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개발 단계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된 이후로 나는 스파이스 개발에서 손을 뗐다.
내가 담당하던 기획은 모두 넘겼으니, 나머지는 리소스를 충당하고 테스트를 통해 다듬는 과정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누구보다 믿음직한 남궁원이 있기에 나는 여러모로 짐을 덜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양성태와 문상훈을 호출해서 향후 대책을 논의할 수 있었다.
“3개라니……. 확실히 만만치 않은 이야기군요.”
“모바일 게임이라면 3개가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하겠지만…….”
근래 유행하는 수집형 모바일 게임이라면 사실상 리소스 싸움에 불과하기 때문에 분산 외주 방식으로 얼마든지 복수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당장 스파이스도 개발 중인 상황에서 맥베스 자체 인력으로는 1개 정도 프로젝트를 겨우 소화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2개를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군요.”
“흠……. 솔직히 회장님 답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문상훈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회장님께서는 개발 파트에 압력을 행사하신 경우가 없었지요.”
양성태도 문상훈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라인업 세팅은 무척 중요하니까요.”
“그건 그렇지요.”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동시에 3개나 되는 타이틀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었지만, 반대로 어정쩡한 게임들이 추가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되는 것도 아니었다.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을 수 있다면 맥베스는 진정으로 국내 수준을 넘어서 세계 정상급 개발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업으로 탈바꿈 될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어설픈 결과물을 배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연아의 오랜 바람이었다.
나조차 어디 가서 업무 시간으로 딱히 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집까지 일감을 가져와서 온종일 일에만 몰두하는 연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연아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묘수가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단 각자가 가진 인맥을 통해서 외주 업무가 가능한 스튜디오들을 알아보는 편이 좋겠군요.”
“당장은 그 수밖에 없겠지요. 애초에 회장님께서도 3개 정도의 프로젝트가 동시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하신 것이지, 정말로 우리 손으로 3개를 만들라는 것은 아닐테지요.”
“그렇죠.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기한이…….”
우리는 클라우드 서비스 일자를 떠올리며 짧은 신음을 흘렸다.
“1년 반…….”
“최대치는 2년이겠지요. 기대감 조성이라는 것도 있으니, 반년 정도는 홍보 효과로 묶어둘 수 있을 테니까요.”
“후우……. AAA급 게임 3개를 2년…….”
“최대치를 기준으로 잡으면 안되겠지요. 1년 반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후, 이거 가혹 행위……. 이런 젠장. 왜 이런 단어가 입에 붙었지.”
아직도 마굴팀과의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문상훈이 짜증스럽게 손등으로 자신의 입술을 문질렀다.
“일단 좀비로얄 개발사는 어떻습니까?”
“지난번에 듣기로 신작 개발에 돌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아…….”
문상훈은 정말로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부사장님.”
“네.”
“엠씨소프트 측은 어떻습니까?”
“그쪽도 장담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근래 대형 개발사들이 앞다퉈 체질 개선에 뛰어드는 덕분에 개발 인력이 부족한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니까요.”
“엠씨소프트가 그렇다면 맥슨도 마찬가지일까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양성태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렇다는 것은…….
일단 3M 중에서 지원을 얻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얼마나 골치가 아픈 이야기냐면 애초에 국내 게임 개발사 중에서 AAA급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있는 회사 자체가 한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한데, 그중에 최대 개발사 두 곳이 탈락이라는 것이다.
“그럼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하겠군요.”
“아무래도 그 방법 밖에 없겠지요.”
“혹시 카이두는? 가만, 그러고 보니 오늘 홍비서가 안 보입니다?”
문상훈의 말에 나 대신 양성태가 대답했다.
“다음 주까지 휴무입니다.”
“아, 그렇군요. 어쨌든 카이두라면 여력이 있지 않을까요?”
“반대입니다.”
“네?”
“카이두는 이번 클라우드 서비스에 앰플과 함께 최대 파트너입니다. 앰플은 클라우드 서비스와 UMPC 개발에 주력하고 카이두는 라인업 세팅에 내세울만한 게임들을 개발 중이죠. 솔직히 우리 보다 더 바쁘면 더 바쁠 겁니다.”
“정말로 손발이 꽁꽁 묶인 기분이군요.”
문상훈은 두 손 두발 다 들었다는 듯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양성태도 큰 반응은 없었지만 비슷한 느낌이었다.
“혹시 대표님께서는 따로 복안이 있으십니까?”
두 사람 모두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 짧은 시간 안에 갑자기 AAA급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겠지요.”
우리는 단순히 규모가 큰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블록버스터 효과를 도출할 수 있는 수작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1년 반이라는 기간은 너무도 짧다.
그렇다면 이건 정공법으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자연히 편법뿐이다.
“일단 가장 간단한 예시는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게임을 사버리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지난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좀비로얄 때와는 다른 경우겠군요.”
