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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313화 (313/346)

313.

“자, 새로운 일정표야.”

홍기도가 건넨 새로운 일정표를 훑어보던 남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거 평소와는 뭔가 좀 다른데?”

눈치 빠른 남궁원은 일정표를 보자마자 표세인의 평소 스타일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치? 내가 작성했어?”

“이걸 네가? 아니, 그런데 이거 문상무님 스튜디오와도 이야기가 된 거야?”

“너만 오케이하면 그쪽과도 논의해봐야지. 하지만 별 문제는 없을 거야.”

사실상 삼인방의 스튜디오가 담당하던 파트를 한쪽으로 몰아 놓은 것에 불과하기에 메인 디렉터인 남궁원만 납득한다면 저쪽에서 문제를 제기할 일은 없었다.

“음…….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이거 갑자기 왜 이렇게 까지?”

기둥 소프트가 개발하던 머신 라이더 마무리까지도 자신들에게 넘어온 것이 의아스러웠다. 물론 개발은 막바지 단계였고 QA팀에 외주팀까지 붙여준 덕분에 아슬아슬 업무량은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쨌든 남궁원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이제 개발 막바지니까 새로운 프로젝트 준비해야 하잖아?”

“그렇지?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것 아니야?”

“위에서 내려온 지시야. 촉박한 시간 내에 3개의 프로젝트를 더 완료하라는 거지.”

“3개?”

터무니 없는 말에 남궁원이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것도 AAA급 게임으로 말이지.”

“우아……. 그렇구나. 클라우드 서비스 때문에 라인업을 새로 늘리는 거로구나?”

“그렇지. 축하해.”

“뭘 축하해?”

“너 곧 승진할걸?”

“승진? 갑자기?”

물론 근래 남궁원 스스로도 자신의 맡은 직무가 일개 팀장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팀장 직함을 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갑자기 승진이라니…….

“그럼 곧 차장인가…… 생각보다 빠르네?”

“차장?”

“나 팀장이잖아. 승진하면 차장이지 뭐.”

“바보야.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게도 안보이냐?”

“죽을래? 갑자기 시비질이지?”

“최소한 부장……. 어쩌면 실장으로 진급할걸?”

“뭐?”

IT업계의 특성. 거기에 프로젝트 단위에 대한 보상이 큰 게임 업계의 특성상 갑작스럽게 몇 단계 수직 상승하는 예는 드물지 않았다.

회사 규모에 따라서는 남궁원과 홍기도 연배에 이미 임원을 달아버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원은 어안이 벙벙했다.

게다가 이 말을 하는 사람이 표세인이나 다른 실권자도 아닌 홍기도이지 않나.

“확실한 거냐?”

“아직 말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아마 맞을 거야.”

“말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

“이번에 일정표를 짜다가 보니까. 네가 짊어진 무게가 장난이 아니더라고.”

“어?”

사람에 따라서는 그저 일에 치여 산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일중독자에 가까운 남궁원에게 그것은 다소 칭찬처럼 들렸다.

“어차피 시간문제였고, 그동안 바빠서 미뤄진 것이 있다고 생각해. 너는 더 일찍 진급해야 했어. 솔직히 실장급 달고 너만의 스튜디오를 구성할 때도 됐지.”

남궁원의 커리어는 내부적으로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였다.

워낙 동분서주하는 표세인의 빈자리를 떠받치며 구르다 보니, 성과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실장들조차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하필 표세인이 AAA급 게임 개발로 회사의 노선을 변경한 탓에 남궁원은 고작 팀장에서 그치고 말았다.

만약 기존대로 소규모 모바일 스튜디오 단위로 나뉘어 있었더라면 남궁원은 진작에 실장 승진의 쾌거를 이루었을 지도 모른다.

“흠흠, 어쨌거나 그냥 너 혼자 지껄이는 것 뿐이잖아.”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표세인 대표님도 생각 중이실 거야.”

“자꾸 없는 소리로 사람 들뜨게 하지마.”

“내기 해도 좋다니까? 너 이번 프로젝트를 끝으로 팀장 직함 반납하게 될 거야.”

너무도 자신만만한 홍기도의 태도에 남궁원은 말문이 막혔다.

“그, 그래. 그러면 좋은 일이지. 그런데 나는 그렇다 치고 너는 뭐 없냐?”

“나?”

“그래. 나는 막상 팀장으로 승진했는데, 너는 비서실로 이동했다 뿐이지 당장 뭐 직급 변화 없지 않아? 순서상 나보다 네가 먼저 아니야?”

“나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서……. 어쨌든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한턱 내라.”

“뭘 기정사실처럼 이야기하는 거냐? 네가 여기 사장이라도 돼?”

“나 사장 비서잖아. 네 눈높이에서는 보지 못하는 여러 가지를 보게 되지.”

“으윽…….”

뭔가 그럴듯한 말이라서 남궁원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무튼 문제는 없는 거지?”

“그래. 깔끔하게 잘 정리했네. 용케도 우리 상황까지 전부 파악했단 느낌이네.”

“오케이. 나는 그럼 간다.”

“어디 가냐?”

“문상무님께 가야지.”

홍기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

*

*

“홍기도가 일을 잘하는군요.”

“알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저 녀석이 정신 차리고 일에 덤벼드니까 무서울 정도네요.”

일정관리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여러 파트의 사정을 두루 꿰고 그들의 니즈와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아우르면서 설계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문서 작성 능력이나, 업무 처리 능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업무인 탓에 의외로 많은 관리직들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썪는다.

