덕분에 현재 맥베스의 이름은 쉴세 없이 회자 되고 있다.
기업의 브랜드 네임을 퍼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마케팅 비용이 필요한 가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로 엄청난 효과였다.
“그분은 천생 기획자라는 느낌입니다.”
“물론 그렇겠지만…….”
“본인과 E3를 관람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행동하신 것 뿐일 겁니다. 그 밖에 홍보 같은 부수적 효과 같은 것은 정말로 그냥 덤일테죠.”
“확실히 이따금 이런 돌발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시는 분이시기는 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양성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무리 미나모토 시게오가 돌발적인 포포먼스를 선보이는 사람이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이질적인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걱정되십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양성태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의 능력에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누가 뭐라해도 업계 최고의 거성입니다. 게다가 그는 아직도 걸작들을 만들어내는 현역 개발자이지요.”
“그렇죠.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지요.”
“정확히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만약 패배하여 회사에 좋지 못한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긴합니다.”
“그렇군요.”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고 양성태의 걱정을 왜 모르겠나? 그의 우려는 지극히 지당하다.
내가 맥베스에 입사한 이후 몇 개의 히트작을 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나모토 시게오는 그 이상의 히트작들을 끝없이 배출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당장의 이력만으로 내가 미나모토 시게오와 무언가를 겨룰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미나모토 시게오는 그 개발하는 와중에 약간의 흥미를 더하고 싶었던 것이 틀림 없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쪽이 아닙니다.”
나는 스파이스의 시스템 기획안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일단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부터 잘 마무리해야지요.”
“물론 그거야 그렇지요. 그런데 그 ‘해야 하는 일’에 관한 일 입니다만…….”
“?”
뭐지 양성태는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상당히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왜 그러시죠?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정확히는 생길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생길 것 같다?”
“쉬린칭이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정식 요청?
쉬린칭과 맥베스의 관계는 이제는 더 이상 단순한 꽌시 수준을 넘어섰다.
그녀는 광파전시총국의 총국장으로 게임 심사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공동으로 합자회사를 세웠고 그 밖에도 막대한 투자금을 우리에게 투자한 상황.
정말이지 연아 다음가는 귀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녀가 무언가를 ‘정식’으로 요청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보통은 연아와 화상 통화로 둘이서 해결해버렸으니까.
“정식 요청이라……. 거창하네요. 그래서 뭐죠?”
“대표님은 아실 거라고 하면서 다소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더군요.”
“?”
“약속을 지켜라. 곧 함께 갈 것이다.”
양성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바로 이해했다.
“지금 홍기도 이 녀석 어디 있죠?”
마취 성분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