“그렇지요. 그때는 그냥 그 게임을 사버리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가급적 우리의 비전에 맞는 게임을 찾는 수고부터 들여야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딱 맞는 게임을 3개나 찾고 또 살 수가 있을 까요?”
“3개 전부는 저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장르는 다양하고 그것들이 AAA급 게임이라는 보장도 없다.
비전에 적합하다고 해도 인디게임 규모의 게임이라면 우리가 매입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 테니, 의미가 없다.
“3개 전부는 무리라면 다른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대표님이라면 계획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양성태가 흥미롭다는 듯이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로 질문을 던졌다.
“있기는 있는데…….”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문상훈을 바라보았다.
“어? 왜 갑자기 그런 눈빛으로 보십니까?”
무언가를 감지한 것인지 문상훈이 굉장히 방어적인 태도로 움찔했다.
음…….
막상 말을 꺼내려니, 입맛이 쓰다. 하지만 해야 한다.
“스파이스와 머신 라이더 두 가지 타이틀 모두 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부분은 메인 개발자들만 남기고 기획은 빼낼 수 있겠지요.”
“그렇겠지요. 쉽지는 않겠지만……. QA팀도 그쪽에 붙여서 어떻게든 지원하라고 하면 상당수의 기획자들은 빼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차출한 기획자들을 문상무님께서 맡아서 개발을 진두지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지금 들으신 그대로 입니다.”
“정말 그게 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하하, 그거라면야. 맡겨만 주십시오!”
문상훈은 자신 있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 후 우리는 차후 일정에 대한 조율을 조금 더 논의했다.
그리고 나와 양성태만 남게 되었을 때였다.
“문상무에게…….”
“?”
“전부다 말씀하신 것은 아니시지요?”
역시 양성태는 눈치가 칼이다.
“그렇습니다.”
“역시……. 그분 쪽에 칠층 팀을 맡기실 생각이신 거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제가 신경 쓰지 않아도 훌륭하게 일을 완성해줄 사람들은 문상무님과 마굴팀뿐이니까요.”
내 말에 양성태는 재미있다는 듯이 큭큭 웃었다.
“문상무가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하지만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어물거릴 시간은 없으니까요.”
지금까지도 맥베스의 최대 무기는 개발 속도였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메인 디렉터인 나의 계획을 윗선에서 전혀 제지하지 않은 덕분에 개발 속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기준 보다 2배 내지는 3배까지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애초에 개발 기간이 긴 회사들의 경우, 그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임원들과 개발진간의 의사소통 문제로 개발이 지연되거나, 더러는 프로젝트 자체가 뒤집어져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게임 개발사가 게임 개발 시간이 길어지면 심각한 데미지를 입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근래 게임 개발비 이상으로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이 필요한 탓에 완성된 게임을 마케팅 비용이 충당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왕왕 있을 정도였다.
물론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
하지만 문제는 맥베스의 색채만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위해서는 내가 중심이 되어 전반적인 컨펌을 담당해야 하는데, 게임이 3개씩이나 되면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적어도 1개 파트 정도는 내 손을 타지 않고 오롯이 그들만의 능력으로 완성해줄 팀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분에서 문상훈과 마굴팀의 시너지를 믿는다.
“일단 지난번에 생각해 두었던 일부터 진행해야겠군요.”
“어떤 일입니까?”
“칠층 사무실에 스넥바를 설치하고 총무팀에 사내 전산망으로 그쪽 요구를 전담해서 맡아주도록 부탁해야지요.”
“아,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이걸영 상무님만 하더라도……. 밥심으로 일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네. 정말로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지난번 쉬융레이와의 식사 자리에서 이걸영의 미친듯한 활약상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일단 그쪽은 그렇다 치고……. 그러면 외부에서 개발 중인 게임 중에서 눈여겨보신 타이틀이 있으십니까?”
“솔직히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하지 못했네요. 제 불찰입니다.”
현재 사업부는 연아가 주도하고 개발부는 내가 전담하는 형태로 움직인 탓에 사업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이것은 내 문제도 있는 것이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와의 협업과 앰플의 UMPC 개발에 참여하면서 사업부의 예상보다 일의 전개 속도를 높여버린 탓에 일이 꼬여버린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회장 취임 이후 최대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연아의 입장에서 이 일을 마무리 하지 않은 상태로 결혼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 일만 해결된다면, 우리의 결혼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이 일만 끝나면 나도…….”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혼잣말입니다. 일단 저도 찾아보겠지만, 부사장님께서도 혹시 눈에 띄는 아이템이 있다면 주저 없이 저에게 전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도 전력을 다해서 물색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뭐지?”
내가 스마트폰을 켠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는 들었어. 포텐셜이 높지만, 개발에 난황을 겪는 아이템을 찾고 있다면서?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이 말을 나에게 하는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 것이 어이가 없다.
-대체 어떻게 알았지?
-……나도 너희 회사 사람이야. 일단은…….
아! 그랬었지?
제발 그 웃음 멈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