그런데 홍기도 이 녀석은 며칠 만에 일정표를 마무리하고는 남궁원과 문상훈에게도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

이건 정말로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쉬린칭이 돌아오고서 뭔가 일이 있던 모양이긴 한데…….”

“어제는 놀랍게도 저보다도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더군요.”

“사람이 너무 급격하게 변하면 죽는 다던데…….”

시키지도 않은 야근까지 불사하며 일감을 찾아다니는 홍기도를 보며 나는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겠네요.”

“기회요?”

“아시잖습니까? 홍기도 저 녀석 가끔 업무 집중 모드에 돌입한다는 것. 그럴 때 아주 제대로 이용해야지요. 안 그러면 저렇게 효율 낮은 녀석을 어떻게 써먹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군요. 대표님의 용인술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흐음……. 이거 의외로 각이 나오는데요?”

“각이 나온 다고요?”

“조연준이 물어다 준 외부 스튜디오에 외주로 한 건 처리하고 문상훈 마굴팀 콜라보로 한 건 처리하면 남는 것은 맥베스 내부 개발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이런 상황에서 남궁원이야 메인디렉터로는 출중하니……. 홍기도 녀석 이 참에 비서에서 다시 내릴까요?”

“계획이 있으십니까?”

“개발의 중심은 PD와 PM 아니겠습니까?”

“남궁원이 PD라면……. 홍기도에게 PM을 맡겨보실 생각이시로군요.”

“네. 아무래도 이번에는 정말로 제가 모두 떠 안고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할테니까요.”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인재들이라는 느낌입니다.”

“부사장님께서 보시기에도 그렇습니까?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 둘은 제 입장에서는……. 다소 팔이 안으로 굽는 느낌이랄까요? 저도 모르게 점수를 더 후하게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저는 솔직히 이번 기회에 좀 더 나가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좀 더 나간다?”

“지금까지 표세인 대표님께서는 누군가에게 일을 완전히 맡기지는 않으셨었죠.”

“네? 벌써 몇 번이나 남궁원에게…….”

“아니죠. 핵심 기획과 컨셉은 세세하게 다 짚어주시고 틈틈이 살펴보셨었죠.”

“그거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르게 해본다는 말씀은……. 아예, 신경을 꺼라?”

“완전히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번쯤 대표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선임 개발자 말고요.”

“흠…….”

사실 안 그래도 이 문제는 제법 오랫동안 신경 쓰고 있던 일이기도 했었다.

나는 지금도 제대로 된 CEO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대표라는 명함만 쥐고 있을 뿐인 총괄프로듀서에 가까운 위치였다.

“솔직히 그게 가능이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래야겠지요. 이 회사에 인재가 표세인 대표님뿐이라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원플레이어 팀은 결국 몰락하기 마련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두각을 드러낸 만큼 나의 그늘에 가려진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부터라도 나는 서서히 개발자들의 뒤편으로 물러나는 것이 옳은 수순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결혼하게 된다면…….

나는 정말로 전면에 나설 일이 없을 테니까.

“이 건에 대해서 부사장님께서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양성태는 모두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홍기도 남궁원 콤비의 프로젝트는 공식으로 대표인 내 손을 떠나, 부사장인 양성태의 관리하에 놓이게 되었다.

말장난에 지나지 않은 요식 행위라 할지라도 이렇게 분명하게 구분해 두어야, 내가 괜한 참견을 하지 않을 테지.

“걱정되시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의외로 한 걸음 떨어져서 그들을 바라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흠잡을 곳 없는 우수한 인재들이라는 느낌입니다.”

“부디 부사장님께서 잘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저에게 그래주셨던 것처럼요.”

“하하하. 그렇군요. 그런 일도 있었지요.”

“런닝메이트라고 했었던가요? 정말로 항상 감사드립니다. 부사장님이 아니었더라면 제가 이렇게까지 쉽게 이곳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감사한 말씀이지만, 사실 홍기도와 남궁원 콤비에 대해서라면 아마도 대표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생각하신 바가 있으십니까?”

사실 양성태에게 맡긴 일이고 이런 일에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니,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트레이너로서, 나 외에 다른 이가 홍켓몬을 조련하는 것은 좋은 공부가 될 테니까.

“완전히 방임할 생각입니다.”

“방임이요?”

과거에 나를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던 양성태 답지 않은 대답이라서 나는 살짝 당황했다.

“조금 표현에 문제가 있었군요. 정정하겠습니다. 방임이라기 보다는 격리에 가까울 것 같군요.”

“격리요?”

점점 더 내용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갑자기 무슨 격리람?

“물리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대표님을 포함해 그 누구의 목소리도 그들에게 닫지 않도록 철저하게 격리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들의 진면모가 드러나겠지요.”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미래의 임원을 키워내는 일입니다. 사실 클라우드 서비스도 이것들에 비하면 작은 문제지요. 언젠가 그들은 우리를 넘어서 훨씬 큰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한……. 관찰과 파악이 우선이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부사장으로서 이번 일에 대표님이나 회장님과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성태는 싱긋 웃었다. 그 미소 속에는 나와 연아와는 다른 뜻이라고 하면서도 우리가 결코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양성태는 언제나 옳다.

“훌륭하십니다. 그런 쪽으로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부사장님께는 배울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그들만이 아닌 저에게도 많은 지도 편달을 부탁 드립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양성태의 훈육을 받은 홍기도와 남궁원이 과연 얼마나 성장하게 될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까지 이후의 인재를 육성하는 양성태의 혜안이라니…….

나는 정말로 대표로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제발 싸우지만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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